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마계 테마파크를 만들자
강철남 가족은 마계 그린 캠프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구상하고 있는 마계 그린 캠프란 자연 휴양림인 ‘도시 멍구’를 중심으로 마계의 자연을 탐방하는 캠핑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방치에 가까이 내버려 두고 있는 ‘도시 멍구’를 개발하여 주말 간 가족 단위로 즐겁게 놀다 갈 수 있는 테마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다.
“철남, 그 테마파크라는 게 무엇인가?”
“한 마디로 ‘아하! 거기 하면 이거지!’하고 딱 떠오르는 테마가 있는 공원이야.”
“도시 멍구에는 뭐가 있을까…….”
민하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멍구가 끼어들었다.
“거기에 야생 동물들밖에 없어서 지금 완전 똥밭 일걸.”
“그걸 네가 말하고 앉아 있냐? 거기 마왕 아니야? 관리 안 해?”
명색이 마왕이면서 자기 도시 관리에 소홀한 멍구.
정작 써먹으려 할 때에 도움이 안 되었다.
“멍구의 말대로 거기는 지금 방치된 땅이야. 지금은 자연 생태계 그 자체라 정글이나 다름없어. 다듬고 가꾸어서 인간들이 자연을 즐기며 쉬다 갈 수 있는 안전하고도 아름다운 초목으로 가꾸어야 해.”
“그래,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야.”
“그리고 이름도 바꿔야 해.”
“그래, 그… 뭐어?!”
강철남이 개명을 제안하자 멍구의 턱이 떡 벌어져 바닥까지 떨어졌다.
“아니, 이름은 왜?”
“휴양림 이름이 멍구가 뭐냐. 도시 이름을 무조건 마왕 이름을 따서 지어야 한다는 거 완전 옛날 낡은 전통이잖아. 이름도 바꿀 거야. 괜찮은 이름 공모전으로 모집해서 뚝딱 짓자고.”
“부들부들.”
“그럼 멍구 네가 원하는 이름 있으면 공모전에 출품해 봐. 선정되면 그걸로 써 줄게.”
“오냐, 아주 끝내주는 이름으로 지어주겠어.”
멍구가 머리를 감싸 쥐고 휴양림의 새 이름을 구상하는 동안 가이아와 민하는 스케치북에 놀러 올 인간 가족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적고 있었다.
“예쁜 오두막집과 벽난로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거 좋구나. 그럼, 엄마는 해먹.”
“그리고 또 바비큐!”
“흐르는 시냇물과 멋진 계곡.”
가이아와 민하는 스케치북에 멋진 아이디어들을 적어 내렸다.
그 아이디어대로만 테마파크를 만들어도 기본은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거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마계의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를 만들 생각이기 때문이다.
* * *
“그런 이유로! 모든 마족의 아이디어를 모집하도록 하겠다. 채택되는 아이디어는 테마파크 건설에 적극 반영할 것이며 당선자의 이름을 테마파크 입구에 새겨주도록 하겠다. 물론 상금도 두둑이 챙겨주마.”
강철남은 마계 최대의 공모전을 개최했다.
카르텔, 크레톤, 가이아, 도시 멍구.
네 도시에 테마파크 공모전 전단지가 마구 흩날렸다.
부문은 테마파크 작명 부문, 테마파크 주제 선정 아이디어, 놀이 프로그램 아이디어 부문. 이 세 가지였다.
성남 카페 1호점에 붙은 전단지를 보며 마족들은 각자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드래곤을 타고 날아다니는 프로그램은 어때?”
“무슨 전쟁 났냐?”
“아니, 아니. 인간들은 드래곤을 안 타봤을 거 아니야. 우리처럼 전쟁 났을 때만 타는 게 아니라 놀이로 타 보면 좋을 것 같지 않냐?”
“미친놈아. 드래곤을 재미로 타는 인간들이 있을 것 같냐?”
마족들은 생각 이상으로 센스가 없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일지라도 인간과 공감대가 달랐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도 제출하지 않고 쓰레기 취급하기도 했다.
물론 그 쓰레기를 주워다가 써먹는 자가 있었으니.
