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MMM(반인간 마족 우월주의)
민하와 샤를의 인간계 나들이는 핵꿀밤으로 마무리되었다.
민하는 사람들이 보기 전에 블루 드래곤을 데리고 부적을 사용해 마계로 귀환해야만 했다.
샤를은 눈물을 머금고 치킨을 남겨둔 채 민하를 따라 올 수밖에 없었다.
철썩―
“정말, 너 때문에 치킨을 남기고 왔잖아!”
마계로 돌아오자마자 샤를은 블루 드래곤의 머리를 찰지게 때렸다.
“으응?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민하의 핵꿀밤을 맞고 정신이 얼얼한 블루 드래곤은 머리가 멍했다.
“어머, 이게 웬일이니.”
부적은 이들을 집 앞으로 데려왔고 가이아는 느닷없이 마당에 엎어져 있는 커다란 드래곤을 보니 황당할 노릇이었다.
“민하야, 이게 어떻게 된 거니?”
“얘가 막 아빠 욕하고 그랬어!”
따악!
“고얀 놈!”
민하의 말을 듣고 가이아도 블루 드래곤의 이마를 따악 때렸다.
이러다 두개골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소란을 듣고 강철남도 밖으로 나와보았다.
자기에게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녀석이니 대화를 좀 나눠볼 필요가 있겠다.
“민하야, 치료 마법으로 녀석을 깨워보겠니?”
“응!”
[치료]
민하는 눈이 핑핑 돌아가고 있는 블루 드래곤에게 치료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의식을 잃었던 블루 드래곤이 점차 정신을 차리는 듯 하더니 이내 눈동자를 날카롭게 굴리기 시작했다.
“으으… 여긴 어디지?”
그때,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동공을 돌리던 녀석이 강철남을 발견하고 외쳤다.
“마황제, 이놈!”
“이성적으로 생각해. 네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면 덤비고 아니라고 생각되면 일단 대화부터 하지.”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강철남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서려 있었다.
그 말의 힘도 힘이었지만 논리 역시 거스를 수 없었다.
어찌 마황제를 이기겠는가.
블루 드래곤은 감정적으로 굴어서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다.
“크으. 일단 자중하도록 하지.”
“그래, 좋다. 듣자하니 내게 할 말이 많은 것 같던데. 인간계에는 왜 출몰했나?”
“나는 MMM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당신 마황제와의 간담회를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마황제의 거처가 어딘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지. 그래서 요즘 마황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인간계에서 난동을 부리면 나타날 거라 믿고 그리한 것이다.”
MMM단은 반인간 마족 우월주의 단체로 인간을 배척하는 마족들이 모여 이룬 집단이다.
예전에 강철남을 마황제로 뽑는 투표에서 강한 반발과 부정 투표를 저질렀던 그 단체였다.
“한 마디로 어그로를 끌려고 무식한 방법을 택했다는 거로군.”
“결과적으로 이렇게 대면하게 되었으니 잘 된 거 아닌가?”
[마력탄]
파파팡!!
샤를이 조그만 마력탄을 쏘아 블루 드래곤의 턱을 갈겼다.
“뭐냐?!”
“흥! 너 때문에 나들이가 엉망이 되었다고!”
샤를이 손을 탁탁 털고 삐진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블루 드래곤은 맞은 게 열 받아서 한 대 때려주려고 했지만,
“허튼짓 하지마.”
강철남의 으름장에 그저 한낱 도마뱀처럼 굴복하고 말았다.
“철남이, 오랜만에 드래곤 고기 어때? 파란색이니까 소다맛 나려나?”
멍구의 농담 아닌 농담에 블루 드래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개는 분명 마왕 멍구.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실력이 있는 건 물론이고 그럴 만한 똘기도 충만했다.
“나, 나는 대화를 나누러 온 거지 싸우러 온 게 아니다! 인간계에서도 일절 파괴와 살육을 금하였지 않느냐! 나는 평화의 사절단이지 결코 나쁜 드래곤이 아니야!”
“너 왜 갑자기 절박해 보이냐?”
“기분 탓이다! 아무튼 나는 마황제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래저래 겁을 먹은 것도 같지만 할 말이 있다는 건 사실인 듯했다.
강철남은 녀석을 데리고 MMM단을 비롯한 마족들의 불만이 무엇인지 들어보고자 했다.
“가이아, 잠시 녀석을 데리고 마왕성에 다녀올게.”
