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새 버릇이 됐나?’
로제타는 한번 눈물이 터지면 그의 감정을 다 쏟아내지 않고는 쉽게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제 사내만 보면 자동으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로 인해 사내의 잠자리가 불편해졌다는 걸 아는데도 조절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항상 사내를 생각하고 떠올려 삶의 전부가 그로 물든 것처럼 사내 역시 피곤함으로나마 자신을 느꼈으면 하는 어두운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로제타는 오늘도 자신의 울음 때문에 편안하게 잠들지 못했던 사내를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로제타의 앞에 앉아 있던 안겔이 그런 로제타의 웃음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거울을 마음에 들어 하신다는 소문은 들었어요.”
안겔의 말에 로제타는 아직도 자신이 안겔과 함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불쾌함이 찾아왔다.
지금 자신은 안겔과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거울 앞에 서 있어야 했다. 요즘 사내는 매우 불규칙적으로 잠을 잤기에 한 번씩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에 거울과 그가 연결되곤 했다. 다급해진 로제타는 최대한 빨리 대화를 끝내기로 했다.
“그래, 이제 내게 할 이야기가 있을 텐데.”
안겔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일부러 소문이 퍼지게 두셨군요.”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군.”
“무엇을 알고 싶으신가요?”
답을 뻔히 알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잠시나마 그녀가 로제타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가소로운 짓이었지만 빨리 답을 듣고 방으로 돌아가 사내가 보이는지 살펴야 했기에 로제타는 그녀가 원하는 답을 해줬다.
“그를 데려올 방법을 알아야겠어.”
로제타가 순순히 원하는 바를 말하자 안겔이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거울을 사용하면 할수록 붉은 실은 강해지죠.”
안겔이 그의 발목이 있는 자리를 내려다봤다.
“거의 끊어질 것 같았던 낡은 실이 지금은 단단해졌어요. 솔직히 이제 실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로제타는 시선을 따라 아무것도 없는 발을 내려다봤다.
“실제로 보이는 건가?”
로제타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안겔의 말을 완전히 믿기는 힘들었다. 로제타의 물음에 안겔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네, 보인답니다.”
“그래? 별 능력이 다 있군.”
딱히 안겔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그 사내의 발목에도 자신과 연결된 붉은 실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저는 전서구가 아니거든요.”
로제타는 뼈가 있는 안겔의 말을 무시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실보다 중요한 것은 사내를 데려오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데려올 방법은?”
“지금 실의 상태로 봤을 때, 한두 달만 더 기다리시면 되겠어요. 연결이 더 강해지면 거울에 통로가 열릴 겁니다.”
한두 달. 나쁘지 않았다. 사내를 알게 된 지 3개월이 지나 이제 4개월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두 달 정도는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절로 입가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로제타는 설레는 마음에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질문을 던졌다.
“내가 그쪽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쪽도 나를 느낄 수 있는 건가?”
사내가 자신의 울음소리에 깊게 잠들지 못하는 걸 눈치챘지만, 지금 로제타는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다른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로제타의 물음에 안겔이 다시 한번 로제타의 발목을 바라보며 답했다.
“지금이면 아마 강한 감정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로제타가 못마땅한 얼굴로 안겔을 바라봤다. 그 대단하신 붉은 실을 보는 능력으로는 그 이상의 것을 파악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다 추측이군.”
쓸모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는 로제타의 시선에 울컥한 안겔이 설명을 덧붙였다.
“거울은 사용된 지 너무 오래됐어요. 기록이 불확실합니다.”
그럼 아까 한두 달 뒤에는 사내를 데려올 수 있을 거라는 그녀의 말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로제타가 미심쩍은 눈으로 안겔을 응시했다.
“데려올 수 있는 건 확실하고?”
“네. 다만 그분도 그쪽의 생활이 있으실 텐데. 순순히 따라오실지 모르겠네요.”
“생활?”
“가족이라든가, 친구라든가, 재산, 직장 같은 거요.”
안겔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강제로 데려온다면 아마 폐하를 싫어하시지 않을까요?”
싫어했으면 좋겠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 안겔의 말투가 평소라면 같잖고 말았을 텐데 오늘따라 유독 거슬렸다. 여태까지 손가락 끝을 간지럽히는 귀찮은 것을 보던 짜증과는 다른 몸을 따끔거리게 만드는 거슬림.
부정적인 감정에 신력이 반응했다. 로제타의 몸에서 스멀스멀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어둠은 제대로 반응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안겔을 뒤덮었다. 안겔이 그녀의 성력을 이용해 어둠을 가르려고 했지만, 그녀의 성력은 새벽을 풀어내지 못했다.
