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민하의 가을 소풍
민하가 오랜만에 학교에 등교했다.
가을 하늘은 맑았고 본격적으로 초등학교 2학기가 시작되었다.
개학식 첫날, 교장은 마계로부터 한 장의 초대장을 받았다.
그것은 무려 학교의 전교생을 희망 테마파크로 초대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올해에도 가을 소풍은 어김없이 경주 불국사 현장 체험 학습일 거라 낙관하고 있던 아이들.
한 아이가 마계 희망 테마파크로 간다는 정보통을 교무실에서 몰래 엿듣고 교실로 달려들어 오며 소리를 질렀다.
“야야야!! 그거 들었어? 이번 가을 소풍 희망 테마파크로 간대.”
“진심? 개꿀! 핵꿀! 미쳤다!”
“마계로 가는 거야? 신난다!”
“어떡해, 어떡해!”
아이들은 방방 뛰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이들에게 마계와 마족은 신비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지의 세계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마계로 가는 것도 모자라 그 유명한 희망 테마파크라니.
희망 테마파크는 이미 마계 홍보팀이 열심히 선전하여 인간계에서도 아주 유명한 핫스팟으로 알려져 있었다.
개장하기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개장하자마자 전 세계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려와 그곳에서의 유희를 즐겼다.
희망 테마파크의 규모는 거의 인간계의 대륙 크기와 맞 먹었다.
그렇게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몰려왔음에도 광활한 희망 테마파크를 전부 채우지는 못했을 정도니 말 다 한 것 아닌가.
사람들이 흩어져 희망 테마파크의 이곳저곳을 탐험해봤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을 정도였다.
“흥, 어린애 같기는. 그깟 테마파크가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겠어?”
한율은 호들갑을 떠는 건 어린 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팔짱을 낀 채 콧방귀를 뀌었다.
“한율아. 완전 기대되지 않니? 너무 재밌겠다!”
“뭐… 나쁘지는 않겠지.”
시크한 척 하는 한율이었지만 옆에서 민하가 바람을 넣으니 은근히 가슴속에 기대감이 부풀기 시작했다.
“한율아. 여기 팜플렛 같이 보자. 우리 여기에 가볼까? 대나무숲 공원. 판다처럼 생긴 마족들이 대나무를 먹는 걸 볼 수 있대. 여기도 재밌을 것 같아. 별빛호수.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에 신기한 괴물이 살고 있대.”
“재, 재밌어 보이네. 참고로 나는 고양이가 좋아.”
“그럼 여기 가보자! 호랑이 마족들이 산다는 정글 탐험!”
“무서워! 고양잇과라고 다 같은 건 아니라구!”
처음에는 일부러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한율도 옆에서 신나게 설명하는 민하에게 동화되어 어느새 소풍을 기대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민하는 반 친구들은 물론 학교의 모든 아이가 희망 테마파크 이야기로 들뜬 걸 보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 멍구와 함께 만든 마계 테마파크가 드디어 친구들에게 공개되려 한다.
* * *
“엄마, 아빠, 멍구야. 다녀오겠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망 테마파크로 떠나는 소풍날.
민하는 활기차게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철남, 희망 테마파크에 안전 문제는 없겠지?”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안에 있는 마족들 모두 인간들에게 호의적인 마족들이고 경비대도 있으니까.”
“철남이, 또라이 불변의 법칙이라고 사람들이 셋 이상 모이면 그중에 꼭 또라이는 하나 끼어있기 마련이래.”
“응, 그런 것 같아. 나랑 가이아랑 멍구. 이 셋 중에도 하나 있으니까.”
“철남이, 그렇게 자신을 깎아내릴 것 없네.”
“이 악물고 모르는 척하기는.”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민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철남은 어쩐지 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안 되겠어.”
“뭘?”
“멍구, 출동이다.”
“아, 왜! 오늘 동네 개들이랑 음식점 털려고 했단 말이야.”
“다녀 올게, 가이아.”
“잘 다녀오거라.”
혹시 몰라 민하의 뒤를 따라가기로 한 강철남.
멍구의 목덜미를 잡고 공간 이동 도술을 펼쳤다.
한편, 민하네 학교는 운동장에 모든 아이와 교사를 모아두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와.”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어, 저기 버스 온다!”
1분 기다리는 것도 1시간처럼 느껴지는 그때, 이윽고 버스가 도착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선생님들은 지나치게 들뜬 아이들을 통제했다.