“늦은 시간인데 적당히 이야기 나누다 돌아오거라.”
“그럴게. 민하야, 샤를을 집까지 바래다주겠니?”
“응! 아빠도 일찍 들어와!”
가이아와 입을 맞추고 민하에게 뽀뽀를 받은 강철남.
분위기를 틈타 멍구도 장난스레 주둥이를 내밀어 봤지만 강철남은 코를 비틀어 버렸다.
“끼잉!”
“다녀올게.”
[공간 이동]
펑―!
강철남은 크레톤의 마왕성으로 블루 드래곤을 데리고 갔다.
* * *
키켈은 마왕성 고층에서 크레톤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인간계와 마계의 화합을 꿈꾸는 마황제의 생각은 실로 위대한 발상이다.
자기도 뭔가 보탤 수 있는 힘이 없을까 궁리를 해보았다.
“아무래도 역시 마왕이란 자리는 내게 너무 과분한 건 아닐까.”
펑―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 너 하나만 빼고.”
“마황제님!”
갑자기 등장한 강철남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본 키켈.
블루 드래곤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아니, 저 자는 블루 드래곤 칼론 아닙니까. MMM단의 간부인 자와 어떻게 동행하십니까?”
“알고 있는 녀석이냐? 오늘 이 녀석이 인간계에서 난동을 부렸어. 내게 할 말이 있다면서.”
“난동은 부리지 않았다니까.”
“인간계에선 네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큰 사건이야.”
“훗, 역시 인간들은 나약해 빠졌군.”
“그게 너희 MMM단이 인간을 싫어하는 이유냐?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다는 것이?”
강철남이 의중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칼론은 숨길 생각 없이 답했다.
“당연한 소릴. 세상은 적자생존의 법칙. 강한 자가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약한 자에게 연민을 품고 지켜주기만 한다면 그들은 생태계 발전에 도움은 안 되고 자원만 축내는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릴 것이다.”
얘기를 나누러 왔다더니 과연 생각 이상으로 칼론은 똑똑한 말을 쏟아냈다.
물론 전제 조건이 인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로 똘똘 뭉쳐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 새끼! 인간은 강하다! 인간에겐 심력이라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무얼 할 수 있지?”
심력.
강철남과 가이아가 조사한 그 힘은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과 같았다.
“합심.”
“뭐?”
“서로 마음을 나누고 합심하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합심하여도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그 오합지졸들이 서로 뭉쳐 싸워 지금은 살아 남아있지 않느냐. 애초에 단합이라는 게 안 되는 너희 독고다이 새끼들은 이해 못 하겠지만 말이야.”
강철남이 알아낸 심력이란 인간의 선한 마음, 측은지심, 공감 능력, 친절, 등 언어로 규정 짓기 어려운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그것들이 서로를 지탱하여 하늘에 구멍이 뚫린 몬스터 시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있는 한 인간은 절대로 마족에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도 결국 이기적일 뿐이다. 혼란에 빠지면 제 살기에 바빠지지.”
“그러는 너희 MMM단 새끼들은 얼마나 이타적인지 볼까?”
“응?”
“지금부터 널 공개 처형하겠다는 소문을 퍼트릴 것이다. 과연 동료들이 널 구하러 올까?”
“흥.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쯤이야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아무도 구하러 와 줄 필요 없다.”
“그래도 네 마음은 그게 아닐 텐데?”
속마음을 깊게 찔린 듯 칼론은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삼일 뒤, 너를 이 마왕성에서 공개 처형하겠다. 동료들이 구하러 와준다면 사형은 면제해주도록 하지.”
“그냥 지금 죽여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야.”
“자신을 과소평가 하지마. 슬퍼 할 동료들을 생각하며 버텨보라고.”
강철남은 칼론에게 부적을 붙여 감옥에 가뒀다.
이 모든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키켈은 폭풍같이 몰아치는 연극을 본 기분이었다.
“키켈.”
“네, 마황제님.”
“너는 결과가 어떨 거라 생각하나?”
“저야 마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참 곤란하지만 말이야.”
“마황제님은 그들이 구하러 와주길 바라는 겁니까?”
“그래. 그래야 내 설득에 힘이 실리거든.”
키켈은 아직도 마황제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그가 펼쳐 나가는 보드게임에서 한참을 뒤쳐진 기분이 들었다.
언제쯤 이 아득히 높은 존재를 따라잡을 수 있는 걸까 생각했다.
