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물 젖은 벽-15화 (15/155)

#15

결국 시녀들은 푸티에게 소속과 이름을 알려주고 말았다. 푸티는 무서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다가 황제궁 안으로 사라졌다.

시녀들이 자기들끼리 눈을 맞추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한 시녀가 처음 입을 열었던 시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때문이잖아!”

그러자 말 많은 시녀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

이번에는 다른 시녀가 말 많은 시녀에게 원망의 눈빛을 쏘아 보내며 말했다.

“맞아. 너 때문이야. 아까 그만하라고 했는데.”

한두 명이 그러자 다른 이들도 하나둘 말 많은 시녀를 탓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거야?”

“나는 황궁에 뼈를 묻어야 한단 말이야. 우리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너 때문에 잘리기라도 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말 많은 시녀가 고개를 재빠르게 저으며 말했다.

“이, 이게 왜 내 탓이야? 너희도 재밌다고 같이 이야기했잖아.”

그러자 처음 그녀를 탓했던 시녀가 발을 구르며 말했다.

“흥, 너랑 다니는 게 아니었는데.”

“됐어.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황궁에서 살려면 눈도 막고 귀도 막고 입도 막아야지.”

“그래.”

“가자.”

홀로 남은 말 많은 시녀가 화가 잔뜩 나 그들을 불렀다.

“야!”

하지만 먼저 떠난 시녀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

푸티는 씩씩거리며 궁 안으로 들어섰다.

‘벌써 이게 몇 번째야?’

푸티가 저렇게 뒷이야기를 하는 사용인들을 직접 목격한 것만도 벌써 열 자릿수를 넘어가고 있었다.

최대한 소문이 퍼지지 않게 주의하라고 단단히 말했건만 소문이라는 것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다.

‘왜 계속 그 신녀랑 엮이냐고!’

황제의 궁을 지키고 있던 사용인들이 푸티의 눈치를 살피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기사 하나가 빠르게 푸티에게 달려왔다.

“저희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 겁니까?”

기사의 말에 푸티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네, 계속 소문이 나고 있는 건 아시잖아요? 소문이 퍼지지 않게 궁의 사용인들을 단속해 주세요.”

그렇게 기사를 지나치려던 푸티가 다시금 몸을 돌려 기사를 붙잡으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덧붙였다.

“물론 여러분도 소문을 내서는 안 돼요.”

그러자 기사가 멈칫거리며 답했다.

“다, 당연합니다.”

“폐하께서 안정되시면 다 보답하겠습니다.”

푸티의 말에 기사가 푸티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도대체 언제쯤, 안정되실지…?”

푸티는 안겔이 말했던 날짜를 떠올렸다. 일주일.

로제타가 이렇게 울기 시작한 지 사흘이 지났으니 앞으로 길어야 나흘이 남았다. 푸티가 차분함을 가장하며 말했다.

“나흘 안에는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기사분들에게도 괜찮다고 전해주세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기사가 저렇게 걱정을 하는 이유는 로제타가 기사들이 궁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직속 시종이 되었던 이유와 비슷하지.’

전 기사단장이 로제타에게 충고를 한답시고 주제넘게 굴고 벌을 받은 이후, 로제타는 결국 모든 기사에게 그의 궁의 출입을 금했다.

그래서 황제의 궁은 그 위상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이 아닌 병사들이 궁을 지키고 있었다. 감히 로제타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하는 평민들이 주를 이루는 병사들이.

황제의 격에 맞지 않았지만 로제타가 너무 강경해서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푸티가 이번에 기사들을 부른 이유는 하나였다.

‘사용인들은 평민보다 귀족을 무서워하니까.’

귀족인 기사들이 황제의 궁에 있으면 사용인들은 더 바짝 긴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푸티는 소문이 퍼지지 않게 하려고 기사들을 궁에 불러들인 것이다.

푸티가 피곤함에 작게 한숨을 내쉬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푸티.”

푸티가 그를 부른 사용인을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마법사님이 찾으셔요.”

푸티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

로제타의 울음이 멈추지 않은 지 반나절. 안겔과 관련된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지는 걸 확인한 푸티는 급하게 황실 마법사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울음소리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로제타의 방 주변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문제는 로제타의 감정에 따라 신의 힘이라는 ‘새벽’이 함께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자 마법사들의 마법과 새벽의 힘이 부딪치면서 마법사들의 마력이 빠르게 소모됐다.

푸티는 로제타의 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앞에는 지친 얼굴의 황실 마법사들이 모여 있었다.

푸티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법사 중 하나를 불렀다.

“마법사님!”

