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마법 물품을 봤다고?”
“네, 마법 물품에 대해 잘 아세요?”
공교롭게도 아리스에게는 꽤 익숙한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일반 마법보다는 마법 물품이 내 전공이긴 하지. 황실 마법사 중에는 내가 제일 잘 알걸?”
“정말요?”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는 푸티에게 아리스가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려주며 답했다.
“그게 돈이 더 많이 되거든.”
“…아하.”
반짝거리던 푸티의 눈에 냉기가 감돌았다. 적나라한 변화를 보며 킬킬 웃음 짓던 아리스가 말을 이었다.
“재능이 있는 이들도 별로 없고.”
“마법사 중에서도요?”
아리스가 눈을 찡긋거렸다.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가 잘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안 그래도 몇 없는 마법사 중에서도 더 드문 것이 바로 마법 물품을 전공으로 삼는 마법사였다.
“응. 그러니까 돈이 더 많이 되겠지?”
또 돈 이야기를 꺼내자 푸티가 타박하듯 말했다.
“돈도 많이 받으시면서.”
아리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더 많이 받는 사람은 조용히 해.”
그러자 푸티가 눈에 힘을 잔뜩 주며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저는 제일 가까이에서 폐하를 감당하니까 당연한 거예요.”
감당하다니. 예전에는 분명 황제의 욕을 절대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새 푸티는 아무렇지 않게 황제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타박을 놓곤 했다.
“언젠가부터 막 이야기한다?”
아리스의 지적에도 푸티는 태연했다.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않을 거잖아요. 해서도 안 되고요. 계약서 새로 썼다면서요?”
“맞아.”
황제의 사람이 되면서, 정확히는 그림자에 속하게 되면서 그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계약서를 새로 쓰기는 했다.
물론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기에 황제의 사람들끼리는 당연히 예외였고.
‘푸티가 그림자에 속해 있는 게 신기하긴 하지.’
황실 마법사나 황실 기사들보다 수준 높은 이들이 잔뜩 포진된 비밀스러운 집단이 바로 ‘그림자’였다.
그런데 거기에 푸티가 속해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소속원이라기보다는 황제의 직속 시종으로서 아는 게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비밀 유지를 위해 계약서를 작성했던 것뿐이지만.
‘원래 나도 그런 역할이었던 것 같은데.’
능력이 꽤 쓸 만하다는 평가를 몇 번 하더니 이제는 같은 그림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부려 먹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일이 많지 않았었다고 했는데.’
황실 마법사나 기사가 옆에 있는 걸 싫어하는 것처럼 본래 황제는 그림자들 역시 딱히 잘 활용하는 편은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서호가 등장한 이후 일이 급속도로 늘어나 그림자들은 과로로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때 푸티가 눈치를 보듯 주변을 살피더니 마법이 펼쳐져 있음에도 아리스에 귀에 작게 속닥거렸다.
“아리스도 다른 곳에 가서 이야기하지 말고 저한테 이야기해요. 답답하잖아요?”
밖에서는 절대 볼 수 없던, 서호의 앞에서만 볼 수 있는 황제의 꼴이 꽤 우습긴 했다.
아리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푸티가 귀를 쫑긋 세우더니 복도 너머로 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막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던 사용인에게 손짓했다.
“아, 이리로 가져와.”
푸티가 사용인에게 말하는 틈을 타 마법을 잠시 해제했던 아리스는 사용인이 사라지자 다시 마법을 둘렀다.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푸티가 트레이 위에 올려진 쿠키 중 하나를 입에 물며 아리스에게도 권했다.
“드세요.”
아리스가 푸티가 건네는 쿠키를 집어 들며 되물었다.
“먹어도 돼?”
이건 황제의 방에 들어갈 다과였다. 하지만 푸티는 태연했다.
“지금 들어가면 안 된다니까요?”
하긴 푸티의 말처럼 아직도 복도에는 두 사람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괜히 다과를 넘긴다고 문을 두드렸다가는 황제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게 될 게 뻔했다.
푸티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새로 가져다드려도 돼요. 조금 전에도 간식을 드셨으니까요.”
결국 아리스 역시 푸티처럼 입에 쿠키를 입에 물었다.
“서호님은 군것질을 좋아하시지?”
