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황기민의 탐정 사무소
카르텔에 황기민의 탐정 사무소가 열린 지 일주일째.
어떻게 고객이 단 한 명도 없을 수가 있나.
처음에는 웬 인간이 탐정이라는 처음 보는 사업을 한다길래 신기해서 구경삼아 몰려왔던 몬스터들도 지금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젠장! 왜 아무도 의뢰를 하러 오지 않는 거지? 무엇이든 해결해 줄 텐데. 심지어 집 나간 고양이 찾아 달라는 의뢰조차 없잖아.”
황기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사무실에 앉아 멍하니 죽치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혔다.
홍보도 열심히 진행 중이고 여기저기 영업도 뛰어봤는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래도 마계에선 탐정이란 생소한 직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민이 있더라도 고객들은 검증받지 못한 신사업이라 방문을 꺼리는 모양이다.
마족들은 사건이 생기면 차라리 경비대에 의뢰하지 굳이 탐정 사무소로 오지는 않았다.
“으으. 이 새끼들. 그냥 내가 사건 하나 만들어버려?”
점점 미쳐가는 황기민.
창밖으로 돌이라도 던지려고 자세를 잡아봤다.
그러던 그때,
똑똑똑―
이건 노크소리?
분명히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찾아온 것이다.
“어서오십시오!”
황기민이 헐레벌떡 문을 벌컥 열며 방문객을 향해 화통하게 인사를 건넸다.
“히익!”
방문객은 갑작스레 문이 활짝 열리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중년쯤 되어 보이는 비버 부인으로 땡그란 검은 눈을 떼록떼록 굴리며 황기민을 바라보았다.
“들어오십시오.”
황기민은 씩씩한 기세에 어울리지 않게 상냥하게 굴었다.
비버 부인은 당장이라도 후진 기어를 넣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살짝 나사가 풀려 보이는 이 남자에게 해코지라도 당할까 불안해 쭈뼛쭈뼛 순순히 안으로 들어왔다.
비버 부인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이리저리 눈치를 보았다.
“안심하십시오. 안 잡아 먹습니다.”
“정말요?”
농담으로 던진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니 할 말을 잃었다.
화제를 바꿔보자.
“커피 드시겠습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황기민은 믹스 커피를 타려다 실망한 듯 컵을 도로 가져다 놓았다.
첫 상담 고객한테 커피를 대접하는 게 로망이었는데.
“어떤 일로 찾아오셨죠?”
“저… 여기는 무슨 사건이든 해결해주는 곳 맞나요?”
“네 모든 사건을 해결해드리지요.”
이 인간을 믿어도 되는 걸까 하는 눈빛을 보내는 비버 부인.
하지만 눈치 따윈 개나 줘버린 황기민이 그런 눈빛에 예민하게 반응할 리 없다.
“먼저 사건 경위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희 남편이 사라졌거든요.”
“외도입니까?”
“천만에요! 그런 비버 아니에요!”
“아하하. 성급했군요. 천천히 경위를 말씀해주시지요.”
급발진을 하는 이 인간을 믿어도 되나 의심이 갔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상담이나 받아보자하는 마음에 비버 부인은 다시 목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서 하는 말은 모두 비밀 보장이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사실… 저희 남편은 MMM단의 전 멤버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돌려 탈퇴를 했죠. 그랬더니 집으로 MMM단의 잔당들이 찾아오더라고요. 남편은 그들과 언쟁을 하며 쫓아냈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어느 날, 큰 말다툼이 있었고 그 다음 날 남편은 퇴근할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건 녀석들에게 납치를 당한 게 틀림 없어요.”
“경비대에 먼저 의뢰해보셨습니까?”
“네. 하지만 경비대에서도 이틀째 찾지 못했어요. 이대로 남편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까봐 걱정도 되었고, 또…….”
“또…?”
“혹시 탐정님이 인간이니까 녀석들에 관해 잘 아실 것 같아 의뢰를 하러 온 것도 있어요.”
사실 황기민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시비를 거는 마족이 있다면 자기 정체를 밝히기도 전에 두들겨 패버렸으니 MMM단의 녀석이고 뭐고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모처럼 온 첫 고객인데 놓칠쏘냐.
