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마계 의사단의 봉사활동
민하와 하림 선생은 인간계에 도착하였고 본격적인 의료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허름한 달동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민하야, 그럼 연습했던 걸 해보렴.”
“네.”
[광범위 진단]
민하는 마력을 전개해 넓은 범위를 동시에 진단했다.
달동네 구석구석 오래된 집들 안에는 몸이 성치 못한 인간들이 제법 많이 살고 있었다.
“선생님. 이 집도 있고, 저 집도 있고, 또 저기에도 많아요.”
“시작부터 바쁘겠구나. 그럼 가까운 집부터 시작하자.”
하림 선생은 왕진 가방을 꽉 쥐고 목표 대상인 집으로 날갯짓했다.
지붕을 넘어 마당으로 살포시 내려앉은 하림 선생은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몸이 많이 불편한지 누워서 몹시 지쳐 보이는 얼굴로 쉬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민하야, 치료를 한 번 해보겠니?”
하림 선생을 뒤따라 내려온 민하도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멍구는 장독대에 관심이 있는 듯 슬쩍 뚜껑을 열어보고 있었다.
“킁킁. 굉장히 익숙한 장 냄새인데.”
[진단]
민하가 할머니의 몸 위로 손을 얹자 어긋난 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는 물줄기가 모난 돌에 걸리듯 흐름이 깨어진 곳이 있었다.
“허리 부분에서 기가 뒤틀렸어요.”
“심각한 디스크인 것 같구나.”
[치료]
민하는 어긋난 기의 흐름에 마력과 도력과 신력을 섞어 치료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울퉁불퉁 솟아오른 곳이 깎여나가면서 갈라졌던 기의 흐름이 다시 한 줄기로 모여 원활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할머니의 표정도 한결 평안해졌다.
“으음…….”
“할머니 괜찮으세요?”
“아가는 누구니?”
할머니는 잠결에 눈을 떠 눈앞에 보이는 어여쁜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는 마계에서 온 강민하라고 해요. 방금 할머니의 허리를 치료해드렸어요. 이제부터는 몸 관리 잘하세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눈을 꿈뻑이던 할머니는 마계라는 단어에 반응하여 뒤늦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런데 어라? 벌떡 일으켰다고?
“내 허리… 멀쩡하네?”
할머니는 허리를 이렇게 씰룩해보고 저렇게 씰룩해봤다.
통증이 없는데다 바른 자세로 꼿꼿이 서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게 무슨 조상님이 다녀간 일일까.
할머니는 그 소녀에게 감사를 전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자, 다음 집으로 가보자꾸나.”
하림 선생은 또 다른 환자가 사는 집으로 푸드득 날아들었다.
그러자 웬 중년의 부부가 하림 선생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소리를 지르는데.
“엄마야!”
“뭐야! 이 몬스터 새끼가 어딜 함부로 들어와! 우리 집에서 당장 나가!”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하림 선생은 날개를 펼쳐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물건들을 막아냈다.
애초에 조용히 잠입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으므로 강제 치료 방식으로 나가야 했다.
“야, 인간들! 당장 무릎 꿇어 새끼들아!”
이럴 때 나서는 것이 바로 멍구의 역할.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굴복시키고 저질러 버리는 게 훨씬 빠르다.
“히익! 말하는 개다.”
“여보, 어떡해요?”
중년 부부는 서로 부둥켜안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여기서 몸이 안 좋은 사람이 누구냐?”
그러자 아내가 나서서는,
“남편에겐 암이 있어요. 그러니 저를 잡아먹고 남편은 놓아주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는 괜찮습니다. 차라리 저를 잡아먹고 아내는 놓아주세요!”
중년 부부는 멍구 일행이 자기들을 잡아 먹으러 온 줄 알고 호들갑을 떨었다.
당연히 이 모습을 본 멍구는 어이가 없었다.
“얼씨구. 지랄들 하세요. 쌍으로 줄초상 나기 싫으면 당장 불어. 누구야?”
“…실은 제가 위암이 있습니다.”
남편이 죽을상을 하며 간신히 손을 들었다.
“오케이, 좋아. 지금부터 네 병을 싹 치료해 줄 테니 얌전히 누워.”
