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이글거리던 악탈론의 눈동자가 꺼져갔다. 그리고 발끝부터 천천히 먼지로 변하면서 두 개의 뿔만 남기고 모두 소멸했다.
-중급 악마 악탈론이 지옥으로 돌아갔습니다.
악탈론의 죽음을 알리는 알림창이 떠오르더니 이윽고 하현의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눈앞에 하나의 광경이 떠올랐다.
‘이건?’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저택.
그곳의 주인이자 마법사인 칼튼은 귀족의 직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나라를 지배하고자, 악마인 악탈론을 소환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납치에 인신매매 등 온갖 악랄한 수단으로 소환 준비를 마친 칼튼은 마침내 악탈론을 소환하고, 소환된 악탈론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 후, 저택을 근거지로 삼은 악탈론은 왕국을 공격했고 순식간에 왕국은 혼란에 휩싸였다.
바로 그때, 검을 든 한 명의 사내가 저택의 안으로 들어섰고 평화로워진 왕국의 모습이 나왔다.
-칼튼에 의해 오스텐 왕국에 소환된 악탈론은 용사에 손에 지옥으로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페젤론 대륙에서 벌어진 역사의 일부분을 보셨습니다.
-칼튼의 악몽 던전 완수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차원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후우우웅!
알림창과 동시에 공동 전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절정에 도달한 순간.
파앗!
빛이 순식간에 꺼지고 하현의 몸이 던전 밖으로 나왔다.
“어?”
갑작스러운 이동에 하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크우우웅
던전의 입구인 포탈은 작은 소음을 내며 줄어들더니 이윽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 광경을 발견한 관리자들이 순식간에 하현을 향해 달려왔다.
“던전 완수?”
“지, 진짜인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포탈을 찾듯이 관리자들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는 사이 하현에게는 던전 완수에 대한 알림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인류의 위협을 주는 던전을 완수하셨습니다. ‘던전 완수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진노의 악마 악탈론을 쓰러뜨리셨습니다. ‘악마 살해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던전 완수 보상 ‘칼튼의 악몽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악탈론의 뿔 두 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소환 코어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칭호 두 개와 아이템 세 개, 그리고 던전 완수 경험치로만 하현의 레벨이 25가 올랐다.
어마어마한 보상에 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도대체 뭐야?’
던전이 잠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없어지는 던전 완수. 그에 대한 보상 하나는 확실했던 것이다.
“저, 저, 혹시 던전을 완수하신 분입니까?”
포탈 있던 곳 근처에 서 있는 하현을 발견한 관리자들이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그 물음에 하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주변에는 자신밖에 없었기에 부정해 봐야 괜한 오해만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뭣…….”
하현의 대답에 입구를 담당하고 있었던 관리자의 입이 떡 벌려졌다.
다른 이들은 아직 모르지만 그는 하현의 랭크가 D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던전 완수 시 얻는 칭호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 아, 강요는 절대 아닙니다. 지금 정말로 던전이 완수된 건지 궁금해서…….”
“괜찮습니다.”
오해할까봐 조심스럽게 말하는 관리자의 모습에 하현은 스탯창을 켜고 방금 얻은 던전 완수자 칭호를 공개로 돌렸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칭호가 하현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지, 진짜 던전 완수자 칭호…….”
칭호를 본 관리자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하현을 바라봤다.
“다른 곳도 아니고 칼튼의 악몽을 완수하시다니…… 이번에 업적 포인트 꽤 받으시겠습니다.”
“흐음. 그렇습니까?”
관리자의 말에 하현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업적 포인트는 쓰러뜨린 괴물, 던전의 정지, 완수 등 토벌자가 이뤄낸 일들을 수치화시킨 것으로 매달 이뤄지는 정산에서 얻은 수 있다.
업적 포인트는 현금에서부터 아이템 등 협회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곳에 사용되기에 토벌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정산일이군요. 이번에 기대하셔도 되겠습니다.”
“흠흠. 그렇군요. 그럼 저는 이만.”
칭호의 공유를 끈 하현은 관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등을 바라보는 관리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목을 긁적였다
‘던전 완수가 희귀하긴 한 모양이야. 저렇게 놀라면서 관심도 가지고.’
