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마계에 닥친 위기
죽은 자들이 강물에 뛰어들자 강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침수 피해로 인근 주민들이 위험에 처할지도 몰랐다.
헌터들은 멀리서 화살을 쏘아댔지만 수많은 죽은 자들은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니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
“분명해. 놈들을 조종하는 사령탑이 있어.”
헌터들은 확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토록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물은 이미 뭍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대로 죽은 자들의 작전이 성공하려나 싶은 그때,
[수룡]
강물이 굽이치더니 거대한 용의 형상이 되어 죽은 자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헌터들은 이 영화 속 특수 효과 같은 장면을 눈만 끔뻑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이건…….”
수룡과 싸우던 죽은 자들은 급류에 휩쓸려 순식간에 소멸하고 말았다.
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헌터들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강 반대편에 죽은 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처리를 부탁합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그러자 남자가 웃으며 답했다.
“모털 도사라 합니다.”
그 말을 남기고 모털 도사는 구름을 타고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긴 머리털을 한 줌 뽑아 하늘에 흩날리니 무수히 많은 자기 분신이 나타나 전국 각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모털 도사의 분신이 지방 곳곳에서 활약을 펼쳐준 덕분에 산 자들은 다시 한번 열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은 자들의 군대는 대한산에서도 활개를 치고 있었다.
“얘네들 대체 뭐야?”
“나도 알 수가 없네.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의 땅을 침략하기 위해 군대를 꾸리다니. 이건 역사적으로도 없었던 일이야. 분명히 누군가의 못된 음모임이 틀림없어.”
냥고와 두루미 신령은 몰려드는 죽은 자들을 휩쓸었다.
산에 있는 마족들은 모두 겁을 먹고 숨어들었고 죽은 자들은 기세 좋게 산을 타고 올라왔다.
“산 아래의 정세도 심각할 것 같다. 냥고, 내려가 보겠나?”
“그러자. 분명 철남이 형님과 멍구 형님도 고생하시고 계실 거야.”
냥고는 냥냥 펀치로 죽은 자들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두루미 신령은 칼바람을 일으켜 적들을 모조리 찢어 없앴다.
산으로 올라오는 죽은 자들을 모조리 토벌한 그들은 산 아래로 내려갔다.
폐허가 되어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산 아래는 의외로 건재했다.
그건 바로,
“우오오!!!”
서걱―
죽은 자들의 목을 베는 예비역 헌터들이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X벌! 나 아직 죽지 않았어!”
“헥, 헥, 존X 숨차네. 운동 좀 할걸.”
죽네 마네 하면서도 그들은 훌륭히 지상을 방어하고 있었다.
두툼한 뱃살이 단추가 터져버린 바지를 부여잡고 있었지만 그들은 민첩하게 칼을 휘둘렀다.
왕년의 헌터혼이 되살아났다.
점점 감각을 되찾은 그들은 전장을 누비며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냥고와 두루미 신령도 전장에 뛰어들어 죽은 자들을 퇴치했다.
* * *
인간계가 죽은 자와 산 자들의 전쟁으로 대혼란에 빠져있던 그 시각, 마계 역시 혼돈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왕님! 지금 보고가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크레톤의 마왕 키켈은 마계 곳곳에 일어나는 이상 변화에 관한 보고들을 받았다.
마계 곳곳에서 땅이 갈라지고 빙하가 녹고 난데없이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듯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종언이 찾아온 듯 마계에 상처가 벌어지고 있었다.
“새로운 보고입니다. 땅속에서 죽은 자들이 깨어나 마족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군대를 보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도시에 끼치는 피해는 막아야 한다.”
크레톤의 군대가 출병했고 도시를 향해 진군해오는 죽은 자들의 군대와 맞붙었다.
“감히 겁도 없이 크레톤을 공격하다니. 대체 어느 군대냐?”
병사를 이끄는 용족 장수가 물었지만 죽은 자들이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그것을 대화가 아닌 결투 신청의 의미로 받아들인 장수는 창을 휘둘렀다.
그가 휘두른 창이 죽은 자의 목에 닿자,
부웅―
허공을 저을 뿐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죽은 자들이 밀려오자 장수는 병사들에게 화살을 쏘라 명령했다.
