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만악의 근원
강철남과 멍구가 천계 감옥의 문 앞으로 가니 간수장이 저 멀리서부터 부리나케 달려왔다.
“아이고, 마황제님 아니십니까.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이 누추한 새끼가 이 귀한 몸한테는 왜 인사도 안 하냐?”
“마, 마왕님께서도 평온하셨는지요?”
“엣헴. 심기가 X나게 불편하시다. 너희들 여기서 무슨 개수작 질이야?”
멍구가 다짜고짜 간수장에게 시비를 걸었다.
확신은 없지만 심증으로 일단 찔러나 보자는 식이었다.
“저, 저희는 결백합니다! 이건 저희 잘못이 아니라구요!”
“이건 너희 잘못이 아니다? 자기 입으로 술술 부는구만. 무슨 얘기인지 지껄여 봐”
“앗, 뭔가 알고 하신 말씀 아니십니까? 이런, 제가 말실수를.”
“이왕 이렇게 된 거 숨기지 말고 다 털어놔 봐.”
간수장은 한숨을 내쉬고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천계 감옥 지하에 있는 지옥에 다녀오신 적 있죠?”
“있지.”
“그때 1번을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최초의 죄인.”
“맞습니다. 옥황상제님께서 붙여주신 이름은 염라죠.”
“염라.”
강철남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옥황상제가 지옥으로 내려간 걸까.
“그래서 너희 잘못이 아니라는 건 무슨 소리야?”
“염라를 만나러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시는 옥황상제님을 최선을 다해 막아 봤지만 아시다시피 그분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는 몸이라.”
“역시 옥형이 지옥으로 갔다는 말이로군.”
“맞습니다. 그런데 지옥은 정말 무법자들의 땅이라 옥황상제님께 무슨 변고라도 생긴다면 어떡할지.”
“설마 옥형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니겠어?”
간수장의 괜한 걱정을 비웃듯 멍구가 말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염라라는 작자는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하긴 강함 이상으로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자였다.”
“제 말이 그 말이라니까요!”
“그때 넌 쫄아서 바로 후다닥 도망쳤잖아.”
“그래도 한 번 본 적은 있습니다.”
“얼마나 멀리서?”
“…한 5km 떨어져서?”
“이 새끼!”
“히익!”
더 이상 도움 될 게 없는 간수장의 말을 적당히 무시하고 강철남과 멍구는 천계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지옥까지 내려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에 복도를 따라 걸으니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이 시끄럽게 소란을 피워댔다.
“크하하! 댕댕이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댕댕이 고기다!”
“어이 형씨! 곱상하게 생겼는데?”
“손 한 번 잡아 주고 가!”
온갖 추잡한 언어가 난무하는 복도를 걸으면서도 강철남은 무시하며 계속 걸어갔다.
반면에 멍구는 이 거슬리는 소리들을 참지 않았다.
[포효]
멍구의 포효가 감옥 안에 몰아쳤다.
쇠창살 안으로 밀어닥친 충격파로 죄수들이 나가떨어지자 복도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멍구는 등을 곧게 펴고 으스대며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강철남은 순간 심장이 쿵쿵대는 걸 느꼈다.
저 밑바닥 깊은 심연에서,
무언가가 이빨을 들이밀고 있다.
“철남이, 왜그래?”
“멍구. 긴장하자.”
“긴장? 우리가? 너와 나 둘이면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멍구는 큰소리로 강철남을 다독였다.
강철남은 피식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래, 괜히 긴장할 거 뭐가 있겠나.
다시 마음을 다잡은 강철남이었다.
하지만 지옥의 밑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압박감에 강철남은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덜컹―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지옥까지 도달했다.
간수장은 서둘러 다시 위로 올라갔고 강철남과 멍구는 지옥으로 입장했다.
발을 들어서니 후끈하고 불결한 공기가 들이닥쳤고 주변에 느껴지는 감각은 허무하고 공허했다.
방황하던 죽은 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지옥 전체가 텅 빈 것이 버려진 폐공장 같았다.
“그 벌떼 같은 새끼들이 다 어디로 갔담?”
“마계와 인간계로 갔겠지. 죽은 자들을 보낸 놈이 여기 있을 거야.”
강철남과 멍구는 한참을 걸었다.
