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다섯 군대 전투
이곳은 벽 너머 도착한 살무사의 본거지.
비밀리에 꼭꼭 숨겨져 있던 범죄조직의 아지트가 지금은 완전 시장판 아수라장이었다.
“샤를 아가씨를 찾아라!”
“크레톤의 치안을 짓밟는 살무사를 잡아라!”
“살무사를 잡아가면 카르텔님이 후한 상을 내리실 거야.”
“뭐야? 용병에 군대까지 있잖아! 젠장. 상관없다. 침입자 새끼들은 다 죽여버려!”
“…아오, 시끄러.”
샤를 집안의 용병, 키켈의 경비대, 카르텔의 군대, 살무사 조직, 강철남 가족.
각기 다른 목적으로 모인 다섯 군대가 서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키켈의 경비대와 카르텔의 군대는 살무사 소탕이라는 공적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카르텔의 군대잖아? 너네는 여기 왜 왔냐? 너희 나라로 꺼져.”
“닥쳐. 살무사 보스 목에 걸린 현상금이 얼마인데 여기까지 와서 알겠습니다, 하고 후진 기어 박을 놈이 어디 있냐.”
경비대와 군대는 창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살무사 조직과 싸웠다.
애초부터 비교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비록 살무사 조직이 뒷골목에서 주름잡던 폭력 집단이긴 해도 상대는 훈련받은 정예군대였으니까.
“일진 한번 지랄맞은 날이로군. 후퇴다!”
살무사 조직이 후퇴하자 그 뒤를 쫓는 것은 샤를 집안의 용병들이었다.
“샅샅이 뒤져라! 샤를 아가씨를 찾는 게 급선무다!”
용병대장은 조직원들을 잡아 패면서 샤를의 행방을 물었지만 수확은 없었다.
그 와중에 군대와 용병들이 뒤엉키며 엎치락뒤치락 난리도 아니었다.
“지랄병들 나셨구만. 철남이, 우리는 어떡할 거야?”
“우리 목적도 다르지 않아. 샤를을 구한 뒤 조직을 소탕하고 보스를 잡는 거지.”
“아빠… 저 아저씨들 때문에 흔적이 복잡해져서 찾기가 어려워요.”
사이코메트리로 샤를의 흔적을 찾던 민하가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가 개 난장판이라 그렇잖아. 철남이, 내가 기강 좀 잡고 올게.”
이때다 싶은 멍구는 폴짝 뛰어서 군대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뭐야, 이 개는?”
“으악! 미친 똥개다!”
[연속 뚝배기 파괴술]
탕― 탕― 탕―
멍구는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뚝배기를 두들겼다.
키켈의 군대도 카르텔의 군대도 창을 휘두르며 대항해보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이 머절탱이가! 경비대까지 조지면 어쩌자는 거야.”
강철남은 얼른 쫓아가 신이 나서 이놈 저놈 가리지 않고 뚝배기를 깨느라 정신을 쏙 빼놓고 있는 멍구의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멍구가 한바탕 날뛰고 난 지하 도시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루라도 깽판을 안 치면 잠이 안오지?”
“어떻게 알았냐?”
“아빠! 찾았어요! 샤를은 이쪽으로 갔어요.”
“좋아, 따라가자꾸나.”
민하를 태운 구름은 민하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쌩쌩 내달렸다.
강철남과 멍구도 뒤따라가자 그들이 다다른 곳은,
“여긴 마치…….”
“완전 도로잖아.”
지하 도시에 기다란 도로가 펼쳐져 있었다.
옆에 놓인 표지판에는 카르텔과 가이아로 가는 방향이 적혀 있었고 그 방향으로 잘 닦인 통로가 나 있었다.
“아마 놈들은 이 지하도로 여기저기 이동해 다녔던 모양이군. 생각보다 규모가 커.”
“우쒸. 그런데 왜 도시 멍구로 가는 길은 안 뚫어 놓은 건데!”
“뭐 주워 먹을 게 없으니 그렇지.”
“에잉. 뭘 모르는 놈들이구만.”
그 사이에 민하는 벽을 손으로 짚어보고 샤를의 흔적을 탐색했다.
“커다란 뱀이에요! 커다란 뱀이 샤를과 다른 아이들을 끌고 카르텔 방향으로 향했어요!”
“다른 아이들? 한 둘이 아니라는 말인가? 새끼들이 형량을 미친 듯이 쌓는구나.”
