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5.칼튼의 악몽
E급 던전과 다르게 B급 던전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던전으로 들어가는 포탈 근처로는 거대한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었고 그 주변으로 반투명한 막이 감싸고 있었다.
거기다 몇 명의 토벌자가 각자 구역을 지나 던전의 근처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으니 완전히 살벌한 분위기였다.
“진짜 여기로 들어가신다고요?”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던전, 칼튼의 악몽 검문소 담당이 황당한 표정으로 눈앞의 사내를 바라봤다.
“예.”
“저기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B급 던전입니다. 들어오시려면 랭크가 B급은 되셔야 해요.”
D급이라고 아주 당당하게 적혀 있는 토벌자 자격증을 본 담당은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앞에 선 사내, 하현은 심드렁하게 이야기했다.
“B급 괴물을 토벌할 수 있다는 것만 증명하면 하위 등급도 출입 가능한 거 다 압니다.”
“아니…… 물론 규정상 그렇기는 한데.”
하현에 말에 검문소 담당이 머리를 긁적였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실제로 등급 이상의 힘을 지닌 이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수는 정말로 극소수였고 담당의 눈에는 라이더 슈트만 입고 있는 하현이 그런 인물로 보이지 않은 것이다.
“환영 마법으로 시험하는 거 있잖아요? 얼른 해주세요.”
“저기 환영이라도 일단 다치면 근육에 후유증 남아서 좀 쉬셔야 해요.”
검문소 담당은 어떻게든 말리려고 하지만 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고집에 담당은 한숨을 내쉬고는 옆쪽의 마법진을 가동했다.
후우웅
한 명이 설 정도의 작은 마법진이 강한 빛을 뿌리며 빛나기 시작했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괴물은 헬하운드고 생명력이 다 떨어지면 자동으로 여기로 다시 이동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고개를 끄덕인 하현이 마법진의 위로 서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본 검문소 담당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구급차 미리 불러놔야겠네.”
1분도 안 돼서 망신창이가 되어 올 것이 눈에 훤했기에 담당은 곧장 휴대폰을 눌러 119를 불러놓았다.
“좋은 스킬 좀 배웠다고 기고만장해서는…… 그러니깐 D급이지.”
다시 본인의 자리에 선 검문소 담당이 한심하다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후웅!
“……어?”
마법진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 위로 멀쩡한 하현의 모습이 생겨났다.
“어, 어어…….”
“이거 맞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듯 검문소 담당이 당황하고 있을 때, 하현은 작은 동전 같은 것을 던져 주었다. 담당은 손을 뻗어 동전을 잡아챘다.
“이, 이건!”
동전을 본 담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개의 문양이 들어간 동전. 그것은 환영 속의 헬하운드를 잡아야만 얻을 수 있는 동전이었다.
“그럼 들어갑니다.”
담당이 당황하는 사이, 하현은 그를 지나쳐 던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담당은 멍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담당의 중얼거림을 파묻듯이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
칼튼의 악몽은 폐허가 된 거대 저택이 배경인 던전으로 정원과 건물 내부에 좀비 하인들과 헬하운드, 그리고 하급 악마들이 돌아다녔다.
생명을 느낄 수 있는 좀비, 코가 민감한 헬하운드, 감이 좋은 하급 악마들.
모두 색적(적을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괴물이라 칼튼의 악몽은 들어오는 즉시 수많은 괴물이 달려들기로 유명했다.
퍽퍽!
분명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쿠어어어!”
하현의 마체테에 얻어맞은 좀비 메이드가 괴성을 지르며 손을 휘둘렀다.
그 위력은 스치는 순간 어지간한 토벌자들은 치명상을 입을 만큼 묵직했지만.
휘익!
그 손은 이미 하현이 피하고 없는 허공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에 하현은 여유롭게 다시 한 번 메이드의 목을 후려쳤다.
“쿠억!”
-좀비 메이드가 쓰러졌습니다. 강적과의 결투에 승리해 막대한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수십 번의 연속 공격 끝에 목이 잘린 좀비 메이드는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 광경을 바라본 하현은 볼을 긁적였다.
“분명 색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던전의 특징을 다시금 떠올린 하현은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중얼거렸다.
“왜 아무도 날 모르는 거야?”
본래라면 미친 듯이 달려들어야 할 좀비들은 하현을 보지 못하는 듯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몸에 하현의 손이 닿으면 그쪽을 향해 반사적으로 손을 휘저을 뿐, 딱 거기까지였다.
“…….”
하현은 눈앞의 광경에 당혹스러움만 느껴졌다. 사냥은 쉬워졌지만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색적 불가 능력 같은 것도 없는데.”
이상하다는 느낌으로 하현은 이유를 찾기 위해 스탯창과 상태창을 뒤져 봤다. 그러다 문득 불간섭이 하현의 눈에 밟혔다.
“아.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하현은 불간섭의 스킬 정보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불간섭(Lv.???) : 패시브. 다른 차원으로부터 온 당신은 이 차원에서 어떠한 현상도 면역을 지니게 됩니다.
“설마…… 생명으로서 색적당하는 것도 면역된 건가?”
좀비들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통해 적을 식별한다.
하지만 하현은 불간섭이라는 코팅막이 그 기운을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있었기에 색적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강 맞는 모양이네.”
