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코볼트의 폐허 내부는 투박한 동굴이었는데 일정 간격으로 횃불이 줄줄이 달려 있어 보는 데 지장은 없었다.
“흐음. 여기가 던전인가.”
방금 전 현실과는 확연히 동떨어진 풍경에 하현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굴의 모습에 정신이 팔렸을 때, 알림음과 동시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던전에서는 기본적으로 자동 생성인가 보네.’
시련의 상세 정보를 보기 위해 하현은 알림창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그러자 시련의 정보가 하현의 앞에 펼쳐졌다.
[코볼트의 폐허 토벌.]
코볼트의 폐허에서 나오는 코볼트를 100마리 토벌하라.
난이도 : E
보상 : 소량의 경험치.
-던전 밖을 나오는 순간 시련에 실패합니다.
“딱 반복 퀘스트라는 느낌이네.”
삼삼하기 짝이 없는 시련의 정보에 하현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역시 좀 더 높은 난이도의 던전을 갔어야 했나.”
지금 퀘스트의 수준을 봐서는 상급에 속하는 E급 던전을 가도 되었을 것 같았다. 너무 안전성 위주로 생각해 버린 탓이리라.
“이번에는 일단 가볍게 경험한다는 느낌으로 돌면 되겠지.”
아쉬움을 털어낸 하현은 인벤토리에서 슈트를 꺼냈다.
“착용.”
손 위에 올려져 있던 슈트가 순식간에 하현이 입고 있던 추리닝과 교체되었다.
하현은 추리닝을 인벤토리 안에 넣어두고 가볍게 몸을 풀어봤다.
“흐음. 착용감은 괜찮네.”
슈트는 하현이 몸을 움직이는 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착용감을 주었다.
“그럼 가볼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하현은 그대로 망설임 없이 동굴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던전의 내부에는 하현의 발소리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싸늘한 분위기였지만 하현은 아무렇지 않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코볼트의 폐허. 구조도 단순하고 함정도 없지만 40레벨에서 60레벨의 코볼트가 최소 5마리 이상 무리지어 다니기에 파티 플레이를 추천, 이었지.”
자격증으로 찾아본 정보를 보면 코볼트의 폐허는 기본적으로 2인에서 3인 파티를 권장하고 있었다.
그만큼 까다로운 던전이었기에 관리자가 혼자 들어가려는 하현을 말렸던 것이다.
“그다지 어렵진 않겠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현에게는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는 던전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안으로 쭉 걸어 들어가던 하현의 눈에 횃불과는 다른 불빛이 보였다.
‘저 녀석들인가.’
모닥불 앞에 모여 있는 5마리의 코볼트. 아직 그냥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아직 하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뭐 살펴볼 필요는 없겠지.’
잠시 지켜보는 것도 없이 하현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코볼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크릉?”
하현의 발소리를 들은 코볼트들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이빨을 드러내며 하현 쪽을 바라봤다. 그에 하현은 걸음을 멈추는 대신 주먹을 움켜쥐었다.
“컹컹!!”
코볼트들은 사납게 짖으며 손에 들린 몽둥이를 치켜들더니 하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선두에서 가장 먼저 달려오는 코볼트를 바라본 하현이 무덤덤하게 중얼거렸다.
“일단 한 놈.”
퍼엉!
하현의 주먹이 닿은 코볼트의 몸이 폭탄에 맞은 것처럼 터졌다.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고깃덩어리에 뒤에서 달려오던 코볼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케켕?!”
코볼트들의 움직임이 굳은 순간, 하현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오며 뒤에 있는 코볼트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퍼엉!
뒤의 4마리도 마찬가지로 하현의 주먹이 닿기 무섭게 몸이 터져 나가 그대로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였다.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코볼트의 어금니를 획득하셨습니다.
알림창이 생겨나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던 코볼트들의 시체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떨어진 아이템을 대강 주운 하현은 다시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평균 클리어 시간이 4시간 정도랬지. 올힘으로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지 봐야겠어.’
그 평균도 2~3인 파티의 기준이었지만 하현에게는 딱히 상관없었다.
망설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걸음걸이로 하현은 순식간에 던전을 돌파했다.
“케켕!”
코볼트들은 하현의 일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간혹 7마리 정도가 뭉쳐 있었으면 하현에게 반격이라도 했지만.
“뭐야?”
머리에 뭉동이를 얻어맞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하현의 반격에 아주 간단하게 죽었다.
불도저로 던전을 쓸어버린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은 광경이었다.
-시련을 완수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시련 완수와 함께 레벨이 올랐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에 하현은 조금 의아한 시선으로 알림창을 바라봤다.
“벌써 레벨 업이야? 생각보다 레벨 올리기 쉽네.”
하현은 모르겠지만 같은 레벨의 다른 토벌자들이 들으면 절로 기가 찰 소리였다. 다른 파티였더라면 적어도 5배는 더 긴 시간을 사냥해야 레벨을 올릴까 말까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올힘과 불간섭, 슈트의 힘이 강력한 것이었다.
게다가 쌓여 있는 경험치도 있으니까.
“잘하면 오늘 안에 50레벨도 찍을 수 있겠어.”
바로바로 보이는 성과에 하현은 들뜬 마음으로 던전의 안쪽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그리고 던전의 중간을 넘겼을 때쯤.
터엉!
