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물 젖은 벽-131화 (131/155)

#131

8장. 새벽의 호수

무슨 일이 있어도 어머니를 돌려보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방법이나마 시도해 보려 다른 거울을 훔쳐 왔고 그 거울을 사용하려 했다. 만약 여기서 거울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끝이라고.

‘이제 아무런 방법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여태까지 어떤 방식으로든 방법을 찾아냈고 여러 행운이 작용했었으니까.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 다른 거울이 사용됐고, 그 거울을 통해 이곳으로 온 이가 어머니와 같은 나라 사람이었으며 거기에 더해 그 이방인은 어머니와 같은 시간대의 사람이기까지 했다.

그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 연속해서 반복되면 기대를 하기 마련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될지도 모르겠다고, 행운이 계속될 거라고.

‘하지만 착각이었어.’

지금의 이 상황을 위해, 최고의 절망을 주려고 여태까지 부러 행운을 뿌렸다고 의심이 될 정도였다.

윤은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게 훤히 보이는 얼굴을 하고도 결국에는 입을 연 서호를 아연하게 바라봤다.

‘왜 이야기한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서호의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걸 이야기하면 혼란이 야기될 거라는 걸 서호도 알고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그가 원치 않는데도 돌아가야 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 서호도 알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이 이야기를 숨김없이 한 걸까? 왜?

‘나 때문…,’

윤은 재빨리 그 생각을 지워냈다. 자신 때문이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윤은 그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서호와 친구였다는 어머니.’

서호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연 이유는 바로 어머니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어머니가 서호의 상황을 거의 모른다는 데에 있었다. 그렇기에 저렇게 무심히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기만 정하면 되는 거라고.

윤은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하자마자 돌변하는 서호의 기색에 이를 악물었다. 서호에게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강렬한 악의였다.

윤은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서호에게 부탁을 할 수도, 그렇다고 모든 걸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망설임이 길어질 때 등장한 다이앤에, 부끄럽게도 윤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불편한 곳에 더는 남아 있고 싶지 않았고 선택을 유예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평소라면 절대 반기지 않았을 왕의 부름에 따라 서둘러 다시 왕의 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가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뭐 때문이지?’

왕이 자신을 부를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때문인가?’

진척 사항이 궁금한 것일 수도 있었다. 보고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머니 일에는 인내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정말 어머니에게 어떤 조치가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네.’

아버지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제외한 그 누구도 믿지 않는 분이었으니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없었다.

‘미리 대비해 두길 잘했군.’

윤은 어머니의 궁에 배치해 둔 마법사들을 떠올렸다. 왕실 마법사들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사람인 마법사들. 마법을 탐구하고 배우는 이들이었기에 더욱 자신의 경지를 존경하고 떠받드는 이들이었다.

왕실 마법사들 전부가 자신의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꽤 위협적인 수가 자신의 사람들이었다. 그런 마법사들의 움직임에 형님이 자신을 견제한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위해서 윤은 그런 마법사들을 말리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돌아가기 전까지 아버지의 사람들을 막아낼 수는 있겠지.’

따라오려고 하던 다이앤에게 궁의 관리를 맡겼으니 더욱 안심이었다.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겠지만.’

자신을 데리러 온 사용인의 움직임을 보아 왕이 꽤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그래, 몇 년 만에 어머니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당연하겠지.’

어머니를 잃게 되는 건 결국 그에게 최고의 벌이 될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기대에만 가득 차 있을 왕을 비웃으며 사용인의 장단에 맞춰 빠르게 이동하던 윤은 문뜩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뭐지?’

마법과는 다른 무언가가 공기 중에 떠돌고 있었다. 모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빠르게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건 이상했다. 윤이 미간을 좁히며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파훼된 마법을 발견했다. 깔끔하게 잘려나간 마법. 그 틈을 채우고 마법을 유지시키는 어떤 것.

‘마법이 유지되고 있어서 시전자가 눈치채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에 눈에 힘을 주던 윤은 그 주위에 감도는 기묘한 기운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이건….’

직접 느껴 본 적 있는 기운이었다. 자신을 위협하던, 가장 위대한 힘이라 불리는 신력. 로제타 보레알리스, 그가 왕국에 도착한 것이다.

