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김성남과 한지영의 활약
소하 선생의 작업장에서는 독특한 술 냄새가 풍겼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아니라 마치 천상에 온 듯 콧속을 희롱하며 스며들어와 편안하게 감싸주는 향이었다.
“어서들 오게. 지금 막 누룩이 완성되었네.”
소하 선생의 제자 도깨비가 문을 열어 강철남 일행을 맞이하자 소하 선생이 나와 인사를 건넸다.
“소하 선생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술 장인들은 그들의 우상이자 전설적인 술 장인을 만난 것에 깊은 감동을 느껴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소하 선생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것들이 시간 없어 죽겠는데 허례허식을 차리고 있어. 다들 빨랑 위치로!”
강철남의 닦달에 술 장인들은 일단 영문도 모르고 허둥지둥 도구를 들었다.
소하 선생은 마치 협업에 익숙한 듯 술 장인들에게 각자의 할 일을 지시했다.
어디 내놔도 진두지휘를 해야 할 짬밥의 술 장인들은 소하 선생의 말이라면 껌뻑 죽고 시키는대로 순순히 따랐다.
그 사이 멍구의 지시를 받은 대장장이는 술을 끓일 거대한 솥을 만들고 있었다.
크레톤에서 가져와 모은 온갖 좋은 재료들이 갖추어져 있었고 대장장이는 이토록 좋은 재료들로 물건을 만들어 볼 수 있음에 감동했다.
“세상에, 이건 크레톤 광산에서만 난다는 희귀한 강철이 아닙니까?”
“감탄은 나중에 하고 빨리 만들기나 해. 지금 마족들이 팍팍 죽어 나가고 있으니까.”
멍구는 대장장이를 재촉했다.
“마, 마족들이 죽어 나간다니요?”
“마계에 대재앙이 일어났어. 지금 너희가 하는 일은 그 재앙을 막는 일이다.”
“술 솥을 만드는 게요?”
“아이 진짜! 조잘조잘 댈래? 망치로 쇠 두드릴래, 아니면 네 머리통 두드릴래?”
“이, 일 하겠습니다!”
대장장이를 들들 볶은 멍구는 공간 이동으로 마계 곳곳을 휩쓸고 있는 죽은 자들의 군대를 처리하러 사라졌다.
“소하 선생. 여기 부적이오. 완성이 되거든 나를 불러주시오.”
“네, 마황제님. 최대한 빨리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강철남도 일을 맡기고 공간 이동으로 전장을 향해 떠났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기에 그들은 서둘러 마계 이곳 저곳을 누볐다.
마계에서 유일하게 죽은 자들을 막을 수 있는 자들은 강철남과 멍구 뿐이었으니까.
* * *
마계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도시 카르텔에서는 방벽을 굳게 세우고 죽은 자들의 침입을 막으려 애쓰고 있었다.
“절대로 밀리지 마라! 여기가 뚫리면 시민들의 목숨은 끝장이다!”
수문장은 문을 보강하는 병사들을 다그쳤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물밀듯 밀려오는 죽은 자들의 군대는 아무리 화살을 퍼부어도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만 갔고 방벽은 약해지고만 있었다.
도시가 함락되고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
아무래도 대피령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하늘에 뭐가 떠 있습니다!”
병사의 외침에 수문장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카르텔에서 가장 비싼 수송 비행선이 스무 대가량 떠 있었다.
마력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수송 비행선은 한 대에 1,000여 명을 태울 수 있었다.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카르텔이 비행선을 띄운 것이다.
모든 시민을 태울 수는 없겠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병약자를 태워 피신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모두 조금만 버텨라!”
그때 방벽에 카르텔이 나타났다.
각오를 다진 듯 늘 입던 편안한 옷이 아닌 전투용 갑옷을 갖추어 입고 서 있었다.
“마왕님!”
전장에 마왕이 직접 등장하자 병사들이 깜짝 놀라 머리를 조아렸다.
“시민들은 대피하고 있다. 그대들의 가족이 안전히 도망갈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힘내자.”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전장에 마왕이 직접 나타나자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들은 바위와 판자를 들고 방벽을 보수했고 사력을 다해 무너진 돌을 다시 쌓았다.
군에 속한 병사들뿐만이 아니라 청년들도 와서 힘을 보탰다.