그저 본능과 감이 이끄는 대로.
그러자 저 멀리서 찬란한 빛줄기를 발견했다.
“옥형의 후광이야.”
반가운 빛을 발견한 둘은 옥황상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따라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1번, 최초의 죄인이 있었다.
“염라.”
“마황제인가.”
“왜 네가 옥형의 빛을 내뿜고 있는 거지?”
“옥제는 나와의 승부에서 졌다.”
“무슨 승부?”
“천계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싸움이었지.”
강철남은 삐걱거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염라의 손을 보았다.
“그건 광마 도사의 손이 아닌가. 혹시 녀석의 팔을 취하고 흡성대법을 익힌 거냐.”
“과연 추측이 빠르군.”
“설마 옥형은.”
“그렇다. 내가 그 힘을 흡수했지.”
염라는 교활하지만 그렇다고 정면에서 거짓말로 현혹할 정도로 비열하지는 않았다.
강철남은 그 말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옥형은 무사한가?”
“지금 지옥 어디쯤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멍구야, 옥형을 찾아줘.”
“오키도키.”
멍구는 염라를 한번 째려보고는 옥황상제의 냄새를 맡으며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너지? 죽은 자들을 산 자들의 세계로 보낸 자가.”
“그렇다.”
“이유가 뭐냐?”
“죽은 자들의 땅이 부족해서다.”
염라는 옥황상제와의 승부가 치열했던 모양인지 바위에 걸터앉으며 지쳐 보이는 표정으로 긴 숨을 내쉬었다.
“죄인이 되어 여기에 갇힌 새끼들이 건방지게 산 자의 땅을 침범해?”
“이미 지옥은 포화 상태다. 나쁜 녀석들이 너무나 많아. 그런데 산 자들의 땅에도 나쁜 놈들이 그토록 많은데 지옥이랑 뭐가 다르지? 어차피 지옥으로 올 거라면 미리 그곳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면 되지 않나?”
“같잖은 말장난이로군.”
강철남은 염라에게 다가가 얼굴 앞에 손바닥을 펼쳤다.
이대로 녀석을 처치해버리는 것이 정답일까.
“이대로 널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나는 이미 죽은 존재. 더는 죽지 않는다.”
“이제는 영혼마저 소멸하게 될 거다.”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마황제.”
강철남은 허세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신력을 끌어모았다.
그대로 염라의 영혼을 진동시켜 깨뜨려버리려 했다.
하지만 힘이 반응하지 않았다.
빈 깡통을 흔드는 기분이었다.
“너 설마 영혼이 없는 거냐?”
“내 영혼은 이미 다른 곳에 보관해두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하지.”
염라는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은 무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강철남은 그런 녀석에게서 이제껏 다른 적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강철남. 자연을 사랑하는 자네라면 이해하겠지. 인간계에 인간이 사라지면 대부분의 자연 문제는 해결된다는 걸. 인간이란 죄 많은 존재다. 살아간다는 것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존재인 것이지.”
“내가 바꿀 거다. 인간이 세계에 속해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지며 살아가게끔 말이다.”
“무슨 수로?”
“인간들에게는 심력이라는 힘이 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자아내는 기적의 힘이지. 그 힘이 자연을 되살리고 있어.”
“심력이라. 이런 거 말인가?”
염라는 손을 뻗어 땅을 짚었다.
그러자 땅에서 붉은색 가시 넝쿨이 피어오르며 새빨간 장미가 맺히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네가 심력을 다룰 줄 아는 거냐.”
“산 자들의 땅을 죽은 자들의 땅으로 만들겠다는 녀석이 심력을 사용하니 기가 막히나? 나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친절하고 심성 고운 인간이었지. 네가 한 가지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나는 나쁜 놈이 아니야. 그저 너하고 생각이 다를 뿐이지.”
“그렇다면 너와 나의 싸움은 선악의 싸움이 아니라 의견 충돌로 봐야겠군.”
“그렇다고 봐야지. 나는 내 세계를 넓히는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너는 네 가족과 동지들을 지키는 목적으로 말이야.”
강철남과 염라는 서로 마주 보았다.
지옥의 땅이 흔들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의 충돌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 * *
멍구는 찾아 헤맨 끝에 쓰러져 있는 옥황상제를 발견했다.
