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최후의 결전, 마족 경찰단
마족 경찰단 소속 최만근은 용족 설로번, 드래곤 칼론, 사자 수인 라온과 함께 희망 테마파크의 수색에 나섰다.
그 결과 산림 지역에 한 산에서 용암이 분출되어 주변을 용암지대로 만드는 이상 현상을 발견했다.
그곳에 염라의 영혼을 담은 그릇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조사에 따르면 여기는 그냥 평범한 산림 지역이고 활화산은커녕 휴화산은 없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저 용암이 쏟아져 나오는 화산이 수상하군.”
용족 설로번과 드래곤 칼론은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등에 인간 최만근과 사자 수인 라온을 각각 태우고 용암이 흐르는 산을 향해 날아갔다.
화산은 잠시 활동을 멈추었는지 고요했다.
주변에는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검은 땅이 형성되어 있었고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마그마가 군데군데 끓고 있었다.
“앗, 저게 뭐죠?”
그때 설로번의 등에 업힌 최만근이 땅 위에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마그마를 두른 둥그런 달걀 같은 바위가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쩍어 보였다.
“척 봐도 수상해 보이는군. 저쪽으로 착륙하자.”
칼론이 조심스레 먼저 착륙했고 라온이 뛰어내려 마그마 덩어리에 가까이 다가갔다.
라온은 당장이라도 그 마그마 덩어리를 부숴버릴 기세로 노려보았다.
“라온, 너무 가까이 가지 마. 아직은 지켜보자고.”
설로번이 신중에 신중을 기하였지만 라온은 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라온은 묵직한 대검을 들고 마그마 덩어리를 힘껏 후려갈겼다.
카아앙―!
둔탁하면서도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지면서 진동이 울렸다.
그랬더니,
쿠구궁―
마그마 덩어리가 움찔대더니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했다.
“안에서 뭔가 움직인다. 모두 물러서.”
“정답이었군.”
금이간 마그마 덩어리 안에서는 용암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불안정해 보였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설로번은 라온을 뒤로 물러 세우고 입을 쩍 벌렸다.
[얼음탄]
설로번이 수준 높은 얼음 마법을 쏘았다.
나라간 얼음탄은 갈라진 마그마 덩어리의 빈틈에 정확히 꽂혔고 갈라진 틈 안으로 냉기가 스며들었다.
구구구궁―
그러자 심하게 요동치면서 마그마 덩어리가 쩍 하고 두 동강이 나버렸다.
그곳에서 나타난 것은,
“저게 대체 뭐야.”
마그마 덩어리를 깨고 나타난 것을 보자 칼론은 몸이 떨렸다.
그것은 용암이 뚝뚝 떨어지는 염라의 모습을 한 용암의 그릇이었다.
“아이씨, 우리 잘못 온 것 같다. 너무 세 보이는데?”
“이렇게 된 거 도망치기에도 늦은 것 같으니 싸워보죠.”
최만근이 칼을 꽉 쥐고 호기롭게 스텝을 밟았다.
사실 두려웠지만 낙장불입이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초신속]
[일섬]
빠르게 선제공격을 날리려 힘차게 대시 후 칼을 휘둘렀다.
카앙!
그러나 공격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용암으로 뒤덮인 녀석의 목을 치자 칼이 녹아 휘어버린 것이다.
“헐!”
완전히 녹아 못 쓰게 된 칼을 내던지며 최만근이 당황했다.
“조심해!”
최만근에게 빈틈이 생긴 사이 용암의 그릇이 달려들었다.
여분의 칼을 꺼내 방어하려 했지만 최만근은 허둥대며 칼을 제대로 뽑지도 못했다.
그때,
타앙―!
전투에 노련한 라온이 대검에 마력을 담아 녀석을 쳐서 날려버렸다.
“긴장 풀지 마!”
“네, 고맙습니다.”
라온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최만근의 얼굴은 땀으로 흥건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구만. 검에 모든 마력을 담아라.”
“네, 알겠습니다.”
최만근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마지막 남은 여분의 검 하나를 빼 들었다.
전투는 계속되었다.
