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죽음에서 돌아온 적
헌터 연합의 본부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이 아닌,
“최만근입니다.”
당당히 들어오는 그의 풍채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4주간의 헌터 기초 교육을 단 2만에 조기 수료 한 천재 중의 천재.
헌터 협회에서 보고를 전해 듣고 서필도가 얼굴이나 볼 겸 부른 것이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는 강철남도 있었다.
“앗! 마황제님!”
최만근은 강철남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강철남은 그를 알아보고 손을 들어 인사했다.
지난 번 만났을 때에 비해 몸집이 더 커져 있었다.
그때에는 단순히 잠재 파워를 끌어올려 준 것이었지만 그 이후에 얼마나 강해질지는 본인의 능력에 달려있었다.
“열심히 했구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최만근은 힘을 가질 자격이 있는 남자였다.
“둘이 아는 사이입니까?”
“저 친구의 잠재 능력을 끌어내 주었지.”
“그렇군요. 강철남씨와 인연이 있었기에 그토록 강했던거로군요.”
서필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만근에게 악수를 청했다.
“헌터 연합의 본부장 서필도입니다. 만근 씨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 역시 본부장님의 이력과 활약에 많은 감명을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허허. 감명까지야.”
최만근은 자리에 앉아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이는 23살.
어려서부터 헌터들의 활약상을 보고 듣고 연구하며 자란 자기 과거사를 이야기했다.
그는 이른바 헌터 덕후였다.
최만근 그 자신도 헌터를 꿈꾸었으나 스스로 재능의 한계를 그어 잘못된 길로 빠지고 말았다.
키보드 워리어로 열등감을 드러내며 남을 비방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좌절과 시기로 못난 인생을 살고 있을 때 강철남을 만나 구원을 받은 것이다.
“제게 마황제님은 은인이십니다.”
“하하. 인류에게 있어서도 강철남씨는 은인 아닙니까.”
“거참. 다들 그만들 하시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그리고 강철남은 본격적으로 마족 경찰대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마족 경찰대요?”
최만근은 강철남이 벌이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건 관심을 보였다.
그만큼 그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
“나쁜 인간을 잡는 마족 경찰대를 창설할 거다. 마족들로만 구성하지 않고 인간들도 필요해. 그래서 그중 한 자리를 너에게 부탁할까 한다.”
“저한테 그런 중책을요?”
마황제의 제안에 최만근은 살짝 긴장한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것이 곧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족 경찰대에 최만근이 합류했다.
강철남에게는 이보다 든든할 수는 없었다.
루키 헌터가 마족의 의식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에 앞장서 주니 말이다.
“그럼 정식으로 마족 경찰대 창단식을 해야겠군요. 나머지 대원들은 누구누구죠?”
“이 일에 적합한 최고의 인재들로 뽑았습니다.”
강철남은 자신만만하게 부적을 하늘로 던졌다.
푸른 빛을 띠며 하늘로 치솟은 부적은 누군가를 부르듯 신호음을 울리며 소멸했다.
그러자 금방,
펑!
하얀 연기를 풍기며 복면을 쓴 멍구가 나타났다.
멍구의 뒤로는 큼직한 그림자들이 연기 속에 숨어 있었다.
“오오, 설마 저들이 마족 경찰 대원들인가요?”
“그렇소. 다들 이번 일에 적극적인 베스트 멤버들이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멍구 뒤로 용족 설로번, 드리곤 칼론, 사자 수인 라온이 서 있었다.
강철남의 소개로 최만근과 인사를 나눈 마족들.
이로써 본격적으로 마족 경찰대가 창설된 것이다.
* * *
마족 경찰대가 창설된 지 일주일째.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은 번개같이 나타난 마족 경찰대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체포되었다.
검거율은 일반 경찰들이 반년 동안 달성한 검거율과 맞먹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들의 활동은 호쾌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젠장! 왜 마족들이 인간끼리의 문제에 끼어드는 거야?!”
그날도 어김없이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는 골목길에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쿵―
“끄악!”
복면 멍구가 범죄자의 허리를 짓누르며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입이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인간끼리의 문제가 아니야. 네가 문제잖아.”
“살다 살다 개한테 잡힐 줄이야.”
