소설리스트

내 방어력 무한-20화 (20/158)

# 20

6.협상의 시간

“흠. 이 정도면 괜찮겠지.”

협회로 가기 전, 마트에 들른 하현은 청바지와 검은색 셔츠를 사서 갈아입었다.

저번처럼 추리닝만 입고 갔다가 낯 팔릴 일은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몸에 근육도 좀 붙어서 그런가 보기 좋네.’

예전에 삐쩍 말랐던 모습과 달리 이제는 제법 살과 근육이 붙어 그럭저럭 건장한 모습이었다.

하현은 거울의 자신을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가볼까.’

마트에서 나온 하현은 협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정산 날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협회의 분위기가 조금 미묘하게 달랐다.

‘다들 긴장한 느낌이야.’

건물의 안으로 들어온 하현은 위를 바라봤다. 본래는 아무것도 없었던 홀의 위쪽에 투명한 창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그곳에는 1위부터 100위까지의 이름, 랭크, 업적 포인트가 간단하게 적혀 있었는데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토벌 의욕을 높이기 위해 공개한다는 상위 100명의 갱신표였다.

‘다들 점수들이 어마어마하구나.’

현재 상위권에 올라간 이들의 업적 포인트는 평균적으로 3만 포인트 이상.

계속해서 갱신되고 있는 중이기는 했지만 지금도 현금으로 환산한다면 무려 평균 3억의 수입이었다.

‘저기다가 공개되지 않는 아이템의 처분 값까지 더하면 평균적으로 매달 5억은 넘게 벌겠지.’

현실적으로 실감이 가지 않는,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도달해야만 하는 금액에 하현은 미묘한 표정으로 창을 바라봤다.

‘뭐 언젠가는 도달하겠지.’

계속해서 성정한다면 언젠가는 닿을 것이다. 하현은 자신도 갱신을 받기 위해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업적 포인트 갱신 받으러 왔는데 어디로 가면 되죠?”

“랭크가 어떻게 되시죠?”

“C입니다.”

이전에 레벨이 150을 넘기면서 하현의 랭크는 한 단계 올라 C가 되었었다.

하현의 대답에 안내원은 컴퓨터를 두드리며 무언가 알아보더니 대답했다.

“지금 6층이 한산하니 그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바로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하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한쪽으로 질서정연하게 줄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가 업적 포인트 갱신하는 줄입니까?”

“예, 이 줄 맞아요.”

줄에 서 있는 토벌자에게 대답을 들은 하현은 곧장 줄의 맨 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복도위에도 떠올라있는 갱신표를 바라봤다.

‘100위안에 B급도 섞여 있군. 아직은 제대로 된 상위권이 아닌 모양이야.’

A급의 수만 해도 100명을 넘기고 최상위권인 S급들은 11명이다.

그들이 모두 갱신되어야만 진짜 토벌자들의 상위권 갱신표가 나오는 것이다.

‘저녁에 올걸 그랬나.’

저녁에 왔다면 얼추 제대로 된 갱신표가 이미 완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현은 괜히 오전에 왔다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어, 어? 뭐야 저거.”

“뭐야? 저거 점수 오류 난 거 아냐?”

갑자기 대기 줄의 사람들이 동시에 웅성거리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의 시선을 따라 다시 갱신표를 바라봤다.

1위 [흑월 S급-300,000Pt]

여태까지 순위권들을 완전히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포인트.

그 수치에 하현뿐만 아니라 협회 전체에 모든 이들이 놀라움에 굳어버렸다.

S급이라 한들 매달 정기적으로 정산 받는다면 12만이 평균이었다.

그런데 흑월은 저번 달에 정산을 받았음에도 그 두 배를 넘어선 30만 포인트를 벌어온 것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면 저만큼 받는 거야?”

“그 왜 최근에 도시 몇 개 부숴먹었던 괴물 있잖아. 울티노인가? 그놈 잡아서 그런 거 아냐?”

“아, 그거 흑월이 잡았어?”

복도에서 흑월에 대한 이야기로 잔뜩 달아올랐을 때, 하현은 그 이름을 빤히 바라봤다.

‘흑월…… 그럼 저 사람이 내가 안에 있을 때 울티노를 죽인 사람인가.’

얼굴도 이름도 몰랐지만 드디어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자신이 울티노를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저 흑월이란 자가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 되는 셈이었다.

‘뭐 내가 있는 것도 모르고 공격을 그냥 날리긴 했지만.’

어쨌든 자칫 잘못하면 울티노의 뱃속에 오래있어야 할지도 몰랐던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다.

하현은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금방 하현의 차례가 왔다.

