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이건 진짜 무슨 게임의 퀘스트 같잖아.”
퀘스트의 설명처럼 적혀 있는 글귀에 하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약간 그런 느낌이 나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움직여도 눈앞에 따라오는 걸 보니 역시 예사 환각은 아냐.”
혹시나 싶어 눈도 감아 봤지만 창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눈앞에 아른거렸다. 결론을 내린 하현은 눈을 뜨고 창을 바라봤다.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인가.”
시련이라고 불린 이 창이 정말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괴물도 나오고 몸의 상태도 이상한 지금, 이것만 가짜라는 것은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일단은 받아들여 볼까.”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나저러나 밑져야 본전, 하현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시련 수락.”
-시련을 수락하셨습니다.
-시련을 완수하셨습니다.
하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기질적인 음성이 두 번 연속으로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아!”
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시련에 적힌 대로 시련을 완수한 순간, 단숨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이 어떤 세상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허, 이건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트럭에 치이는 순간 평행 차원의 자신과 교체되다니. 하현은 어이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지어졌다.
“정체불명의 괴수와 던전, 그리고 일종의 퀘스트인 시련과 스탯이란 게 당연한 세상이라…….”
비슷하지만 근본부터가 다른 완전히 별개의 세상. 그런 공상 속의 세계와 같은 곳에 와버렸다는 사실에 하현은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으아아악!!”
“?!”
하현이 한참 감탄하고 있을 때. 부서진 건물 벽 바깥쪽으로부터 아까 전에 경고했던 목소리의 비명이 들려왔다.
“설마…… 그 사람들, 괴수에게 당하고 있는 건가.”
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나타나는 던전과 괴수들에 대항하는 인간을 이곳에서는 토벌자라고 불린다.
아까 밖에 있었던 자들도 토벌자인 듯했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다.
‘내가 도와야 하는 건가?’
바깥에 들려온 비명에 하현은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지금 내가 나서봐야 뭘 할 수 있겠어.”
평행 차원으로 건너왔지만 자신의 몸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그런데 저런 괴수와의 싸움을 돕겠다고 끼어들어 봐야 개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 뻔했다.
“그래, 괜히 개죽음 당하느니 차라리 여기서 얌전히 있는 게…….”
이야기를 하던 하현이 무언가 깨달은 듯 말을 멈추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나 아까 맞지 않았나?’
잠시 깜빡하고 있었지만 하현이 지금 이 건물 잔해 위에 앉아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괴물의 공격에 맞아서였다. 하지만.
‘그런데 상처가 하나도 없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괴수에게 맞고 건물 잔해에 치이고도 몸에는 상처 하나 없다.
그 사실들을 유추해볼 수 있는 사실은 한 가지였다.
“이 세상에서는 상처를 입지 않는단 건가.”
짐작에 가까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도움을 주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하현의 얼굴에 갈등이 서렸다.
“정말로 그렇다면 해볼 만한데…….”
한참을 갈등하던 하현은 결국 그들을 돕기로 결정을 내렸다.
‘할 수 있는 일을 안 하고 넘어가면 찝찝하니깐.’
이전 세계에서는 제대로 나설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나서지 못했을 뿐, 하현은 할 수만 있다면 확실하게 해결하려는 타입이었다.
-시련이 생성되었습니다.
“어?”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 하현의 눈앞에 다시 시련의 창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시련이 생성된다고 했지.”
시련은 직접 생성할 수도 있고 자동으로도 생성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하현의 경우는 후자로 방금 전 돕기로 마음먹은 것에 반응하여 생긴 듯했다.
“흐음.”
새롭게 떠오른 시련의 창에 하현은 팔짱을 끼고 바라봤다.
[괴수 울티노의 퇴치.]
S급 괴수 울티노를 퇴치하여 다른 인간들을 보호하라.
난이도 : S
보상 : 막대한 경험치와 부위별 아이템 중 한 가지.
-시련을 수락할 시 울티노가 도주하기 전까지 전장에서 이탈할 수 없습니다.
-울티노에게 적대도가 높아집니다.
“S급이면 내가 낄 만한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방금 전 시련으로 각 등급이 가지는 위험도 정도는 대략 알아차렸다.
S급은 현존 최고 등급으로 잘못하면 도시 하나는 그냥 날아가는 위험 등급이었다.
“일단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면 어떻게 해볼 만할지도 모르는데…….”
하현은 찝찝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짐작, 진짜일지 아닐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 대 맞은 걸로 확실하다고 하기에는 그렇고. 뭔가 확인할 방법이…… 아!”
머리를 굴려 보던 하현은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시련 말고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희한한 시스템. 그것을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흐음…… 보자, 이렇게 하면 되나? 스탯창, 스킬창!”
현실이었다면 바보 같았을 외침. 하지만 하현의 외침과 동시에 눈앞에 시련과는 다른 반투명한 창이 두 개 떠올랐다.
[하현]
레벨 : 1 칭호 : 없음.
생명력 : 80/80 마나 : 120/120
힘 : 11 민첩 : 10
체력 : 8 지력 : 12
공격력 : 5 방어력 : ???
[스킬창.]
불간섭(Lv.???)
“진짜 떴네.”
눈앞에 생겨난 두 개의 창을 신기한 눈으로 살펴본 하현은 우선 스탯창을 살펴봤다.
“우선 내 스탯이니깐…… 높을 리는 없겠지.”
이전 세계에서 머리부터 몸까지 모두 나빴던 자신이다. 하현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스탯을 대충 넘기고 스킬을 바라봤다.
“불간섭?”
본래라면 아무런 스킬도 없어야 할 스킬창에 떡하니 있는 하나의 스킬.
손을 뻗어 불간섭을 누르자 스킬창의 옆으로 상세 설명이 떠올랐다.
불간섭(Lv.???) : 패시브. 다른 차원으로부터 온 당신은 이 차원에서 어떠한 현상에도 면역을 지니게 됩니다.
-소모 마나 : 0
-집중도에 따라 면역을 해제할 수도 있지만 신체의 피해를 입게 될 시 자동으로 면역됩니다.
“지, 진짜다!”
스킬의 정보를 읽어본 하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다른 것도 아니고 스킬 정보에서 그렇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절대불변의 사실이나 다름없다.
“정말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다니…… 이건 그냥 반칙이잖아.”
어떤 페널티도 없이 그냥 모든 피해가 면역이라니. 게임의 버그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뭔가 확인할만한 게…….”
주변을 둘러보던 하현은 한 손으로 쥘 만한 돌조각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손등을 대고 손을 치켜들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번에도 안 다치겠지.’
자신의 손등을 내려쳐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긴장한 하현은 마음을 굳게 먹고 돌조각을 손등을 향해 찍어 내렸다.
파각!
돌조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눈을 찔끔 감았던 하현은 조심스레 눈을 떠 자신의 손등을 바라봤다.
“……진짜다.”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한 손등. 그리고 방금 전에 찍었을 때, 약간 눌리는 느낌만 받았지 통증은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진짜야.”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재능이 생겨났다. 그 사실에 하현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
아무런 말없이 손등을 바라보던 하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눈앞에 여전히 떠올라 있는 울티노 저지의 시련을 바라봤다.
“시련 수락!”
-시련을 수락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