“철남. 김성남이 재밌는 아이디어를 냈다.”
“어디 보자. 드래곤을 타고 비행 산책하는 놀이 프로그램. 이거 괜찮은데?”
“일단 놀이 프로그램 수상은 이게 가장 유력해 보이는구나.”
강철남과 가이아가 지금까지 제출된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테마파크 주제 선정과 작명 부문 자료를 읽어 보는데 이건 무슨 뜻이에요?”
민하가 이해가 안 되는지 제출된 자료를 가져왔다.
어쩐지 불안불안한 기운을 느끼며 강철남이 받아 들고 읽어봤다.
[얼음 궁전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제안합니다. 빙결 마법으로 꽁꽁 얼린 빙하와 설산에서 미끄럼과 스키를 즐기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지은 테마파크의 이름은 도시 멍구의 이름을 따 ‘빙구’로 설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빙구라니, 장사 조질 일 있나.”
“아빠, 여기 또 있어.”
[화염 지옥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제안합니다. 화염 마법으로 활활 타오르는 용암 지대와 불길 속을 탈출하는 스릴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지은 테마파크의 이름은 도시 멍구의 이름을 따 ‘불구’로 설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불구는 지랄. 이 새끼가. 하다못해 이건 테마파크가 아니라 그냥 지옥이잖아.”
“아빠, 마지막!”
[한반도의 형상을 한 호랑이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제안합니다. 호랑이들을 쓰다듬을 수 있고 호랑이들과 뛰어 놀며 함께 사진을 찍으며 특별한 추억을 남겨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지은 테마파크의 이름은 도시 멍구의 이름을 따 ‘호구’로 설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젠 테마파크 작명 공모전인지, 드립 공모전인지도 모르겠다.”
강철남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마족들의 창의력 수준이 심히 걱정이 되었다.
“안 되겠어. 특단의 조치를 취하자.”
브레인이 필요해.
강철남은 그가 아는 한 마계에서 가장 똑똑한 자들을 모았다.
* * *
벤티 학원에서 그리운 홍차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강철남과 가이아는 아쌈티를 마시며 지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막 수업을 마친 하림 선생이 원장실에 들어왔다.
베거는 그를 위한 커피를 건네주었다.
곧이어 멍구가 하얀 연기를 흩날리며 왕립 학교에서 마론 교수를 모시고 왔다.
마론 교수는 등껍질을 매단 채 살금살금 걸어와 소파에 앉았다.
이로써 브레인들이 모두 모였다.
“…멍구야, 오늘은 할 일 없니?”
“없어. 나도 낄래.”
“…좋아.”
이로써 브레인들(+빡구)이 모두 모였다.
“마론 교수님, 바쁜 시간 중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보낸 서신은 읽어 보셨는지요?”
“허허허. 물론입니다. 아주 재밌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시더군요. 저도 들떠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보았답니다.”
“오오, 이렇게 감사할 수가.”
마론 교수의 아이디어는 이제까지 본 공모전의 아이디어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훌륭했다.
마계의 지형에 따라 달라지는 수목 종류를 고려하여 섹터를 나눈 티테일이 인상 깊었다.
특히 열대우림 지역은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을 연상케 하여 인간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줄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마계의 박물관을 중앙에 비치하여 인간에게 마족에 관해 알려줄 수 있는 교육 시설도 하나 설치했다.
이 모든 것들을 홀로 구상한 것도 모자라 인간들이 경제 사정에 따라 마계 체험의 기회에 차등이 생기지 않도록 합리적인 비용으로 마계 그린 캠프를 즐길 수 있도록 투어 금액까지 산정해주었다.
“이것 참. 저희가 할 일까지 모두 빼앗겨버렸군요.”
베거가 마론 교수의 아이디어를 읽어 보며 감탄했다.
“이건 청사진일 뿐입니다. 저는 거시적으로 설계도를 그렸을 뿐, 미시적인 부분은 젊은 분들이 수고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마론 교수는 점잖게 웃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철남, 어떠냐?”
