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민하와 샤를의 맛집 탐방
민하는 샤를을 데리고 인간계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었다.
샤를에겐 다른 차원의 세계이니 온통 신기했다.
도심지의 한복판을 마치 원더랜드를 누비는 피터팬 같은 기분이었다.
“강민하, 이건 뭐야?”
“이건 자동차라는 거야. 사람들은 이걸 타고 이동해 다녀.”
“말이나, 용 같은 거야?”
“날 수는 없으니 말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보다 생물이 아니니까 말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워.”
“마도구 같은 거로구나.”
“하지만 마력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야.”
“그럼 뭐로 움직여?”
“음…….”
민하도 자동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동차는 민하가 달리는 속도에 비해 너무 느려서 탈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저기, 아저씨.”
결국 지나가는 아저씨를 붙들고 물어보는 수밖에.
“자동차는 뭐로 움직여요?”
“응? 자동차 말이니? 자동차는 기름으로 움직인단다.”
“호오. 샤를, 기름이래.”
“기름은 요리할 때 쓰는 거 아니야?”
붙들려 있던 아저씨는 엉뚱한 아이들이구나 싶어 휘발유와 경유, 등유에 관해 말해주었다.
하지만 7살 아이들이 알아들을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저기 저 건물이 보이니? 저기가 주유소라는 곳이란다. 자동차에 밥을 주는 곳이지. 자동차는 저기서 기름을 먹고 움직인단다.”
“아하.”
그제야 뭔가 이해한 듯한 민하와 샤를.
아저씨에게 바이바이를 하고 둘은 주유소로 향했다.
자동차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유소에 웬 예쁜 두 소녀가 들어오자 주유소 직원은 순간 영화 촬영이라도 하러 왔나 싶었다.
카메라나 뒤따르는 어른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길을 잃은 아이들인가 싶었다.
“얘들아, 혹시 엄마를 잃어버렸니?”
“아니요. 오늘은 저희 둘이 놀러 나왔어요. 아저씨, 혹시 자동차가 밥 먹는 걸 볼 수 있을까요?”
“나는 아저씨가 아닌데… 자동차가 밥을 먹는 거라면 기름을 넣는 걸 말하는 건가? 보여줄 순 있는데 그건 왜?”
“보고 싶어서요!”
주유소 직원은 특이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왜 보고 싶은 걸까?
당연히 아이들의 상상은 현실과 달랐다.
민하와 샤를은 자동차가 입을 쩍 벌리고 기름을 와구와구 맛있게 먹는 귀여운 이미지를 상상했으니까 말이다.
기다리던 끝에 마침내 승용차 한 대가 주유소로 들어왔다.
샤를과 민하는 눈이 반짝반짝했다.
자동차의 입은 어디일까 유심히 지켜보던 둘.
그러나 자동차의 엉덩이 옆에 난 조그만 점이 톡 튀어나오더니 그곳에 예전에 봤던 권총 같은 걸 꽂아 넣는 게 아닌가.
“다 됐습니다.”
그러고선 자동차는 사라졌다.
민하와 샤를의 동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건 아니야!”
“말도 안 돼!!”
주유소 직원은 갑자기 후다닥 도망가버리는 소녀들을 보며 아이들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우으. 강민하, 실망했더니 배가 고파졌어.”
“그럼 우리 마약 호떡 사 먹자.”
“뭐? 마약? 인간계에선 마약을 아이한테도 파는 거니? 안 돼! 마약은 안 된다구!”
“헤헤. 그 마약이 아니야. 마약처럼 중독될 정도로 맛있다는 호떡이야.”
“음식 이름이 너무 자극적이잖아.”
“자, 얼른 가자.”
민하는 샤를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힘 조절에 익숙해진 민하는 인파를 누비면서도 너무 빨리 달려서 사람들이 날아가 버리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달릴 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호떡집을 향해 아이답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달려갔다.
* * *
최근 방송을 타 찾는 손님이 많아진 마약 호떡집.
한 모녀가 아옹다옹하고 있다.
“아유, 엄마. 내가 그만 들어가서 쉬라니까.”
“방구석에 시체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뭐하니. 사람이 일을 해야지.”
“안정을 취해야지 자꾸 몸을 움직이면 어떡해?”
“10년을 살더라도 내 맘대로 못 살면 그게 행복한 인생이니? 5년을 살아도 사람답게 살아야지 ”
할머니는 기어이 딸을 밀어내고 호떡 반죽을 직접 치댔다.