하지만 화살은 죽은 자들의 몸을 통과해 바닥에 꽂힐 뿐이었다.
그 보고도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광경에 병사들은 당황하고 겁을 먹는 자들도 있었다.
“이런 적은 들어본 적도 없다.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꼼짝 없이 당할 위기에 처했을 그때,
[일격필살]
콰쾅!―!
강철남이 힘껏 주먹을 휘두르자 그 충격파에 죽은 자들의 몸이 가루처럼 흩어졌다.
순식간에 전장이 깔끔히 정리되었다.
“마황제님!”
마황제의 등장에 장수와 병사들이 일시에 무릎을 꿇었다.
“모두 퇴각해. 너희들로는 안 된다. 돌아가서 성벽을 보강하고 수비에 전념하도록.”
강철남의 명령에 장수는 서둘러 군사를 뒤로 물렸다.
땅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 나쁜 죽은 자들을 강철남은 벼락으로 모조리 태워버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마계 전역을 돌아다니며 홀로 싸울 수만은 없는 노릇.
인간계와 비교도 할 수 없이 넓은 마계를 홀로 방어한다는 건 불가능이었다.
[소환]
부적을 높이 던져 푸른 빛을 내니 복면을 쓴 멍구가 입에 죽은 자를 물고 펑 하고 나타났다.
“우쒸! 지금 한창 참교육 중인데 왜 불러?”
“멍구야, 아무래도 인간계보다 마계가 더 ㅈ된 거 같다.”
“뭐여? 여기에도 죽은 새끼들이 기어 다니는 거여?”
인간계는 심력을 가진자들과 강철남의 도력을 전수받은 자들의 활약으로 안정적으로 방어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계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
이대로라면 마계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어떡하지?”
“우리 둘만으로는 역부족이야.”
강철남은 이 상황을 타개할 작전에 관해 생각했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방법이.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전속력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마황제님!”
“키켈이 아니냐?”
키켈은 공중에서 뛰어내리듯 다급하게 착지해서 무릎을 꿇었다.
“키켈, 지금 적이 누군지 아느냐?”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모르겠습니다.”
“죽은 자들이다. 저들에겐 힘과 마력은 통하지 않는다.”
“병사들에게 들었습니다. 창칼이 그냥 허공을 가른다고 하더군요.”
“녀석들에게 통하는 힘은 도력, 신력, 심력이다.”
“네? 그런 영험한 힘은 저희 마족에겐 없습니다.”
키켈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정말 난처하다는 듯 눈빛이 좌우로 흔들렸다.
“어쩔 수 없군. 멍구, 지금 당장 카르텔로 가서 녀석을 데려와.”
“녀석?”
“광마 도사의 팔을 만든 대장장이.”
* * *
멍구는 카르텔로 공간 이동했다.
한시가 급박한 상황이므로 예의는 엿 바꿔 먹기로 했다.
“야!”
“아이고, 깜짝이야!”
시장에서 제일 수다스럽게 생긴 비둘기 아줌마에게 대뜸 달려들었다.
“여기 가장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녀석이 어디 있지?”
“아니, 이 미친 똥개가 더럽게 왜 남의 가게를 밟고 들어와?”
“나는 마왕 멍구다. 지금 국가 비상 상황이야. 빨리 말해.”
“뭐? 마왕 멍구? 네가 마왕 멍구면 나는 마왕 가이아다. 오호호.”
멍구는 빡쳤지만 릴렉스를 가슴에 새기며 다시 한번 물었다.
“진짜 마지막이다. 난 여자도 패는 개쌍놈이니까 좋게 좋게 가자고. 솜씨가 가장 좋은 대장장이는 어디있지?”
비둘기 아줌마는 멍구의 눈에서 찐광기를 보았다.
더 이상 혓바닥을 놀렸다간 이 미친 똥개가 개지랄 난동을 피울 거라는 알 수 있었다.
“저, 저기 모퉁이를 돌아 마을 끝자락으로 가면 보일 거유.”
“고맙네.”
멍구는 후다닥 달려 모퉁이를 향해 돌았다.