갱신을 하는 방 안에는 무언가를 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반대편에 직원이 앉아 있었다.

“자격증은 여기 위에 올려 두시고 한쪽 손바닥을 이쪽에 올려주세요.”

왼쪽 판 위에 자격증을 올린 하현은 오른쪽 판 위에 자신의 오른손바닥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손바닥을 통해 무언가 전신을 읽혀 들어오는 느낌이 들어왔다.

‘적의는 없어. 그냥 내 몸으로 쌓은 전투의 기록을 보려고 할 뿐이야.’

혹시나 불간섭이 저항해 버릴까봐 하현은 천천히 마음을 다스리며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기운이 잦아들면서 그대로 물러났다.

“갱신 완료됐습니다. 자격증 받으시고요. 최하현 님의 포인트는…….”

자격증을 건네주고 컴퓨터로 시선을 옮긴 직원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봐서는 안 될 것은 본 것마냥 눈은 휘둥그레졌고 입은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다.

“아니…… 어? 잠깐…….”

직원은 당황한 듯 컴퓨터의 자료를 다시 찾아봤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것이 지금 눈앞의 결과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당황해하는 직원의 모습에 하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에 직원은 컴퓨터와 하현을 몇 번이고는 반복해서 바라보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11만 5천 포인트세요.”

“네?”

“그러니깐…… 업적 포인트가 11만 5천 포인트이세요.”

직원의 말에 하현은 벙 찐 표정을 지었다. 11만 5천 포인트, 현금으로 전환하면 11억 5천만 원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포인트가 어떻게 그렇게 나옵니까?”

“그 부분은 저희가 규칙상 볼 수가 없어서요. 직접 확인해 보시겠어요?”

하현은 자격증을 통해 점수를 획득한 내역을 확인했다.

그리고 내역을 읽어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칼튼의 악몽 던전 완수-100,000Pt]

[울티노 토벌 협조-13,000Pt]

다른 것들은 모두 자잘한 점수들이었지만 그 두 가지는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였다.

‘아니, 울티노는 S급 괴수니깐 그렇다 쳐도 던전 완수 포인트가 이렇게 높아?’

하현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던전을 완수한다는 것은 무척 큰 의미를 지녔다.

던전들은 언제 포화 상태가 되어 괴물을 내뱉을지 모르는 장소이기에 주기적으로 사냥이 필요하다.

그 기간은 누군가에 의해 던전이 완수되는 그 순간까지고 장기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노동력이 들어가는 것이다.

때문에 B급 던전이라고 해도 완수하면 그런 어마어마한 포인트가 주어지는 것이다.

“저, 저…… 최하현 님, 지금 갱신표에 들어가실 수 있는데 어쩌시겠어요?”

갱신표에 올라가는 것도 강제는 아니었다. 직원의 물음에 하현은 잠시 머릿속으로 갱신표에 올라갔을 때의 이득을 생각해 봤다.

‘……그래, 이거면 대등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드디어 기반을 확실하게 쌓을 순간이 왔다. 하현은 직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갱신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하현은 곧장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는 또 무슨 일인지 시끄럽게 웅성거리고 있었다. 하현은 대강 이유를 짐작하며 갱신표를 바라봤다.

11위 [하현. C급-115,000Pt]

‘C급이 최상위권에 들어갔으니 난리 나겠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오니 아래쪽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토벌자들은 모두 하현의 이름을 말하며 웅성거렸고 그중에는 하현을 향한 시선들도 있었다.

‘역시 어제 관리자들로 소문이 좀 퍼졌나 보네. 아마 오늘 이후로는 몰래 숨어서 다니지는 못하겠지.’

언젠가 오리라고 생각했던 때가 완전히 와버렸다. 하지만 하현은 이전에 검은 황소에게 걸렸을 때보다 여유가 있었다.

‘이걸로 준비는 확실하게 끝났어.’

최소한이라고 생각했던 카드들은 모두 갖춰졌다.

이제는 상대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면 될 뿐이다. 하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최하현 씨.”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하현을 불러 세웠다. 그에 하현은 기다렸다는 듯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안면이 있는 여인과 처음 보는 사내가 서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하현 씨.”

미소를 띤 남성은 하현을 향해 다가와 인사를 하더니 한 장의 명함을 내밀었다.

그 명함에는 이전에 보았던 황소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검은 황소 길드장 하민철’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하민철이라고 합니다. 잠시 저희와 최하현 씨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까요?”

미소를 지으며 물어오는 하민철의 모습에 하현은 마찬가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마주 웃었다.

그리고 내밀어진 명함을 건네받으며 대답했다.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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