최근에 도저히 걷잡을 수 없어진 디스크가 기적처럼 낫고 나서 딸에게 물려준 호떡 가게로 나와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근데 정말 허리 괜찮은 거 맞아?”
“아이고, 한 번만 더 물으면 백 번째야. 멀쩡하대도.”
“그건 그렇고 진짜 마법이란 게 대단하긴 해. 의사들도 손을 못 쓸 정도의 디스크를 눈 깜짝할 새에 치료하고.”
“진짜로 대단한 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는 거지. 세상 살면서 공짜로 베푸는 친절이란 안 믿었는데 인생 끝나갈 무렵에 이런 호사를 다 누려볼 줄은 몰랐다.”
“인생 끝이라니, 그런 말 하지 마.”
딸은 호떡을 철판에 구우며 비관적인 소리를 하는 엄마를 꾸짖었다.
한창 손님이 몰아치는 시간이 지나고 조금 쉬는 시간이 되었다.
그 무렵 아주 예쁜 두 어린 손님들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씨앗 호떡 두 개 주세요!”
민하가 동전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건네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호떡집 딸은 씨앗을 정량보다 더 듬뿍 담아주고 말았다.
“고맙습니다.”
민하와 샤를은 후후 호떡을 식혀가며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떡을 먹으면서도 민하는 호떡집 할머니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왜 그래, 강민하?”
샤를이 웬일로 넋이 나가 있는 민하를 툭툭 건드렸다.
민하는 할머니에게 대뜸 말을 걸기를,
“할머니, 허리는 괜찮으세요?”
“응? 내 허리 말이냐? 이제는 괜찮단다. 그런데 내가 허리가 안 좋았다는 건 어떻게 알았니?”
“그냥요. 원래 할머니들은 다들 허리가 아프시잖아요.”
“호호호. 그건 그렇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호떡집 할머니는 왠지 민하에게서 자꾸만 정이 갔다.
“얘야, 친구랑 호떡 하나씩 더 먹으련? 덤으로 주마.”
“정말요?”
“그래, 다른 손님들이 없을 때 몰래 하나씩 더 주마.”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애정을 담아 씨앗을 듬뿍 얹어 민하와 샤를에게 호떡을 쥐여주었다.
“고맙습니다!”
민하와 샤를은 할머니에게 인사를 꾸벅 올리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별일이야, 엄마가 서비스를 다 주고.”
“왠지 조금은 빚을 갚은 것 같은 마음이구나.”
“무슨 소리래?”
“그냥 그런 마음이 드네.”
호떡집 할머니는 해맑게 달려가며 멀어져가는 민하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띠었다.
민하의 마음속에는 심력이 번쩍하며 훈훈한 온기를 전했다.
* * *
시간은 오후로 저물었고 민하와 샤를은 여기저기서 쇼핑을 즐기다 돌아가기 전 마지막 먹을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
샤를은 인간계의 식당 메뉴를 둘러보며 무얼 먹을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마계와 비슷한 음식도 있었고 아예 처음 보는 음식도 있었다.
“으으… 너무 고민돼.”
“샤를. 그럼 우리 그거 먹어보지 않을래?”
“그거라니?”
“한국이라면 그걸 먹어줘야 하거든. 하림 선생님 생각이 나서 먹지 못했지만 말이야.”
“대체 그게 뭔데 그래?”
“치킨이야.”
“치킨? 닭을 튀긴 요리 아니니?”
“후후. K 치킨은 마계의 형편 없는 닭튀김과 다르다구.”
“달라봤자 닭튀김이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다르겠어.”
“오호라. 그렇다 이거지? 그럼 먹으러 가보자!”
민하는 샤를의 손을 잡고 치킨집으로 향했다.
가게에 들어서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샤를은 머리가 아찔했다.
입구부터 직감했다.
이건 분명 자기가 알고 있는 닭튀김과 다를 것이라고.
“강민하. 이 냄새는 뭐야? 혓바닥이 침에 잠겨버렸어.”
“이건 후라이드 치킨 냄새야.”
“저 빨간 건 뭐야? 보기만 해도 꼴딱꼴딱 침이 넘어가잖아.”
“저건 양념 치킨이야.”
“으으… 뭐지, 이 조급해지는 느낌은. 우리 빨리 시키자.”
샤를과 민하는 얼른 자리에 앉아 진리의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주문했다.
