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성남 카페 1호점
풍요로운 마계 생활을 보내던 강철남에게 간절한 건 오로지 맛 좋은 커피 하나뿐이었다.
몬스터 시장의 헌터 본부를 찾아가 강철남이 건넨 제안은 바로 인간계에서 파견될 사절단에 바리스타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냥 믹스 커피가 최고 아냐?”
황기민이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믹스커피 비닐을 빙빙 돌리며 뭣도 모르는 소리를 하자 강철남은,
“떽! 그런 설탕물은 진정한 커피가 아니다!”
그렇게 외치더니 이내 자기만의 커피학개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장인의 손길로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핸드드립 굵기로 곱게 갈아서 93도의 뜨거운 물로 정확히 4분 30초의 시간에 맞춰 정성 들여 내린 핸드드립 커피가 마시고 싶단 말이다.”
그러자 듣고 있던 김성남이,
“인간계에 와서 사 마시면 되잖아.”
눈치 없이 헛소리를 내뱉자 강철남은 참지 않았다.
[동작 그만!]
“컥!”
김성남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매일 아침 집에서 커피 내리는 냄새가 솔솔 나는 낭만. 나는 그게 그리운 거다. 나는 그런 아침을 맞이하고 싶단 말이다. 이 낭만이란 게 없는 메마른 녀석!”
“크허흑! (이거나 풀어!)
그때 마계 수송단의 포털을 타고 인간계에서 돌아온 한지영이 별벅스 커피를 사들고 왔다.
“철남씨, 이거 선물이에요.”
“고맙소, 지영씨.”
강철남은 헤헤헤 웃는 한지영이 건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마시니 두 눈이 번쩍 뜨이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기분이었다.
쌉싸름한 맛 끝에 고소한 풍미가 돌아 입 안이 텁텁하면서도 개운해지는 모순적인 만족감.
“아오, 좋다.”
혈관에 카페인으로 이루어진 흑혈구가 흐르는 이 짜릿한 각성감.
아주 만족 스러웠다.
“철남씨, 솜씨 좋은 바리스타가 필요하시죠? 제가 아는 헌터가 왕년에 바리스타였습니다.”
백진섭이 묘한 웃음을 흘리며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 다가왔다.
현직 헌터이면서 바리스타 경력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강철남이 원하는 인재다.
마침 이런 타이밍에 그런 인재가 나타나다니.
“오, 그 사람은 어디 있소?”
“저기 굳어 있습니다.”
백진섭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동작 그만 술법에 걸려 꼼짝 못 하고 있는 김성남이 있었다.
“뭐? 바리스타였어?”
홍태진도 김성남이 전직 바리스타였다는 건 몰랐던 모양이었다.
사무실의 모두가 놀라고 있는 와중에 서필도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리액션이 별로 없었다.
그 와중에 김성남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술법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짝짝―
강철남이 박수를 두 번 치자 김성남의 관절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으으… 야! 함부로 스킬 걸지 마!”
“너 바리스타였냐? 왜 말 안 했어?”
“언제 물어봤냐? 이 자식!”
김성남은 검을 뽑아 강철남을 힘껏 내리쳤다.
하지만 강철남은 검을 잡고 김성남의 다리를 걸어 가뿐하게 넘어뜨렸다.
“좋아. 김성남. 오늘부터 너는 마계의 커피 의장이다.”
“뭐?”
커피 의장?
그건 또 뭔 괴상망측한 직책인가.
“마계에서 인간이 마족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면 헌터만한 인재가 없지. 게다가 커피 장사를 하려는데 바리스타 경력이 있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하나?”
“아니, 내 의사는 왜 안 물어보는데?”
“어차피 거절할 이유도 없지 않나?”
“오호라. 내가 거절하면 네가 곤란해지는 건가? 그렇다면 거절하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김성남이 벌떡 일어나 강철남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항상 당하기만 하다가 마침내 한 방 먹여줬다는 듯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러냐? 어쩔 수 없군. 성질 드러운 진상 마족들이랑 허구한 날 싸울 수 있을 텐데 말이지.”