“네? 그게 무슨…….”
“닥치고 발라당 누워봐.”
멍구가 몰아붙이는 바람에 중년 남성은 마당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웬 예쁜 소녀가 자기에게 걸어와 가슴팍에 손을 얹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죽는 건가 싶어 눈을 질끈 감는데,
“…어라?”
푸른 빛이 번쩍하더니 찢어질 듯 아팠던 통증 부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10kg 무게 추를 덜어낸 듯한 후련함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우린 마계에서 너희 인간들을 치료해주러 온 의사들이다. 네 위암은 완치되었다. 대가는 앞으로 마족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그뿐이다. 그럼, 바이바이.”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셋은 순식간에 하늘로 사라졌다.
중년 부부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위암이 완치되었다는 사실에 기뻐 서로 부둥켜 한참을 울었다.
“멍구야, 그런데 의사들이라고 말하기엔 너는 의사가 아니잖아?”
“민하야, 나는 훌륭한 의사란다.”
“어째서?”
“뛰어난 물리 치료사거든.”
민하에게 궤변을 늘어놓은 멍구는 다음 집에서 그 물리 치료사의 힘을 여실히 발휘하는데,
“전부 대가리 박아, 이 새끼들!”
“당장 안 나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마족의 방문을 한사코 저지하는 아저씨는 멍구와 대치했다.
상대가 연약한 인간임에도 멍구는 얄짤 없이 앞발로 대가리를 후려갈겨 쓰러뜨리고 말았다.
“여보!”
“안 죽였으니까 소리 지르지 마, 아줌마. 당신네 딸 아프지? 우리가 그거 치료해주러 왔다니까. 불만은 거절, 거절도 거절이다. 그냥 순순히 받아들여! 씨X 다 살려낼 거니까!”
아줌마는 무릎을 꿇고 엉엉 울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 민하는 누워 있는 소녀를 진단했다.
하림 선생은 난폭한 멍구의 방식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울고 있는 아줌마에게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됐어요. 이제 종양은 없을 거예요.”
민하는 손을 탁탁 털고 일어났다.
하림 선생은 마지막으로 아저씨에게 활력의 마법을 불어넣었다.
“이걸로 따님의 병은 완치되었습니다. 부디 저희 마계 의사단의 힘이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 주었길 바랍니다.”
그렇게 셋은 또다시 쏜살같이 사라졌다.
민하는 마음이 몽글몽글 따스해졌고,
그때 멍구는 민하의 심력이 또 상승하는 것을 보았다.
* * *
헌터 연합 본부.
서필도는 올라온 보고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문을 열고 홍태진이 들어왔다.
“홍팀장, 그 이야기 들었습니까? 마계 의사단에 관한 일.”
“최근 한 달간 점점 더 뜨거워지는 이야기지요.”
“풍채 좋은 닭 수인과 입이 거칠고 난폭한 개, 그리고 어여쁜 하프 엘프 소녀. 이건 아무리 봐도…….”
“네. 닭은 모르겠지만 나머지 둘은 멍구와 민하 같습니다.”
“강철남씨는 정말 마계와 인간계의 화합을 이루어낼 모양입니다.”
“마음먹은 건 반드시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서필도는 커피 머신으로 커피 한 잔을 내려 홍태진에게 건넸다.
홍태진은 쓴 커피를 마시며 졸음을 떨쳐냈다.
“대중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마계 의사단의 활동을 화해의 악수로 보는 시각과 기만전술로 보는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사정을 아는 우리야 마황제의 뜻이라는 걸 알지만 사람들 모두 저마다 몬스터들에 관한 끔찍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테니 선뜻 믿기 어렵겠지요.”
서필도는 커피를 한 잔 더 내려 설탕을 탔다.
생각이 많아지면 당이 떨어지는 법이다.
“마계에서 날뛰는 몬스터들은 확연히 줄었죠?”
“네. 철남씨가 마계에서 손을 쓰는 모양인지 몬스터들의 난동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몬스터 시장 관리원으로 있는 한지영 씨에게선 별 소식이 없었나요?”