“개한테 뒤져볼래?”
멍구는 궤변을 늘어놓는 범죄자를 포박해 하늘을 향해 신호탄 마법을 쏘아 올렸다.
신호를 보고 달려온 경찰들이 인근의 CCTV를 확보해 범죄자의 범행을 증거로 삼을 것이다.
범죄는 인간끼리 일어나기도 했지만 마족과 인간 사이에도 일어났다.
“크크크. 가진 걸 다 내놔라, 인간!”
“사, 살려주세요…….”
길을 걷던 남자가 칼을 든 고블린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남자는 손목에 있는 명품 시계를 풀어 고블린에게 건넸다.
고블린이 시계를 낚아채려 할 때 아까운지 스윽 자기 쪽으로 빼는데,
“내놔.”
“아직 할부도 안 끝난 건데.”
“X팔! 내가 알 바야? 선택해. 여기서 뒤질래, 그거 내놓을래?”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
미친 고블린은 갑자기 돌변해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은 남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신속]
[포박]
꽈악―
“크악!”
최만근이 날아와 고블린을 포박했다.
깔끔하게 손목이 묶인 고블린은 바닥에 엎어져 버둥거리며 괴로워했다.
“너희 같은 녀석들 때문에 인간과 마족의 화합이 늦춰지는 거다.”
최만근은 하늘을 향해 신호탄 마법을 쏘았다.
빛을 내는 신호탄으로 여기에 범죄자가 묶여 있다는 걸 알린 뒤 최만근은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다음 순찰 섹터로 이동하려는 그때,
“저건?”
하늘에 라온의 신호탄 마법이 올라왔다.
붉은색으로 그려진 라온의 사인.
그것은 범죄자를 잡았다는 신호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길래 라온 씨가.”
바로 구조 신호였다.
[초신속]
최만근은 최대 속도로 지붕을 넘어 달려갔다.
라온 같은 실력자가 구조 요청을 하다니.
대체 어떤 녀석과 맞붙은 걸까?
“퉤!”
라온은 입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당최 이해가 안 되는 상대였다.
실력의 차이를 논할 것이 아니었다.
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왜 공격이 안 먹히는 거지?”
맞선 적에게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물리적 타격은 물론 마력을 담은 마법마저 홀로그램을 통과하듯 투과할 뿐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녀석은,
“크큭… 구독과 좋아요…….”
기분 나쁜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젠장! 너 뭐 하는 새끼야?”
[포효]
라온이 크게 짖자 진공파가 날아갔다.
그러나 적의 몸을 그대로 관통하고 엄한 자동차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적은 손을 칼날 모양으로 변형하여 라온을 노려봤다.
“하, 이거 X 같구만.”
촤악―
날카로운 금속 칼날은 라온의 가슴팍을 베었다.
“으악!”
뒤로 물러나면서 깊은 좌상은 피했으나 넘어지는 바람에 다음 동작이 어려워졌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휘익―
그 순간 하늘에서 뛰어 내려온 최만근이 라온을 안고 뒤로 물러났다.
녀석을 덮칠까 생각도 했지만 라온이 밀릴 정도의 실력자라면 자기 검은 통하지 않을것이라 판단했다.
“현명하군.”
“적은 얼마나 강하죠?”
“공격이 안 통해. 그냥 통과하고 말아. 이상한 녀석이야. 멍구님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
그때 마침 용족 설로번이 입에서 불구슬을 쏘며 나타났다.
화염은 적의 몸을 휩쓸며 타올랐다.
그러나 불길만 일렁이고 바닥만 그을릴 뿐 적에게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못했다.
“저 녀석은 대체 뭐지?”
“도망쳐야 해, 설로번. 우리로서는 무리야.”
“긍지 높은 용족이 싸움에서 물러설 순 없지.”
설로번은 발톱을 세우고 적의 목을 베었다.
하지만 그대로 통과해버리고 말았다.
“크크큭… 구독도 부탁드립니다!”
파앙―!
적은 두손을 모아 커다란 해머를 만들더니 설로번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설로번은 담벼락을 박살 내며 기절하고 말았다.
라온이 달려가 상태를 확인해보니 아무래도 뼈가 부러진 듯했다.
