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
24시간 카페로 자리를 이동한 하현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여인, 아민을 바라봤다.
“뭐 드시겠어요? 제가 모셔온 거니깐 편하게 시키세요.”
하현의 시선을 느낀 아민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에 하현은 메뉴판을 흘깃 보고는 대답했다.
“핫초코면 충분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잠시.”
하현의 말을 들은 아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현은 방금 전에 건네받은 명함을 살펴봤다.
검은색 배경에 하얀색으로 황소의 무늬가 새겨진 독특한 모양의 명함.
황소의 무늬 안에는 검은 황소 부길드장 김아민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뭐 하는 녀석이지?’
아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하현의 눈빛에서 경계심이 떠올랐다. 요 근래 불간섭의 힘으로 조금 들뜨긴 했지만 하현은 언제나 자신의 주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한테 이런 사람이 접근할 리가 없어.’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심지어 토벌자로서 인지도도 전무하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이렇게 접근해 왔다? 하현의 생각에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었다.
‘내가 싸우는 걸 본 게 분명해.’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으며 수백 마리의 리자드맨과 싸우던 모습.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 분명하다.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실수다. 야외라는 점을 신경 썼어야 했는데.’
눈앞에 나타난 대량의 경험치들에 완전히 흥분해서 깜빡해 버렸다. 하현이 자신을 탓하고 있을 때, 카운터로부터 아민이 되돌아왔다.
“그럼 음료가 나오기 전까지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도록 할까요. 이미 말했지만 저는 길드 검은 황소의 부길드장, 김아민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최하현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는 것 같지만.”
뒷조사를 했다는 것에 대한 책망이 담긴 하현의 말에 아민은 부드럽게 웃어 넘겼다.
영입 대상의 뒷조사는 아마 이쪽에서 흔히 있는 일이리라.
“그래서 무슨 일로 저 같은 말단 토벌자를 찾아온 겁니까?”
이미 이유는 예상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예상이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기 위해 하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흠. 이야기를 천천히 끌기는 싫으신가 보군요.”
하현의 태도를 본 아민은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최하현 씨, 당신을 저희 검은 황소에 영입하고 싶습니다.”
“…….”
아민의 말을 들은 하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했는데 역시였던 것이다.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그냥 말단 토벌자입니다.”
“리자드맨과 싸우는 모습. 모두 지켜봤습니다.”
“……그렇습니까.”
결정타에 가까운 말에 하현은 더 이상 변명하는 것은 포기했다. 그 모습을 본 아민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때 전투를 정리하자면 하현 씨에게는 재능이 있습니다. 약간의 도움만 있다면 순식간에 고랭크의 토벌자가 될 수 있는 압도적인 재능이 말이죠.”
아민은 리자드맨들과 싸우고 있었던 하현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반신반의로 와봤지만 그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내가 오기 전에 15분. 그리고 온 이후에도 3분 동안 피해를 입지 않았어. 그 정도 재능을 지닌 캔슬러를 절대 놓칠 수는 없지.’
아민은 하현이 지닌 스킬이 현재 캔슬러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능력이라고 확신했다.
무려 20분 가까이 지속되는 피해면역 스킬이라니, 그 누가 견줄 수 있겠는가.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반드시 영입해야 해. 그럴 가치가 있는 인물이야.’
열의로 번뜩거리는 아민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 능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눈치를 깐 게 맞나보군.’
완전히 알아차리기는 힘들고 아마 피해를 받지 않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확률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그것도 분명 비정상적인 능력이겠지. 찾아온 걸 봐서는 쉽게 놓아줄 리가 없어. 젠장, 시기가 너무 빨라…… 아직 기반도 못 다졌는데.’
언젠가 불간섭에 대한 능력을 들키고, 이런 제안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현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빨랐다.
‘이런 제안은 적어도 B급은 된 이후에 받았어야 했어. 만약 지금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검은 황소가 얼마나 큰 길드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그 정보력을 보면 분명 작은 길드는 아닐 것이다.
‘반드시 영향력을 행사해 오겠지.’
던전 내에서 하현을 감시할지도 모르고 심하면 방해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모두 하현에게는 귀찮아 지는 일이었다.
‘골치 아프게 됐네.’
“결심이 안 서시는 모양이네요.”
고민하는 듯한 하현의 모습에 아민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 검은 황소는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길드입니다. 정식 길드원 수만 해도 8천 명이 넘고 견습 길드원은 2만 명이나 되죠. 거기다 A급 토벌자는 저를 포함해 6명이나 소속되어 있습니다.”