이대로 고향이 무너져 내리는 꼴을 지켜만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모두가 힘을 쥐어 짜내 도시 카르텔을 수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와지직―
와르르―
한쪽 방벽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완전히 무너져 내려앉은 방벽에 뿌연 먼지가 날렸고 그 사이로 죽은 자들의 군대가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마왕 카르텔을 보호하기에 나섰고 죽은 자들은 창칼을 들이대며 달려들었다.
“여기까지군.”
모든 희망이 태풍 앞의 촛불처럼 꺼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
[검압]
파아앙―!
하늘에서 무시무시한 압력이 내리눌러 방벽 안으로 들어온 죽은 자들을 모조리 터뜨려 없애버렸다.
강렬한 충격과 함께 등장한 것은 바로,
“카페 주인장!”
김성남이었다.
“여긴 어떻게 온 건가? 인간계로 간 거 아니었나?”
“카페 문단속을 안 하고 간 것 같아서 말이야.”
인간계에서 죽은 자들을 썰고 있던 김성남은 성남 카페 1호점이 개박살 날 거라는 강철남의 겁박에 부랴부랴 급히 마계로 달려왔다.
마침 카르텔의 방벽이 부서졌고 하마터면 성남 카페 1호점도 부서질 뻔했다.
“기껏 단골 확보해놨는데 이대로 장사 종 칠 수는 없지.”
[참격]
김성남이 심력을 담아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두르자 거대한 참격이 날아가 죽은 자들의 몸을 두 동강 내버렸다.
그사이 병사들은 수문장의 지시에 무너진 방벽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카페 주인장! 안으로 들어와!”
수문장은 방벽 밖에서 죽은 자들을 베고 있는 김성남에게 손짓하며 외쳤다.
“됐어. 방벽 닫아.”
“무슨 소리야?”
“어차피 이대로 방어만 하다간 또 무너질 거잖아. 이 참에 바깥에서 이 새끼들 전부 조져버리는 게 나아.”
“혼자서? 아무리 당신이 강해도 그건 무리야!”
“훗. 강철남. 그 녀석이라면 아마 혼자서도 충분했겠지. 그 녀석을 뛰어넘으려면서 이 정도도 못 해내면 소리만 큰 빈 깡통일 뿐이야.”
[파괴]
김성남은 죽은 자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며 싸워나갔다.
빈틈을 파고들어 적들이 방벽을 향해 달려들자 어쩔 수 없이 방벽을 막는 수밖에 없었다.
챙! 챙!
김성남은 방벽 밖에서 몇천 명이나 되는 죽은 자들과 홀로 맞섰다.
심력은 사용할 때마다 집중을 해야했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한 번 칼을 휘두를 때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의 죽은 자들을 베어냈지만 집중력과 체력에도 한계가 있는 법.
최강의 헌터 김성남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헉, 헉, 빨랑 덤벼라, 이 시체 새끼들.”
파악!
허리를 숙인 김성남에게 달려들던 죽은 자의 목이 뎅겅 달아났다.
이제는 검에 힘이 빠져 수십 명밖에 베어내지 못했다.
“굴하지 않는다, 나는.”
싹둑―
또 수십 명의 목이 날아갔다.
“이겨낸다, 나는.”
촤악―
또 수십 명의 죽은 자들이 쓰러졌다.
“더 강해진다, 나는!!”
[한계 돌파]
그러자 김성남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빛이 흘러넘쳤다.
다시 회복된 체력은 이전보다 더 튼튼해져 있었고 꽉 잡은 칼에 힘이 느껴졌다.
[광역 베기]
양손으로 잡은 칼을 힘껏 휘두르니 수천 명의 죽은 자들이 검압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혼신을 담은 김성남의 일격에 카르텔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죽은 자들의 군대가 전멸하고 말았다.
방벽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족들은 혀를 내둘렀다.
“대단.”
바위를 들고 방벽을 보수하던 성남 카페 1호점의 단골손님 고래가 감탄했다.
김성남은 대자로 뻗어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시게 파랬다.
“짜식. 너만 강하냐? 나도 강하다고.”
그제야 만족한 듯 씨익 웃음을 짓는 김성남이었다.
* * *
한편 크레톤에서 소하 선생과 술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마계를 구원할 술을 빚는 동안 바깥에서는 몰려드는 죽은 자들을 막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교육의 도시답게 학자들의 지혜로 도시 방어에 나선 것이다.
[파괴]
파파팡―!
