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렇군요.”
무당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많이 힘들면 잠시 나와 있어. 계속 듣고 있으면 너도 힘들 것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서호의 답에 무당이 물었다.
[집 밖으로 안 나갈 거지?]
서호는 부정하지 않았다. 무당이 미쳤다고 중얼거리며 서호를 타박했다.
[멍청이야, 멍청이.]
무당에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서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상담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멍청아.]
서호가 무당에게 물었다.
“돈은 인터넷에 적혀 있는 계좌로 보내면 되나요?”
[그래.]
여전히 무당은 돈을 거부하지 않았다. 서호가 무당에게 인사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너도 잘 가.]
“네.”
전화가 끊겼다. 서호는 곧바로 무당에게 돈을 보냈다. 그렇게 돈을 보내고 나니 모든 정리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 이상하네.”
이제 언제 죽어도 딱히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서호가 여전히 울고 있는 벽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벽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이렇게 물이 줄줄 흐르는데도 벽지는 전혀 울지 않았다. 서호가 눈물을 닦아주자 울음소리가 더 거세졌다.
“너는 언제까지 울 거야?”
그리고 도대체 언제 자신을 죽일까.
***
로제타는 사내가 그를 달래는 것처럼 굴 때마다 더욱 애가 닳았다.
제대로 마주한 적도 없는 존재에게도 이리 잘해주는데, 실제도 만나면 얼마나 다정하게 굴어줄까.
계속 울고 있으니 사내도 계속해서 로제타를 신경 썼다. 오늘로 로제타가 눈물을 흘린 지 나흘째.
사내는 집 밖을 나가지도 않고 계속 그에게 마음을 썼다.
무언가 다정하게 물어도 보고 안타깝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으며 조금 답답해하는 것도 같았다. 너무 울어 목이 쉬고 눈가가 아팠지만 그래도 그런 사내의 감정이 모두 전달되어 참을 만했다.
며칠 내내 바깥이 소란스러웠으나 로제타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사내와 단둘이 있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로제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열린 문으로 푸티가 마법사 하나를 대동하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폐하.”
로제타는 푸티를 무시했다. 눈치가 있는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푸티는 눈치가 없었다. 로제타가 그대로 그들을 방 밖으로 내쫓으려는데 푸티가 다급히 말했다.
“목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얼굴도요. 그 상태로 그분을 맞이하실 작정입니까?”
“…….”
로제타가 답을 하지 않고 힐끗 푸티를 바라보자 푸티가 그의 뜻을 읽고 마법사를 끌고 로제타에게 다가왔다.
“울음을 멈추실 생각은 없으시죠?”
로제타는 눈을 깜빡였다. 그가 눈을 깜빡거리자 고여 있던 눈물이 미리 나 있던 길로 흘러내렸다.
푸티가 계속 말했다.
“눈가가 붉게 짓물렀습니다. 아무리 폐하의 옥체가 신력 덕에 다른 이들보다 강하다고는 하나, 이대로라면 눈이 퉁퉁 붓고 못나지실 겁니다. 그건 싫으시지요?”
로제타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목은 어찌하실 겁니까? 목을 치료하려면 잠시 소리를 내지 않으셔야 한다고 합니다.”
푸티의 말에 로제타가 눈을 날카롭게 치떴다. 여태까지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던 눈이 순간 사납게 변하자 푸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얼굴만 치료하도록 하겠습니다.”
푸티가 마법사를 바라보자 마법사가 머뭇거리며 로제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로제타는 그 마법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얼굴을 감싸던 마법이 사라지자 곧바로 푸티와 마법사를 방에서 내쫓았다. 푸티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나갔다.
홀로 방에 남은 로제타는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 사내와 로제타의 눈이 서로를 바라보듯 똑바로 맞닿았다.
로제타는 다시 한번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정말 머지않았다. 이제 곧이었다.
***
방에서 쫓겨난 푸티가 깨끗해진 로제타의 얼굴을 떠올리며 안도하던 참이었다.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던 아리스가 몸을 부르르 떨며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죽지 않았습니다. 다행이에요.”
남아 있는 마나가 많고 치유마법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푸티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던 마법사 아리스는 푸티가 함께 방으로 들어가자고 말한 순간부터 저렇게 신력이 넘실거리는 곳에 들어갔다가는 살해당할 거라며 억지를 부렸다.
푸티가 혀를 찼다.
“폐하의 성격이 좋다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막 죽이는 분은 아니세요.”
그러자 아리스가 답했다.
“푸티가 이 힘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힘이에요.”
“신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아리스가 질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저 검은 연기 말입니다. 너무 무서워요. 처음에도 엄청 위험했었다고요.”
푸티는 아리스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로제타의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렇게 겁을 먹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봐야 그냥 안개일 뿐이잖아.’
푸티가 호들갑 떨지 말라는 듯 아리스를 바라보는데 그가 물었다.
