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샤를네 집에 어서 오세요
알베르토는 점잖이 마차를 몰았다.
샤를네 집은 긴 대로변을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 크레톤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과연 상권을 휘어잡는 가문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대저택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알베르토가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강철남이 먼저 내려 가이아의 손을 잡아주었고 민하를 번쩍 안아 내려주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멍구도 폴짝 뛰어 내려왔다.
“우와, 집 되게 크다.”
민하가 목을 뒤로 젖혀 집의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마왕성을 제외하면 아마 크레톤에서 본 건물 중 가장 큰 것 같았다.
“강민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민하를 불렀다.
문 앞에서 강철남 가족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샤를이었다.
“샤를!”
민하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알베르토가 샤를에게 다가가 말하길,
“샤를 아가씨. 하인을 시키지 않고 이렇게 직접 마중 나온 걸 주인님이 아시면 혼나십니다.”
“왜? 내 친구는 내가 맞이하겠다는데 뭐 문제 있어?”
샤를이 옳은 말을 당돌하게 내뱉으니 알베르토도 할 말이 없다.
“어서 오세요. 저녁 시간에 갑자기 초대한 무례를 용서하세요.”
샤를은 강철남과 가이아에게 치맛자락을 가볍게 손에 쥐고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오랜만이구나.”
강철남과 가이아는 예의 바른 샤를을 향해 미소로 답해주었다.
“집사 양반. 혹시 이 집 주인장이 우리를 왜 불렀는지 아시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샤를 아가씨와 가까이 지내는 민하 아가씨네 가문을 직접 확인해보고자 부르신 듯합니다.”
“흠. 급에 맞는지 테스트를 해보겠다는 속셈인가.”
“부디 노여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걱정 마시오. 화는 안 났소. 다만…….”
“?”
“놀래 켜 줄 생각에 조금 두근두근하오.”
장난기 어린 강철남의 얼굴을 보자 알베르토도 허허, 하며 웃었다.
과연 주인님이 민하의 아빠는 마황제, 엄마는 마왕, 반려견도 마왕이라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알베르토! 손님들은 내가 안내할게.”
“샤를 아가씨가 원하신다면 그리 하십시오.”
샤를이 문으로 다가가자 커다란 문이 알아서 열렸다.
안에는 메이드들이 고개를 숙이고 샤를과 손님에게 예를 표했다.
샤를은 앞장서서 중앙에 넓게 펼쳐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 한가운데에 있는 응접실의 문 앞에 섰다.
똑똑똑―
“아버지, 어머니.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일부러 내리깐 듯한 목소리로,
“들어오십시오.”
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샤를은 무게를 잡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왜 저러실까, 하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다.
* * *
실론.
크레톤의 상권을 꽉 쥐고 있는 사업가다.
아내 샬롯과 외동딸 샤를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아마 마계에서 가장 성공한 마족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런 실론에게 부족한 게 있을까?
뭐, 전설의 술 장인 소하 선생의 술을 마셔 보고 싶긴 했다.
그것만 빼면 세상 남 부러울 게 없는 몸이시다.
그 이상 욕심이 나는 것은 없지만 가장 소중한 보물은 있다.
바로 하나뿐인 딸 샤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사랑스러운 딸이다.
지난번, 웬 살무사라는 범죄 조직 새끼들이 딸을 잡아간 적이 있었다.
급히 용병들을 풀어 녀석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려 했지만 마왕 키켈이 녀석들을 체포해 감옥에 가둬두었다.
조금만 빨랐어도 살아있는 게 더 큰 고통이라는 걸 깨닫도록 고문해줬을 텐데.
실론이 아무리 대단하긴 해도 마왕의 권위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앞으로는 딸의 경호에 더 신경 쓰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샤를과 가까이 지낸다는 강민하라는 아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샤를과 사이좋게 지내는 건 고맙지만 아버지로서 보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했다.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집안은 어떤 집안인지, 부모는 뭐 하는 사람인지.
혹시나 실론의 재력을 보고 접근하려는 속물들은 아닌지 말이다.
마침 그때가 왔다.