“그곳에서도 마계 의사단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랍니다. 몬스터들 사이에서도 인간과 손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의견 통합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지요.”
서필도와 홍태진은 사람들의 뜻이 대립하고 부딪치는 이 과도기가 안타까웠으나,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겨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인간계와 마계의 사이가 휴전을 넘어 종전으로 완결이 나길 진심으로 바랐다.
* * *
한 달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민하는 다시 기초학교에 등교했다.
“샤를!”
오랜만에 만난 샤를은 왠지 표정이 뾰로통했다.
“샤를. 왜 그러니? 내가 안 반가워?”
“…어떻게…….”
“응?”
“어떻게 한 달 동안 한 번도 날 안 찾을 수 있어? 하다못해 편지 한 통 없었잖아.”
이크! 민하는 그제야 마계 의사단 활동에 전념하느라 샤를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사과하고 또 사과하고 애교도 부리며 샤를을 달래려 했지만 쉽게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큰 승부수를 던지는 수밖에.
“샤를, 우리 인간계로 놀러 안 갈래?”
“응? 인간계?”
“방학 동안 돌아다녀 봐서 인간계 지리는 잘 알게 되었거든. 이번 주말에 같이 인간계에서 놀자.”
“그치만 마족을 보면 다들 피할걸.”
“걱정마. 아빠한테 둔갑술로 인간으로 변장하면 될 거야.”
우려했던 문제가 해결되자 샤를은 슬슬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민하가 엉겨 붙으며 졸라대니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신난다! 그럼 지각하기 전에 학교부터 가자.”
둘은 마차에 올라 학교로 향했다.
방학을 마치고 첫 등교 날, 헤라는 학생들의 방학 숙제를 거두었다.
아이들의 일기장을 검사하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그중에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역시 민하의 일기였다.
민하는 방학 동안 마계 의사단으로서 인간계로 가 의료 봉사 활동을 펼쳤다고 들었다.
일기장에는 매일매일 겪었던 놀랍고 따뜻했던 경험으로 빼곡했다.
나날이 명성이 유명해지자 민하 일행을 맞이하는 인간들은 그들을 환영했고 눈물로 감사를 표했다.
치료를 할 때마다 민하의 마음은 두근두근 따끈따끈 몽실몽실해졌다.
민하에게 있어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여름방학이었던 것이다.
헤라는 민하의 일기장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꾹 눌러 찍어주었다.
* * *
기다리던 주말이 오자 샤를은 아침 일찍 민하네 집을 방문했다.
민하와 인간계에 가는 것이 기대되어 생각보다 훨씬 일찍 나오고 말았다.
“샤를, 어서 오렴.”
일찍 일어나 있던 가이아는 샤를을 집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샤를이 왔다는 소식에 민하는 덜 깬 잠으로 샤를을 맞이했다.
“일찍 왔네. 그렇게 들떴어?”
“바, 바보! 그런 거 아니거든!”
얼굴을 붉히며 부정하는 샤를이었지만 기다리는 내내 의자 위에서 흔들거리는 다리를 감출 수는 없었다.
“자, 그럼 둘 다 준비됐니?”
“네!”
강철남은 민하와 샤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도력을 집중하여 도술을 걸었다.
[둔갑술]
퍼엉―
하얀 연기가 걷히자 민하는 하프 엘프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샤를은 토끼 수인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민하는 여전히 그 어여쁜 미모가 죽지 않았고 샤를은 원래 모습이 갖고 있던 귀여움과 깜찍함을 그대로 가져온 이국적인 미소녀가 되어 있었다.
“샤를, 정말 귀엽다!”
“흥! 당연하지. 인간이 되어도 내 미모가 죽을 것 같니?”
샤를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멍구 없이 괜찮겠니?”
“응! 이번에는 우리끼리 한 번 다녀와 보게!”
“하긴 있으나 마나 하니까.”
“야! 철남이!”
강철남은 민하와 샤를에게 부적을 써 주었다.
“이게 있으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단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거든 아빠의 숟가락을 높이 들렴. 멍구가 나타날 거란다.”
“응! 걱정마. 잘 다녀올게!”
“다녀오겠습니다.”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강철남은 민하와 샤를을 인간계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