“걱정하지 마십시오. MMM단 녀석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제 일처럼 생각하고 맡겠습니다. 남편분을 찾아다 드리죠.”
“정말요? 감사합니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탐정님.”
“네, 그럼 남편분에 관한 정보를 전부 제게 주시죠.”
대책 없이 근자감을 뿜뿜 뽐내는 황기민은 비버 부인으로부터 남편의 정보를 모두 넘겨받았다.
드디어 첫 의뢰가 시작되었다.
반드시 남편의 뚝배기를 깨… 이게 아니고 반드시 남편을 찾아드리리다!
* * *
황기민은 먼저 남편의 출퇴근길을 따라 걸었다.
남편이 납치를 당했다면 아마 출퇴근길이 현장일 가능성이 크다.
[탐색]
주변에 무수한 발자국들이 있었다.
그중에 비버 부인에게서 얻은 남편의 신발을 대어보며 같은 흔적을 찾아다녔다.
“그나저나 이 새끼 발 냄새 존X 심하네. 아오, 견디자, 황기민! 코를 틀어막고 프로페셔널하게 업무에 집중하자!”
그렇게 헛구역질을 몇 번 하며 이리저리 신발 모양을 맞춰보던 중.
“이거다.”
남편의 발자국을 찾아냈다.
그 발자국이 향하는 방향을 추적해보니 회사의 방향과 다른 곳으로 꺾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벌써부터 해결의 조짐이 보이는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황기민은 흔적을 쫓아갔다.
흔적의 끝이 안내하는 곳은 웬 맨홀 뚜껑이었다.
어둡고 습하면서 악취까지 진동하는 곳.
딱 어둠의 조직이 활동하기 어울리는 장소였다.
“여기 있냐?!”
맨홀 안으로 뛰어 들어간 황기민은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그러자 메아리만 울릴 뿐 아무런 반응이 되돌아오지 않았다.
“허탕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때,
덜커덕!
“뭐야!”
맨홀 뚜껑이 닫혀버렸다.
누군가 밖에서 봉인의 마법을 건 것인지 도무지 열리지가 않았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더니 함정이었던 모양이다.
“이 새끼들! 감히 나를 속여! 밖으로 나가면 다 뒤졌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황기민.
탐정이 범인의 약은 수에 걸리다니.
이건 수치 중의 수치다.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손까지 떨렸다.
이 참을 수 없는 분노는 녀석들의 목을 비틀어야 풀릴 것만 같았다.
“우오오!!”
황기민은 괴성을 지르며 다른 맨홀 뚜껑을 찾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하수로에서 물보라가 일더니 뭔가가 튀어나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 고기!”
녀석들이 파 놓은 함정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치밀했다.
하수로에서 커다란 악어가 나타나 입을 쩍 벌리고 황기민을 삼키려 달려들었다.
게다가 등 뒤에는 고블린들이 단도와 활을 들고 황기민을 겨누고 있었다.
“X바. 바쁜 거 안 보여?!”
그러나 황기민의 헌터 짬밥이 얼마이던가.
웬만한 몬스터들은 그에겐 상대도 안 되었다.
황기민은 악어의 주둥이를 양손으로 잡고 김치 찢듯이 그대로 쭈욱 찢어버렸다.
두 쪽으로 나누어진 악어의 몸체를 보며 고블린들은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렸다.
고블린 녀석들을 조져서 심문을 해보려 했지만 말을 못 하는 하급 고블린들이었다.
아까 악어를 죽이지 않고 정보를 캐내는 게 옳았을 터인데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
탐정으로서 자각을 한 황기민은 이제부터라도 생각이라는 걸 하고 움직이자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으라차차!!”
파앙!
[강화]
“라이라이 차차차!!”
쿠앙!!
적을 만나자 황기민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며 마구 두들겨 패기에 바빴다.
말이 통하는 녀석들조차 크로스 라인으로 목을 부러뜨려 말을 못 하게 만들어 버렸고 전부 실토하겠다는 녀석까지도 초크 슬램으로 땅에 내리꽂고 말았다.
“아.”
전부 일망타진 후에야 찾아오는 이 허탈함.
결국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이다.
