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최후의 결전, 벤티 학원
강철남은 하늘에 부적을 흩날리며 땅바닥으로 벼락을 내리꽂았다.
칼바람이 불고 신력의 빛이 소나기처럼 빗발치는 지옥.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진지하게 맞서는 강철남을 상대로도 염라는 밀리지 않고 대등하게 맞섰다.
[연옥의 불]
염라의 힘이 지옥을 불길로 뒤덮었다.
불의 힘에 맞서는 물의 힘을 끌어내 염라의 공격을 깨부수며 방어하던 강철남은 빈틈을 노려 염라에게 반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공격이 깔끔하게 들어갔음에도 영혼을 다른 곳에 보관한 염라는 죽음이란 것을 몰랐다.
“나는 죽지 않는다.”
“그럼 죽을 때까지 조져줄게.”
강철남은 다시 땅을 박차고 염라에게 달려들었다.
분명히 동료들이 염라의 영혼을 파괴해 줄 것을 믿으며.
그때가 생각났다.
에테르를 흡수했을 때 초대 마황제의 정신과 다투었던 10년의 결투.
어쩌면 그 시간보다 더 기나긴 싸움을 이어갈지도 모르겠다.
* * *
가이아는 민하의 옷을 두툼하게 입혀주었다.
지금 그들이 와 있는 곳은 희망 테마파크 설산의 동굴.
멍구가 알려준바 가장 먼저 염라의 영혼이 담긴 그릇이 있는 곳으로 유력한 곳이다.
“베거. 무언가 보이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깊이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베거의 천리안으로도 그릇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뒤지는 건 멍구나 할 법한 미련한 짓이다.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샤를, 춥지 않니?”
“이 정도쯤이야.”
샤를은 손에서 불덩이를 소환해냈다.
따뜻한 불덩이가 허공에 떠다니며 주변의 추위를 녹이며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샤를, 정말 대단하다!”
“후후. 그동안 놀기만 한 게 아니라 이 말씀.”
“샤를 양은 정말 노력을 많이 했지. 민하의 친구로서 부끄럽지 않겠다며 말이다.”
“선생님! 왜 그런 얘기까지 하고 그러세요, 참.”
“호호호.”
베거는 성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샤를이 대견해 웃었다.
조금 쌀쌀하다 느꼈던 가이아도 딸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준 샤를을 보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봅시다.”
베거가 앞장서서 그들은 동굴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동굴은 크고 넓었다.
천장에는 커다란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고 호수였던 것이 지금은 얼어붙은 웅덩이가 되어 단단한 바닥이 되어 있었다.
어떤한 생물도 살지 않으며 살았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엄마, 뭔가 이상해요.”
“그렇구나. 분명히 이 정도로 가혹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터이거늘.”
애초에 민하네 가족이 희망 테마파크를 만든 목적은 다양한 자연과 생태계와 공존하며 그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처럼 모든 생명이 얼어붙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한 환경을 만들지는 않았다.
이건 분명히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만든 것이다.
“아무래도 누군가 환경을 극한으로 몰아붙인 듯합니다. 그렇다는 건 기온이 점점 떨어지는 곳을 향해 나아가면 장본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장본인이란 염라의 영혼이 담긴 그릇인가요?”
“그럴 거야.”
베거는 일행들의 상태를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앞장서 앞으로 나아갔다.
선두에 선 베거는 작은 부담과 큰 책임감을 느꼈다.
압도적으로 강한 민하와 가이아가 있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을 지키고 강철남의 동료로서 가이아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타나든 용감히 맞서 이들을 지키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때,
“음?”
차가운 공기를 따라 걸어가던 베거는 절벽에 벌어진 틈 사이를 발견했다.
3m 정도의 높은 틈 사이는 마치 또 다른 동굴의 입구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대어보니 안에서는 엄청난 한기가 몰아치고 있었다.
“여기로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좁고 어둡고 가혹하게 몰아치는 한파에 샤를이 조금 겁을 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스산한 분위기란 그 누구라도 공포에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
[신불]
민하는 샤를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은 채 두 개의 불꽃을 소환해냈다.