“그런데 정말 얼굴만 고쳐드리러 들어갔던 겁니까?”
“네.”
“어째서요? 그리고 그분이 누굽니까?”
푸티가 답했다.
“곧 폐하의 운명이 이곳에 도착하실 겁니다.”
“그분이 폐하의 운명이라는 겁니까?”
“네.”
“운명이라니.”
불신 가득한 아리스의 얼굴에 푸티가 신녀 안겔을 들먹였다.
“신녀 안겔이 말하길 붉은 실이 연결된 운명의 상대라고 하더군요.”
“신녀님께서요?”
“네.”
순간 아리스의 얼굴에 믿음이 들어찼다. 그 맹목적인 믿음과 변화가 푸티는 짜증 났다. 그때 아리스가 말했다.
“그럼 요새 돌던 소문은….”
푸티는 빠르게 긍정했다. 조금 짜증 났지만 이렇게라도 소문이 사라지면 좋을 것 같았다.
“네. 폐하께서는 빨리 운명의 그분을 만나고 싶어 하셔서 계속 안겔님을 불러들이셨죠.”
“그렇게 된 거군요. 그런데 이거 제가 들어도 되는 부분입니까?”
푸티가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곳에 알리시면 안 돼요. 하지만 그분께서 실제로 이곳에 오시면 이 이야기는 금방 퍼지겠죠.”
“그렇군요. 그럼 저 울음은….”
푸티가 다시 로제타의 방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분이 오면 멈출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빨리 오셨으면 좋겠군요. 마법사들이 시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푸티는 아리스가 가리킨 마법사들을 바라봤다. 확실히 마법사들은 점점 마르고 지쳐가고 있었다.
푸티가 그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말했다.
“시간 외 수당을 드릴 수 있는지 나중에 폐하께 여쭤볼게요.”
마법사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리스가 푸티에게 말했다.
“푸티는 눈치는 좋네요.”
푸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조금 미안했던 감정이 깡그리 사라진 푸티가 아리스에게 싸늘하게 물었다.
“욕하는 거예요?”
아리스가 태연하게 답했다.
“아니요. 그냥 사실만 말하는 겁니다. 어째서 그대가 폐하의 유일한 직속 시종인지 알겠습니다.”
욕이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푸티를 로제타의 유일한 시종으로 인정한다는 취지의 말이기에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푸티는 마법사와 말싸움을 할 시간이 없었다. 로제타는 저렇게 방에 틀어박혀 울기 시작하면서 국정에도 완전히 손을 놓았다.
푸티는 유능한 시종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아무튼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푸티가 아리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제 푸티는 로제타의 일을 하느라 지쳤을 보좌관들을 달래줘야 했다.
‘내 수당도 열심히 챙겨야지!’
마법사들에게 챙겨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당을 챙기겠다 다짐한 푸티가 씩씩하게 발을 내디뎠다.
***
푸티는 다시 한번 아리스를 대동하고 로제타의 퉁퉁 부은 얼굴을 치료했다.
쉬다 못해 거칠게 갈라져 버린 로제타의 목소리가 소름 끼쳤다. 괴이하게 느껴지는 거친 울음소리는 꼭 몬스터의 울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끔찍해.’
하지만 그럼에도 저 아름다운 외모 덕인지 로제타가 조금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저렇게 간절하게 만나기를 원하는데 어째서 로제타의 상대는 아직까지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지.
푸티가 머뭇거리다 로제타에게 말했다.
“폐하, 이제 목도 좀 치료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목이 아프지 않으십니까?”
로제타는 푸티의 말을 간단히 무시했다. 푸티가 한 번 더 로제타를 설득해 보려고 했으나 로제타는 어느새 다시 거울 속 존재에게 빠져 있었다.
푸티는 작게 한숨을 쉬며 거울을 보고 있는 로제타의 외양을 정돈했다.
아리스의 마법을 이용해 그의 몸을 씻겼으며, 그사이 푸티는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고 깔끔하게 손톱을 정리했다. 로제타는 그런 푸티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손톱 손질을 막 끝냈을 무렵, 푸티는 로제타의 손이 움찔 떨리는 걸 발견했다.
“어?”
푸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로제타를 올려다보는데, 로제타가 새벽의 힘을 이용해 아리스와 로제타를 방 밖으로 쫓아냈다. 경고도 뭣도 없는 행동에 푸티와 아리스는 순식간에 방 밖으로 내던져졌다.
아리스는 두 사람이 벽에 거칠게 부딪히기 전에 재빨리 마법을 사용해 푸티와 스스로를 감쌌다.
“괜찮으십니까?”
아리스가 푸티를 데리고 안전하게 바닥에 내려앉으며 묻는 것과 동시에 방문이 닫혔다. 아리스가 황당함을 숨기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
“와, 폐하 성격이 어마어마하십니다.”
아리스는 평소라면 로제타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했다고 쌍심지를 켤 푸티가 아무 말이 없자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