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우리 멍구의 정체는?
여느 때처럼 상쾌한 아침.
“엄마, 아빠! 안녕히 주무셨어요?”
민하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가장 먼저 일어나 엄마 아빠의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엄마 아빠를 깨우고는 다음에 할 일로 밖으로 달려 나가 아침 공기를 맡으며 기지개를 켠다.
“멍구도 잘 잤니?”
“더 잘래.”
“안 돼, 일어나. 잠꾸러기야.”
민하는 하품을 쩌억 하며 다시 드러눕는 멍구를 질질 끌고 와 세수를 시켰다.
“자, 흥.”
“흐응!”
멍구는 코를 팽 풀고 물로 얼굴을 헹구고는 탈탈 털어 말렸다.
“잠이 확 깨네.”
“개운하지?”
“응. 그런 의미로 다시 잠을…….”
“안 돼!”
민하와 멍구가 아옹다옹하는 새에 가이아는 아침 식사를 준비했고 강철남은 텃밭을 둘러봤다.
“철남이, 좋은 소식 좀 있나?”
“으음. 아직은 잘 모르겠어.”
강철남이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농사는 바로 인간계의 흙으로 네 가지 품종의 모종을 개량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마력으로 키운 모종.
두 번째는 도력으로, 세 번째는 신력으로 키우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힘을 담아 키워보려 했다.
“그 인간만의 특별한 힘이라는 게 뭔데?”
“그걸 모르겠다는 거지. 자칫하면 그냥 인간계에 널린 흔하디흔한 식물로 자랄 거야.”
“으음. 애초에 인간만의 특별한 힘이 있는지도 의문인데 말이야.”
“분명히 있을 거야. 마력, 도력, 신력, 그리고 인간의 힘이.”
작물을 돌보는 것은 사람의 일이지만 키우는 것은 시간의 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켜보는 일밖에 없다.
강철남은 모종에 물을 주고 아침상에 올릴 푸성귀와 방울토마토를 몇 줌 땄다.
그 사이 민하는 손을 깨끗이 씻고 엄마를 도와 아침상을 차리는 걸 도와주고 있었다.
“우리 딸 참 착해요.”
가이아는 사랑스러운 민하의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가족끼리 함께하는 단란한 아침 식사 시간.
행복한 미소와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러자 텃밭의 네 번째 모종에서 뿌드득 소리와 함께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작은 성장이 일어난 듯했다.
* * *
민하는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며 등굣길에 올랐다.
요즘은 학교 가는 길에 샤를을 만나 늘 함께 가곤 했다.
조금만 걷다 보면 곧 샤를의 마차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안녕, 꼬마 아가씨?”
웬 키가 큰 정장 차림의 고양이 수인이 민하의 앞을 가로막아 서서 말을 걸어왔다.
“누구세요?”
“나는 베거란다.”
“저한테 무슨 볼일 있으세요?”
낯선 마족이었지만 나쁜 분위기를 풍기지는 않았다.
일단 정중히 말을 걸어왔기에 민하도 차분하게 대응했다.
“놀라지 않다니 참으로 똘똘한 아이로구나. 나는 벤티 사설 학원의 원장이란다.”
“벤티 사설 학원? 그게 뭔데요?”
“으음. 그래, 아직 학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겠구나. 간단하게 설명하자니 우리 학원의 매력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거 같고, 자세히 설명하자니 꼬마 아가씨가 학교에 지각할지도 모르겠구나.”
민하는 자기 사정까지 배려하는 베거의 태도에 민하는 저도 모르게 조금씩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학교 마치고 나서는 어떠니? 자, 여기 내 명함이란다. 뒷면에 주소가 있으니 한 번 방문해 주렴. 친구를 데려와도 좋단다. 친구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왜냐하면 우리 학원은 다른 학원과 달리 아주 재밌는 곳이거든. 그럼 학교 잘 다녀오거라.”
그렇게 말하고 베거는 순식간에 휙, 하고 사라져버렸다.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홍보에 가깝긴 했지만 위험하다거나 나쁜 느낌은 안 들었다.
무엇보다 아주 재밌는 곳이라는 얘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강민하!”
민하가 멍하니 명함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샤를의 마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길 한복판에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
“아, 누구랑 얘기를 좀 한다고.”
“누구랑?”
“이따가 얘기해줄게. 그나저나 샤를, 여기까지 직접 다 와주고. 혹시 내가 걱정 됐어? 아니면 빨리 보고 싶었던 거야?”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이 바보야. 그, 그래. 지각할까 봐 그랬다 왜!”
샤를이 왠지 분하다는 표정으로 으르렁댔고 민하는 그런 샤를이 귀여워 깔깔 웃었다.
* * *
헤라의 지도를 받으며 1년간 열심히 마력 수업을 들은 민하는 어느 정도 마력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마력탄을 저 지름 15cm 링 안으로 통과시키고 표적을 쓰러뜨려야 성공이에요. 크기와 방향, 속도 모두 잘 가늠해서 만들어 쏘도록 하세요.”