“깨갱!”
“어?”
여태까지 한 방을 못 버티던 코볼트가 하현의 공격을 맞고도 살아남았다. 하현은 자신의 공격을 버텨낸 코볼트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갑주에다가 무기는 검. 코볼트 전사였나.”
코볼트 폐허의 3분의 2지점을 통과하면 나온다는 코볼트 전사.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몬스터였었다.
“분명 레벨이 55였나. 10레벨 차이에다 방어력도 높은 녀석이라 그런지 올힘만으로는 조금 부족한가 보네.”
“으르르릉……!”
하현의 일격을 버텼던 코볼트 전사와 나머지 2마리가 삼각형으로 주변을 둘러쌌다. 순식간에 포위된 하현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일격이 아니면 사냥 속도가 상당히 늦춰지는데.”
한 방과 두 방. 차이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거기에 소모되는 시간들이 보이다 보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흠. 아, 잠깐.”
해결책을 궁리해 보던 하현의 머리에 한 가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슬슬 거리를 좁혀오는 코볼트 전사들을 무시한 채 하현은 스킬창을 펼쳤다.
“여기 있네.”
불간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스킬창에 있는 스킬. 하현은 괴력의 정보를 보기 위해 손가락으로 눌렀다.
괴력(Lv.1) : 액티브. 지속 시간 동안 힘이 1.5배로 증가됩니다. 소모 마나 100. 지속 시간 10초.
“지속 시간에 비하면 마나 소모는 조금 크네. 뭐 이건 나중에 아이템으로 커버하면 되겠지.”
스킬창을 끈 하현은 눈앞의 코볼트 전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느 정도 자세를 잡았다고 생각한 코볼트 전사들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먼저 들어가자.’
자리를 박찬 하현은 바로 눈앞에 있는 코볼트 전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컹!”
그러자 코볼트 전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방어 자세를 취했고 뒤의 두 마리는 무방비한 하현의 등 뒤를 노려왔다.
하지만 하현은 그 공격들을 무시하고 주먹을 있는 힘껏 내질렀다.
“괴력!”
챙! 콰드득!!
하현의 주먹이 맞닿은 코볼트 전사의 검이 간단하게 박살났다.
그러고도 힘을 잃지 않은 주먹은 그대로 갑옷을 있는 힘껏 찌그러뜨리면서 코볼트 전사를 단 일격에 절명시켰다.
“커컹!!”
그 모습을 본 뒤쪽의 코볼트 전사들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각오로 하현의 후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하지만 검은 돌에 후려친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허무하게 튕겨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 뒤 돌은 하현은 그대로 코볼트 전사들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쿵!
하현의 주먹에 맞고 벽으로 날아간 코볼트들의 시체는 그대로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아래로 장검 하나가 떨어졌다.
“오. 드랍 아이템인가.”
장검을 향해 다가간 하현은 검을 주워들었다.
-코볼트 전사의 장검을 획득하셨습니다.
“흐음.”
처음으로 사냥에서 얻어 보는 장비에 하현은 신기해하며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코볼트의 장검(노멀)
내구도 25/30 공격력 12~18
코볼트 전사가 사용하는 장검이다.
“썩 좋은 검은 아니네.”
게임과 비슷한 세상이지만 이곳에는 게임처럼 장비에 레벨 제한 같은 것이 없다.
간혹 가다가 제한이 달린 아이템도 있지만 그건 에픽 이상의 무기들에서나 간혹 나오는 경우뿐이다.
즉 장비에 제한이 없는 이 세계에서 이런 어중간한 성능의 무기는 그다지 큰돈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은 내가 써보면 되겠지.”
검을 장비한 하현은 그대로 던전의 안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괴력을 사용한 하현은 압도적으로 코볼트들을 학살해 나갔고, 순식간에 던전의 끝에 도달했다.
“커커커컹!!”
던전의 끝에는 다른 코볼트들보다 2배는 큰 코블트가 큰 창을 든 채로 서 있었다.
하현은 포효를 내지르는 거대한 코볼트를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코볼트 돌격대장, 보스 몬스터군.”
이 던전에서 가장 강력한 몬스터. 레벨도 무려 65나 되었다. 하지만 하현은 기죽은 것도 없이 검을 꺼내들고 코볼트 대장에게 다가갔다.
“으르르릉…… 컹!”
하현이 다가오자 코볼트 돌격대장은 재빠르게 거리를 좁히더니 사정거리에 들어온 하현을 무서운 속도로 창을 내질러 찔렀다.
콰아앙!!
창에 찔린 하현의 몸은 벽에 무서운 속도로 처박혔다. 당연하게도 부상은 하나도 없었지만 하현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건 조금 문제인데.”
이전에 울티노의 싸움에서도 그렇지만 이렇게 몸이 날아가는 공격에는 못 버티는 경향이 있었다.
“전투 때마다 이렇게 여기저기 튕겨지면 귀찮아진단 말이야.”
아무리 데미지를 안 입는다 해도 전투를 수월하게 하려면 최소한의 회피는 필요해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하현은 돌격대장을 바라봤다.
“커커커컹!!”
거친 포효를 내지르고는 위협하듯이 창을 화려하게 휘두르다가 겨누는 코볼트 돌격대장.
그 모습을 바라본 하현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재주 부리는 것 보니깐 기술 연습하기에는 딱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