칼론은 공중을 날아다니며 충격파를 쏘아대며 위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용암의 그릇은 충격파를 맞았으나 별 타격이 없는 듯 칼론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지상의 마족 경찰단들과 싸우는데 정신을 쏟았다.
자기 공격이 무시 당하자 칼론은 자존심이 상했다.
“저 녀석, 날 무시하고 있어.”
[칼날 꼬리]
칼론은 쏜살같이 창공에서 활강하여 꼬리에 마력을 담아 용암의 그릇의 머리를 내리쳤다.
하지만 녀석은 그것을 노렸던 걸까, 칼론의 꼬리를 손으로 잡고 마그마를 방출했다.
“끄아악!”
“칼론의 꼬리가 녹겠어. 다들 저 새끼 조져!”
마족 경찰단이 일제히 달려들어 용암의 그릇을 덮쳤다.
그 순간,
[분화]
녀석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열기를 내뿜으며 마그마가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일제히 뒤로 물러나 방어 자세를 취했으나 솟구치는 마그마에 맞아 여기저기 화상을 입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칼론은 과감하게 자기 꼬리를 잘라내어 위기를 벗어났다.
“꼬리 괜찮아요?”
“다시 자랄 거야.”
적은 아직 의기양양하나 마족 경찰단은 체력 소모가 컸다.
월등한 실력 차이에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무슨 수가 없을까…….”
모두가 이를 갈며 긴장하며 묘책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하지만 상황이 불리하고 적의 힘은 절망적으로 강했다.
도저히 출구가 안 보이는 터널에 갇힌 느낌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마음속에 패배만을 떠올리고 있던 그때,
“내가 막을 테니 모두 도망쳐.”
설로번이 얼음의 마법으로 온몸을 휘감고 앞으로 나섰다.
모든 힘을 소진해 홀로 맞설 작정이다.
“미끼 작전인가? 쪽팔리게 그런 짓 하면서 우리가 살아남고 싶을 거 같나?”
“가서 지원을 요청해. 솔직히 우리들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이다. 몇 명은 살 수 있어.”
라온은 으르렁대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최만근도 아무리 명령이라도 따를 수 없다는 듯 물러서지 않았다.
“이 효율충 녀석. 용족에게만 명예가 있는 게 아니야. 이대로 추하게 살아서 돌아가느니 여기서 피를 쏟겠다.”
설로번이 마력을 쏟아붓기 전에 칼론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리고는 뒤를 생각하지 않고 죽을 각오로 브레스를 모았다.
“드래곤 최강의 기술을 받아라!”
[용격]
혼신을 담은 칼론의 일격이 직선으로 날아가 용암의 그릇에게 직격 했다.
어마어마한 충격파에 땅이 뒤흔들리고 공기가 떨렸다.
충돌하며 일어난 풍압에 최만근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용격을 정통으로 맞은 용암의 그릇도 몸이 찢어져 마그마가 튀며 뒤로 밀려나며 당황했다.
유효타를 먹였다고 생각했지만,
뚜둑―
뻐근한 목을 꺾으며 멀쩡히 걸어 나오는 용암의 그릇이었다.
“이 정도로는 쓰러지지도 않는다는 건가.”
힘을 소진한 칼론은 무릎을 꿇었다.
약해진 칼론을 보고 용암의 그릇은 마그마를 손에 쥐고 달려들어 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검신의 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다.
그것은 마치 신이 내려주는 가호와도 같이 신성하고 은혜로운 빛줄기는 마족 경찰단이 반응할 새도 없이 고요하고 빠르게 용암의 그릇을 향했다.
써걱―
신성한 빛이 번뜩이는 환도의 칼날.
그것이 용암의 그릇의 팔을 썩둑 잘라내었다.
최만근은 검을 떨어뜨렸다.
이 정도로 예리하게 단련된 검법과 깊은 내공의 심력은 본 적이 없었다.
“당신은…….”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들의 구원자로 나타난 자는 김성남과 더불어 헌터 역사상 최강이라 불리는 백진섭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창격]
당황하는 용암의 그릇의 가슴팍에 날카롭고 묵직한 창이 꽂혔다.
또 다른 레전드 헌터, 홍태진이다.
그는 빈틈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적의 심장을 노렸다.
