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프롤로그>
“진짜 미안하다, 하현아.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
체육관 관장의 말에 최하현은 아무런 말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 정말 이게 어지간해서는 이럴 수가 없거든. 식단 조절에 운동까지 병행하면 무조건 효과가 보여야 하는데…….”
이야기를 하는 관장의 눈이 하현을 흘깃흘깃 바라봤다. 혹시 자신이 보지 않은 곳에서 허튼 짓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
그 불신이 가득한 시선에 하현은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미 질릴 정도로 겪어본 상황이었고,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태까지 신세졌습니다.”
“어어…… 그래, 정말 미안하다, 하현아.”
하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관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 뒤편으로 아주 작게 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환불해 달라고 지랄할 줄 알았네.”
“…….”
3개월 동안 살갑게 대해 주며 운동을 지시하던 관장의 모습이 하현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가볍게 저어 그것을 털어낸 하현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
밖으로 나오자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층수를 눌렀다. 때때로 체육관에서 마주치며 인사하던 남자였다.
“저, 저기 잠깐만…….”
하현은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현을 발견한 남자는 시선을 돌리고 다시 버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닫혀 가던 문은, 그대로 멈추지 않고 닫혔다.
“…….”
뻗었던 손을 거둔 하현은 잠시 그대로 멍하니 서 있다가 비상구의 계단으로 향했다.
조금 기다리면 될 일이지만 왠지 모르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아……하아…….”
13층의 체육관에서부터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하현의 숨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3개월간 운동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처참한 체력에 하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허억……허억…….”
목이 막힐 것 같은 거친 숨에 하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여태까지 자신이 내려온 층수를 바라봤다.
8층.
“…….”
분명히 이 정도로 힘들다면 ‘절반 이상은 내려왔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하현의 생각과 달리 반도 내려오지 못했다.
왠지 모를 허탈감에 하현은 그대로 계단에 걸터앉았다.
“……씨발.”
조용히 하현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속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몇 번째야…… 씨발, 진짜 몇 번째냐고…….”
이번으로 도대체 몇 번째 거절인 것일까, 하현은 이젠 셀 수조차 없는 자신의 실패에 치가 떨렸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라도 좋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하현은 자신의 깡마른 몸을 내려다봤다.
어떻게든 이 허약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3개월간 회비와 식이 조절 비용에 여윳돈을 모조리 투자했다.
하지만 근육이 잘 발달되지 않는 체질이라는 이유로 이 빌어먹을 몸뚱이는 정말 눈곱만큼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그걸 들고 있었으면…… 이번 달 생활비도 여유로웠을 텐데…….”
그런 후회가 하현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하현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했더라도 결론적으로 자신의 비루한 인생에는 변화가 없었을 것을.
“씨발…….”
처참한 현실에 하현은 다시 몸을 움직여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1층까지 내려오자 전신은 땀으로 젖었고 온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소주나 한 병 깔까.”
몸을 가꾸기 위해 끊었던 술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술이 마시고 싶었던 적이 없다.
터덜터덜 힘겹게 걸음을 옮긴 하현은 신호등의 앞에 멈췄다.
“…….”
건물의 전광판에 연예인들과 스포츠 선수들의 모습이 지나간다.
비루한 자신과 다르게 재능을 뽐내며 빛나는 그들의 모습은 절로 하현의 모습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세상사 불공평하네.”
이렇게 불평하면 누군가는 이리 말할지도 모른다.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분명 한 가지의 재능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진짜 뭣 모르고 지껄이는 개소리지.’
이 세상에는 정말로 아무런 재능도 없는 이들도 있다.
머리도 좋지 않고 몸도 나쁘고, 거기다 가족도 한 명 없는 그런 빌어먹을 인생도 있는 것이다.
“나도 재능 가지고 좀 떵떵거리며 살아봤으면 좋겠네.”
울적한 기분으로 중얼거린 하현은 눈앞을 바라봤다.
신호등의 신호는 어느새 바뀌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벌써 반 이상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깜빡거리는 신호에 하현은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신호등의 절반 정도를 지나왔을 때.
휘청.
‘어?’
다급하게 움직이던 하현의 다리에서 순간적으로 힘이 빠졌다.
방금 전에 계단을 내려온 것 때문인 듯했다.
‘이건 무슨…….’
자신의 빈약한 다리에 하현이 어이없어 하며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순간.
빵빵!!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차가 하현을 향해 달려왔다. 그 갑작스러운 광경에 몸이 굳은 하현은 트럭을 바라만 보았고, 멈추지 못한 차는 그대로 하현을 몸을 들이받았다.
쾅!
그리고 세계가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