직선 코스에서는 있는 힘껏 땅을 박차고 달려 순식간에 대장장이가 있는 대장간에 도착했다.
“복면 멍구 등장!”
“깜짝이야. 뉘슈?”
철을 두들기고 있던 대장장이는 복면을 두른 개를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쪽이 광마 도사의 손을 만든 대장장이요?”
“으흠!”
대장장이는 불쾌한 듯 멍구의 말을 개무시하고 철을 두드리는데 집중했다.
“아니, 개가 물으면 대답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개무시 당한 멍구는 참지 않았다.
바로 폴짝 뛰어 대장장이의 정수리를 송곳니로 깨물었다.
“아악!”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갑자기 미친개한테 물려 죽게 생겼다.
일단 살고 보자.
“마, 맞소. 내가 그 대장장이요!”
“거참, 진작 대답했으면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얼마나 좋아.”
“대뜸 이빨부터 들이댈 줄 누가 알았소?”
“네가 이해 좀 해. 지금 마계가 겁나 위기거든.”
“마계가 위기라니요?”
“무튼 지금 당장 나랑 같이 가자. 마황제가 불러.”
“…네? 마황제님이 저를 왜?”
“가보면 알아.”
* * *
크레톤의 마왕성은 북적였다.
한쪽에서는 대신들은 지금 상황에 대한 해결책에 관해 설전을 펼치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마황제가 데려온 자들이 서로 무슨 일로 왔느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마황제님. 아뢰옵게 황송하오나 저들은 대체 누구인지?”
한 대신이 강철남이 데려온 자들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들의 행색은 옷에 온갖 때가 묻어 있었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는데다 몸에서 술 냄새가 났다.
마치 제대로 된 마족들이 아닌 한량으로 보일 뿐이었다.
“이들은 마계를 구할 자들이오.”
“네? 저 술 냄새 풍기는 자들이요?”
“말조심해. 한 대 맞는다?”
“죄, 죄송합니다!”
이윽고 멍구가 대장장이까지 데려왔다.
공간 이동 술식에 휩쓸려 와 어리둥절해하던 대장장이는 주변을 둘러보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자네가 광마 도사의 손을 만든 대장장이인가.”
“네, 네! 그렇사옵니다.”
일순간 그가 마황제임을 눈치챈 대장장이는 허리를 숙였다.
혹시나 그 불찰에 관한 처벌을 받을까 겁이 났다.
“그 일은 자네 가슴에 돌덩이로 남아 있나?”
“그렇습니다. 하루하루 죄를 짓고 사는 마음이옵니다.”
“그럼 그 일에 대한 속죄랍시고 이번에 마계를 한번 구해보게.”
“네?”
강철남은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주변을 둘러본 후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잘 들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마계에는 죽은 자들의 군대가 설치고 있다. 녀석들에게는 물리적 공격은 물론 마력조차 통하지 않는다.”
그러자 대신들은 겁에 질렸다.
그들이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힘인 마력마저 통하지 않는 적을 대체 무슨 수로 당해낸단 말인가.
“하지만 등신같이 마냥 처맞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마계의 희망은 여기 모인 이들에게 있다.”
“저, 저희가요?”
모여 있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여기 모인 자들은 마계에서 이름난 술 장인들. 그대들은 소하 선생과 함께 특수한 술을 주조할 것이다.”
“소, 소하 선생님과 함께요?”
술 장인들은 전설적인 소하 선생의 이름이 나오자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들에게 있어서 소하 선생은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대장장이는 그 술을 담을 술 단지를 만들 것이다.”
“아, 네!”
대장장이도 영문은 몰랐지만 대답했다.
“저, 마황제님. 아뢰옵게 황공하오나 이해가 안 가는데 술을 만드는 것과 마계를 구하는 것이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인지요?”
대신 하나가 모두가 궁금해하던 의문을 물었다.
“아니, 그럼 X바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바빠 죽겠는데 이러겠냐? 그냥 까라면 까! 실시!”
강철남의 샤우팅에 모두 후다닥 업무로 복귀했다.
강철남과 멍구는 술 장인들과 대장장이를 데리고 소하 선생의 작업장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