마침내 다가온 마력탄 실습 수행평가.
반 아이들은 꾸준히 갈고닦은 실력을 뽐냈다.
타앙!
“좋아요. 잘했어요.”
샤를이 10cm 지름의 정확한 크기의 마력탄을 만들어 링을 통과시켰고 방향까지 정확히 노려 표적을 넘어뜨렸다.
어김없이 만점짜리 실력을 보여주었다.
“샤를, 역시 대단하다!”
“흥, 강민하 너도 잘해.”
“응!”
마침내 민하 차례가 왔다.
지금껏 연습해왔던 마인드 컨트롤.
‘살살, 살살. 약하게, 약하게. 작게, 작게.’
주문처럼 되뇌며 민하는 손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마력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소환해낸 마력탄을 앞으로 쏘아 보냈고 마력탄은 정확히 올곧은 방향으로 날아갔다.
퍼엉!
마력탄은 표적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방향과 속도 모두 안정적이었다.
크기도 지금까지 만들어냈던 마력탄 중 가장 작게 만들어냈다.
다만,
“민하야, 노력 많이 했구나. 그치만…….”
실습장이 또 가루가 되고 말았다.
이날 민하 인생에서 만든 가장 작은 마력탄을 갱신했지만 그것은 지름 1m짜리, 자기 몸만한 사이즈였다.
* * *
“헤헤. 그래도 1년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어!”
하굣길에 샤를과 함께 마차 속에서 수행평가 이야기를 나누던 민하.
아쉬운 결과였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웃어넘기고 있었다.
“으이그, 너는 웃음이 나오니?”
샤를은 이 정도까지 속 편한 민하가 어떨 때는 부럽기까지 했다.
명망 높은 가문의 딸이다 보니 샤를은 항상 성적도 우수해야 했고 품행도 단정해야 했기에 늘 주변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어린 나이임에도 또래 아이들에 비해 제법 큰 스트레스를 안고 살았다.
그런 삶 속에 민하라는 존재는 샤를이 마음을 터놓고 가식 없는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주었다.
“너 그러다 아버님이 학원에 보내실지도 모른다?”
“학원?”
샤를이 주의를 주는 말속에서 민하는 익숙한 ‘학원’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분명 아침에 베거라는 고양이가 명함을 주며 소개했던 단어다.
“학원은 재밌는 곳이라 들었는데?”
“누가 그래? 부모님이 그러시지? 하여간 아이들을 살살 꼬드겨서 공부시키려고만 한다니까.”
“아니. 베거라는 고양이가 말했어.”
“누구야, 걘?”
민하는 베거의 명함을 꺼내어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말만 들어서는 학원이란 무척 재밌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학원이라는 곳은 학교에서 부족한 부분을 따라잡기 위해서 보충 공부를 하는 곳이라구. 재미있을 리가 없잖아.”
“공부를 더 하는 곳이라고?”
샤를의 말에 민하는 학원에 대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학원이라는 곳에 가보면 자기 마력을 섬세히 조절할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샤를! 우리 이 벤티 학원이라는 곳에 한 번 놀러 가보자. 베거가 놀러 오랬어.”
“야, 놀러 오라는 건 그런 뜻이 아니거든. 한 번 들렀다가 혹해서 등록하게 될지도 몰라. 어지간히 깐깐한 성격이 아니라면 뿌리치지도 못할 거야. 아마 넌 바로 등록해버릴 것 같아.”
“그래도 왠지 재밌을 것 같은걸…….”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이 위험한 곳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1년 전에 살무사 사건 이후로 집에서 날 얼마나 엄하게 대하는데.”
샤를은 민하의 마음은 잘 알지만 아무래도 집안 사정상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럼 깐깐하고 힘센 보디가드가 함께 간다면 문제없겠다!”
“응? 뭐, 그런 경호원이 있다면 안심이겠지만… 혹시 누구 있니? 멋진 토끼 오빠라도 있는 거야?”
“잠깐 기다려.”
잠시 마차를 세우고 폴짝 뛰어내린 민하는 품속에서 뭔가를 뒤적이며 꺼냈다.
하늘을 향해 높게 쳐든 것은 바로 강철 숟가락.
[멍구 소환]
퍼어엉!!
하얀 연기와 함께 숟가락에서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멍구였다.
“깨갱!”
낮잠을 자다 허공에서 떨어진 멍구는 철푸덕 엎어지면서 놀랐고, 왕자님 같은 토끼 수인을 기대했던 샤를은 어이없는 실망감에 허탈해졌다.
“아고고… 민하야, 갑자기 무슨 일이니? 누가 괴롭혀?”
“아니. 멍구가 필요해서!”
“무슨 일인데?”
“칫, 경호원이 고작 똥개라니.”
“이봐, 말조심해. 난 이제까지 6살 난 여자애랑 싸워서 져 본 적이 없거든.”
