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동원의 파티를 돌려보내고 저택의 입구로 되돌아온 하현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층수도 4층인 데다 길이도 어지간한 운동장만큼 길다 보니 그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흠, 저택 한번 엄청 크군.’
하현은 저택의 문을 손으로 밀었다. 그러자 그 거대한 문은 무게가 없는 듯 부드럽게 열리며 저택의 모습을 드러냈다.
저택의 중앙 홀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정면에 있었고 양쪽으로 복도가 길게 나 있었다.
그 외에도 저택을 꾸미기 위한 조각상 같은 것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들이 모두 이상했다.
‘조각상들이 다 비틀려 있네.’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사람의 모습에서 다른 생물체로 변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뒤틀려 있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저택의 풍경에 하현은 조금 가슴이 멈칫거렸다.
-상태이상 ‘공포’에 저항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현의 머릿속이 차분해지면서 두근거리던 심장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차분해진 머리로 하현은 저택의 안쪽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오른쪽 창고라고 했지.’
계단으로 오른쪽으로 향한 하현은 그늘진 곳에 미묘하게 가려져 있는 창고의 문을 발견했다.
그에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창고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창고의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다 쌓인 채로 어두컴컴했다.
안으로 들어온 하현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그들이 말해줬던 물건을 찾았다.
‘……있다. 붉은 말 조각상.’
어두운 창고의 안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작은 붉은색 말 모양의 조각상.
그냥 본 것뿐인데 피를 직접 만진 것처럼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었다.
‘뒤로 꺾고 앞으로 꺾은 다음에 한 바퀴 돌리는 거였지.’
만지기 찝찝할 정도로 불길하기 짝이 없는 조각상이었지만 하현은 망설임 없이 움켜쥐고 동원이 알려줬던 대로 움직였다.
딸깍! 그르르륵.
그러자 기계가 작동되는 소리와 함께 창고의 구석진 바닥 아래로 지하를 향하는 계단이 생겨난 것을 발견했다.
‘지하 통로가 여태까지 숨겨졌던 비밀이군.’
불길하기 짝이 없는 지하로 하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나선형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틈틈이 횃불이 설치된 채로 매우 길게 이어져 있었다.
‘상당히 깊군.’
10분 가까이를 계단을 타고 내려간 하현은 마침내 끝에 도착했다.
계단의 끝에는 횃불로 약간만 밝혀지고 있는 어두컴컴한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장식물도 보이지 않았고 벽면이나 바닥은 손질조차 하지 않아 거의 동굴이나 다름없었다.
하현은 그런 동굴을 살펴보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도대체 여기에 뭐가 있다는 거지?’
이 지하 장소로 들어가는 방법이 숨겨진 네 권의 책에는 이 안에 무엇이 있는가는 기록된 바가 없었다고 한다.
하현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안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한참을 걸어가던 하현은 마침내 복도의 끝에 있는 거대한 공동에 도착했다.
저택의 반쯤 되어 보이는 그 크기에 하현은 질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도대체 뭐 한다고 이런 넓은 장소를 판 거야?’
워낙에 공동이 넓다 보니 안쪽에 띄엄띄엄 마련된 횃불로는 안이 모두 보이지 않았다.
하현이 눈을 찌푸리며 공동을 살펴보고 있을 때, 발치에 무언가가 보였다.
‘선?’
복도와 다르게 깔끔하게 손질된 공동의 바닥에는 선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안으로 온갖 복잡한 문양들이 한데 얽혀 있었다.
‘……공동 전체에 그려져 있는 건가.’
흐릿하게 보이지만 다른 곳에 설치된 횃불의 밑에 마찬가지로 검은 선이 보였다.
공동 안의 횃불들을 기점으로 거대한 원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생긴 것만으로 봐서는…… 마법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이런 음습한 장소에 이런 거대한 문양이 그냥 장난이나 미적인 이유로 새겨둘 리가 없다.
