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아무리 잘생겼어도 저 정도로 울면 못생겨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신의 사랑을 받으면 저런 불변의 외모를 가질 수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저 정도의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옆의 신녀에게는 절대 해선 안 될 이야기이군.’
신이 외모 때문에 황제를 사랑한다고 지껄이면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뻔했다. 아리스는 얌전히 뒤로 물러나 있는 신녀와 왕자 쪽을 힐끗 바라봤다.
‘음?’
신녀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왕자의 얼굴을 돌아보고 있었다.
‘왕자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아니, 하지만 지금 신녀의 얼굴은 상대를 경계한다기보다는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리스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까 신녀와 왕자가 붉은 실에 대해 이야기했지.’
그리고 거울 가까이 다가왔을 때도 붉은 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뒤로 물러나면서도 거울에 매우 집중하는 느낌이었고.
그러니 지금 신녀는 붉은 실에 반응을 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신녀와 왕자의 말이 끝나기가 황제의 신력이 솟구쳤다. 아리스는 빠르게 뒤로 몸을 물렸다.
‘역시 지금은 너무 위험하지.’
흉흉한 황제의 기운에 신녀가 화를 내는 게 보였지만 아리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괜히 끼어들지 말자.’
저 신력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으니 굳이 나서서 부스럼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아리스는 조금 더 뒤로 물러나며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싸움이라도 나면 얼른 도망쳐야겠다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리스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붉은 실이 사라졌다고.’
아리스는 빠르게 황제를 돌아봤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욱 상기되어 있는 그의 얼굴을 발견하곤 다시 한번 황제의 얼굴에 마법을 사용했다. 황제의 신력이 작게 반응을 내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신력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잠잠했다.
아리스는 다시 매끈한 모습으로 돌아온 황제의 얼굴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기뻐하고 있어.’
단순히 기뻐한다고 하기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고 중간중간 소름 끼치는 눈빛도 보였지만 아무튼 황제의 기분이 좋은 쪽으로 널을 뛰고 있는 건 확실했다.
문제는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눈물이라는 점이었다. 아리스는 고친 보람도 없이 다시 순식간에 젖어가는 황제의 얼굴에 혀를 찼다.
‘또 고쳐야 하나?’
하지만 아직은 좀 볼만한 것 같았다.
‘황제가 우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니, 얼굴이 너무 멀쩡해도 서호가 믿지 않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아리스는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황제가 거울에 손을 대는 모습을 보아하니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히 이번에는 아리스의 짐작이 맞아 떨어졌다. 황제의 손에 깍지를 끼는 손. 그리고 차례로 나타나는 반짝이는 몸.
‘아이고.’
대놓고 신력을 발현하고 있는 서호의 모습에 아리스는 빠르게 황제와 거울 주변을 마법으로 감쌌다. 이제 와 감춰 봤자 이미 신녀와 왕자가 서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신력을 전부 봤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둘만의 시간이 시작될 테니 그걸 굳이 두 눈으로 볼 필요도 없고.’
아리스는 처음 이 방에 들어온 순간 주변에 걸어뒀던 소음차단 마법과 함께 저들의 눈꼴신 꼴을 보지 않기 위해 그들 주위로 시야를 차단하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막이 완전히 황제와 서호를 감싸자 아리스는 신녀와 왕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돌아오셨군요.”
아리스와 시선이 마주친 신녀가 멍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래요. 그건 참 다행이지만, 방금 서호님이 사용하셨던 그건…?”
아리스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리스가 차갑게 신녀의 말을 잘라냈다.
“폐하께 물어보시죠.”
신녀가 입을 다무는 걸 확인한 아리스는 신녀와 왕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일이 전부 마무리되면 말이죠.”
그 마무리가 어떤 것일지 모르지 않을 왕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답했다.
“그럼 조금 더 기다려야겠군.”
서호와 황제가 저 개인적인 만남을 끝내기 전까지는 이대로 불편한 자리를 유지해야 했다. 아리스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한구석에 놓인 테이블로 다가갔다.
“시간이 조금 걸릴 테니, 앉아 있죠.”
그렇게 아리스는 그의 가슴팍을 뚫었던 사람 둘과 잠시 기이한 티타임을 가졌다.
‘얼른 나오셨으면 좋겠네.’
아리스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간질거리는 가슴팍을 벅벅 긁었다.
옆의 두 사람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지만 아리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시원하게 가슴을 긁었다.