마법사들은 땅을 향해 파괴 마법을 퍼부었고 그 덕에 움푹 파인 구덩이가 크레톤 앞에 즐비했다.
죽은 자들을 직접 공격할 순 없어도 구덩이에 빠트려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이었다.
“구덩이를 깊게 파라! 녀석들의 진군을 늦추는 거다!”
키켈은 직접 방벽에 올라 지시했다.
이윽고 죽은 자들이 도시를 향해 진군해왔다.
앞만 보며 직진하는 죽은 자들은 구덩이와 마주치자 그대로 곤두박질치며 밑으로 떨어졌다.
그 위에 자기들끼리 뒤엉키면서 진군 시간이 크게 늦춰졌다.
“좋아, 이걸로 시간을 벌 수 있겠어.”
시간을 벌어야 한다.
마황제가 주조를 명령한 술이 완성되기까지.
하지만 이 방벽까지 오는 걸 아예 막을 수는 없다.
그저 운에 맡길 뿐이었다.
“제발 가호가 있길…….”
키켈이 중얼거리자 뒤에서 누군가 그 말에 딴죽을 걸었다.
“요행을 바라지 마요. 할 수 있는 게 아직 남아 있거든요.”
“당신은?”
그 말을 남기고 목소리의 주인은 방벽 아래로 힘차게 뛰어내렸다.
그리고 혼자 도시로 접근해오는 죽은 자들을 향해 맞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개의 작은 단도를 든 한지영이었다.
마치 한 마리의 나비처럼 나폴나폴 춤추듯 전장에 파고들어 죽은 자들의 머리를 가뿐히 도려내었다.
한 명 한 명 그 수를 줄여나가긴 했지만 속도가 워낙 빨라 눈 깜짝하는 사이에 수십 명의 머리를 베어 나갔다.
“선생님 파이팅!!”
“지영 쌤 멋져요!”
기초 학교의 아이들이 어느새 방벽 위로 올라와 한지영을 응원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위험하다며 아이들을 쫓아내기 바빴다.
방벽 위에서 한지영의 고독한 전투를 지켜보는 키켈은 분했다.
인간이 마계를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건만 정작 마족이, 게다가 마왕이라는 자가 이토록 무력하게 구경만 하고 있다니.
“젠장, 술은 아직 멀었나.”
한지영은 적을 베고 찌르며 적진 깊숙이 파고들었다.
무작정 적들을 쓰러트리는 데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군대의 분위기를 파악하려 했다.
이 정도로 조직된 군대에는 분명 지도자가 있을 것이다.
진열을 가다듬고 명령을 내리는 리더가.
채앵―
대검과 맞서면서도 한지영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하지만 이토록 치열하게 싸우며 분석했지만 우두머리를 찾기는 어려웠다.
“대장은 여기에 없나. 그렇다면 멀리서 녀석들을 조종 하나 본데.”
더 이상의 분석은 무의미했다.
리더는 여기 없다.
적들은 그저 파괴와 살육만을 추구하는 전쟁 기계일 뿐이었다.
[한계 돌파]
한지영은 최대 출력을 끌어내 적들을 섬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앙―!
무언가 단단한 것에 한지영의 단도가 막혔다.
두껍고 거친 강철 비늘.
“우으으…….”
괴상한 소리를 내며 한지영의 앞에 우뚝 서 있는 건 전 마왕 크레톤이었다.
크레톤을 본 적은 없지만 칼을 대어 봤을 때 한지영은 녀석이 보통 녀석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더구나 주변은 온통 죽은 자들 천지.
이 상황에서 이기는 건 둘째치고 생존조차 버거워 보였다.
[초광속]
빛의 속도를 내어 이 군집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덥석―
크레톤의 거친 손아귀가 한지영의 발목을 잡았다.
그대로 땅에 내다 꽂혀 의식을 잃기라도 한다면 한지영은 끝장이다.
“이 자식!”
한지영이 발길질로 크레톤의 턱을 걷어차 보지만 고통이란 모르는 죽은 자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크레톤이 한지영을 땅에 메치려고 높게 들었을 그때,
“오래 기다렸지, 이것들아!!”
하늘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 자, 죽은 자 모두 소리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어두운 흑색 구름을 탄 강철남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완성이다. 특제 술구름!”
강철남이 손가락을 튕기자 흑색 구름에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에서는 오묘한 냄새가 났다.
[확성]
“지금 당장 고개 꺾어서 아가리 벌려!!! 특제 술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