“흥. 그런 녀석들이 까불어봤자 전부 한 방 컷이지.”
“정말 그럴까? 마계에는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강한 놈들이 잔뜩 있을 텐데 말이야.”
“그 말은 내가 마계에서는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라는 말이냐?”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저 벌써 겁먹은 겁쟁이한테 마계는 너무 버겁다고 말했을 뿐이야.”
“이 자식 감히 이 김성남이를 뭘로 보고. 좋아, 까짓거 몬스터 새끼들에게 커피보다 더 쓴 맛을 보여주겠어. 다 덤비라 그래!”
자존심이 건들린 김성남은 근로의욕이 활활 불타기 시작했다.
강철남은 대어를 낚은 듯 씨익 웃었다.
“그럼 먼저 커피나무부터 심어보자고.”
“…응?”
* * *
자연인 강철남.
산에 틀어박혀 살 때 커피나무를 키워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커피나무에서 질 좋은 커피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습도와 상당한 일조량이 필요했기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인간계에서는 기후적인 한계 때문에 커피 재배에 실패했다면 마계에서는 마력 때문에 실패했다.
마계에도 커피가 있지만 그 맛은 마치 한약처럼 쓰고 독하기만 해 마치 뱀독을 타 마시는 맛이나 다름없었다.
마족들은 늘 마시던 맛이라 별 불만 없이 마시는 듯했지만 이미 인간계의 맛 좋은 커피 맛에 혓바닥이 길들여진 강철남은 마계의 존노맛 커피 맛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계의 커피가 맛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마력을 먹고 자란 커피나무는 맛있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화 스킬로 마력을 제거했다간 커피 나무는 바로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심력이지.”
답은 심력이다.
인간의 심력을 발휘해 마계에서도 인간계의 커피나무를 키운다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보고 그 심력을 써라 이 말이냐?”
김성남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자기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을뿐더러 그 힘을 커피나무를 키우는데 쓰겠다는 이 마황제의 미친 발상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심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게 인성 개차반인 너라 할지라도.”
“누가 개차반이야.”
“자, 그럼 작업을 시작해보지. 우선 커피나무 모종에 심력을 담아 심는 일부터 해보자고.”
“심력은 어떻게 담는데?”
“마음을 담아 심어봐. 이 커피나무가 잘 자라서 마족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는 상냥한 마음을 말이야.”
강철남의 오글거리는 말을 듣던 김성남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냥한 마음을 담아 모종을 심는 것도 어려운데 몬스터 따위를 위해서라고?
“웃기지 마라! 나는 그런 녀석들을 배려하는 마음 따윈 조금도 내어줄 수 없다!”
“그렇다면 너는 뭘 위해 커피나무를 심고 싶은 거지?”
기습적으로 훅 들어오는 강철남의 질문에 김성남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몬스터 새끼들을 작살내기 위해서지.”
“…그게 바리스타가 할 소리냐. 아무튼 이유는 상관없다. 네 진솔한 마음을 담아 심어라.”
마음을 담아 심는다라.
다소 추상적이긴 했지만 김성남은 집중하여 마음을 담아 봤다.
진상 몬스터 새끼들에게 커피보다 쓴맛을 보게 해주십시오, 하며.
“헛?!”
그러자 김성남이 심은 모종이 맥없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강철남은 혀를 끌끌 차며 새 모종을 가져다주었다.
“김성남, 세상이 달라졌다. 구멍은 닫혔고 인간계와 마계는 서로 화합을 하려고 한다. 이런 시대에 네 목표는 뭐냐. 그걸 잘 생각해봐라.”
“생각해 본 적 없다. 나는 평생 싸울 운명이라 생각했거든.”
“넌 왜 헌터가 되었냐?”
“그야 물론 몬스터 새끼들을 박멸하기 위해서지.”
“이제는 그 몬스터들과 공존을 해야 하는 세상이다.”
김성남은 콧방귀를 뀌며 그다지 탐탁지 못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강철남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세월이 지나면 너도 죽고 수많은 헌터들도 세상을 떠나겠지. 그러면 인간계는 누가 지키지? 계속 이 의미 없는 싸움을 해나갈 것인가? 애초에 싸움 없는 세상을 만드는 편이 이롭지 않겠나?”
