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캬아아악!!”
쨍그랑!
리자드맨의 포효 소리에 주변 건물의 유리창이 모두 깨져 나갔다.
귀를 후벼 파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 그에 하현은 자신의 귀를 매만졌다.
“청각 계통 공격도 안 통하는구나.”
피를 흘리기는커녕 아프지도 않은 귀의 상태에 하현은 새삼 자신의 능력에 감탄하며 도로 위의 리자드맨을 바라봤다.
“리자드맨 족장 토드라. 아무리 낮게 쳐도 D급 이상은 되겠는데.”
겉으로 느껴지는 위압감에서부터 방금 전 포효의 위력을 보면 적어도 C급. 거기다 개별 이름을 지닌 경우는 흔치 않다니 어쩌면 B급까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던전 외에서 괴물이 나타나는 게 이런 경우인가.”
던전 밖에서 괴물을 본 것은 울티노 이후로 처음이었기에 하현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토드를 살펴봤다.
“키르륵…….”
그런 하현의 눈길을 알아차렸는지 토드가 하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하현의 모습을 보고는 눈을 크게 부라렸다.
“캬아아아악!!”
토드가 다시 한 번 포효를 외치자 주변 일대가 조금 뒤흔들렸다. 아까보다 좀 더 강력한 포효인 듯했지만 하현은 흔들림 없는 자세로 토드를 바라봤다.
“소리를 자주 지르네. 다른 사람들이면 상대하기가 조금 껄끄러울지도 모르겠어.”
“키르륵?!”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이는 하현의 모습에 토드는 조금 놀란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을 날카롭게 빛낸 토드는 자신의 마체테를 하늘로 향했다.
“캬아악!!”
“음?”
마체테로 공격해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하현은 그저 위로 들고 있는 토드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뭘 하려는 거지?’
하현이 수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토드 주변의 공간들에 일제히 작은 금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토드가 마체테를 아래로 내리긋자.
챙!
“캬아아악!!”
금들이 일제히 부서지면서 작은 차원의 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십 마리의 리자드맨이 쏟아져 나왔다.
“전투 계열이 아니라 소환 계열이었나.”
소환된 리자드맨을 본 하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여태까지 소환 계열 보스는 광역기가 없는 하현에게 사냥 시간만 질질 늘어뜨리는 최악의 보스였기 때문이다.
“조건 자체는 진짜 까다로운 녀석이었군.”
광범위한 포효 공격에 리자드맨 군단도 소환할 수 있다.
거기다 개인 스펙도 심하게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 보스로서는 그야말로 가장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캬아악!!“
토드가 마테체로 하현을 가리키자 리자드맨들이 포효를 외치며 하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망치기는 불가능해 보이고…… 일단은 싸워볼까.”
-오크 투사의 건틀렛을 장착하셨습니다.
방금 얻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자세를 잡은 하현은 가장 먼저 달려오는 리자드맨을 바라봤다.
그리고 거리가 코앞까지 줄어들었을 때, 스스로 몸을 내던졌다.
“키륵?!”
갑자기 달려드는 하현의 모습에 리자드맨은 당황하며 마체테를 휘둘렀다.
캉!
목에 휘둘러진 마체테는 위협적이었지만 자세가 조금 흔들릴 뿐, 상처는 입히지 못했다.
그에 리자드맨이 당황하는 사이 하현의 주먹이 리자드맨의 머리를 향해 뻗어졌고.
퍼엉!!
단 일격에 리자드맨의 머리가 터졌다.
‘소환된 리자드맨들은 E급 수준인가.’
손맛으로 리자드맨의 수준을 대강 파악한 하현은 뒤이어 달려오는 리자드맨을 바라봤다. 그리고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주먹을 휘둘렀다.
파앙! 퍼엉! 펑!
방어를 무시한 채 펼쳐지는 하현의 거친 공격에 리자드맨들은 섣불리 공격도, 방어도 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키르르륵!!”
자신의 부하가 일방적으로 죽어 나가는 광경에 토드는 거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마체테를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쿠구구궁!!
이전 소환과 달리 더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하현은 그러든 말든 눈앞에 있는 리자드맨들을 쓰러뜨리기 바빴다.
“캬아악!!”
다시 한 번 구멍이 열리고 수많은 리자드맨이 나타났다. 이전보다 수도 많았고 장비도 갖춰 입은 데다 몇 마리는 거대한 도마뱀을 타고 있기까지 했다.
“오.”
그새 앞의 리자드맨들을 모두 죽인 하현은 새롭게 나타난 리자드맨 군단들을 보고 흥미로운 표정을 보였다.
“저놈들은 D급쯤 돼 보이는데.”
D급 괴물로 이뤄진 군대. 다른 E급 토벌자라면 다리에 힘이 풀릴 광경이었지만, 하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잘 됐네. 경험치 좀 빡 벌겠는데?”