전국에 100명을 간신히 넘기는 A급 토벌자. 그런 A급 토벌자가 6명이나 소속되어 있다면 확실히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큰 길드였다.
“만약 저희 길드에 들어오신다면 하현 씨의 성장을 위해 아끼지 않고 투자해 드릴 겁니다. 최강의 토벌자가 되고 싶지 않으세요?”
아민은 설마 거절하겠냐는 자신감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하현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대로 길드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아. 지원받으면서 성장한다면 지금보다 빠를 테고. 하지만…… 들어가면 분명히 저 녀석들에게 끌려다닌다.’
길드는 자원봉사단이 아니라 엄연한 이익집단이다. 도움을 준다면 준 만큼 분명 받아낼 것이다. 거기다 하현은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내가 누군가에게 이끌려 다녀야 하나?’
저쪽 세계에서 자신은 매번 누군가에게 부려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이런 능력을 얻고 나서도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지.’
모처럼 얻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노예 같은 위치를 고수할 수는 없다. 결정을 내린 하현은 피식 웃고는 다시 아민을 마주봤다.
“결정 내렸습니다. 검은 황소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역시 그렇게…… 네?”
하현의 입에서 튀어나온 예상 밖에 말에 아민이 당황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러든 말든 말을 끝낸 하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어느 길드에도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깐 또 집으로 불쑥 찾아와서 권유하는 이런 행동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럼.”
단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하현은 곧장 카페의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민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지?”
***
방으로 다시 돌아온 하현은 침대에 앉았다.
‘이렇게 된 이상 생각해 뒀던 성장 루트를 모두 바꿔야 해.’
마지막에 ‘아직은’이라고 말해 뒀으니 잘하면 간섭하지 않고 지켜만 볼 수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적인 관측이다.
하현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우선 앞으로 움직이는 데 미행이 붙을 수도 있다는 건데…… 이건 시련을 이용한 이동으로 커버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까 전에 시민들이 시련을 이용해 긴급 탈출한 것처럼 던전의 바로 앞으로 갈 수 있다면 미행의 문제는 단번에 해결된다.
“당장 실험해 봐야겠네. 시련 생성!”
하현은 처음에 갔었던 던전인 코볼트 폐허로 가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하며 시련을 생성하려 했다.
그러자 잠시 후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코볼트 폐허로의 이동.]
코볼트의 폐허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현금 10만 원이 필요하다.
난이도 : 없음
보상 : 갈색 코볼트 폐허로 이동.
-시련을 수락하는 순간 소유한 현금이 사라지면서 시련이 완수됩니다.
“된다! 그럼 이걸로 미행은 해결 됐어.”
시련을 취소한 하현은 다른 문제점들을 확인해 봤다.
‘다른 하나는 던전 자체에 감시를 둘지도 모른다는 거군. 저 시련을 이용한 방법도 꽤나 알려진 거니깐.’
던전의 앞이나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피해갈 방법이 없다. 한참 머리를 굴리던 하현의 머릿속에 불현듯 한 가지가 떠올랐다.
‘던전의 난이도를 확 높인다면?’
검은 황소 측에서는 아마 높게 잡아도 자신의 등급을 C로 잡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예상을 피해 던전의 난이도를 B급으로 확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B급 괴물들하고 싸울 수 있는가가 문제란 말이지. 레벨 차이도 상당히 있고.’
이전에 울티노라는 S급 이상의 괴물에게 데미지를 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몸속이라는 특이 케이스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니지, 잠깐만. 이번에 얻은 칭호랑 무기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도전해 봐도 되겠는데.’
B급 던전에 들어가서 싸우다 보면 불굴의 전사는 당장 발동될 테고 거기다 전투 강행까지 사용하면 그 둘만 해도 스탯이 최대 50% 상승한다.
거기다 괴력과 다른 칭호도 합한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
B급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성공한다면 앞으로는 B급 던전을 돌면서 훨씬 더 빠른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 내일 가볼 만한 던전을 좀 찾아볼까.’
하현은 등록증을 이용해 B급 던전의 정보들을 하나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던전 하나를 발견하고는 손이 멈추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여기가 좋겠네.”
하현이 발견한 던전의 이름은 칼튼의 악몽. B급 최악이라고 불리는 극악의 던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