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마법 학원에 어서 오세요
민하가 숟가락을 번쩍 들자 툭 튀어나온 웬 반려견.
그 개가 마왕 멍구라니.
대체 민하네 집은 뭐 하는 집일까?
“민하야, 혹시 너희 엄마 아빠는 뭐 하시는 분이니?”
“두 분 다 농사지으셔.”
“그래?”
생각보다 평범한 가정이었다.
샤를은 뭔가 더 있을 것 같지만 친구의 가정사를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었다.
민하는 샤를에게까지 비밀로 할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엄마 아빠의 정체에 관해서 입을 꾹 닫고 살아오다 보니 감추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가장 친한 친구 샤를에게 숨기는 게 있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는 알려줘야지 하며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민하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한 엄마 아빠의 정체에 관해 아는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은 마황제 강철남이 마왕 가이아와 결혼을 하고 반려견 마왕 멍구가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은 책에 쓰여 있지 않아 모르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나 참,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을 수가 없네. 이 개가 마왕이라니.”
“흐아암. 믿건 말건 상관없어. 마왕이라는 감투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잠이 아직 덜 깼는지 멍구는 하품을 하고는 홉고블린이 알려준 벤티 학원을 향해 앞장섰다.
샤를은 여전히 알쏭달쏭한 마음이었지만 민하가 멍구를 기분 좋게 쓰다듬는 걸 보니 멍구를 향한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마왕이면 어떠한가.
민하가 저토록 예뻐하는 반려견인데.
“샤를, 빨리 와.”
“응, 같이 가.”
민하와 샤를은 멍구를 따라 벤티 학원을 향해 달려갔다.
* * *
넓은 광장을 지나 제법 큰 길목을 돌아보니 벤티 학원 팻말이 꽂혀 있는 커다란 건물을 맞닥뜨렸다.
“우와, 여기가 벤티 학원이구나.”
“사설 학원이라 그런지 우리 학교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크네.”
“샤를. 사설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우리 학교처럼 나라가 지어준 게 아니라 개인이 지은 걸 말하는 거야.”
“개인이 학원을 왜 지어?”
“음… 그 이유는 학원을 지은 마족한테 직접 물어보자.”
어른들의 어려운 사정 같은 건 샤를도 알 턱이 없다.
호기심 많은 민하는 학원에 관해 궁금한 점이 많은 모양이다.
“그럼 들어가 보자.”
민하가 학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끼이익―
문이 열리고 베거가 나타나 셋을 맞이하러 나왔다.
“어서 오너라, 꼬마 아가씨들. 그리고… 멍멍이 나으리.”
정장을 깔끔하게 다려 입은 베거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민하가 방문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럼. 나는 벤티 학원의 원장 베거.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제법 다양한 장기를 가지고 있단다.”
베거는 문을 활짝 열어 안으로 들어오라며 우아하게 손짓했다.
민하와 샤를은 왠지 경계심 없이 편안한 마음이 들어 거리낌 없이 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멍구도 베거에게서 위험한 냄새는 나는 것 같지 않아 경계를 다소 느슨히 하고서 학원 안으로 입장했다.
“아저씨는 왜 학원을 세웠어요?”
“하하하. 아주 좋은 질문이구나. 그전에 너희 소개를 먼저 해주겠니?”
“아 참. 저는 강민하라고 해요. 얘는 제 가장 친한 친구 샤를이고요. 얘는 우리 집 멍멍이 멍구예요.”
샤를은 민하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해 주니 괜히 으쓱해져서 콧대를 높이 들었다.
“그래. 좋은 이름들이로구나. 민하가 던진 질문은 아주 훌륭한 질문이야. 내가 이 학원을 세운 이유는 바로 마계의 지식수준을 높이기 위해서지.”
“지식수준을 높여요?”
“생각해보렴. 학교에서의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니?”
베거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민하와 샤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전혀 없어요. 학교 공부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하다고요.”
샤를이 양손을 어깨까지 으쓱 들어 올리며 넌더리를 냈다.
“저는… 헤라 선생님의 수업이 즐겁긴 하지만 가끔은 더 많은 걸 배워보고 싶긴 했어요.”