당장 치료가 시급했다.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까요?”
“확신할 수가 없겠군.”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이쪽을 노려보는 적에 맞서는 최만근은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혹시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이봐. 네 목적은 뭐지?”
“크큭. 구독과 좋아요.”
“혹시 너튜버냐? 돈 때문에 이러는 거야?”
“크크큭… 부탁드립니다.”
적은 양손을 칼로 만들어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다.
미친놈인가?
도저히 대화가 안 되는 상대였다.
이대로는 위험했다.
설로번을 업고 녀석의 속도보다 빨리 도망칠 수 있을까?
라온 역시 출혈이 심한데 동시에 케어 할 수 있을까?
최만근은 머리가 하얘졌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주변에서 떠받들어주었지만 이렇게 경험이 부족한 좌절을 겪으니 기분이 참담했다.
“젠장!”
고민하는 사이 적의 칼끝이 최만근의 코에 닿을 듯 가까이 왔다.
정말 끝이라 생각이 드는 그때,
[멍구 등장!]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환한 빛이 터졌다.
섬광탄을 정면에서 맞은 것처럼 눈이 찢어질 듯 아파왔고 귀에는 이명이 울렸다.
“끄악!”
“멍구님, 우리도 있다구요!”
“크크큭…….”
땅으로 내려온 멍구는 최만근의 뒷덜미를 물어 뒤로 내던졌다.
적이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멍구는 녀석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너 이 새끼?!”
멍구는 녀석을 알았다.
북한산에 잡입 했던 너튜버, 박준범.
분명 죽었던 녀석이지 않은가.
“멍구님. 조심하세요! 녀석에겐 타격도, 마법도 통하지 않습니다!”
“오호라, 죽어서 나타나 놓고 공격이 안 통한다라. 귀신이라 이거냐?”
[마력탄]
시험 삼아 멍구는 마력을 담은 공격을 방출했다.
그러나 그 역시 박준범의 몸체를 관통하고 엄한 자동차 한 대를 박살 내고 말았다.
“씨X 저거 벤X 아니냐? 조졌네.”
“크크큭… 구독!”
“방송은 지옥 가서 해, 뒤진 놈이 왜 이승에서 지랄이야.”
[신수의 빛]
이번에는 도력을 담은 빛을 뿜어냈다.
빛줄기는 세차게 날아가 그대로 박준범의 오른팔을 찢었다.
“도력은 통하는 모양이로군.”
“끼끅!”
[신의 발톱]
다음 수단으로 멍구는 신력을 발톱에 담았다.
박준범의 목을 향해 있는 힘껏 발톱을 휘두르자,
“키케켁!!”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녀석의 몸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이 쪼개어지듯 파동이 일어나더니 녀석의 몸이 차츰 흐려졌다.
멍구가 한 번 더 공격을 먹이자 마침내 완전하게 소멸하고야 말았다.
“멍구님. 방금 그 녀석은 뭐죠?”
“나는 멍구가 아닌데.”
“…복면 멍구님.”
라온은 귀찮지만 맞춰주기로 했다.
“예전에 죽은 요괴야.”
“그런데 어떻게 살아온 거죠? 마력은 왜 안 통하는 거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기 어디 점집이라도 찾아가 봐.”
혼란스러운 마음에 멍구도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이건 안 좋은 징조라는 것이다.
그때 강철남으로부터 부적 호출이 날아왔다.
멍구는 라온과 칼론, 최만근을 병원으로 이동시켜 주고 집으로 향했다.
“철남이, 무슨 일이야?”
“이걸 봐.”
강철남 가족이 보고 있던 TV에는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보도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에 죽은 자들이 나타나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이거 영화냐?”
“실화다. 가짜보다 더 진짜 같은 현실이지.”
민하는 무서운지 가이아에게 꼭 안겨 있었다.
“철남. 뭔가 대책을 강구 해야겠구나.”
“그래. 원인을 찾기 전에 우선 수습부터 해야겠어.”
“철남이. 녀석들하고 싸우고 왔는데 마력은 안 통했어. 통하는 건 도력과 신력뿐이야.”
“뭐? 하필이면 까다롭게 되었구만.”
잠시 생각에 잠긴 강철남은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