하현은 조금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밤새 던전에 대한 연구를 하고 방금 전 헬하운드와도 격렬한 싸움을 마치고 들어왔더니 이런 상황이라니.
“아니, 뭐 이 녀석들이 단순한 좀비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뭔가 허탈하네.”
뭔가 미묘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하현은 마체테를 고쳐 잡았다. 허탈한건 허탈한 거고 사냥은 사냥이다.
“괴력.”
하현은 괴력을 사용하여 입구 주변의 좀비들을 계속해서 사냥해 나갔다. 괴물과의 랭크 차이가 두 개나 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험치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차올랐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작업장 하는 느낌이라 그런가. 뭔가 덜 기쁘네.’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스탯을 힘에 투자하고 다시 묵묵히 벌목하듯이 좀비들의 목을 따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대문 주변의 좀비들이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슬슬 안쪽으로 들어가 볼까.”
하현은 저택의 대문을 지나 안쪽으로 한참 동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저택의 앞에 있는 정원으로 들어서니 좀비들과 함께 헬하운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컹컹!”
좀비들과 달리 주변을 살펴보다 하현을 발견한 헬하운드는 곧장 이를 드러내며 짖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다른 헬하운드들이 주변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헬하운드는 그래도 인식할 수 있는 모양이네.”
B급 괴물답게 헬하운드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며 매섭게 달려왔다. 하현은 그 모습을 차분하게 바라봤다.
‘아까랑 비슷하게 하면 되겠지.’
마체테를 움켜지고 괴력을 사용한 뒤 아슬아슬하게 거리가 좁혀졌을 때, 하현은 온 힘을 다해 마체테를 휘둘렀다.
후웅!
“깨갱!”
몇몇 헬하운드가 하현의 공격에 맞고 뒤로 쓰러졌지만 거의 반절 이상의 헬하운드가 공격을 피하고 하현에게 근접했다.
“커컹!”
헬하운드들은 날카로운 이빨로 하현의 몸을 단숨에 깨물었다.
철도 종이처럼 찢어버리는 헬하운드에게 물린다면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토벌자들의 정론이었다.
“크륵?”
하지만 하현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잡았다.”
몸에 달라붙은 헬하운드들을 바라본 하현은 괴력을 사용한 손으로 목을 물고 있는 헬하운드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콰드득!
하현의 손에 붙잡힌 헬하운드는 무시무시한 악력에 그대로 머리통이 박살 났다.
그 광경을 본 헬하운드들은 자신의 이빨에 더욱 힘을 줘봤지만 여전히 이빨은 들어가지 않았다.
“두 놈.”
콰드득!
오른팔에 매달렸던 헬하운드의 머리통도 단숨에 박살 났다.
검을 들고 있던 손이 자유로워지자 하현은 곧장 발목을 물고 있는 헬하운드의 몸을 향해 검을 쑤셔 넣었다.
“세 놈.”
자신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헬하운드들은 재빨리 하현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현의 손과 발이 헬하운드의 몸통을 잡고 꼬리를 밟았다.
“어딜 가?”
빠른 움직임과 한 번 물리는 순간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지옥의 파수견, 헬하운드.
“깨갱!”
하지만 하현의 앞에서는 그저 이빨도 없는 커다란 똥개였고, 맷집도 약해서 잡기 쉬운 좋은 괴물이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후우.”
헬하운드들을 단숨에 정리한 하현은 알림창을 보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좀비들 좀 잡고 넘어가면 되겠…… 음?”
어깨를 풀던 하현은 이상한 분위기에 주변을 살펴봤다.
여태까지 정처 없이 걸음을 옮기던 좀비들이 일제히 하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나를 인식했어? 아니, 그건 아니야.’
이쪽을 보고 있는가 했지만 좀비들은 정확히는 하현의 너머, 저택의 대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좀비를 자세히 살펴보는 순간.
“구워어어어!!”
괴성을 내지른 좀비들이 일제히 대문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앞에서 보였던 느릿한 걸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
“대체…… 아, 설마.”
하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본래 칼튼의 악몽은 던전에 들어오는 순간 수많은 좀비와 헬하운드가 덤벼드는 극악의 던전이라는 것을.
‘누군가 들어온 거야.’
하현은 대문은 바라봤다. 어떤 이들이 들어온지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한 파티가 아니면 아마 저 좀비들을 감당하기는 힘들 것이다.
‘뭐 이런 것도 모르고 온 녀석들도 아니겠지. 마주쳤다가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 귀찮으니깐 얼른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하현이 저택 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
“으아아아악!!”
좀비들이 뛰어간 지 얼마 되었다고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하현의 표정이 확 구겨졌고 곧바로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파티 구조.]
칼튼의 악몽에 처음 진입한 파티는 순식간에 전멸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들을 습격한 좀비들을 처치하고 구조하십시오.
난이도 : B
보상 : 소량의 경험치.
하현의 마음에 반응해 생긴 시련이지만 딱히 수락을 하지 않아도 딱히 상관이 없는 데다가 보상도 짠 종류였다.
그 시련을 바라본 하현의 얼굴이 왈칵 찌푸려졌다.
“아씨…… 또 계획이 틀어지잖아.”
말로는 불평을 내뱉었지만 하현의 몸은 이미 대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곧장 달려가면서 크게 외쳤다.
“수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