호기심 많은 민하는 아무래도 달랐던 모양이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우리 학원에 잘 왔단다. 학교 공부로는 만족 못하는 민하 같은 아이와, 학교 공부에 지쳐 좀 더 자기에게 맞는 공부법을 원하는 샤를 같은 아이를 위해 우리 학원이 있는 거란다. 학원이란 그런 곳이야. 좀 더 재밌고 다양한 지식을 배우는 곳.”
“와. 그럼 학교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더 좋다고 말할 순 없어. 학교 선생님들도 대단히 뛰어난 분들이시니까. 그런 의미로 우리 학원은 학교와 다르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구나.”
베거는 아주 조심성 있게 학교와 학원의 차이에 초점을 맞춰 설명했다.
가만히 잠자코 듣고 있던 멍구가 일을 열었다.
“이보슈, 고양이 양반. 아까부터 학교와 다르다고 주장하는데 어떤 게 다르다는 거요?”
“그것 역시 좋은 질문입니다, 멍구씨. 먼저 교육 방식이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예를 들면… 민하야. 학교 수업 시간에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지 않았니?”
“있어요. 사실은 마력탄의 크기를 잘 못 줄이겠어요.”
“마력탄의 크기라. 좋아. 그러면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해보자꾸나.”
“네? 여기서요?”
“하하하. 여기서 마력탄을 쐈다간 복도가 엉망이 되겠지? 실습장으로 가자.”
“실습장도 있어요?”
민하가 점점 학원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샤를은 민하가 신이 날수록 오히려 이성적으로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고 멍구도 베거의 속셈이 뭔지 깐깐하게 추측해보고 있었다.
물론 주방이 어디 있는지 코를 킁킁대긴 했지만 말이다.
“자, 여기가 실습장이란다. 어때, 나라에서 지은 기초 학교에 뒤지지 않지?”
베거가 안내한 벤티 학원의 실승장은 그야말로 거대한 암석 훈련장이었다.
시설은 물론이고 규모마저 민하가 다니는 기초 학교보다 좋았다.
“이게 전부 베거 아저씨 거에요?”
“정확히는 학원 것이지.”
“잠깐만요. 개인이 어떻게 이런 시설을 지을 수가 있는 거죠?”
명색이 샤를은 상업을 휘어잡는 집안의 딸이다.
개인이 운영하기엔 턱없이 큰 학원이 수상한 생각이 들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이전에 카르텔에서 이것저것 사업을 해서 번 돈이 있었거든. 원래부터 교육에 꿈이 있었지. 마계의 어린이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고 훌륭한 마족으로 성장하도록 초석을 쌓겠다는 원대한 꿈 말이야. 그 꿈을 위해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전부 교육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왜 헤라 선생님처럼 기초 학교에 들어오시지 않으셨어요?”
“하하. 공교육에서는 아무래도 사교육처럼 자유로운 교육 방식이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나는 유연한 학습 방식을 추구하거든.”
베거는 샤를이 어린아이임에도 무시하지 않고 마치 성인을 대하듯 자기 과거와 꿈에 대해 말해주었다.
“저기, 그럼 여기서 마력탄을 쏴봐도 돼요?”
“물론이지.”
“잠깐, 민하야. 그러다 또 실습장을 날려 버리면 어떡하려고?”
“응? 실습장을 날려?”
“얘 마력을 우습게 보면 안 될걸요? 마력 실습 수행평가 때 실습장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고요.”
“호오. 설마설마했는데 그 정도란 말이지.”
“네? 설마설마 라뇨?”
“사실 내게는 ‘눈’이 있단다. 솔직히 말하자면 민하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먼저 스카웃 제의를 한 거지.”
“역시.”
베거는 민하에게 접근해 말을 붙인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고백했다.
샤를은 그제야 의문이 조금 풀렸다.
아무래도 우연이라기엔 너무 베거 쪽에서 만들어낸 만남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베거는 멍구 쪽을 돌아보았다.
“당신은 어마어마한 실력자로군요.”
멍구는 대답 대신 늘어져라 하품만 쩍 했다.
“어떻습니까? 민하의 마력탄 연습을 도와주시지요.”
“뭐? 내가?”
“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마력탄을 받아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마력탄에 처맞는 건 사고가 아니고?”