“옥형. 몰골이 왜 이래?”
“허허허. 멍구야. 이거 참 창피하구나.”
“으유. 왜 그런 놈한테 당한 거야?”
“그러게나 말이다. 늙으면 죽어야지.”
“내가 해줘?”
“이놈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멍구는 근처 바위에 옥황상제를 앉히고 신력을 끼얹어 기력을 나눠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녀석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지내는 땅의 경계를 없애고자 하였단다.”
“그럼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려고 한 거야?”
“그것뿐만이 아니란다. 육신의 죽음으로 영혼이 남게 되지. 녀석은 죽은 자들의 영혼을 지배하여 불멸의 군대를 만들어 세상을 통치하려 하는 거란다.”
“죽었던 크레톤 녀석이 쉬고 싶다고 징징댔다던데.”
“통치받는 영혼이 괴로워하는 것이로군. 가엾도다.”
“염라 저 녀석은 또라이 사이코야?”
“무시무시할 정도로 그렇단다.”
옥황상제는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옥형이 당할 정도로 녀석은 강한 거야?”
“녀석은 아주 치밀하게 준비해왔단다. 바로 철남이를 통해서.”
“그게 무슨 소리야?”
“철남이가 강해질수록 녀석이 강해졌던 거란다.”
“아오, 옥형. 개 궁금하게 만들지 말고 자세히 설명해줘!”
멍구가 답답함을 못 이기고 껑충 뛰며 재촉하자 옥황상제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정리된 듯 옥황상제가 입을 열었다.
“하나 물어보겠네. 첫 번째 마왕을 처치하고 손에 넣은 힘의 덩어리는 어디에 있나?”
“응? 카오스를 때려잡고 얻은 검은 장막? 그거 설악산에 황토집 차광막으로 쓰고 있는데?”
“지금도 거기에 있나?”
“모르지, 아마 거기 있지 않을까?”
“그건 힘의 결정체다. 누가 가져가도 모르는 곳에 놔두어서는 안 되었다.”
“에이 설마 그걸 누가…….”
순간 털이 삐죽 곤두서는 멍구.
아니 설마설마했는데 그걸.
“옥형. 혹시 우리 개 멍청한 짓을 한 걸까?”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그걸 염라가 가지고 맛있게 냠냠 먹었단다.”
“으허헝! 우리는 바보였어. 하,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엄청 강해지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
“너희가 만든 테마파크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니?”
멍구는 가만히 생각해봤다.
그러고 보니 강철남과 함께 먹었던 벌레의 맛이 이상했고 그로 인해 마력의 흐름이 깨진 것을 추측했었다.
“마력의 흐름이 깨어졌었는데.”
“그곳에는 염라가 자기의 영혼을 담은 그릇을 심어두었기 때문이란다. 그것으로 한 염라는 철남이 가족이 투자한 마력을 흡수하며 계속 강해졌던 거란다.”
“아니, 가만 보니 이 새끼 존X 빨대 꼽고 쪽쪽 빨아 먹는 모기 같은 새끼네. 순 날강도 아니야?!”
멍구는 이 염라라는 녀석이 괘씸해서 견딜 수 없었다.
당장에 뚝배기를 후려갈겨도 시원치 않았다.
“진정하거라 멍구야. 지금 철남이와 대치하고 있는 녀석은 영혼이 없는 존재.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영혼을 담은 그릇을 파괴해야 하느니라.”
“그걸 어떻게 찾…….”
그때 멍구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한 가지.
“어? 설산 동굴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었는데.”
“그래, 그런 거다. 단서라고는 초감각뿐이란다.”
“참 어려운 미션이로구만. 얼른 서둘러야겠어.”
“부탁하네, 멍구. 철남이가 죽지 않는 염라를 상대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네.”
“맡겨만 두셔! 내 반드시 저 새끼가 우는 표정을 보고야 말 테니!”
쿠구궁―
강철남과 염라가 대치 중인 저 멀리서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옥형, 우선 피신하자고. 신선계로 갈까?”
“신령들에게 모양 빠지는 건 사양이구나.”
“이제보니 가오충이었구나. 그렇다면 좋아, 거기로 가자.”
멍구는 옥황상제를 잡고 공간 이동을 했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칼바람이 불어와 모든 바위를 잘라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