“민하. 넌 내 옆자리에 앉아야 해. 알겠지?”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한율아.”
“왜?”
“왜 며칠 동안 계속 그 얘기만 해?”
“시끄러!”
아이들을 실은 버스는 마계 터미널로 향했다.
마계 터미널.
허가받은 자들이 마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검은 구멍이 생성된 정거장이 있는 곳이다.
마족과 인간이 엄격하게 관리하는 터미널에서는 명확한 절차가 생명이었다.
교장 선생과 교감 선생은 절차에 따라 관련 서류와 증명서를 보여주었고 인솔할 관리직 마족이 다가와 학생들의 인원과 신상을 파악했다.
약 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마계로 진입하는 허가가 내려졌다.
아이들은 또 한 번 환호성을 터뜨렸다.
부릉부릉―
버스도 긴장한 듯 배기음을 내뿜으며 정거장으로 향했다.
지정된 정거장으로 이동하자 마계로 향하는 검은색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정거장에 생성된 구멍은 사전에 제출한 서류에 따라 지정된 목표 지점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버스가 마주하고 있는 구멍은 희망 테마파크로 직행하는 구멍인 것이다.
“오, 간다. 간다!”
“어떡해. 드디어 마계로 가나 봐.”
“긴장돼서 오줌 마려워.”
버스 기사는 구멍을 향해 버스를 나란히 세우고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버스는 천천히 바퀴를 굴려 구멍을 향했다.
마침내 구멍이 버스 전체를 집어삼켰고 학생들은 어둠의 통로로 빠져들어 갔다.
떠들썩하던 아이들도 온통 검게 물든 통로를 지날 땐 긴장 되어 표정이 굳고 말았다.
어떤 아이들은 훌쩍훌쩍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는 아이도 있었고, 맨 앞자리의 선생님에게 얼굴을 파묻는 아이도 있었다.
한율은 저도 모르게 민하의 손을 꼭 잡았고 민하는 그런 한율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다독여주었다.
“빛이 보여!”
마침내 반대편에 다다른 빛이 버스 앞에 나타났다.
아이들은 미어캣처럼 자리에서 고개를 삐죽 들고 버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하얀 빛에 주목했다.
힘차게 달려 나가는 버스가 빛과 충돌하자 아이들의 눈앞에 조명을 비춘 것처럼 하얀 광경이 덮쳐왔다.
그리고,
“마계다!”
아이들의 눈은 순식간에 별빛을 담은 듯 반짝이기 시작했다.
버스는 희망 테마파크라고 적힌 거대한 나무 간판 아래를 지나 공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들뜬 아이들이 엉덩이를 뗐다 붙였다 정신없이 까불댔다.
겁을 먹었던 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자, 전부 가방 꼭 챙겨서 내리도록 해요. 계단 조심하고.”
담임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아이들은 버스에서 하나둘 내렸다.
직접 내려서 둘러보니 마계라는 실감이 날 정도로 공기의 질감이 달랐다.
게다가 처음 보는 종류의 나무와 풀, 심지어는 잡초까지.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이 팍팍 전해졌다.
“민하. 뭔가 낯설지 않아?”
“으응? 응. 그렇네.”
사실상 고향에 돌아온 민하는 정겨운 느낌이 들었지만, 정체를 꼭꼭 숨겨야 했기에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는 척 연기를 했다.
“여러분. 희망 테마파크에 잘 오셨어요!”
“우와!!”
아이들이 환호하는 까닭은 오늘의 가이드로서 알파카 수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알파카는 해맑은 미소와 귀여운 몸동작으로 아이들의 관심과 호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오늘 하루 이 알파카 언니의 말을 잘 들어야 재밌는 테마파크 모험을 즐길 수가 있답니다. 모두 언니 말 잘 들을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죠?”
“네에!”
“그럼 첫 번째로 모험을 떠날 곳은 바로 바로 바로 정글 공원이에요! 모두 정글 공원을 향해 레츠고!”
친절하고 귀여운 마족이 안내를 해준다니, 아이들은 꼭 환상의 나라에 온 기분이라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민하! 우리도 가자.”
한율은 민하의 손을 꼭 잡고 알파카를 따라갔다.
민하는 벌써 뿌듯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향할 정글 공원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귀엽고도 신기한 마족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편, 정글 공원에서는.
“X바… ㅈ 된 거 같은데요, 형님?”
“포기하지 마. 진짜로 ㅈ 되기 전까지는 ㅈ 된 게 아니야.”