“멍구야, 부탁해!”
민하의 부탁에 멍구는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에효, 개팔자 상팔자라더니 다 거짓말이야.”
멍구는 실습장 안으로 들어가 민하와 마주 섰다.
살포시 앉아 민하가 마력탄을 날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야, 이건 아무리 나라도 조금 똥줄이 타는데. 민하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 내라는 거잖아.”
“걱정 마, 멍구야. 살살 쏠게!”
“방금 실습장 가루썰을 다 들었는데 퍽이나 걱정이 안 되겠다.”
손바닥을 쫙 펼친 민하가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마력탄]
곧 응축된 마력 덩어리가 생성되더니 지름 50cm의 구체가 만들어졌다.
“잘하고 있어 민하야. 지난번보다 많이 줄었어!”
샤를의 응원에 기분이 들뜬 민하.
갑자기 힘이 들어가 마력이 울컥 넘쳐버리는데,
쿠구궁―
마력탄의 지름이 2m를 초월하였고 민하는 그걸 제어할 수가 없었다.
“이크!”
“민하야, 그냥 날려.”
“멍구야, 괜찮겠어?”
“컴온!”
결국 민하가 더 커지기 전에 마력탄을 날려버렸다.
파아앙――
풍압을 일으키며 날아가는 마력탄은 멍구를 정면으로 덮쳤다.
[근성]
멍구는 땅에 네 발을 피뢰침처럼 단단히 꼽아 고정한 뒤 머리를 내밀었다.
묵직한 마력탄이 멍구의 정수리를 들이받자 목에 힘을 바짝 준 멍구가 버티느라 용을 썼다.
[포효]
마력탄을 향해 멍구가 크게 짖자 비로소 진동과 함께 마력탄이 으깨어 소멸하고 말았다.
“휴, 진짜 전쟁보다 더 피곤한 게 육아라니까.”
“멍구야, 미안해.”
민하는 달려가 멍구의 목을 껴안으며 사과했다.
“뭐, 이쯤이야 나한텐 아무것도 아닌데 뭘.”
마빡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 멍구는 허세를 부렸다.
어마어마한 마력의 충돌에 샤를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고 베거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역시 대단하구나, 민하야. 멍구씨도요. 이거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상상 이상의 충격을 받은 베거가 할 말을 일었다.
그러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민하에겐 섬세한 마력 컨트롤 선생님이 필요한 것 같구나.”
베거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손을 한 번 허공에 휘저었다.
그러자 마력이 푸른색 새 모양이 되어 바깥으로 날아갔다.
“우와, 그건 뭐에요?”
“호출 마법이란다. 곧 어떤 선생님꼐서 올 거란다.”
머지않아 베거의 말대로 한 마족이 실습장으로 찾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원장 선생님.”
“아, 하림 선생님. 이쪽은 견학을 온 손님들입니다. 민하, 샤를, 그리고 멍구씨지요.”
“오호. 방금 들렸던 엄청난 소리는 이 손님들이 낸 것이로군요.”
하림이라는 이름의 선생님은 닭의 머리를 한 닭 수인이었다.
멋진 볏을 왁스로 세우고 지긋하게 민하와 샤를을 보는 눈빛에는 따스함도 있었고 날카로운 분석의 눈빛도 있었다.
“특히 이 민하라는 학생은 대단한 마력 소질을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그 섬세한 컨트롤이 아직 미미합니다.”
“그렇군요. 제 힘이 필요할 때군요.”
하림 선생은 날개를 파닥이고 풍성한 가슴을 내밀고 우아하게 걸어왔다.
“민하 학생.”
“이봐, 아직 등록 안 했다고.”
멍구가 반박하자 하림 선생은 목을 가다듬고 단어를 정정했다.
“엣헴. 민하 양. 마력을 손가락에 모아보시겠어요?”
“이렇게요?”
민하는 손가락에 마력을 모았다.
하지만 역시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려고 하는데,
“가슴 쪽에 수도꼭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물을 잠그듯 마력을 잠가 보세요. 아주 약한 물줄기를 트는 겁니다.”
하림 선생이 날개로 민하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주었고 민하는 진정된 마음으로 마력을 약하게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