확실히 공격을 먹이려는 듯 창을 쥔 손을 빙글 돌리며 상처를 깊이 파고들었다.
“지금이다!”
“우오오!!―!”
홍태진의 명령에 마족 경찰단은 뒤를 보았고 그곳에서는 헌터들이 달려와 창을 던지고 화살을 쏘아댔다.
무수히 날아 들어오는 쇠붙이 공격에 용암의 그릇은 당황해서 도망치려 했으나 홍태진의 창에 찔려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온몸에 창과 화살이 박힌 용암의 그릇은 무릎을 꿇고 쓰러지고 말았다.
“호흡. 집중. 혼신.”
백진섭이 심력을 모아 집중했다.
[일도양단]
고도의 집중력으로 수평으로 베어 가르는 발도술이 적과 그 주변의 공기를 잘랐다.
용암의 그릇의 몸뚱이는 정확히 두 쪽으로 나뉘었다.
“마법부대! 빙결 마법!”
홍태진의 지휘에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마법 부대가 달려와 마력을 쏟아부어 용암에 얼음 마법을 시전했다.
스멀스멀 잘린 몸을 이어 붙이려던 용암의 그릇은 끝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얼어붙고 말았다.
“이것이 인간들의 저력이다.”
홍태진은 창을 세워 꽁꽁 언 용암의 그릇을 힘껏 깨부수었다.
그러자 부글대던 마그마들이 식고 타오를 듯 끓어오르던 주변의 공기도 한산해졌다.
또 하나의 영혼을 잠재운 것이다.
* * *
마족 경찰단의 부상을 치료하는 동안 홍태진은 주변을 살폈다.
희망 테마파크 곳곳에서 격렬한 전투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기저기 곳곳에서 염라의 영혼을 담은 그릇과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백진섭이 홍태진의 곁에 다가와 말을 붙였다.
“무엇을?”
“이렇게 마족과 인간이 힘을 합쳐 싸운다는 걸요.”
그의 말대로였다.
홍태진도 항상 마족을 몬스터로만 생각하며 토벌할 대상으로만 여겼지, 이렇게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싸우는 동료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결국 이렇게 된 것이, 나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네, 맞습니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면 영원히 평화란 없을 테니까요.”
“정말이지, 이 모든 게 강철남 한 사람에게서 비롯된 여파라니. 정말이지…….”
홍태진은 무어라 말을 잇지 못했다.
백진섭도 경북 헌터 연합회장 시절 자연인 강철남을 만났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렇게 마계에서 마족들과 함께 싸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강철남이란 존재가 두 세계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할 일을 마친 백진섭이 방향을 잃은 듯 물었다.
“할 일은 산더미야. 인간계로 돌아가자. 그곳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헌터들과 마족 경찰단.
그들이 인간계로 복귀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미 인간계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으니,
* * *
서울은 그야말로 전쟁터.
마지막 남은 염라의 영혼을 담은 그릇이 위기를 직감한 듯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오메, 씨X럴. 저런 게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이 새끼들. 항상 사전에 제대로 알려주는 게 없어.”
“당연하지. 저런 게 있다는 걸 알려주면 누가 오겠냐.”
상대가 너무 강하면 욕이 나오는 법.
서울을 방어하던 예비역 헌터들은 마지막 그릇을 피해 은폐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대단한 힘이야…….”
수준 높은 엘프 마법사 세레나가 녀석과 홀로 맞섰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마지막 그릇은 금방이라도 인간계를 박살 낼 듯이 어마어마한 힘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녀석의 힘은 이미 포화 상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의 건물들이 부서지고 땅에 금이 갔다.
생중계로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세레나의 고군분투에 안타까워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엄마와 집에서 숨어 지켜보던 한율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보호만 받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가 미웠다.
그때,
손에 꼭 잡고 있는 강철 숟가락에 시선이 갔다.
민하가 준 부적.
이것이 열쇠가 되어줄까.
“제발. 민하.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율은 강철 숟가락을 꼭 쥐고 마음을 담아 빌었다.
인간계를 지켜달라고,
사람들을 구해달라고.
그러자 강철 숟가락에서,
빛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