샤를이 그 아이와 함께 인간계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 갑작스럽고 놀라운 제안을 핑계 삼아 강민하의 집안을 불렀다.
그것도 저녁 시간에 갑작스레.
다소 무례한 초대겠지만 관계에서는 기선제압이 중요한 법.
그 대단한 실론 집안과 가까이 지내려거든 이 정도 시련은 당연한 것 아니겠나.
“여보, 단추가 풀어졌군요.”
실론의 아내 샬롯이 남편의 셔츠를 다시 만져주었다.
“…살이 쪄서 안 잠기는 거야.”
“어머, 당신 어느새.”
“요즘 통 운동 부족이라.”
“식단 관리부터 해야겠군요.”
“슬픈 소리로군.”
바깥에서 마차 소리가 들렸다.
곧 그들이 올 것 같군.
“준비됐지?”
“언제든지요.”
실론과 샬롯은 우아하게 자세를 고쳐잡았다.
똑똑똑―
“아버지, 어머니.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샤를의 목소리였다.
실론은 일부러 목소리를 깔았다.
근엄하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고 손님들이 들어왔다.
분위기를 내기 위해 실론은 위스키잔을 들고 서 있었다.
샬롯은 깃털 장식이 붙은 부채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둘 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몸을 돌려 인사를 건네려는데,
“안녕하…….”
순간, 실론은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다.
문이 열리자 엄청난 위압을 풍기며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 방으로 밀려 들어왔다.
공기가 비틀릴 정도로 무섭고도 거대한 힘이었다.
외모를 보자 단번에 직감이 꽂혔다.
잘생긴 얼굴의 인간.
아름다운 용모의 엘프.
저분들은 설마…
쨍그랑―
실론의 손에 들려있던 위스키잔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바람에 샬롯이 깜짝 놀랐다.
“괜찮으신지요?”
바닥에 깨진 유리잔을 보며 가이아가 손을 뻗었다.
[복구]
깨진 유리 조각에 푸른 빛이 감돌더니 이내 그것들이 다시 하나로 모아 원래대로 돌아왔다.
샬롯은 위스키 잔이 떨어져 깨졌을 때보다 더 놀랐다.
“세상에, 이런 마법은 들어 본 적도 없어요.”
“후훗. 이건 마법이 아니랍니다. 신력을 섞은 특별한 힘이지요.”
가이아가 샬롯을 향해 빙긋 웃어주며 말했다.
샬롯은 이제껏 자기보다 아름다운 여성은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오늘 처음으로 깨졌다.
여기 앞에 있는 이 여성은 자기보다 몇 배는 더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목소리도 고왔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신비한 능력도 다룰 줄 아는 것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이 아닐까 생각 들 정도였다.
“저희 소개를 해야겠지요.”
가이아가 강철남의 옆으로 돌아와 그의 팔짱을 꼈다.
“반갑습니다. 저는 민하의 아버지 강철남입니다. 이쪽은 아내 가이아, 그리고 민하와 반려견 멍구입니다.”
“어이, 주인장. 여기 소하 선생이 만든 술은 없어?”
위스키 냄새가 코를 찌르자 술이 고파진 멍구가 술 빚는 장인 소하 선생의 술을 찾아댔다.
“소, 소하 선생의 술은 마왕님도 구하기 어렵다는 전설의 술이오. 쉽게 구할 수는.”
턱―
그때, 멍구가 허리춤에 메고 온 보자기를 풀어서 술병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사실 자랑을 하기 위한 떡밥이었지. 이것이 바로 그 소하 선생의 술, 발해주다.”
“뭐, 뭣이? 진품이란 말이오?!”
멍구는 한 방 먹였다는 표정으로 실론을 내려다보았다.
일평생 소하 선생의 술을 마셔 보는 것이 꿈 중 하나였던 실론은 눈앞에 떡 하니 놓인 발해주를 보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이가 갑자기 왜 이러지? 여보, 우리도 소개를 드려야지요.”
샬롯은 실론과 달리 여전히 그들의 정체를 모르는 듯했다.