“좋은 것 같아. 여기서 가이아가 내주었던 사계절로 나누어진 섹터를 조합해보자고.”
“내 아이디어라고 해서 무리하게 넣지 않아도 된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내 건 무시하거라.”
“그럴 바엔 하지 않겠어. 이건 우리가 함께 만드는 테마파크니까. 가이아의 아이디어도 꼭 넣겠어.”
“철남.”
강철남과 가이아의 눈에서 따뜻한 불길이 일렁였다.
“일하러 와서 깨 볶고 있냐?”
“으흠. 자 그럼 작명도 고민해봅시다.”
꽁냥꽁냥대는 둘에게 질책을 날린 멍구는 낄낄대며 고소해했다.
“강철남님, 작명 공모에는 어떤 안건들이 나왔죠?”
“어떤 미친 녀석이 ‘멍구 테마파크’라는 이름만 백 통을 넘게 써서 보냈소.”
“누구인지 정말 모르겠군요.”
그렇게 말하면서 모두 똑같이 한 곳만을 바라보았다.
“뭐? 여기 민주주의 국가 아냐? 내 할 말 내가 못 해?”
“무튼 이건 기각.”
“히잉!”
그때 하림 선생이 날개를 들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인간계의 말 중에 심플 이즈 베스트라는 말이 있죠. 마계 테마 파크 어떻습니까?”
“좋긴 한데 너무 무난하오. 정말 최후의 보루로써 채택할 이름 같소.”
“그럼 인간과 마족의 앞 글자를 따서 ‘인마 테마파크’는 어때?”
“조용히 해, 인마.”
“푸른 숲 테마파크는 어때요?”
“좋긴 한데 임팩트가 약하오.”
“그렇다면 힐링 테마파크는?”
“좀 더 마계스러움이 묻어났으면 좋겠소.”
작명이란 알기 쉽고도 개성적이어야 하는 법.
참으로 어려웠다.
지성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어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때, 가이아는 자기가 태어났던 엘프의 숲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함께 살아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그 위에 겹쳐 세워보았다.
“그럼… 희망 테마파크는 어떤가?”
“응?”
“별로인가? 인간들에게, 그리고 마족들에게 서로 희망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붙이고 싶었다.”
애초에 휴양림 테마파크인 이상 자연과 관련된 단어를 수식어로 붙일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를 붙이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희망이라…
좋은 단어였다.
“좋군요. 이름을 듣는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의의를 전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호호호. 동감입니다.”
“나도 찬성이라네.”
“나는 반대하… 웁웁!”
그렇게 만장일치로 테마파크의 이름은 희망 테마파크로 결정되었다.
본격적으로 인간계와 마계의 문화 교류가 시작되려 했다.
* * *
도시 멍구가 허물어지고 희망 테마파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족들이 대거 투입된 대대적인 공사가 개시되었다.
마족과 인간의 합작이라는 명목으로 짓기 위해 인간계의 건설 전문가들도 초빙했다.
두바이의 유명한 건물을 디자인한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킴은 안전모를 쓰고 강철남과 인사했다.
“미스터 강. 이런 영광스러운 기회에 참여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저희야말로 유능한 건축 디자이너께서 협력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임스 킴은 마족들에게 땅을 팔 것을 지시했다.
지질까지 고려해서 이 정도 규모의 땅을 파는 데는 족히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사이 다른 일을…
“제임스 씨. 다 팠수다.”
“왓?”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마족들의 힘에 제임스 킴은 놀라는 한편 이에 고무되어 작업 속도를 그들의 노동력에 맞추었다.
“언빌리버블! 마족들 어메이징해!”
무시무시한 근력과 상식을 초월한 마법으로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공사가 시작된 지 정확히 두 달 뒤, 마계 각지에 있는 수목들이 도착하여 삽목 되면서 마침내 희망 테마파크가 완공되었다.
때는 가을이었지만 사계절이 모두 존재하는 희망 테마파크에서는 더위와 추위 모두 맛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이건 새로운 불가사의예요.”
제임스 킴은 자기가 디자인하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 희망 테마파크를 방문하는 인간들은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