샤를이 불만을 표하자 멍구가 찌질하게 으르렁댔다.
에효, 됐다 하는 표정을 짓는 샤를은 운전수 쪽 창문을 똑똑 노크했다.
“알베르토. 민하랑 나는 벤티 학원이라는 곳에 가 볼 건데 먼저 가주겠어?”
마차를 몰던 샤를의 집사 알베르토는 멍구를 보자 안심이라는 듯 고개를 숙였다.
“멍구님과 민하 아가씨가 동행하신다면 안심이지요. 민하 아가씨, 멍구님. 저희 샤를 아가씨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뭐라고?’
샤를은 순간 흠칫했다.
집사 알베르토가 저 개를 보고 분명 ‘멍구’라고 불렀다.
책에서 보고 배운 마왕의 이름과 똑같았다.
‘아니야. 그럴 리 없지. 우연히 이름이 똑같을 뿐이겠지. 저 근본 없는 시고르자브종이 마왕 멍구일 리가 없지.’
샤를은 멍구가 마왕이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민하는 알베르토를 향해 꾸벅 인사를 올렸다.
“걱정 마세요!”
“다음에 간식이라도 챙겨줘.”
알베르토가 마차를 이끌고 떠난 뒤 민하와 샤를과 멍구가 본격적으로 학원 견학을 위한 나들이에 나섰다.
“그럼 출발!”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가?”
“어 그게…….”
항상 마차를 타고 다니는 귀한 집 따님인 샤를이 주소만 보고 어딘지 찾아갈 수 있을 리 없다.
천방지축 민하는 자기 집 주소조차 몰랐고 항상 발길 닿는 대로 쏘다니는 멍구도 네비게이션 역할은 젬병이었다.
“보디가드가 뭐 이래?!”
샤를이 민망함에 괜히 멍구를 책망했다.
하지만 회심의 미소를 짓는 멍구.
“후후후. 어쩔 수 없군.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인맥이지.”
“멍구야, 어떡하게?”
“나만 믿고 따라와!”
멍구는 펄쩍 뛰어 골목길로 들어갔다.
“여기로 가야 해?”
샤를은 좁고 음침한 골목길에 들어가는 게 꺼려졌다.
“샤를! 내 손 잡아!”
민하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샤를은 민하의 손을 잡고 용기를 내어 골목으로 따라 들어갔다.
한편, 먼저 골목길로 들어간 멍구는,
“야, 누구 있으면 대답 좀 해봐라.”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들어가서는 아무나 불러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누구야?”
“나다 이 X새끼야.”
“허억! 멍구님!”
웬 오우거 한 마리가 인상을 찌푸리고 튀어나오다가 멍구를 보자마자 바로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잘 지내냐?”
“덕분에 잘 지냅니다! 좋은 직업을 소개해주신 덕분에 올여름에 장가갑니다.”
“오오, 축하하네.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는데.”
“물론이죠. 지켜봐 주십시오.”
크레톤 골목길 군데군데에는 멍구의 직업소개소에서 일자리를 소개받고 출소 후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멍구를 은인으로 여기며 깍듯하게 모셨고 경사나 호사가 생기면 꼭 알려 잔치에 초대하기도 할 정도였다.
“아니, 멍구님!”
“멍구님이 오셨어, 다들 나와봐!”
“야, 개껌 없어? 없으면 육포라도 가져와!”
멍구의 등장에 마족들은 허둥지둥 뭐라도 챙겨 주려고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야, 됐어, 됐어. 금방 갈 거야. 새끼들이 오버 하기는.”
“대접할 게 변변치 않아서 어쩌죠?”
“됐다니까. 그건 그렇고 너희 혹시 벤티 학원이 어딨는지 아냐?”
멍구가 벤티 학원의 이야기를 꺼내자 마족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긴 압니다만.”
“거기가 어디야?”
한 홉고블린이 벤티 학원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거기는 어쩐 일로 가시게요?”
“설마 내가 공부하러 가겠니?”
“하하하. 그렇죠? 혹시나 멍구님이 공부리나. 어디 아프신가 걱정했어요.”
“넌, X바 꼭 말을 해도.”
홉고블린의 대가리를 한 대 쥐어박으려다 아이들의 정서 교육을 고려해 간신히 나가려던 앞발을 참았다.
“에효, 애들이 널 살렸다. 아무쪼록 사고 치지 말고 건강하게 잘들 지내.”
“안녕히 가십시오!”
마물들의 인사를 받으며 멍구 일행이 골목길을 나섰다.
“민하야, 너희 집 개 대체 정체가 뭐니?”
“아, 멍구? 멍구는 마왕이야.”
“…뭐?”
민하는 엄마 아빠의 정체를 밝히지 말라는 말만 꼭 지켰지 멍구의 정체는 구태여 비밀로 하지 않았다.
이를 들은 샤를의 반응은,
“뭐어라구우?!”
깜짝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