수업하는 동안 종종 단 음식을 찾던 서호를 떠올리며 묻자 푸티가 답했다.
“네. 그래서 폐하의 방에 이런 게 많아졌죠.”
“맛있네.”
“그렇죠? 종종 챙겨드릴게요.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주세요.”
기분 좋게 손에 든 쿠키를 다 먹어 치운 푸티가 돌연 한숨을 푹 내쉬더니 중얼거렸다.
“지금처럼만 유지되면 좋을 텐데.”
아리스가 코웃음을 쳤다.
“왕자나 신녀가 궁을 떠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걸.”
서호가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안겔과 왕자가 궁에 온 이후 황제는 굉장히 날카롭고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도 예전보다는 낫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듣기로는 황제는 본래 감정 표현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리스는 변덕이 심한 지금보다는 감정 변화가 없는 그때가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그림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인간 같아서 좋다고 했던가?’
일이 많아져 몸은 피곤하고 변덕이 심해져 정신적으로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지금이 낫다고.
그리고 이제 아리스는 그림자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그 모습은….’
서호가 잠들고 난 뒤 보고를 하는 그림자의 뒤를 따라 황제를 본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황제는 아리스가 늘상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황제의 다정한 눈빛이 오로지 그의 운명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서호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면 황제의 얼굴은 언제나 무미건조하고 차가웠으니까.
하지만 그날 아리스가 본 황제는 정말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사람 같지 않았어.’
종종 서호의 앞에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싸늘한 표정도 사람 같기는 했었다. 서호 외의 존재에게 무심하다 평했던 그 얼굴에도 감정이 담겨 있었다는 걸 아리스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리스가 황제와 같이 있던 모든 순간은 대부분 서호와 함께였고 그가 없더라도 서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몸 밖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신력.
그들에게 향한 것도, 어떤 특별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힘이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멈추게 되는 대단한 힘이었다. 주변 공기가 조금 무거워진 것도 같았고.
‘새벽은 황제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는 시간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신력에 휩싸인 밀랍 같던 얼굴.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었으나 동시에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다물린 입술, 그들을 바라보던 시선. 그 모든 것에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황제는 스스로뿐만 아니라 자신들까지도 전혀 살아 있는 인간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걸 깨닫는 순간 불쾌함과 함께 혐오가 차올랐다.
‘저게 정말 인간이 맞나?’
그저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무언가이지 않을까.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치밀어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아리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신물이 올라올 무렵 서호가 슬쩍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황제를 감싼 주변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여전히 눈매는 날카롭기 그지없었고 표정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존재를 인지하고 몽글몽글하게 풀린 그 푸른 눈은 황제를 인간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숨이 탁 트였다. 끝없이 시커먼 진창으로 매몰되는 것 같던, 어둠 속으로 파묻히는 것 같던 감각이 사라졌다.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새벽의 청량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고 몸을 옥죄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함께 보고를 하러 왔었던 그림자들도 하나둘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잠시 뒤, 보고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던 길에 아리스는 같은 그림자에게 물었다.
‘방금 그 느낌은 뭡니까? 설마 서호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늘 이랬던 겁니까?’
그림자들의 대표로 황제에게 보고를 맡았던 이가 답했다.
‘그러셨지.’
그 답에 아리스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저런 분 옆에 머무는 사용인들은 이런 걸 다 느끼면서도 폐하의 옆에 있었던 겁니까?’
푸티를 염두에 두고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자 그림자가 쓴 미소를 흘렸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야. 폐하의 주변에 실력자들을 배치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지.’
황제궁에 황실 마법사나 기사가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알게 된 아리스는 마음이 찝찝해졌다.
황제궁의 사용인들이나 병사들은 과연 자신들이 용의 커다란 송곳니 아래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 커다란 송곳니에 스치기만 해도 그들이 죽을 거라는 사실은?
‘모르겠지.’
아리스는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따라 살짝 웃는 푸티를 가만히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
황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에 도리어 황제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가장 충직하게 황제를 보필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째서 황제가 푸티를 서호의 옆에 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대는 참 충성스러운 사람이야.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을 테고.”
푸티에게는 생뚱맞은 말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푸티가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아리스를 바라봤다가 이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