고층 빌딩만큼 커다란 바오밥나무 뒤에 숨어 있는 자들은 보물 사냥꾼 스켈레톤 형제.
어째서 희망 테마파크에 보물 사냥꾼이 있는 걸까.
희망 테마파크의 숨겨진 묘미 중 하나!
바로 곳곳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마황제가 숨겨두었다고 알려진 보물은 총 3개로 그것의 정체와 가치는 베일에 싸여있었다.
물론 이 보물들은 희망 테마파크를 방문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지 음흉한 보물 사냥꾼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보물을 찾는답시고 자연을 훼손하고 땅을 헤집고 다니는 녀석들은 바로 경비대에게 잡혀 참교육 당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런고로 이 스켈레톤 형제.
땅을 파헤치다 나무를 쓰러뜨려 경비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젠장. 보물도 못 찾고 빈손으로 돌아가는데다 도망자 신세라니.”
“오늘 무지하게 일이 꼬이네요.”
“어쩔 수 없다. 경비대의 눈을 피해 달아나는 건 포기. 강행 돌파다.”
“가능하시겠어요? 쟤네들 엄청 강해 보이는데.”
“흥. 이래 봬도 너나 나나 A 랭크다. 목숨 하나는 부지할 수 있어. 그럼 간다!”
그때, 멀리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스톱.”
“뭐죠?”
“아이들 목소리인데?”
“소풍이라도 온 모양인데요.”
“좋아, 작전 변경이다. 저 애들을 인질로 삼는 거야.”
“네? 형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양아치 짓이 아닐까요?”
“얌마! 그럼 감방에서 썩을래?”
“그건 싫은데요.”
“그럼 새끼야, 시키는 대로 해. 말이 많아.”
스켈레톤 형제는 뼈다귀 낫을 꼭 쥐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주시했다.
아이들이 즐겁게 떠들며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음.”
“민하. 왜 그래?”
“아니야, 아무것도.”
민하는 미약한 살기를 느꼈다.
설마 싶었지만 틀림없는 불온한 기운이다.
어째서 이곳에 나쁜 녀석들이 있는 걸까.
‘아이들이 위험할지도 몰라.’
위기를 감지한 민하는 어쩔 수 없이 발연기라도 하기로 했다.
“어라?”
민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뭔가 있는 척 한다.
“가자!”
그 순간 스켈레톤 형제가 [신속]을 사용해 총알같이 아이들을 향해 날아왔다.
정확히 그 타이밍에,
짜악―
“모기가 있네.”
민하가 손바닥을 세게 마주쳤고,
“끄아악!!”
휘잉―
그 풍압에 뼈다귀 형제는 미사일처럼 왔던 방향 그대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민하.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 무슨 소리?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그래? 이상하다. 그건 그렇고 모기가 있어? 싫다. 벌레에 물리는 건 딱 질색인데.”
민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버무리고 한율의 손을 잡고 알파카를 따라갔다.
“형님, 방금 그건 뭐죠?”
“낸들 알겠냐? 경비대인가?”
“아이였다고요. 아이가 손뼉을 치니까 저희가 막 날아가 버렸잖아요.”
“아이였다고? 진심이냐?”
“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스켈레톤 동생의 텅 비어버린 눈을 보며 스켈레톤 형은 대가리를 때려 줬다.
“정말 아이라면 대체 저 아이는 뭐지? 손뼉으로 일으킨 풍압만으로 우리를 날려버렸다는 건가?”
“인간의 아이 중에 그런 괴물이 있다고요?”
“믿기지 않지만 방금 겪은 일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사실일 거야. 그렇다면…….”
“어쩌시게요?”
“크크크. 저 아이를 먹으면 엄청난 힘을 얻게 될 거야.”
사악하게 웃는 스켈레톤 형을 보며 동생은 관절이 뽑힐 만큼 화들짝 놀랐다.
“형님! 마황제가 공표했잖아요! 인간을 해하는 건 최고 형벌에 처해 진다고요!”
“잘 둘러봐. 이 광활한 공원에서 애가 하나 사라졌다. 그 범인을 어떻게 찾겠냐. 경비대만 하더라도 우리를 놓쳤잖아?”
“그, 그러게요. 어느새 경비대가 안 보이네요.”
“좋아, 지금부터 저 아이들을 잘 주시해. 한 눈을 팔고 있을 때 덮치는 거야.”
스켈레톤 형제는 조각난 뼛조각을 끼워 맞추고 다시 기습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