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물 젖은 벽-2화 (2/155)

#2

서호는 소파에 늘어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로 이렇게 무언가를 깊게 생각해 본 건 처음이었다.

“피곤해.”

요 몇 달 나태한 삶을 살아서인지 그것 좀 생각했다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나른했다. 소파에 늘어진 서호의 얼굴 위로 햇빛이 어른거렸다. 따뜻하다 못해 조금 뜨거운 햇빛이었으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솔솔 잠이 오는 것도 같았다.

며칠 동안 그 울음소리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었다. 서호는 잠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그대로 옆으로 쓰러트렸다.

“조금만 자자.”

자고 나면 기운이 나서 생각이 더 잘될지도 몰랐다. 졸음이 덕지덕지 묻은 눈을 깜빡거리던 서호의 시야가 시커멓게 물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서호는 눈을 부릅떴다.

‘몸이….’

평소처럼 어두운 밤도 아니었고 햇볕이 잘 들어오는 거실에서 서호는 또 가위에 눌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정면으로 보이는 시계의 분침은 그가 잠든 지 고작 30분이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서호는 그 시계를 노려보며 몸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손가락에 힘을 줘도 가위는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몸에 힘을 주던 서호는 정말 믿을 수 없게도 다시 잠에 빠졌다.

정확히 두 시간이 지나고 눈을 번쩍 뜬 서호는 스스로의 멍청함에 헛웃음을 흘리다가 거칠게 몸을 돌렸다.

‘낮잠도 제대로 못 자게 하다니. 부모님이면 그럴 리가 없지.’

시커먼 소파의 등받이를 한참 노려보던 서호는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에는 눈이 없다는 건가?’

서호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 소파 밑으로 떨어졌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엉덩이가 아팠지만, 서호는 그 아픔을 인식할 새도 없이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소파를 살폈다.

“…진짜 뭐야?”

검은색 소파에 그려진 눈.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 눈이었다. 서호는 다리에 힘을 주고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벽에 그려져 있던 눈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깨끗해진 벽을 말없이 바라보던 서호는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겠어.’

그는 오늘 무당을 찾아갈 것이다.

다시는 찾아가지 않겠다고, 절대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욕을 내뱉고 악을 썼던 곳이지만 그래도 이 집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무당을 찾아가야 했다.

서호는 거칠게 얼굴을 씻어내렸다.

***

세 번째 방문하는 곳이었다. 막 수능을 치고 가채점을 하기도 전, 친구와 어울려 찾아갔던 곳.

그를 이곳으로 이끄는 친구에게 다른 애들처럼 타로점이나 보지 무슨 무당이냐고 타박을 했었다.

그때 친구였던 녀석이 말했다.

“정말 유명한 곳이야. 예약도 잡기 힘들다?”

서호가 그런 유명한 곳을 너는 어떻게 예약했냐고 물으니 친구는 말했다.

“엄마가 오늘 일이 생겨서.”

친구는 엄마가 예약금을 줬으니 돈을 날리는 건 아깝고 자기보고 다녀오라고 했다며, 혼자 가기 무서우니 같이 가자고 서호를 졸랐다.

서호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친구를 따라 무당집 안으로 들어섰다.

한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은 각종 미디어에서 으레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나 방에서 그들을 노려보는 무당의 눈은 서호를 소름 끼치게 했다.

붉은 화장과 날카롭게 치뜬 눈. 삼백안을 번쩍이며 모든 걸 꿰뚫어 보듯 그를 노려보는 무당.

속으로 저 정도 기백이면 어중이떠중이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꺼림칙한 것은 변하지 않아서 옆에 멍하니 서 있는 친구의 옆구리를 찔렀다. 빨리 끝내고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서호가 미처 친구를 닦달하기도 전 무당이 크게 혀를 차며 말했다.

“모든 걸 잃을 팔자구나!”

서호가 깜짝 놀라 무당을 돌아보는데 무당은 친구가 아닌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무당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가족, 집, 친구! 이곳의 모든 것을 잃을 거야!”

처음 서호를 찾아온 감정은 당황이었다. 서호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는데 친구가 길길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미친 거 아니야?!”

그런 친구의 목소리에 서호는 정신을 차렸다. 서호가 무당에게 욕을 내뱉으려는 친구를 붙잡으며 말했다.

