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진형 유지해! 무너지면 진짜 끝장이야!”
흔들리는 진형에 파티장인 이동원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그 외침이 무색하게 파티의 진형은 좀비들의 맹공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불안했다.
“제기랄!”
머릿속으로 그리던 상황과 다른 현실에 동원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탱커 역할이었던 파티원이 무능력하게 당한 곳에서부터 모조리 엉켜버린 것이다.
‘이대로라면 전멸이야!’
던전 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려면 들어오고 30분이 지나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파티의 상태를 보면 그동안 버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구어어억!”
“빌어먹을!”
텅!
찰거머리처럼 달려드는 좀비를 방패로 후려친 동원의 얼굴이 점점 파리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살아나갈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대로 끝인가…….’
입술을 깨문 동원이 낙담하던 순간. 좀비들의 뒤편으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어?”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동원이 깜짝 놀란 사이 좀비들을 향해 달려온 사람은 손에 들린 거대한 마체테로 온 힘을 다해 몰려 있는 좀비들을 후려쳤다.
빠아악!!
베이지는 않았지만 좀비들은 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쓸려 나가 옆으로 쳐내졌다.
파티원들이 그 위력에 모두 벙 찐 사이 달려온 사람, 하현이 소리쳤다.
“뭐해?! 멍 때리지 말고 빨리 밟아!”
***
“더,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좀비를 정리하고 나서 동원은 하현의 손을 잡으며 거듭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에 다른 파티원들도 함께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아니, 뭐…… 다 돕고 사는 거 아니겠어요.”
거듭해서 인사하는 파티원들의 모습에 하현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목을 쓰다듬었다.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저희 중 한 명은 죽었을 텐데 덕분에 모두 무사하지 않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알았습니다.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다시 고개를 숙이려는 동원의 모습에 하현은 당황하며 멈춰 세웠다.
기분은 좋았지만 계속 받다 보니 이제는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이 던전 어디인지 안 알아보고 오셨습니까? 어지간한 숙련자도 피해 가는 던전이라고 악명이 자자하던데요.”
동원의 파티를 살펴본 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까 좀비들과 싸우는 모습을 봐서는 이 던전을 돌 수 있는 파티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 그게…….”
하현의 말에 동원은 무안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들어갈 던전에 대해 알아보지 않고 왔을 리가 없다.
‘이대로 가면 내일 그 녀석들이 그 비밀을 듣고 와서 던전을 돌 테니깐 그렇지.’
동원의 길드는 다른 길드들이 알지 못하는 칼튼의 악몽에 대한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기에 다른 이들에게 퍼지기 전에 먼저 독점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칼튼의 악몽은 훨씬 강력했고 그 결과 독점은커녕 던전에 뼈를 묻을 뻔했다.
‘사실상 더 이상 던전을 도는 건 이제 불가능해. 하지만 이걸 다른 녀석들에게 빼앗기면…… 안 그래도 약한 우리는 이제 다른 녀석들하고 대립 자체가 불가능해질 텐데.’
주변에 다른 소규모 길드와의 세력다툼에서 기세를 잡을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며 왔지만 꼴사납게 실패해 버렸다.
그 사실을 다시금 떠올린 동원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뭐 내가 건드리면 안 될 부분이라도 건드렸나?’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현이 의아해하는 사이, 동원이 슬며시 하현을 살펴봤다.
‘그리고 보니 이 사람, 꽤나 강해 보이는데…….’
칼튼의 악몽 같은 곳에서 저렇게 가벼운 라이더 슈트만 입고 혼자서 다니는 걸 보면 상당한 실력자인 게 분명하다라고 동원은 멋대로 판단했다.
‘혹시…… 이 사람이 우리를 도와준다면?’
보상을 5 대 5…… 아니, 4 대 6으로 하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순식간에 활로를 찾았다고 생각한 동원은 눈을 번뜩이고 하현을 바라봤다.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흠? 최하현입니다만.”
“하현 씨, 혹시 저희와 던전을 도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이 던전을요?”
갑작스러운 제의에 하현이 되묻자 동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현 씨에게만 알려드리는 거지만 사실 이 던전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비밀 말입니까?”