파란 불꽃은 도력의 불꽃, 노란 불꽃은 신력의 불꽃이었다.
두 불꽃은 샤를이 만든 빨간 불꽃과 나란히 서서 결계를 만들었고 그것이 추위로부터 샤를을 지켜주었다.
“무섭지? 하지만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마.”
“무, 무섭긴 누가 무섭다고 그래? 하나도 겁 안 나거든? … 그치만 손은 놓치마.”
안에 무서운 존재가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샤를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샤를까지 준비가 되자 베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절벽 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어서 민하와 샤를이 뒤따라 들어가고 가이아가 뒤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 * *
민하가 밝은 불꽃이 어두운 절벽 사이의 동굴 길을 밝히고 있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추위는 더 심해졌고 생명의 기척은 역시나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베거는 천리안을 사용해 먼 앞길을 내다보며 걸었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 강력한 힘에 가로막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제 천리안이 강한 마력에 방해를 받고 있어요. 틀림없이 이곳에 염라의 영혼을 담은 그릇이 있을 겁니다.”
[사이코 메트리]
민하는 주변의 바닥을 더듬어 이 장소에서 일어난 과거의 장면들을 재구성했다.
하지만 보이는 건 온통 칠흑의 어둠뿐이라 단서가 될 만한 건 알아볼 수가 없었다.
불확실하지만 이대로 계속 안으로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베거는 계속 걸어갔고 안쪽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해지는 추위에 몸이 얼어갔고, 천리안을 사용한 눈이 아파오자 통증에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무릎을 꿇고 주저 앉고 마는데,
“베거 선생님!”
민하와 샤를이 다가와 그의 상태를 지켜봤다.
베거의 오른쪽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천리안을 당장 멈추거라. 이만하면 됐다. 이 정도로 가까이 왔으면 피하고 싶어도 마주치게 될 것이니라.”
[치료]
민하는 다친 베거의 눈을 치료해주었다.
샤를은 베거가 걱정되어 눈물을 흘렸다.
모두의 정신이 베거에게 팔려있는 사이,
무언가가 마법을 발동했다.
[빙하]
땅이 갈라지고 민하네 일행의 발아래에서 거대한 얼음기둥이 솟아 올라왔다.
[그물]
가이아는 재빨리 기다란 등나무 줄기를 생성해내어 일행들을 한 번에 낚아 올려 뒤로 도망쳤다.
하마터면 동굴 천장에 처박혀 당할 뻔했다.
[유리꽃]
가이아가 손을 휘저어 신력의 씨앗을 뿌리자 순식간에 땅에서 꽃이 피어났다.
유리꽃은 눈부신 광채를 발하며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마치 샹들리에를 밝힌 듯 빛이 터지자 그들을 습격한 녀석의 그림자가 드러나 보였다.
녀석은 염라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온몸은 마치 단단한 얼음 갑옷을 두른 듯 견고하고 냉혹해 보였다.
염라의 모습을 한 얼음의 그릇인 것이다.
“저게 그릇인 모양입니다.”
“얌전히 당하고 있지는 않겠다는 거로군.”
얼음의 그릇은 공격 태세를 갖추고 곧바로 선두에 서 있는 베거를 향해 고드름을 날렸다.
베거는 장막을 형성해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마력의 차이가 너무 커 장막은 깨지고 얼음 파편에 베거가 상처를 입고 말았다.
[화룡]
민하가 녀석이 다시 태세를 갖추기 전에 빠르게 공격을 퍼부었다.
불길은 빠르게 날아갔으나 얼음의 그릇은 잽싸게 옆으로 피했다.
그러나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는지 왼쪽 어깨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역시, 강민하!”
뜨거운 김이 치솟으며 얼음의 그릇의 어깨에 물이 잔뜩 고였다.
그러나 상처에서 무시무시한 마력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다시 단단한 얼음 갑옷이 상처를 메웠다.
“재생인가.”