로제타는 안겔의 정신이 흐려질 때가 되고 나서야 힘을 거둬들였다. 그대로 죽이고 싶었지만, 거울에 대해 잘 아는 건 안겔뿐이었다.
‘귀찮게 됐군.’
안겔은 아마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위해 여태껏 거울에 대해 제대로 보고하라는 로제타의 명령을 거부했을 것이다.
거울 속 사람을 데리고 오고 싶다면 그녀에게 잘 보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심보가 눈에 훤히 보였다.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당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로제타가 몇 번이나 안겔에게 거울과 관련된 서적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기록이 전부 소실되어 그저 이야기로만 전해진다는 핑계를 대며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기록이 소실됐다면 본인이 아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 될 텐데 그녀는 부득불 이렇게 로제타를 개인적으로 찾아와 조금씩 거울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고.
깔짝거리며 거슬리게 구는 안겔의 행동에 짜증이 난 로제타는 거울과 관련된 자료를 몇 번 찾아보았으나 그의 정보력으로도 제대로 된 정보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로제타는 안겔의 행동을 적당히 받아주었다. 그는 사내를 정말 원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슬슬 한계지.’
로제타는 안겔과 말싸움을 하며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안겔이 바닥에 엎어져 몸을 벌벌 떨었다. 로제타는 목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안겔을 향해 말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그런데 잠잘 때 말고는 볼 수 없는 건가?”
로제타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안겔은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모자란 숨을 보충했다.
“…허억!”
숨소리가 거슬렸다. 로제타가 답을 재촉했다.
“대답.”
다시 한번 로제타의 새벽이 안겔을 위협하듯 일렁이자 그녀가 로제타를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때가 세계와 연결이 가장 약합니다. 무의식중이니 영혼이 붕 떠 있기도 하고요. 훗날 통로가 열리기 직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안 됩니다.”
로제타는 슬슬 자리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꼭 필요한 답은 전부 들었으니 계속 같이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때 비틀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난 안겔이 로제타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마음에 드신 거죠?”
로제타가 안겔을 쳐다보지도 않고 답했다.
“내가 알려줘야 하나?”
누군가에게 이 넘치는 마음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신녀가 아니라 그 사내가 될 것이다. 로제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안겔이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정말 마음에 드신 건 맞나요?”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그대를 만나고 있을 리가 없지.”
안겔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예전부터 저를 싫어하셨죠.”
알고 있으면서 이리 굴다니 참 배짱이 좋았다.
“이 귀찮은 자리의 시작이 그대였으니까.”
로제타의 답에 안겔은 그가 건국 무도회에서의 신언을 이야기한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억울함을 표현했다.
“그건 제가 조절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그대가 전서구라는 거지.”
“…….”
로제타는 입을 다문 안겔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 로제타의 뒤에서 안겔이 말했다.
“…그분을 위해서는 높은 자리에 계시는 게 좋지 않나요?”
그건 로제타도 동의하는 바였다. 매우 성가시기 짝이 없는 자리였으나 사내를 이곳으로 데리고 올 거라면 높은 자리에 있는 게 좋았다.
감히 로제타에게서 사내를 빼앗으려고 하는 이가 생긴다면 손쉽게 그들을 처리할 수 있을 테고, 사내가 원하는 건 뭐든 이뤄줄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로제타가 문에 가까워지자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푸티가 문을 열었다. 로제타가 그대로 식당을 나서는데 안겔이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당신 같은 사람이 어째서 아버지께 선택받았는지 모르겠어요!”
억울해 죽겠다는 듯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는 로제타에게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했다. 로제타는 그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식당을 벗어났다. 푸티가 재빨리 로제타의 뒤를 따랐다.
로제타는 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더 사내를 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유롭게 내뻗던 걸음에 조금씩 속도가 붙더니 이제 로제타는 거의 뛰듯이 걷고 있었다.
“폐하!”
그를 뒤따라가던 푸티가 화들짝 놀라 로제타를 불렀지만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로제타는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사내를 다시 보고 싶었다. 너무 긴 시간을 신녀에게 빼앗겼다.
‘벌써 잠들어 있으면 어떡하지? 그대와의 시간을 놓쳤으면?’
로제타는 사내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사내도 모르는 그 순간을 모두 눈에 담고 싶었고 사내보다도 사내를 더 잘 알고 싶었다.
푸티가 함께 따라오다가 결국 뒤처져서 로제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로제타는 그런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빠르게 계단을 올라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