“화낼 가치도 없어. 가자.”

친구를 끌고 그대로 무당집을 나섰다. 자기 일처럼 화를 내던 친구가 무당집을 나서자마자 연신 서호에게 사과했다.

서호는 고개를 저었다. 친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저런 말도 안 되는 말을 깊게 생각해 괜히 감정 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서호는 무당의 말을 완전히 헛소리로 치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서호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부모님의 죽음 이후 곧바로 그 무당이 생각난 것은 아니었다. 장례식이 전부 끝난 후, 홀로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는데 문뜩 그 여자가 떠올랐다.

‘가족, 집, 친구! 이곳의 모든 것을 잃을 거야!’

빨간 화장을 한 그 날카로운 눈이 서호를 노려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으스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서호는 그대로 집을 뛰쳐나와 무당을 찾아갔다.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는데 버스를 탄다든가 택시를 탄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뛰었다.

하아-, 하아-.

귓가에는 스스로의 흐트러진 숨소리만이 울렸다.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 엉망이 된 얼굴로 길을 묻는 서호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 길을 알려줬다. 정말 유명한 곳이 맞기는 했는지 엉망이 된 몰골로 무당집을 묻는 서호에게 누군가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거기 진짜 용한 곳이기는 한데, 예약해야 해요.”

그 말에 답을 해줄 정신도 없었다. 그저 최대한 빨리 그 여자를 만나 무슨 이야기든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서호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콧등과 턱선을 타고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당집의 불은 전부 꺼져 있었다. 하지만 서호는 예의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서호는 거칠게 문을 두드리며 욕을 내뱉었다.

“돌팔이 같으니라고! 다 너 때문이야!”

문을 발로 차고 악을 질렀다.

“문 열어! 열란 말이야!”

얼마나 소리를 질렀을까.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젊은 여자 하나가 나오더니 툭 내뱉었다.

“팔자는 바꿀 수가 없어.”

“…뭐?”

“너는 다 잃을 거야. 그 말 말고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그제야 서호는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젊은 여자가 그때 그 무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여자는 그때 그 소름 끼치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

서호는 멍하니 여자를 바라보다가 화풀이를 하듯 외쳤다.

“웃기지 마.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잃지 않을 거야!”

여자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녀는 한참 서호를 바라보더니 그대로 문을 닫았다. 서호는 눈앞에서 닫힌 문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가족, 친구, 집 모든 걸 잃는다고?’

가족은 잃었지만, 친구와 집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 다시 무언가를 잃고 여길 찾아와 다 네 탓이라고 소리 지르지 않을 거다.

‘두고 봐.’

모든 걸 다 지키고, 그것 보라고. 네가 틀린 것이라 외치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됐다. 솔직히 친구를 잃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친구들은 다들 대학에 입학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고 제일 친했던 친구, 그러니까 이 무당집에 함께 왔던 친구는 부모님의 죽음 이후 서호에게 미안함을 느낀 탓인지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고 난 뒤에는 유학을 떠났다.

드문드문 연락하는 아이들은 있지만, 그들이 친구냐고 묻는다면 서호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집은 달라.’

부모님의 돌아가신 뒤, 서호의 것이 된 집.

부모님이 모아둔 돈과 사망보험금 덕에 과소비하지 않는다면 평생 먹고 살 만한 액수의 돈이 있었다.

그러니 본래 살던 집을 팔 필요도, 팔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서호는 최선을 다해 집을 관리했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일어나서 밥을 먹는 와중에도 집은 깨끗하게 청소하고 치웠다. 부모님의 흔적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하려고 늘 마른걸레를 손에 달고 살았다.

그렇게 집을 열심히 쓸고 닦다 보니 서호는 점점 괜찮아졌다. 집에서만 두문불출하던 첫 번째 달과는 달리 두 번째 달은 집 주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근처 카페도 가면서 나쁘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세 번째 달인 3월.

초자연적인 현상이 서호를 찾아왔다. 그리고 서호는 이 이상한 일에 조금이나마 답을 해줄 수 있는 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무당.’

오늘 서호는 또다시 이곳을 찾아왔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아직 해가 떠 있었다.

주먹을 쥐며 숨을 골랐다. 다시 오지 않겠다고 했지만, 집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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