안 그래도 경험치를 벌 다른 수단이 필요하던 참이다. 그런데 이렇게 때마침 좋은 기회를 주다니, 하현은 토드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거기서 보지만 말고 이리와.”
하현은 자신을 경계하는 리자드맨들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리자드맨들은 그 손짓이 자신들을 향한 도발인 것을 알아차렸다.
“캬아악!!”
분노를 터뜨린 리자드맨들을 일제히 하현을 양해 달려들었다. 막무가내로 달려들던 이전과 달리 나름 방진을 갖추고 달려드는 리자드맨들의 모습은 정말로 하나의 군대와 같았다.
“후우.”
그 대군의 앞에선 하현은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이의 거리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줄어들 순간, 하현은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괴력.”
콰아앙!!
하현의 주먹이 내질러지자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 강력한 일격에 덮쳐오던 리자드맨들의 진영이 잠시 주춤거렸지만 그것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하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괴력의 유지 시간은 10초. 하현은 그동안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갑옷을 입었든, 방어를 하든 하현의 주먹에 맞은 리자드맨들은 모두 피를 토하며 나가 떨어졌다.
“캬아아악!!”
죽어나가는 동족을 본 리자드맨들은 더욱 거칠게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피해를 입는 것이라고는 건틀렛뿐, 슈트와 하현의 몸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키르르륵!!!”
하현과 리자드맨들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동안 토드는 또다시 대군을 소환할 준비를 했다.
‘저 녀석, 자기가 직접 나서기보단 괴물을 계속해서 부르는 식인가.’
정말 그런 전투를 선호한다면 직접 싸우려고 해도 분명 도망치면서 계속 소환을 하려고 할 확률이 높다.
결국 그 소리는 괴물을 계속 소환해 준다는 뜻이 아닌가.
‘이거 완전 내가 바라던 사냥터나 다름없잖아.’
다른 이들에게는 재앙일지 모르지만 하현에게는 딱 좋은 시기에 찾아와준 사냥터였다. 미소를 지은 하현은 두 주먹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그렇게 와주면 나야 고맙지!”
“캬아아악!”
몰려오는 경험치에 하현이 환호를 내지름과 동시에 다시 한 번 차원이 깨졌다.
***
부우우웅!!
텅 빈 밤의 도로 위로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거칠게 질주하고 있었다.
안에는 5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 같은 디자인의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지금 등장한 지 얼마나 됐어?”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남자, 박대운이 거친 목소리로 물어보자 뒷좌석에서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이제 20분 정도 지났습니다.”
“미친…….”
남자의 말에 박대운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다른 곳에 소환된 녀석들도 비슷한 종류라고 했었지?”
“예, 모두 네임드 리자드맨 족장으로 소환 계열입니다. 근데 개인 스펙도 나쁘진 않아서 지금 초기 퇴치에 실패한 쪽은 개고생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0분이라고? 이미 떡을 쳤겠군.”
거리에 들끓고 있을 리자드맨 군단을 생각하자 대운은 절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했다.
“지원 요청은?”
“출발하면서 해뒀습니다. 정리가 끝나면 다른 길드들도 이쪽으로 온다고 합니다.”
“잘했어. 이번에는 실적 챙긴다고 입 다물면 안 돼. 딱 뒤지기 좋은 상황이니깐.”
보통이라면 절대 괴물의 공유를 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소환 계열 괴물은 방치된 시간에 비례해서 토벌 난이도가 확 뛰기 때문이다.
“그래서 측정 랭크는 어떤데.”
“본래는 C급 정도겠지만…… 방치된 시간을 가정해서 방금 B급이 되었습니다.”
“B급이면 골 때리는데…… 직접 전투는 꺼린다고 했으니 우선은 지원이 올 때까지 방어 위주로 소환수의 수만 줄인다. 알겠냐?”
“예!”
“다 왔습니다!”
목적지 근처까지 도착하자 승합차는 도로 위에 아무렇게나 세워졌다. 현장에 도착한 5명, 검은 황소 길드의 12번 팀은 곧장 승합차에서 내렸다.
“첫 타에 최대한 타격 줄 수 있게 마법 큰 거 준비해 둬라. 한 명은 혹시 모르니깐 방어 마법 준비하고.”
대운의 지휘에 따라 5명이 소리를 죽이며 리자드맨이 있을 도로를 향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키르륵! 캬아아악!
“미친…… 소리만 들어도 바글바글 거리네.”
옆에서 들려오는 리자드맨들의 소리에 5명은 마른침을 삼켰다. 대운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슬쩍 고개를 내밀어 코너의 저편을 바라보았고.
“일루 와 새끼들아!”
“…….”
그리고.
수백 마리의 리자드맨과 일기토를 벌이고 있는 하현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