가이아는 넝쿨을 이용해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녀석이 가이아에게 신경이 팔려있는 사이 민하가 화염탄을 던져 다시 한번 녀석의 어깨를 녹였다.
그 틈을 노려,
[흡혈초]
가이아가 놈의 팔이 재생되기 전에 어깨에 마력을 빨아 먹고 자라나는 씨앗을 뿌렸다.
흡혈초는 녀석의 마력을 빨아먹으며 점점 커졌다.
얼음의 그릇은 강력히 저항했지만 마력을 내뿜을수록 흡혈초에겐 좋은 먹이가 될 뿐이었고 이내 녀석을 완전히 집어삼키기에 이르렀다.
“끝인가?”
“앗! 선생님, 그 말은 하면 안 돼요!”
촤악―
베거의 입방정에 부활초를 찢어발기고 녀석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다시 반격에 나서려는 녀석이 착지 후 낮은 자세를 취하던 그 순간,
미끌―
얼음이 녹아 미끄러워져 있었다.
“나도 활약할 수 있다고!”
샤를이 불꽃을 일으켜 바닥을 녹인 것이다.
스텝이 꼬여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얼음의 그릇이 휘청였다.
그 틈을 타 녀석을 향해 민하가 부적을 꽉 쥐고 달려들었다.
척―
녀석의 이마에 부적이 붙었다.
[마력 방출]
상대방의 마력을 독소처럼 모조리 뽑아내는 도술.
아빠에게 배워둔 필살의 술법이었다.
그러나 얼음의 그릇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빙하기]
마력이 모조리 바닥나기 전에 얼음의 그릇은 영혼을 전부 바쳐 마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얼음 마법의 궁극의 기술로 동굴 안을 빙하기로 만들기 시작했다.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땅에서는 빙산이 올라왔다.
천장에서는 고드름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있었고 이 충격을 버티기 어려운 샤를과 다친 베거가 위험했다.
[넝쿨의 숲]
가이아가 넝쿨로 베거와 샤를을 감쌌다.
“민하야,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공격해. 지금을 놓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거야.”
“네!”
엄마의 당부에 민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정면을 응시했다.
반드시 지금 끝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굴이 무너지고 녀석은 달아나버려 친구들도 다치고 아빠의 싸움도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아빠. 내게 힘을 줘.”
[심력 개방]
[한계 돌파]
[흡성 대법]
민하의 모든 힘을 개방한 삼신기가 발동되었다.
이 동굴 전체를 휘감는 방대한 범위의 마법을 모조리 흡수할 생각이었다.
염라의 얼음의 그릇.
그것이 담고 있는 마력까지 함께.
“꺄앗!”
매섭게 흔들리는 넝쿨의 숲 안에서 샤를은 민하의 모습조차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동굴 안은 그야말로 세계의 종말과도 같은 빙하기.
민하는 얼음의 그릇이 방출하는 마력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그것을 흡수해나가고 있었다.
방출과 흡수의 대결.
승자만이 생존할 것이다.
그때, 얼음의 그릇이 몸을 뒤틀며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폭발]
얼음의 그릇이 마력을 한 번에 폭발로 일으켜버린 것이었다.
“민하야!”
폭발이 일어나는 찰나 가이아는 모든 힘을 터트려 민하를 감쌌다.
“엄마!”
달려오는 가이아를 보며 민하는 마주 달렸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목숨을 내던지는 순간,
찬란한 빛이 그들을 감쌌다.
[빛의 가호]
심력의 궁극 스킬.
빛의 가호다.
신성한 빛이 감돌아 그들을 감싸니 어떠한 냉혹한 추위도 느껴지지 않고 폭발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곳은 절대적인 공간.
모든 악한 힘으로부터 보호받는 힘이다.
얼음의 그릇이 모든 마력을 터뜨려 동굴을 날려버리는 순간에도 빛의 가호 안에서 꼬옥 끌어안은 가이아와 민하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베거와 샤를은 아름다운 빛의 입자에 둘러싸여 이 모든 광경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음의 그릇은 마력을 모두 방출해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염라의 영혼을 담은 그릇 하나가 깨져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