깜짝 놀라던 관리자들을 모습을 떠올리며 하현은 금방 고시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침대에 앉아 마지막 일과인 정산을 준비했다.
‘오늘은 얻은 게 많아서 정산할 맛이 나겠군.’
바로 어제만 해도 검은 황소 때문에 일이 꼬여 버렸다고 욕하고 있었는데 그 욕이 무색해질 정도로 큰 수익을 얻었다.
하현은 검은 황소에게 감사하며 스탯창을 열었다.
[하현]
레벨 : 153 칭호 : 악마 살해자
생명력 : 1,630/1,630
마나 : 1,620/1,620
힘 : 668 민첩 : 164
체력 : 163 지력 : 162
공격력 : 133 방어력 : ???
추가 스탯 : 260
“……미쳤네.”
누적 경험치까지 모두 해소되면서 하현의 레벨은 무려 52나 상승했다.
단 하루 만에 이뤄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결과에 하현을 혀를 내둘렀다.
‘칭호들도 한번 봐볼까…….’
[던전 완수자.]
인류를 위해 던전을 완수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모든 스탯 5% 증가.
[악마 살해자.]
중급 악마를 살해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힘 스탯 5% 증가.
-악마에게 추가피해 10% 및 적대도 증가.
검색해 보니 두 칭호 모두 이미 공유된 칭호였기에 팔지는 못하지만 성능이 준수했기에 하현은 그럭저럭 만족했다.
‘칭호가 생각보다 엄청 빠르게 모인단 말이야. 원래 이렇게 쉬운 건가 모르겠어.’
남이 들으면 배 아플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한 하현은 스탯을 힘에 배분하고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 얻은 세 개의 아이템들을 꺼냈다.
쿵!
침대보다 긴 악탈론의 뿔 두 개가 바닥에 큰 소리를 내며 놓였다.
그리고 검은색의 칙칙한 느낌이 나는 상자와 주먹만 한 붉은색 구슬이 침대 위에 나타났다.
“이 두 개는 그렇다 치고…… 이건 뭐야?”
어디서 나왔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붉은 색 구슬. 하현은 의아해하며 정보를 확인해 봤다.
소환 코어(레어)
내구도 10/10
리자드맨 소환 마법이 녹아들어가 있는 코어다. 지옥의 불꽃으로 정제되어 다시 장비에 장착할 시 효과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거…… 설마 토드의 마체테에서 나온 건가?”
악탈론의 눈에 꽂혀 있다가 마지막에는 자루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녹아버렸던 토드의 마체테.
그것이 악탈론의 불꽃으로 인해 소환 코어로 재탄생한 것이다.
‘안 그래도 돈을 그냥 날리나 해서 아쉬웠는데…… 이게 웬 떡이야.’
토드의 마체테가 비쌌던 이유는 모두 소환 마법 때문이었다.
그것만 유지된다면 손해는 없었기에 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구슬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었다.
‘다음은…….’
하현은 시선을 돌려 바닥에 놓인 악탈론의 뿔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정보를 확인해 봤다.
악탈론의 뿔(유니크)
내구도 100/100 공격력 40~50
진노의 악마 악탈론의 뿔이다. 지옥의 불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강한 내구도와 강력한 불의 힘을 지니고 있다.
-가공 시 불의 힘이 개방되어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흐음. 무기보다는 재료 쪽에 가깝군.’
공격력은 있지만 뿔이 너무 큰 탓에 쓰기가 너무 불편했고 가공 시 특전이 붙은 걸 보면 영락없는 재료 아이템이었다.
‘나중에 이걸 이용해서 무기를 만들면 되겠네.’
대강의 쓰임새를 정한 하현이 뿔을 들어 인벤토리에 넣으려고 하던 그때.
화아아악!!
하현의 손이 뿔에 닿자 입고 있던 경험치 가속의 슈트가 붉은 빛을 일렁거리더니 악탈론의 뿔도 그에 반응하듯 불꽃을 뿜기 시작했다.
-경험치 가속의 슈트가 수많은 불길을 견뎌내며 성능 향상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악탈론의 뿔 하나를 소모하여 능력을 개방하시겠습니까?
갑자기 떠오른 알림창. 그에 하현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보다가 진지하게 뿔을 바라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방어구는 필요 없고…… 무기를 제작하는 데도 뿔 하나 정도면 충분할 거야.’