“저, 저는 실론이라고 합니다. 샤를의 아버지죠. 이쪽은 아내 샬롯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비 오듯이 땀을 흘리는 실론의 셔츠는 흥건히 젖었고 반면에 샬롯은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어머, 여보. 무슨 땀을 그렇게 흘려요? 어디 몸이 안 좋은 거 아녜요?”
“괜찮아. 이건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대체 왜 그러는데요?”
“당신은 아직도 모르겠어? 저분들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몸만 떠는 실론.
그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민하가 가까이 다가왔다.
“아저씨, 잠시만 실례할게요.”
“응?”
[진단]
민하는 실론의 몸에 손을 얹고 진단을 시작했다.
‘기의 흐름. 그곳에서 어긋난 부위를 찾아야 해.’
마력을 끌어모아 기의 흐름을 찾던 민하.
‘찾았어! 여기다!’
문제가 되는 부위는 찾았다.
이제는 다음 단계.
[치료]
그러다 문득 자기도 모르게 도력과 신력을 섞어 기술에 접목해보는데,
“하아아…….”
실론의 호흡이 평안해지면서 근육의 긴장이 느슨해졌다.
심하게 요동치던 심장이 정상 속도를 되찾고 흐르던 땀도 멎었다.
소파에 몸을 누인 실론은 한결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어머. 민하야, 너 정말 대단하구나.”
샬롯이 민하의 능력에 감탄하며 실론의 몸에 흐른 땀을 닦고 있었다.
혼미해진 정신줄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실론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려 애쓰고 있었다.
“마황… 마황…….”
“여보. 말은 나중에 해요. 우선 당신은 쉬고 있어요.”
다급한 실론의 마음도 모르고 샬롯은 그를 내버려 두고 손님들께 다가갔다.
“식사가 마련되어 있으니 식당으로 가요. 오늘은 특별히 만찬을 준비했답니다.”
“실론 씨는 괜찮으신가요?”
“잠시 진정되면 뒤따라올 거에요. 자, 저희는 먼저 가도록 해요.”
샬롯의 안내를 받고 강철남 가족은 식당으로 향했다.
실론은 소파에 쉬면서 생각을 정리해봤다.
자기 딸 샤를과 절친인 강민하.
그가 마황제 강철남과 마왕 가이아의 딸이라는 사실.
그리고 반려견 또한 마왕 멍구.
그런 집안에 기선제압을 하겠다며 무례한 초대를 한 자기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럴 때가 아니지.”
잠시 누워 있던 실론은 그만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이미 샬롯은 손님들과 친해졌는지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어머, 여보. 몸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이제 괜찮아. 민하야, 고맙구나. 너에게 신세를 졌어.”
“아니에요. 요즘 벤티 학원에서 의술을 배우고 있거든요.”
“의술? 6살 아이가 학원에서 의술을 배운다고?”
실론은 황당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의술은 왕립 학교에 입학할 수준의 마력이 있어야 배울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부터 들었지만 이미 자기 몸에 치료되었지 않았는가.
무엇보다도 마황제의 딸이다.
무슨 일을 한 대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민하는 정말 대단하구나. 그럼 나중에 의사가 될 거니?”
샬롯이 다시 대화에 빠져들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럼 의술은 왜 배우는 거니?”
“그건 인간들에게 마계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예요.”
“인간들에게 마계의 마음을?”
샬롯은 이해가 잘 안되는 듯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앉은 강철남이 민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 받았다.
“마계와 인간계의 화합을 시도할 생각이오. 그러기 위해 인간들이 난항을 겪고 있는 많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우리 마계가 힘을 보탤 생각이오. 민하가 의술을 배우는 이유는 인간들의 불치병을 고쳐주기 위해서라오.”
“와아! 정말 대단한 일이네요. 민하 아버지는 농사를 짓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대단한 일까지 하시게 된 건가요?”
샬롯이 감탄을 하며 눈에 별빛을 쏘아대자 실론이 샬롯의 옷깃을 살짝 잡아 당겼다.
토끼 귀가 쫑긋하던 샬롯은 무어라 중얼거리는 실론의 말에 집중했다.
“네? 네네.”
“…….”
“…….”
“…….”
“마, 마, 마황제님?!!”
샬롯은 먹던 당근을 툭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