“황기민, 이 멍청한 인간 같으니라고!”
자기를 질책해보지만 이미 늦어버린 걸 어쩌겠나.
다음 수를 생각해내야 한다.
자기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옳거니!”
황기민은 쓰러진 몬스터들의 피를 얼굴에 바르고 그대로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좀이 쑤셨지만 침착하게 때를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뒤.
“저기 있다. 인간 놈이 쓰러져 있어.”
“흐흐흐. 역시 나약하군.”
“맨홀 뚜껑을 닫아 버린 우리 작전은 예술이었어.”
리저드맨 두 마리가 킬킬 대면서 황기민을 조롱했다.
네놈 새끼들이었구나, 맨홀 뚜껑을 닫은 게.
“이대로 아지트로 가져가자고.”
“잠시만.”
한 녀석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멈칫했다.
그러고는 스릉 하는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확인 사살을 해야지. 일단 배를 갈라볼까?”
예상 밖의 난관에 황기민은 속으로 X발을 외쳤다.
칼이라도 대는 순간 작전이고 뭐고 다 뒤엎고 다시 깽판을 치게 생겼다.
“야야, 손 더럽히지 말고 그냥 데리고 가자. 멀쩡한 상태로 두목에게 넘기는 게 더 좋을 거야.”
“쳇.”
다행히 옆에 있는 녀석이 말려주어서 황기민의 뱃가죽은 무사할 수 있었다.
황기민은 번쩍 들려서 어디론가 끌려갔다.
* * *
황기민은 또 속으로 X발을 외쳤다.
하필 끌고 가도 바닥에 질질 끌고 가는 건 또 뭐람.
덕분에 옷이 다 찢어지고 등짝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마터면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참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탐정의 일!’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황기민.
이내 리저드맨들이 그를 꽉 쥐고 깊은 웅덩이에 뛰어들더니 어디론가 헤엄을 쳐가기 시작했다.
꼬륵꼬륵 악취가 나는 물길을 헤치고 빠져나온 곳은 하수로의 어느 넓은 공간이었다.
“오오. 데려왔냐?”
“인간의 시체입니다.”
리저드맨은 끌고 온 황기민을 집어던졌다.
그때 황기민은 속으로 맹세했다.
진짜 저 새끼부터 죽인다고.
“시체라고? 죽은 건 확인했나? 안색이 너무 멀쩡한데.”
덩치가 커다란 오우거가 와서 긴가민가 황기민을 들여다보았다.
“어, 확인은 안 해봤는데 대강 죽은 걸로 보여서…….”
콰직―
그러자 오우거가 황기민을 데려온 리저드맨들을 작살내 버렸다.
“멍청하긴. 만약 살아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게 말이야.”
황기민이 벌떡 일어나 오우거의 말에 대답했다.
“우왁!”
“인간이 살아있었다!”
아지트에 있던 몬스터들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허둥대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마. 지금 죽여버리면 되니까.”
오우거가 곤봉을 들고 황기민을 향해 내리쳐보지만,
콰앙!
황기민이 오우거의 옆구리를 치자 그대로 허리가 뒤틀려 쓰러져버렸다.
“야, 전부 이리 와서 무릎 꿇어. 도망치는 새끼들은 진짜 다 죽는다.”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이 나타나 보스를 한 방에 쓰러뜨리니 잡졸들은 감히 대항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이 그토록 멸히사던 인간의 앞에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너희 비버 잡아 왔지? 일로 데려와.”
그러자 녀석들은 마지못해 비버 남편을 데려왔다.
비버 남편은 몇 대 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누, 누구시죠?”
“인간 탐정 황기민. 당신 부인의 의뢰를 받아 왔지.”
“흑흑흑.”
비버 남편은 살았다는 안도감과 아내가 그리워 눈물을 철철 흘리고 말았다.
“저기… 저희는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내가 알 바냐?”
그러자 화색이 도는 몬스터들.
그때 비버 남편이 끼어들었다.
“저, 탐정님. 얘네들 목에 현상금 장난 아닌데요?”
“다들 엎드려뻗쳐, 이 새끼들아!!”
“X발…….”
그렇게 엉겹결에 MMM단의 잔당들을 일망타진한 황기민.
마계의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