그 말에는 김성남조차 반박할 수 없었다.
인간과 마족이 대립을 계속하는 한 자기의 싸움이 끝나더라도 전쟁은 계속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너는 항상 너 자신만을 위해 싸워왔지. 하지만 네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네 칼은 무수한 인간의 생명을 지켜냈어. 너는 옳은 일을 한 거야. 그 마음을 담아봐.”
“무슨 마음?”
“의미 없는 싸움을 않겠다는 마음.”
여지껏 칼을 휘둘러 왔던 김성남의 싸움은 의미 없는 싸움이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인간계를 지켜왔던 싸움이었으니까.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의 칼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꽃 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성남은 처음으로 자기 싸움에 의미를 느꼈다.
“내 칼이 의미가 있었다라…….”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모종을 심어보았다.
그러자,
“이럴수가.”
모종이 빛에 휩싸이더니 시들지 않고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이제 그 모종은 마력이 아닌 심력으로 자랄 거다. 인간계의 커피나무처럼 맛있는 커피 열매가 맺히겠지.”
강철남은 커피나무의 잎사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흡족한 듯 웃었다.
“자, 계속 힘내서 나머지 모종들도 팍팍 심어보자고.”
자기가 심력을 불어넣었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한 김성남이었지만 새로운 힘을 얻었다는 도취감에 남은 작업량을 단번에 끝내버릴 수 있었다.
어느새 밭은 줄지어 늘어선 커피나무 모종들로 채워졌다.
이것들이 자라 커피 열매를 맺으면 로스팅하여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는 가이아의 축복이 내려진 땅이라 금방 쑥쑥 자랄 거야. 우리는 다음 할 일을 해보자고.”
“다음 할 일?”
“커피를 만들려면 도구가 있어야지. 먼저 원두를 곱게 가는 그라인더부터 장만할까?”
“흥, 그딴 건 필요 없다. 손에 쥐고 으깨면 금방 가루가 될 것을…….”
[동작 그만!]
“커흑!”
강철남은 망설이지 않고 김성남에게 동작 그만 스킬을 걸어 버렸다.
“네 이놈! 바리스타란 녀석이 낭만이라곤 눈곱만큼도 없구나. 자고로 커피는 갬성이 중요한 법.”
“커흐으억, 으허! (이거나 풀어, 이 미친놈아!)”
“그라인더를 돌돌 돌리며 곱게 갈려 나오는 커피 가루를 필터 위에 뿌린 다음 93도의 물로 천천히 내리는 드립 커피의 감성이 중요한 법. 커피는 만드는 과정 역시 낭만이 있어야 한다.”
짝짝―
강철남의 일장 연설이 끝난 후 박수 두 번과 함께 김성남의 몸이 다시 풀려났다.
김성남은 이 미친놈이 왜 바리스타인 자기보다 더 커피에 진심인지는 이해 할 수가 없었으나 그의 말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멋지게 하는 편이 좋지 않겠나.
“쳇, 오냐. 몬스터 새끼들이 껌뻑 죽을 만한 카페를 만들어 내겠어.”
“좋다. 그 기세다.”
김성남과 강철남은 의기투합하여 본격적인 카페를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본점을 세울 장소가 중요했다.
후보는 교육의 도시 크레톤과 상업의 도시 카르텔.
크레톤은 학자들이 많아서 커피 소비가 제법 많았기에 카페를 차리기에 좋은 곳이다.
또한 카르텔 역시 오고 가는 이방인들이 피로를 떨치려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시기 때문에 좋은 자리다.
“김성남, 너는 어디에서 장사를 하고 싶나?”
“카르텔이다.”
“단호한데, 왜냐?”
그러자 김성남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트러블이 많이 일어날 것 같거든.”
* * *
마침내 문을 연 성남 카페 1호점.
딸랑딸랑―
드디어 문이 열리고 그랜드 오픈의 첫 손님이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