[초광속]
멍구와 강철남은 디딤발에 힘을 주고 앞을 향해 박차고 나갔다.
“저기있군.”
총알같이 앞으로 튀어 나가자 머지않아 거대한 뱀의 꼬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녀석의 꼬리에는 바퀴 달린 수레가 달려 있었고 매달린 철창 감옥에는 샤를을 비롯한 고급 양복을 입은 아이들이 갇혀 있었다.
척 봐도 부잣집 아이들을 노린 범죄였다.
“앞에 가는 지렁이 새꺄! 당장 스톱!!”
어느새 뒤따라온 멍구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거대한 뱀이 우뚝 서더니,
펑!
하얀 연기를 일으키며 둔갑술을 펼쳤다.
“둔갑술? 너 도술을 부릴 줄 아는 거냐?”
연기가 걷히자 삼각형 머리를 한 뱀 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래 봬도 인간계에서 짬밥을 좀 먹었거든.”
“네가 살무사냐?”
“그렇다. 너는… 오호라, 이게 누구신가. 마황제로군.”
강철남을 알아보고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패기가 대단했다.
“아이들을 납치해서 번 돈으로 뭘 하려는 거지?”
“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세상을 세우기 위해서지.”
“좋은 세상은 아닌 것 같은데.”
“좋은 세상? 네 기준에서 말하지 마라. 네가 마계를 바꾸어 놓는 바람에 우리처럼 거칠게 살아가는 마족들에게 좋은 세상이란 다 갔단 말이다.”
“그럼 사는 방식을 바꿔야지, 애들을 팔아서 벌어먹는 게 답인가?”
“모든 개혁에는 자금이 필요한 법. 내가 욕을 먹더라도 바뀐 세상에서 살아갈 아우들을 생각하면 감수할 수 있다.”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네.”
멍구가 참지 않고 살무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영혼 교환]
살무사가 신비한 술법을 부리더니 멍구의 몸이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멍구야!”
“민하야, 잠깐 기다려.”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민하를 멈추게 한 강철남이 멍구의 상태를 가만히 지켜봤다.
잠시 뒤 멍구가 움찔움찔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우뚝 일어났다.
“으왕! 멍구야.”
민하가 멍구를 향해 달려가 와락 안으려 한 그때,
“민하야! 스토옵!!”
난데없이 살무사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눈이 땡그래지면서 어리둥절해진 민하.
순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강철남이 민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와 동시에 멍구의 앞발이 강철남의 머리통을 노리고 들어왔다.
파앙!
묵직한 일격을 막아낸 강철남의 팔이 떨렸다.
“몸을 바꿨군.”
“크크. 네발로 기어 다니는 건 느낌이 어색하지만 엄청난 힘이로군.”
살무사의 도술, 영혼 교환으로 몸이 뒤바뀌었다.
멍구의 영혼은 살무사의 몸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X벌, 이 몸뚱이 겁나 약해. 야! 내 몸 다시 돌려내.”
“싫은데? 이렇게 강한 몸을 내가 왜? 크크크. 이제 마황제의 몸도 가져가 보실까.”
멍구가 된 살무사는 혀를 날름거리며 강철남을 향해 입맛을 다셨다.
“너 내가 멍구 몸이라고 아무 짓도 못 할 거 같지?”
“나는 알고 있다. 인간들은 정에 약한 생물이란 걸. 자기 반려견과 진심으로 싸울 수 있을까?”
살무사는 도력과 마력을 끌어올려 발톱을 강화 시켰다.
멍구의 몸으로 강철남의 마음을 동요시켜 갈가리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유대감을 얕보지 마라!!”
“어?”
쿠쾅!!
강철남이 망설임 없이 멍구가 된 살무사의 정수리에 힘껏 주먹을 내려찍었다.
그대로 멍구의 육체는 눈자위가 허옇게 뒤집어 지면서 쓰러져버렸다.
“…이건 유대감하고 상관없잖아.”
자기 정수리가 으스러지는 꼴을 보며 살무사의 몸에 들어간 멍구가 어이없어했다.
“그나저나 원래 몸으로는 어떻게 돌아오지?”
“살무사 녀석의 도력이 바닥이 나서 도술을 유지할 수 없어지면 돌아올 거야. 민하야, 흡성대법으로 도력을 모조리 빨아들일 수 있겠니?”
“응! 문제없어!”