“예, 아직까지는 저희만 알고 있지만 내일이면 다른 길드들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깐 지금 하현 씨가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분명 그 이득을 함께 독점할 수 있을 겁니다!”
동원의 이야기를 진지한 태도로 경청한 하현은 곧장 그에 대해 대답했다.
“안 되겠네요.”
“예?”
놀라우리만치 단칼에 거절하는 하현의 모습에 동원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현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구미는 당기지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네요. 다른 사람들을 찾아보던 가 그냥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득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하현은 절대로 동원의 파티와 함께하지 않겠다고 이미 결정을 내렸었다.
‘파티 전체의 질이 너무 안 좋아. 이대로 끌고 가봐야 짐만 되고 거기다가 내 능력까지 노출되겠지.’
방금 전은 후방에서 지원하듯이 조심스레 싸웠기에 능력을 노출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움직인다면 또 이야기는 다른 것이다.
하현의 단호한 모습에 동원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 그렇지만 정말 엄청난 비밀입니다. 몇천만 원은 그냥 벌 수 있을 정도로…….”
“얼마를 벌든, 어떤 아이템을 얻든 저는 함께할 생각이 없습니다.”
“…….”
하현의 대답에 동원은 낙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조금 안쓰럽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모든 일은 그들이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을 얻으려고 했기에 일어난 자업자득이다. 하현은 그대로 돌아섰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괜히 무리해서 남지 마시고 그냥 돌아가세요.”
그 단호한 모습에 동원의 파티는 아무도 하현을 붙잡지 못한 채 멀뚱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그워워워!!!”
저택의 저편에서 다시 한 번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왔거나 리젠되고 나서 동원 일행을 다시 찾아낸 듯했다.
“자, 잠깐만요!”
좀비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란 동원은 다급하게 하현을 불러 세웠다. 그에 하현은 고개를 돌아봤다.
“조, 좀비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예?”
하현의 대답에 동원은 계속해서 가까워지는 괴물들의 목소리에 더더욱 당황한 듯 하현을 바라봤다.
“아니, 그러니깐 저희만 있으면 아까처럼 위험하게 될 테니깐…….”
동원의 모습을 본 하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방금 전에 이들을 도운 것은 어디까지나 적도 아닌 사람을 죽게 놔두는 것이 찝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두 번씩이나 무상에 가까운 보상을 받으며, 그것도 능력을 들킬지도 모르는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을 지키면서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또 그냥 도와달라는 겁니까?”
하현의 말투가 까칠한 것을 눈치챈 동원이 눈동자를 굴렸다. 본래 토벌자들은 목숨이 위험한 직종이다 보니 자신과 자신의 파벌을 제외하고는 도움이 잘 없는 편이었다.
‘합리적인 보상 없이는 도와주지 않을 텐데.’
만약 시답지도 않은 보상을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릴 가능성이 크다.
“크워어워!!!”
이제는 지척까지 다가온 좀비들의 괴성에 동원은 자신의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하현에게는 매력적이면서 자신에게는 잃어도 이득이 될지도 모르는, 그런 최적의 보상을 찾기 위해.
‘그런 딱 좋은 보상이……!’
한참 머리를 굴리던 동원의 머릿속에 한 가지 보상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아까웠지만 지금 찾는 조건에 이만큼 부합되는 보상이 또 없었다.
“비밀! 저희가 던전에 나갈 때까지 보호해 주시면 던전에 대한 비밀을 모두 털어놓겠습니다. 시련으로 맹세하겠습니다!”
동원의 외침에 파티원들과 하현이 모두 놀라는 순간. 하현에게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파티의 보호.]
던전의 입구가 활성화되는 23분간 파티를 몰려드는 몬스터로부터 보호하십시오.
난이도 : B
보상 : 칼튼의 악몽에 숨겨진 비밀.
-시련을 수락하면 파티원들의 근처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시련을 완수하는 순간 파티원들에게 칼튼의 악몽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워어어억!!”
그러는 사이 좀비들은 어느새 대문의 앞까지 달려와 동원 일행을 보고는 더욱 거칠게 돌격해 왔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마체테를 움켜쥐고 방금 전과 같이 소리쳤다.
“수락!!”
콰아아앙!!
그리고 마체테가 거대한 호선을 그리며 좀비들을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