황실 마법사 중 하나인 아리스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푸티를 바라봤다.

“…오셨습니까.”

“괜찮으세요?”

“괜찮지 않습니다. 계속 이렇게 막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많이 피곤해 보이긴 했으나 푸티는 그들을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이들은 황실 마법사이니 당연히 황제를 위해 일해야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의 피곤이 아니라 바로 소문이었다.

나름 빠르게 대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소문은 계속 퍼져 나갔다. 푸티가 마법사 아리스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폐하에 대한 헛소문이 퍼지고 있어요. 소리가 나가는 걸 막아야 합니다.”

아리스가 푸티를 외면하며 말했다.

“하지만 저희가 죽을 것 같은데요.”

푸티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말했다.

“황실 마법사이시잖아요! 폐하를 지켜드려야죠.”

“폐하를 지키기 전에 저희가 죽을 것….”

푸티는 손을 뻗어 아리스의 양 뺨을 움켜쥐며 강압적으로 말했다.

“조금만 더 부탁드려요! 그럼 전 바빠서 이만.”

푸티는 재빨리 도망갔다. 뒤에서 아리스가 간절하게 푸티를 불렀지만, 푸티는 모른 척 그들을 외면했다.

***

지치지도 않는지 사흘간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에 서호는 결국 휴대폰을 들었다. 귀신이 너무 많이 우는 게 걱정되다니 정말 황당했다.

‘하지만 목이 쉬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지는데.’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전에 갔던 무당집의 번호를 찾았다. 예약할 때 사용하는 번호라 무당과 연결이 될지 모르겠지만 별수 없었다.

저렇게 울고 있는데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서호는 전화로 이 일이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랐다. 잠시간의 연결음이 흐른 후,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서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일전에 한 번 찾아갔던….”

서호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 너머에서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는데요.]

서호는 그제야 이 전화 너머의 사람이 그때 보았던 중년의 여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서호는 소금을 뿌리던 여인의 행동을 떠올리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여쭤볼 게 있어서요. 찾아가지 않겠습니다. 전화만 잠시 할 수 있을까요?”

긴 침묵 끝에 여인이 답했다.

[…여쭤볼게요.]

“감사합니다.”

아예 말을 전해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서호가 쓰게 웃고 있는데 전화 너머에서 무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서호는 재빨리 스스로를 밝혔다. 유명한 무당이라던 여자가 그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지 않아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지만 여자는 단호하게 서호의 말을 끊어내며 말했다.

[네가 누군지는 알아. 아직 안 끌려갔어?]

“네?”

전화 너머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의 욕지거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무당이 말했다.

[하, 아주 난리네. 이 소리는 또 뭐야?]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서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실 여태껏 이렇게 큰 소리로 울고 있는데 그 어느 집에서도 항의 전화가 오지 않았다.

직접 경비실에 물어보기까지 했지만, 경비실에서는 그런 민원이 들어온 적이 없다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런데 방금 무당은 서호가 미리 말하기도 전에 이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듯 말했다.

“들리세요?”

서호의 물음에 무당이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안 들리겠어? 안달이 났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역시 그런 모양이었다. 서호가 어색하게 물었다.

“그런가요?”

[그래.]

이제 끝이라는데 딱히 별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냥 그의 감이 맞았구나 싶었을 뿐.

서호는 머뭇거리며 오늘 통화를 한 이유를 입에 담았다.

“그…, 너무 울어서 그러는데 좀 멈추게 할 방법은 없나요?”

무당이 덤덤하게 답했다.

[네가 끌려가기 전에는 안 멈출 것 같은데.]

죽는 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저렇게 운단 말인가. 점점 더 울음의 주인이 걱정됐다.

“목에 엄청나게 부담되는 것 같은데….”

순간 전화 너머로 황당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멍청이니? 설마 너 지금 그걸 걱정하는 거야?]

서호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계속 생각하는 바였지만 서호도 본인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무당이 흘리듯 말했다.

[너는 끌려가도 잘 살겠다.]

“네?”

[순하다 못해 멍청하네. 너는 끌려가도 잘 살 거야.]

그 말이 조금 웃겼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죽는다는 말을 참 이상하게 했다. 아마 제대로 말하면 그녀의 몸에 부담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서호가 말했다.

“저승에 끌려가는데 산다는 말은 조금 웃긴 거 아니에요?”

[이 이상은 말 못 해줘. 울음소리는 그냥 참는 수밖에 없고.]

서호는 다시 벽을 바라봤다. 여전히 눈물은 쉬지 않고 흘렀고 소리 역시 계속됐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