[흡성대법]
민하는 살무사의 몸에 손을 얹고 도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를 멍청히 지켜보고 있던 멍구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한 가지.
“잠깐! 지금 영혼이 바뀌면 대가리가 깨진 건 내가 되는 거잖아?”
“그건 어쩔 수 없지.”
“뭐가 어쩔 수 없어, 미친놈아! 지가 작살내놓고 무책임한 거 보소! 민하야, 제발 그만해! 나 무서워! 이러다 나 죽어!”
하지만 민하는 힘을 적당히 쓰는 법 따윈 몰랐다.
금세 살무사의 도력을 남김없이 쪽 빨아먹고 흡수해버리고 말았다.
“어어어…?”
서서히 살무사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던 멍구는 이내,
“키케켕엑윽우욱…….”
본래의 개 몸뚱이로 돌아와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너 괜찮냐?”
“너흐으어엌 내가아아앜 죽인다아아아카크큭켁.”
영혼까지 타격이 들어간 살무사는 원래의 몸에 들어간 뒤에도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버렸다.
흡성대법을 마친 민하는 얼른 철창으로 달려가 문을 뜯어버렸다.
“샤를!”
“강민하!”
샤를이 철창을 헤치고 민하의 품 안으로 뛰어들어 와락 안겼다.
살짝 눈물이 고인 샤를은 젖은 눈을 보이기 싫었는지 민하를 오래도록 안고 있었다.
* * *
보스 살무사를 비롯한 살무사 조직은 전부 크레톤 경비대에 연행되었다.
목적지까지 와서 허탕을 치고 돌아갈 생각에 막막해하던 카르텔의 군대에게 강철남은 편지를 한 통 써 주었다.
“이걸 카르텔에게 보여주면 될 거요.”
“당신은 누군데 마왕님 존함을 함부로 부르는 거요?”
강철남을 노려보던 대장은 이내 발신자에 적힌 강철남의 이름을 보더니 얼굴이 굳어버렸다.
“호, 혹시……?”
“소란 떨지 말고 얼른 돌아가 봐.”
“예, 예! 감사합니다!!”
대장은 경례를 올리고 후다닥 현장을 빠져나갔다.
샤를은 집안의 용병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멍구는 간신히 회복했는지 골골대며 일어섰다.
“아우, 대가리 깨지겠네. 민하야, 내 정수리에서 골수 안 새어 나오니?”
“괜찮아!”
“아오, 철남이, 적당히 때렸어야지.”
“녀석이 그런 도술을 부릴 줄 알았나.”
강철남은 민하를 안아 들고 멍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만 돌아가자. 가이아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렇게 살무사 조직의 납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강철남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하루 푹 쉰 강철남은 다음날 키켈이 있는 마왕성으로 향했다.
“마왕님! 마황제님이 오셨습니다!”
“뭐라? 여기로 직접?”
마왕성에 강철남이 왔다는 소식에 키켈은 업무를 뒤로한 채 헐레벌떡 달려왔다.
“마황제님. 부르시지 않고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
“가끔은 내가 와야지. 여기 볼일도 있고.”
“볼일이라니요?”
“어제 잡아 온 살무사 있지? 그 녀석이랑 얘기 좀 하려고.”
“그런 악질 범죄자 녀석과 무슨 할 얘기가 있으신가요?”
“중요한 이야기야. 마계의 미래를 결정할.”
마황제가 중죄인을 불러 마계의 미래와 관련된 중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니 키켈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덜커덩―
철창문이 열리고 강철남이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묵직한 무쇠 수갑으로 손이 묶인 살무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앉아 있었다.
“이 부적 당신이 만든 건가?”
“그래.”
수갑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부적은 도력을 억제하는 용도로 살무사가 도술을 부리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솜씨 좋군.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훼손되지 않아.”
“탈출할 생각은 있었나보군.”
“그럼. 나는 할 일이 아주 많거든.”
“그렇지 않아도 네가 말한 ‘할 일’에 관해 의논하려고 찾아왔다.”
“뭐? 마황제 나으리께서 나처럼 미천한 범죄자의 일에 관심을 다 가지나?”
살무사는 뱀 혓바닥을 내밀며 강철남을 위협했다.
아마도 자기가 조롱당한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다. 마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하거든.”
강철남은 변함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살무사를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엄중하다는 걸 느낀 살무사도 이내 냉정을 되찾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당신 생각부터 말 해봐. 나한테서 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그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