‘하.’

황제가 서호를 찾으러 올 것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침입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제국의 황제니까.’

직접 겪어 본 그는 적어도 아버지랑은 다르게 어느 정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몰래 궁에 침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바로 쫓아오지 않기에 외교적인 방법을 이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 이성을 완전히 깨트린 건가?’

가능성은 충분했다. 특히 마법사가 그렇게 엉망인 상태로 발견됐으니 더욱 서호에 대한 걱정이 커졌을 거고.

‘얼마나 데려왔을까?’

서호가 납치되자마자 따라오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절대적으로 마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황제는 마법사가 아니었으니, 분명 황제를 제외하고도 다른 이들이 함께했을 것이다.

‘마법사들이 그들을 감당할 수 있나?’

윤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리고 황제의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황제 자체는 마법사들이 처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돌아가야 한다.’

윤이 이를 악물며 몸을 돌리려던 그때, 사용인이 크게 숨을 삼켰다. 그 소리에 앞을 바라본 윤은 그 앞에 자리한 한 무더기의 사람을 발견했다.

바닥에 쓰러져 죽은 듯 잠들어 있는 무리. 그리고 그들의 주위를 감싼 신력.

황제의 짓이었다.

“이, 이것이 도대체…, 침입자가, 칩입자가 나타났…!”

윤은 곧바로 사용인을 쓰러트렸다. 아직 황제의 등장을 알릴 수는 없었다. 그걸 알리는 순간 자신이 계획한 모든 일들 역시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다.

윤은 바닥에 쓰러진 사용인을 뒤로하고 재빨리 어머니의 궁으로 내달렸다. 아버지와 그 외 다른 사용인들이 궁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알아차리기 전에 빨리 계획을 실행해야 했다.

‘이동 마법을 쓸 수가 없어!’

지금과 같이 마나가 잔뜩 흐트러지고 공기 중에 신력이 포함된 상황에서 공간을 이동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이곳에서 궁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윤은 이렇게 빨리 달린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리고 궁에 발을 내딛자마자 느껴지는 신력의 흔적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궁 안으로 들어갔어.’

정말 시간이 없었다.

황제와 마법사들이 부딪친다면 그 소란을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윤은 황제와 맞부딪치지 않기 위해 황제가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신력을 피해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자기가 온 걸 숨길 생각이 없는 건가?’

황제는 윤의 생각보다 더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 뒤에 있을 폭풍을 전부 감내할 자신이 있거나.’

그렇다면 더더욱 서둘러야 했다.

“전하!”

방 앞을 지키고 있던 다이앤이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반겼다.

“마법사들이 침입자가 있다고….”

“나도 알아. 황제가 왔어.”

“그런….”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해야 해.”

윤은 그가 서 있는 반대쪽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마법들을 느끼며 다이앤을 이끌고 재빨리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어머니와 서호를 재촉했다.

다급함과 초조함이 그를 덮쳤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어도 막상 서호를 마주하니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 요구하는 이 상황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는 자신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끝이 나버리고 말았다. 여태까지 노력했던 수년간의 시간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건 안 돼.’

그래서 되지도 않게 서호에게 매달렸고 이성을 잃은 서호를 마주했다. 분노가 폭발한 듯, 한계까지 몰려버린 정신 탓인지 서호가 날 선 말들을 뱉어냈다.

‘진작에 내게 했어야 하는 말들이지.’

그러니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것들은 전부 진실이었다.

그럼에도 부탁을 멈출 수 없는 것이 싫었다. 결국에는 그의 말대로 그를 강제하게 되어버릴 스스로를 알았다.

‘아버지와 다른 점이 뭐지?’

스스로의 목적과 행복을 위해서 다른 이를 희생시키려 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그에게는 이곳에 있는 이들이 전부임을 알면서.

“…보고 싶어.”

작게 중얼거리는 그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이러면 정말 아버지랑 다를 바가 없는데. 그래도 어머니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는….

콰아아앙!

윤은 폭발하듯 휘몰아치는 신력과 함께 등장한 황제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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