초조해 보이는 샤를은 치킨 무를 아삭아삭 씹으며 입맛을 달랬다.
콜라도 마계에 없는 것은 아니나 마계의 콜라는 톡 쏘기만 하지 여기 있는 것처럼 달고 시원하진 않았다.
“세상에, 반찬부터 음료까지 하나하나 너무 수준이 달라. 강민하, 너는 이런 맛있는 걸 언제 혼자 먹어본 거야?”
“아빠가 인간계 출신이라서 몇 번 해주신 적 있어. 나도 치킨집에 와서 이렇게 먹어보는 건 처음이야.”
그렇게 말하는 민하의 입에도 침이 한가득 고여 발음이 뭉개지고 있었다.
마침내 인고의 시간 끝에 치킨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김이 모락모락, 고소한 냄새가 솔솔. 올리브유로 튀긴 황금빛 치킨이 등장했다.
“머, 먹는다.”
샤를은 떨리는 손을 진정하며 치킨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순간 튀김이 바스라지며 바삭한 식감을 온몸에 전달하며 그 사이에 응축된 육즙을 터뜨렸다.
샤를의 동공이 순식간에 커졌다.
본디 채식을 즐기는 샤를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는 맛이었다.
“뭐야, 이거…….”
민하도 이미 양 뺨이 부풀어 오르고 광대와 눈꼬리가 만날 정도로 행복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둘은 7살의 나이에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황홀함 그 자체였다.
그때,
“꺄아악!!”
“도망쳐!!”
가게 바깥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도망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쫓기는 듯한 공포에 질린 소리였다.
“무슨 일이야?”
“몬스터가 나타났대.”
가게 안의 손님들은 서로 웅성거리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부산스럽게 웅성댔다.
몬스터라니, 하필!
한창 마계와 인간계가 사이좋게 지내려는 이 시기에 날뛰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치킨을 눈앞에 둔 지금 나타나다니!
“강민하.”
“히잉.”
“어쩔 수 없어.”
샤를은 민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달아나는 사람들 뒤로 거대한 푸른 드래곤이 날개를 펼친 채 비상하고 있었다.
“세상에, 왜 드래곤이 인간계 도심지 한복판에 나타난 거야?”
블루 드래곤.
녀석은 드래곤 중에서도 격이 높아 마계에서도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녀석이 인간계에 나타난 걸 보면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 녀석이 날뛰면 여기는 쑥대밭이 될 거야.”
“샤를. 그런데 아무 짓도 안 하는 것 같아.”
“응? 듣고 보니 그냥 가만히 있는데. 누구를 찾는 거 같아.”
그때 블루 드래곤을 향해 헌터들이 달려들었다.
나름 실력 있는 A랭크의 헌터들이었지만 블루 드래곤의 적수가 되진 못했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있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었던 민하는 직접 나서기로 했다.
“샤를은 여기 있어.”
[비행술]
하늘로 치솟아 몸을 띄운 민하는 그대로 블루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얘! 지금 뭐 하는 거니?”
“너는 누구냐? 꼬맹이가 낄 자리가 아니다. 돌아가라.”
“아무도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보니 무슨 할 말이 있는 거지? 누구한테 볼 일이 있는 거니?”
“훗, 제법 똘똘한 꼬마로군. 내가 찾는 건 빌어먹을 마황제 녀석이다.”
“뭐?”
푸른 드래곤의 경솔한 발언에 민하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계와 인간계를 화합한답시고 마족의 긍지를 짓밟는 망할 마황제 녀석에게 볼일이 있다는 거다.”
“말조심해. 마황제 욕 하지 마.”
“뭐냐? 어린 게 벌써 권력의 앞잡이가 된 것이냐? 그래서는 안 된다. 마황제가 펼치고 있는 정책은 마족의 긍지를 져버리는 것이다. 인간 태생 아니랄까봐 인간들에게 마계를 받치려고 하는 것이라고. 자, 꼬마야. 너도 날 따라 외쳐보거라. 마황제, 개객끼!”
“그만…….”
“따라 해보거라. 마황제 개객끼!”
“그만하라니까.”
“마황제 개객…….”
“그만하라고 했잖아!”
쿠쾅!
민하의 핵꿀밤이 블루 드래곤의 대갈통을 찍어버렸다.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블루 드래곤.
“아이코, 또 사고쳤네.”
아래에 있던 샤를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난처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