뿔 하나로 앞으로 계속 입어야 할 슈트를 강화시킬 수 있다면 분명히 이득이다. 하현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개방한다.”
-악탈론의 뿔에 잠재된 불의 힘을 흡수합니다.
알림음과 함께 악탈론의 뿔이 불로 완전히 휩싸이더니 곧장 하현을 향해 덮쳐들었다.
형체를 잃고 불로 변해버린 뿔은 슈트에 닿자마자 전신에 혈액이 퍼지듯 흩어지며 사라졌다.
-경험치 가속의 슈트 성능이 상승되었습니다.
-방어력이 10 상승하고 화염에 대한 저항 60%를 얻습니다.
-경험치 배율이 1.2배에서 1.4배로 증가합니다.
-장비를 착용할 때 스킬 ‘진노의 불꽃’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와. 이게 무슨…… 미친 경우야.”
알림창들을 읽어본 하현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경험치 배율의 상승부터 스킬까지 생겨났다.
재료에 비해 전혀 손색없는 보상에 하현은 만족하며 스킬의 정보를 봤다.
[진노의 불꽃.]
마나를 소모하며 슈트에 진노의 불꽃을 피워내 10%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초당 마나 소모 80.
‘스킬도 꽤 괜찮네.’
마나 소모는 조금 컸지만 충분히 쓸 만해 보였다. 하현은 남은 뿔 하나를 인벤토리에 챙겨 넣고 마지막으로 남은 상자를 바라봤다.
칼튼의 악몽 상자(유니크)
던전 칼튼의 악몽이 압축된 보상 상자이다. 원하는 부위나 성능을 지정하여 아이템을 만들어낸다.
-성능의 지정이 자세할수록 아이템의 전체적인 등급이 낮아집니다. 반대로 부위만 선택하고 랜덤으로 진행할 시 아이템의 등급이 높게 나옵니다.
‘이전에 울티노 퇴치 시련 보상과 비슷한 물건이네.’
한 번 해본 일이었기에 하현은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아이템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아무래도 마나 회복이지.’
이제 스킬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데 마나량이나 회복력은 여전히 낮았다.
우선은 그것이 최우선 같았기에 하현은 곧장 설정을 시작했다.
“액세서리. 마나 회복량 증가. 이 정도로 하지 뭐.”
-이 설정으로 상자를 여시겠습니까?
“연다.”
푸확!
상자가 열리면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르더니 하현의 손에 내리꽂히듯이 떨어졌다.
그리고 하현의 손 위로 검은 체인에 붉은색 보석이 매달린 불길해 보이는 목걸이가 나타났다.
에리슨의 펜던트(레어)
내구도 50/50 마법 방어력 25
귀족 부인이자 흑마법사였던 에리슨은 죽기 전 자신의 영혼을 담아 펜던트를 만들어냈습니다. 저주가 깃들어 있지만 그 힘은 강력합니다.
-착용한 자에게 ‘악령의 저주’가 발동됩니다. 모든 스탯이 10% 하락하고 일정 확률로 악령에 휩싸입니다.
-마나량 1,000 증가. 마나 회복량 100% 증가.
-마나가 10% 이하로 떨어질시 회복량이 50% 추가로 증가합니다.
‘성능은 좋은데…… 좀 단점이 있네.’
원했던 능력 자체는 매우 준수하게 나왔지만 저주가 함께 온 것은 상당히 타격이 컸다.
하현은 일단 착용해 보자는 생각에 펜던트를 착용했다.
-상태이상 ‘악령의 저주’에 저항하셨습니다.
“……역시 이렇군.”
설마 했는데 생각대로 되자 하현은 피식 웃었다. 팔지는 못하지만 성능에 있어서는 손해 본 것 없이 얻게 된 것이다.
정산을 모두 마친 하현은 아이템을 챙겨 넣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후우. 이제 남은 건…… 업적 포인트 정산인가.”
관리자의 말대로라면 내일은 정산으로 협회가 시끌벅적할 것이다.
하현은 내일 있을 일을 생각하며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일이 잘만 풀리면 써먹을 수 있겠어. 잘만 풀린다면…….’
어쩌면 내일이 나름의 분기점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하현은 깊은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