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늦었나.”
건물의 밖으로 나온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크르륵.]
양손과 입에 피를 묻힌 울티노의 주변에 처참하게 찢어발겨진 시체들이 흩어져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잔혹한 광경에 하현은 머리가 멍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태이상 ‘공포’에 저항하셨습니다.
-상태이상 ‘무력감’에 저항하셨습니다.
알림음과 동시에 하현의 머릿속에 끼던 안개가 말끔하게 걷어졌다.
하현은 그런 자신의 변화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마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도 면역인 건가.’
분명 두려워야 할 괴물이었지만 불간섭 덕분에 그런 감정은 모두 사라졌다. 하현은 담담한 눈으로 울티노를 바라봤다.
‘어떻게 내가 피해를 줄 수 있을 녀석으로는 안 보이네.’
요사스러운 광택을 내뿜는 검은 비늘을 보면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자신의 스펙을 생각해 보면 피해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어.’
주변을 둘러보는 하현의 눈에 도로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한 자루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저거라도 줍자.’
이러나저러나 맨손보다는 나을 것이다. 잽싸게 검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간 하현은 검을 주워들었다.
[크르륵?]
하현의 존재를 눈치챈 것인지 울티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검을 주운 하현의 모습을 보더니 눈동자가 커졌다.
[크워어어억!!]
시련으로 인한 적대감 상승으로 단숨에 사나워진 울티노는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왔다.
“어…….”
콰아아앙!!
하현이 눈치채기 전에 울티노의 두 손이 그 위를 찍어 내렸다.
주변의 바닥이 갈라지고 먼지가 폭발하듯이 위로 치솟아 올랐다.
[크워어어어어……어……억……?]
학살 후의 포효를 내지르던 울티노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리고 이내 땅을 내려찍었던 자신의 두 손으로 시선이 향했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빌딩도 두 쪽으로 갈라버릴 만큼 강력했던 울티노의 일격. 거기에 맞은 하현은 당당하게 서 있는 자세 그대로였다.
“그냥 내가 완전히 별개가 되는구나.”
하다못해 몸이 숙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하현은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 공격은 숙여지는 순간 허리가 다치기에 면역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면역…… 진짜 사기네!”
불간섭 덕분에 냉정을 찾은 하현은 곧장 손에 들린 검을 휘둘러 울티노의 팔을 후려쳤다.
카캉!
비늘에 부딪친 검은 불똥을 튀며 튕겨 나왔지만 울티노의 비늘에는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역시 피해는 못 입히려나.’
[크워어어어억!!!]
공격도 통하지 않고 오히려 반격까지 당했다는 사실에 울티노는 더더욱 사나워졌다.
하현을 거칠게 움켜쥐어 들어 올린 울티노는 그대로 바닥을 향해 던졌다.
콰아앙!!
바닥에 충돌한 하현의 몸이 어떻게 됐든 울티노는 그대로 하현이 있는 곳을 난타했다.
콰콰쾅!!!
주변의 땅이 뒤흔들리고 부서지면서 8차선 도로 전체에 금이 갔다.
한참 동안 주먹을 휘두른 울티노는 공격을 멈추고 먼지가 자욱한 아래를 바라봤다.
카캉!
“아, 발가락도 안 되네.”
하지만 이번에도 하현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울티노의 발가락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크…… 크워어어어억!!!]
그 모습을 본 울티노가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었던 이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한 번 하현을 움켜쥔 울티노는 하현을 노려봤다.
“엇…… 설마.”
입을 벌리는 울티노의 모습에 하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울티노는 하현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꿀꺽!
하현의 몸이 울티노의 거대한 입안으로 간단하게 들어갔다.
“으악…… 이게 무슨!”
단말마를 내뱉은 하현은 그대로 울티노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목덜미를 꿀렁거리며 꾸역꾸역 하현을 삼킨 울티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늦었나.”
[크륵?]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울티노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그 순간 검은색 섬광이 번쩍였고.
푸슈육!!
여태까지 상처라고는 한 번도 난 적 없었던 울티노의 가슴팍에 혈흔이 새겨졌다.
[크워어어억!!]
고통에 찬 울음을 터뜨리는 울티노의 앞으로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검은 망토에 검은 가죽 갑옷, 검은 검까지 전신을 모두 검은색으로 감싼 인물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랭크업을 한 건가…… 성장 속도 하나는 정말 무시무시하군.”
울티노 저지의 시련을 본 인물, 흑월은 혀를 차며 단번에 시련을 수락했다.
[크르르륵…….]
시련으로 인해 울티노는 적대감이 상승했지만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흑월을 노려봤다. 본능적으로 흑월이 강자임을 알아챈 것이다.
“…….”
말은 필요 없다. 울티노와 마주 선채 자세를 낮춘 흑월의 모습이 응축되는가 싶더니, 지면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섬광이 울티노를 향해 덮쳐졌다.
[크워어어어억!!!]
전신에 난도질을 한 것 같은 혈흔이 순식간에 새겨졌다.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울티노의 다리 사이로 파고든 흑월은 발목을 긋고 등을 강하게 베었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S급까지는 성장하지 않았나. 이대로 곧장 끝낸다.’
피를 내뿜으며 제대로 반격도 못하는 울티노의 모습을 본 흑월은 다시 한 번 울티노를 몰아붙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바로 그때,
[크웍!]
울티노의 두 눈에서 요사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후우웅!!
‘뭣!’
막 달려들던 흑월에게 울티노의 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휘둘러졌다. 여태까지 보인 움직임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그 속도에 흑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녀석 실력을 숨긴 것이었나?!’
괴수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영악함. 그 잔꾀에 속아 넘어간 흑월은 이를 악물며 다급하게 방어를 취했다.
하지만 그 손이 닿기 전에 울티노의 몸이 비틀어졌다.
[크워어억?!]
‘뭐, 뭐지?’
갑자기 배 쪽을 움켜쥐는 울티노의 모습에 흑월은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회라고 파악한 흑월은 거리를 벌리고 검에 마나를 끌어모았다.
[크워어어 크륵?!]
흑월이 무언가 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방해하려 들었지만 또다시 몸이 멈추고 몸을 비비꼬며 배를 움켜쥐는 울티노.
그 두 번의 빈틈 속에서 흑월의 준비는 끝이 났다.
“참!”
휘둘러진 흑월의 검으로부터 날카로운 흑색 검기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검기가 울티노와 닿은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울티노의 몸이 흔적도 없이 조각났다.
-시련을 완수하였습니다.
-울티노 퇴치에 큰 공헌을 하여 추가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울티노 토벌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보상 아이템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확실하게 울티노가 죽었음을 알려주는 알림음에 흑월은 치켜들었던 검을 바닥으로 내렸다.
“뭔가 보인 것 같은데?”
아주 찰나였지만 울티노의 몸에서 뭔가 사람 같은 것이 튀어 나가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다.
가만히 울티노가 있던 곳을 바라보던 흑월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겠지.”
이전에 A급 헌터를 삼키고 유니크 방어구까지 모조리 소화시킨 것이 울티노였다.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리 없다고, 흑월은 결론을 내렸다.
“만약 있다면…… 그렇게 손쉽게 먹힐 자가 아니겠지.”
조용히 중얼거린 흑월은 그대로 도로 위에서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