하현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바닥의 마법진을 향해 다가갔다.
쿠구구구궁!!
그 순간 갑작스럽게 공동 전체가 갑작스럽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법진의 근처에 있던 횃불들의 불이 녹아들 듯 선으로 스며들더니 마법진 전체가 빛으로 타올랐다.
후우우웅!!
횃불의 불들이 모두 꺼지고 대신해서 마법진의 빛이 공동 전체를 밝혔다.
그리고 지하 깊숙한 공동의 안으로 어디선가 거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이 소리는?”
딱 한 번 들어본 이질적인 소리.
마법진의 중앙의 허공에 이전에 리자드맨들이 나타났을 때보다 훨씬 더 거대한 금이 새겨져 있었다.
챙!
사방팔방으로 번져 가던 금은 어느 한 순간에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불꽃들이 금들을 더욱 빠르게 깨뜨려 나갔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중급 악마 악탈론을 저지하라.]
진노의 악마인 악탈론은 종족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불태웁니다. 악탈론을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내십시오.
난이도 : B
보상 : 던전 완수와 그에 대한 보상.
“던전 완수라고?”
던전 정지는 몬스터를 잡다 보면 자연스럽게 되지만 던전 완수는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했다.
그렇다 보니 던전을 완수한 사례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고 완수에 대한 보상은 궤를 달리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거…… 어쩌면 대박이겠는데?’
하현은 자신의 앞에 나타날 악마에 대한 두려움보다 보상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구멍을 바라봤다.
쿵!!
완전히 넓혀진 구멍으로부터 붉은색의 거대한 육체가 몸을 드러냈다.
불을 그대로 옮긴 것은 타오르는 눈빛과 진한 붉은색의 뿔이 눈에 띄었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칼튼. 고작 이런 의식 하나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소모하는 거지?]
하현보다 3배는 큰 악탈론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일반적인 음성과는 다른 기묘한 소리에 하현은 신기하게 바라봤다.
[흠? 너는 칼튼이 아니군. 너는 누구냐?]
자신이 알고 있는 이와 하현의 모습이 다른 것을 발견한 악탈론의 눈빛이 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악탈론의 몸을 중심으로 불꽃이 사방을 향해 강렬하게 터져 나왔다.
화아아악!!
전신이 태울 강렬한 불길은 공동 전체를 휩쓸며 온도를 확 올렸다.
‘사나운 놈이구만.’
하지만 그 불길을 맞은 하현은 당연하게도 머리카락 하나 그을리지 않고 멀쩡했다.
그것을 본 악탈론의 눈동자에 흥미로움이 떠올랐다.
[내 불을 그냥 견디다니. 네놈도 예사 놈은 아니구나.]
“그래, 예사 놈은 아니지.”
악탈론의 물음에 대답한 하현은 팔과 목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아무래도 보스 몬스터다 보니 잡으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진노의 악마인 이 악탈론의 앞에서 그런 여유를 보이다니.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강력한 힘과 함께 목숨을 살려주마.]
-중급 악마 악탈론이 복종을 권유했습니다. 수락 시 그의 권능인 진노와 불꽃의 힘을 받지만 영혼을 종속당합니다. 수락하시겠…….
“필요 없어.”
-복종을 거절했습니다.
하현은 알림음과 알림창을 거들 떠 보지도 않고 곧장 거절해 버렸다.
그 단호한 태도에 악탈론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감히 나의 제안을 거절하다니…… 두려움에 미쳐버린 모양이군. 그 오만함의 대가로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오르게…….]
“아, 그만.”
막 무어라 말을 하려는 악탈론의 모습에 하현은 손을 내저으며 말을 잘랐다.
“지금 안 그래도 너 잡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거든. 그러니깐 계속 떠들고 싶으면 목에는 힘 풀고 얘기해.”
마체테를 들어 올린 하현은 악탈론의 머리를 향해 그 끝을 겨누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단칼에 좀 베어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