***
푸티는 황제가 얼른 돌아오길 바라며 열심히 움직였다. 우선은 황제가 쓰러진 것을 알고 있고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아는, 입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그림자들에게는 모든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그림자들은 지금 로제타가 저지를 짓들을 예측하고 그 이후의 뒤처리를 위해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황제가 쓰러진 것만을 아는 황제궁의 사용인들은 본래도 푸티가 완벽히 관리하던 이들이었기에 그저 황제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대한 함구령만을 내리면 됐다.
‘귀족들도 지금 당장은 조용히 있겠지.’
그들은 서호가 납치된 것도 황제가 쓰러진 것도 모르니 적어도 하루 정도는 조용할 거라는 게 푸티의 예상이었다.
‘그래,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는 안 들키고 이 일을 가만히 묻어둘 수 있어.’
해가 뜨고 로제타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본래 로제타는 자유롭게 행동하던 사람이었으니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래서는 안 됐는데.’
푸티는 지금 사용인들의 보고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응접실로 향하고 있었다. 일단 지금까지는 정보가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었는데, 자정이 훌쩍 넘은 지금 손님이 찾아오다니.
처음 손님을 절대 받지 말라 엄포를 놨음에도 그들이 손님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푸티는 사용인들에게 화가 났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누군지 알고 나자 생각은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응접실을 방문한 손님은 사용인들이 거절하기 매우 어려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모른다면 더더욱.’
사브리나 공작. 본래 황제와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은 상대였다. 황제궁 사람들은 공작이 얼마 전 황제에게 불려왔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강압적으로 궁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공작을 막기 힘들었을 것이다.
‘폐하가 무슨 명령을 내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뭐, 로제타가 공작에게 명령을 내렸던 것은 맞았다. 공작이 그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문제였고, 그로 인해 이쪽이 피해를 보게 됐다는 것만 빼면.
푸티는 응접실 앞을 지키고 있던 사용인들의 앞에 멈춰 섰다. 푸티는 눈치를 보는 사용인들을 물리며 문을 두드렸다.
“사브리나 공작님.”
“들어오게.”
푸티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서며 빠르게 방을 훑었다.
사용인들의 보고대로 공작은 이리 늦은 시간 황제궁으로 오면서 호위나 사용인을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푸티는 공작에 대한 경계를 무해한 웃음으로 숨기며 고개를 숙였다.
“공작님께서 이리 늦은 시각에 어쩐 일이십니까?”
새벽 4시에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절대 손님을 받을 리가 없는 시간이기도 했으며, 대단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이 시간에 궁을 찾아오는 것은 매우 큰 무례였다.
푸티가 은근히 그 점을 지적했지만 공작은 태연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답을 할 뿐이었다.
“폐하께 긴히 드릴 이야기가 있네.”
푸티는 재고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며 답했다.
“폐하께서는 수면 시간을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황제의 자비 없는 성정을 귀족들도 전부 알고 있었기에 푸티가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귀족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정리하곤 했다. 황제의 심기를 건드려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걸 그들 모두가 알았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의 말로 돌아갈 것이었다면 공작이 이런 시각에 황제궁을 찾아왔을 리가 없었다. 사브리나 공작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아네. 하지만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네.”
푸티가 다시 한번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이야기하셨기 때문에 폐하를 깨울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도 화를 내지 않으실 걸세.”
보아하니 무슨 말을 해도 물러서지 않을 게 뻔했다.
‘하긴, 만약 무언가 눈치채고 온 거라면 절대 이대로 물러날 수 없겠지.’
가문과 딸을 위해서라도 공작은 자기가 하려던 일을 반드시 할 것이다.
‘곤란한데.’
푸티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경우 시종에 불과한 자신이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귀족들이 계속 고집을 부리면 로제타의 직속 시종이긴 하지만 평민인 푸티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조금 강하게 나가 볼까?’
푸티가 순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물었다.
“제게 먼저 그 사안을 이야기해 주실 수 없으십니까?”
그러자 공작이 냉소를 띤 얼굴로 되물었다.
“그대가 그 사안을 알아도 될 위치라고 확신하나?”
귀족이 평민을 내리깔아 보는 전형적인 말투였다. 하지만 푸티는 놀라지도, 그렇다고 커다란 반응도 내보이지 않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네.”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자신이 가진 위치를 숨기지 않는 푸티의 답에 응접실에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