* * *
이틀 뒤.
칼론의 사형 집행일 하루 전 날이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칼론은 얌전히 눈을 감고 다가오는 사형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덜컹―
“칼론. 구하러 왔다.”
그들의 동료인 두 마리가 벽에 구멍을 뚫고 나타난 것이다.
용족의 이름은 설로번. 사자 수인의 이름은 라온이었다.
“설로번, 라온. 왜 여길 온 거냐?”
“당연하지. 동료잖냐.”
“이유는 그거 하나만 충분하지?”
설로번은 칼론의 몸에 손을 댔다.
그때,
파직―
펑!
부적에서 도술이 발동되면서 강철남이 소환되었다.
“아오 X바. 자고 있는데 탈옥하고 지랄들이야. 하암.”
졸린 눈을 비비며 강철남이 투덜댔다.
“마황제?! 어째서.”
“됐고. 너네들 다 따라와. 위에서 차나 한 잔 하자.”
“우리가 팔자 좋게 네놈이랑 차나 마시러 온 줄 아냐?!”
설리번이 이를 악물고 바득바득 달려들자 강철남이 녀석의 따귀를 철썩 때렸다.
“아얏!”
“남의 성에 구멍을 뚫어 놓고 잔말이 많아. 빨랑 안 따라와?!”
앞장서서 감옥을 나서는 강철남을 어이없이 바라보는 칼론과 라온.
뺨을 맞은 설리번은 부들부들 대며 그를 뒤 따라갔다.
“이봐! 대체 무슨 개수작이야?”
“그냥 이야기 좀 하려고. 칼론하고 내기를 했거든. 너희가 구하러 오나, 안 오나.”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결과가 나왔나?”
“그래, 내가 원하던 그림이 이거였거든.”
“속이 후련하냐?”
“존X게 후련하시다.”
후릅―
강철남은 뜨끈한 우유를 마시며 몸을 데웠다.
각자의 머릿수에 맞춰 차를 늘어놓고 앉기를 권유하는 강철남.
하지만 설로번은 탐탁지 못한 표정이다.
“우리랑 이야기를 하려고 동료에게 사형 집행을 내린 건가? 권력을 남용하는군.”
“저 새끼는 나 한 번 만나보겠다고 인간계에 나타나서 공포를 조장했어.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런 피해자도 만들지 않았지.”
그 말에는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너희가 이렇게 모인 것으로 확신했다.”
“뭐가?”
“너희는 역시 인간이랑 비슷해.”
“뭐야?!”
이번엔 라온이 갈기를 바짝 곤두세우며 화를 냈다.
그토록 경멸하는 인간과 닮아있다니.
“너희가 왜 인간을 미워하는 줄 알아? 닮아있기 때문이야. 보통 마족들은 인간을 한참이나 아래로 보기 때문에 별 신경도 안 써. 그런데 유독 너희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과민 반응하지. 그건 마치 너무 비슷해서 신경 쓰이기 때문이지. 자기들의 입지가 위협받고 있으니까.”
“우리가 인간에게 겁을 먹고 있다는 건가? 무엇보다 닮아있다는 표현이 몹시 짜증 나는군.”
설로번은 강철남을 노려보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일반적인 마족들은 동료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걸지 않아. 그건 심력이 출중한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런 면에서도 너희는 인간과 닮아있어.”
“흥. 인간이 위기에 처한 동료들을 구한다고? 웃기지 마라. 두 친구가 물에 빠지면 저 살고 보자고 옆에 있는 친구를 눌러 숨을 쉬려 하는 게 인간이다.”
“생존 본능이 앞서면 그렇게 되기 마련이지. 너희는 항상 졸라리 극단적인 상황만을 가지고 온단 말이야.”
강철남은 우유를 벌컥벌컥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여주는 게 나으려나.”
“뭘 할 셈이지?”
“지금부터 너희 셋에게 선택권을 주겠다. 인간계와 마계의 화합 프로젝트에 참여해라.”
“선택권이라며. 무슨 대가나 보상이 따르는 건가?”
“물론.”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MMM단을 마계 공식 단체로 인정해주겠다.”
“…….”
“뭐?!!”
생각 이상으로 솔깃한 제안을 해 오는 마황제.
설로번은 칼론과 라온을 돌아다 보고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하면 되지?”
그의 대답에 강철남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자, 이제부터 너희가 할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