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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127화 (127/175)

127화 살무사의 본거지

자, 이게 무슨 상황일까 생각해보자.

교감은 이 기초 학교가 설립되기 전부터 용족의 마법 지도나 왕족의 가정교사를 맡아 왔었다.

살아오면서 쌓은 교육 경험만 하더라도 몇십 년은 훌쩍 넘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학부모 면담이란 식은 죽 먹기, 자기 의도대로 끼워 맞추는 손쉬운 퍼즐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건 뭐란 말인가.

“저, 저, 저, 저,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교감실을 가득 채운 무지막지한 마력의 기운.

민하가 모시고 온 학부모는 얌전히 앉아 있을 뿐인데도 교감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다.

“처음 뵙겠소. 민하의 아버지 강철남이라하오.”

“반가워요. 민하의 어머니 가이아예요.”

틀림없다.

‘이 두 분은 마황제님과 마왕님이시다.’

사근사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두 분을 앞에 두고 교감은 커피잔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렇다면 민하가 마황제님과 마왕님의 따님이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숨길 생각은… 있었소. 나쁜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민하도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키우고 싶었던 거요. 마황제와 마왕의 딸이라서 특혜를 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소.”

“호, 혹시나 학교가 결례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교감은 부랴부랴 실수한 건 없나 돌이켜보았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오. 우리는 오늘 민하의 학부모로서 온 것이지 마황제와 마왕으로 온 것이 아니니 말이오.”

말은 그렇게 해도 어디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교감은 떨리는 마음과 손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이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철저히 중무장한 논리로 학부모를 굴복시키려 했건만, 이건 뭐 시작도 전에 기가 죽어 버린 것이다.

“우리 민하의 월반을 제안하셨다죠?”

“네? 앗, 네!”

가이아가 긴장한 교감을 배려해 아주 부드럽게 말했음에도 교감이 기겁하여 놀랐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희 민하는 월반을 희망하지 않아요. 차근차근 순서대로 교육 과정을 배워나가고 싶어 한답니다. 민하는 마력을 다루는 면에서는 또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뛰어날지는 몰라도 지식과 교양적인 면에서는 기본부터 배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이아가 논리로 조목조목 이야기를 꺼냈다.

교감은 선공을 빼앗겼지만, 차분히 반박 거리를 생각해냈다.

이겨야 한다. 월반 학생 한 명은 곧 자기 실적으로 이어지는 법이니까.

“어, 어머님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월반을 한다면 민하의 장래는 탄탄대로일 것입니다. 중급과 고급 학교에 가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는다면 최연소 왕립 학교 입학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마황제님의 명성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역시 마황제님의 딸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강철남이 살짝 신경이 거슬렸다.

“일단 첫 번째, 내 명성과 딸의 인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소.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오.”

“흐극!”

마황제의 조용한 위엄에 교감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그리고 두 번째, 마력 실력으로 인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추억도 놓치고 지금 나이에서만 배울 수 있는 인품과 가치관 학습의 시기를 놓친다면 교육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것이오. 마력을 다루는 법은 살아가면서 차차 배워나가면 될 일이오.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소. 하지만 민하가 원하는 건 지금 이 순간 밖에 이룰 수가 없소. 바로 5살 나이에 맞는 평범한 학교생활 말이오.”

“아, 저, 하지만…….”

할 말은 있지만 강철남의 기세에 완전히 눌려버린 교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철남은 교감이 권위에 짓눌려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 면담을 확실히 마무리 지으려면 겁박이 아니라 교감 스스로가 납득을 해야 했다.

“좋소. 그렇다면 이건 어떻소?”

“네?”

“민하는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 마력 조절이 안 되오. 민하에게 필요한 건 더 상위 마법을 다루는 수업이 아니라 정말 기초 중의 기초적인 수업이 절실하오.”

“…그건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그 수업을 헤라 선생님께 위임하면 어떻겠소? 헤라 선생님은 민하가 가장 신뢰하는 선생님이자 기초 마력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오.”

“그렇지만 기초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면 민하는 지금보다 성장하지 못합니다.”

“지금 민하에게 성장이란 기초적인 마력 컨트롤이오. 내 말이 틀립니까?”

“…맞습니다.”

“우선 기초 학교에서 헤라 선생님께 기초 수업을 듣게 하고 싶소.”

“그렇다면 기초가 완성된다면 월반을 해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 그거에 대해서 생각해봤소만.”

순간 교감의 눈이 초롱초롱 빛이 났다.

“마계에서 민하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없을 거요.”

“아무리 민하의 마력이 강하다고 해도 그건 좀…….”

“기초 학교 교사는 물론이고 왕립 학교 교수 중에 R 랭크 이상의 교사가 있소?”

“…없습니다.”

“그럼 민하를 가르칠 수 없소.”

“잠깐만요, 그럼 민하의 랭크가 R을 넘는다는 말씀이십니까?”

믿을 수 없다는 교감의 물음에 강철남과 가이아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언젠가 나를 아득히 뛰어넘을 아이라오.”

* * *

교감과의 면담을 마친 강철남과 가이아는 교문에서 민하가 나오길 기다렸다.

마침 수업이 마칠 시간이라 함께 돌아갈 수 있었다.

“엄마! 아빠!”

교정을 빠져나오면서 민하는 엄마와 아빠를 보자 마구 달려왔다.

강철남은 민하를 번쩍 안아 들고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아빠. 면담은 어떻게 됐어?”

“걱정 안 해도 돼. 민하는 쭉 계속 지금처럼 학교에 다닐 거야.”

“정말? 우와, 신난다!”

민하는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팔랑팔랑 나비처럼 춤추며 걸어갔다.

학교생활이 마음에 들었는지 민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친구들과 술래잡기라도 한다면 민하는 한 발로만 다니게 한다던가,

민하가 숲에서 몰래 잡아 온 도마뱀을 구워 친구들에게 나눠주다가 혼이 났다던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아빠를 닮아 기행을 저지르는 민하의 행동에 가이아는 웃어야 할지 혼내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가족이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사이좋게 걸어가는 도중이었다.

“어라? 샤를네 마차에요!”

길에 샤를의 마차가 퍼져 있는 것이 아닌가.

헐레벌떡 달려간 민하는 말과 함께 쓰러져 있는 샤를네 집사 알베르토를 발견했다.

마차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샤를은 없었다.

“이보게, 괜찮은가?”

“큭! 저보다 샤를 아가씨를…….”

아무래도 샤를을 데려간 것 같았다.

강철남은 침착하게 생각했다.

녀석들이 숨어버렸다면 출발하기 전에 방향을 옳게 잡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쳇, 이럴 때 사이코메트리 장갑이 있었더라면.”

카르텔이 보여주었던 사이코메트리 장갑.

멍구 때문에 그걸 받아오는 걸 깜빡했다는 걸 깨달은 강철남이 혼잣말로 아쉬워했다.

“그게 뭔데요, 아빠?”

“응.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이 본 과거를 보여준다는 장갑이란다.”

아빠의 설명을 듣던 민하는 마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차분히 힘을 집중해보더니,

[사이코메트리]

민하가 스킬을 발동하자 눈앞에 마차가 보았던 기억의 형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펼쳐지는 장면 속에선 흉악한 뿔이 달린 염소 수인들이 알베르토를 쓰러뜨리고 샤를을 데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골목 사이사이로 빠져나갔다.

“아빠!”

“민하야, 뭘 본 게로구나.”

“이쪽이에요!”

“가이아, 뒤를 부탁해.”

“맡겨 두거라.”

강철남은 앞장서서 달려가는 민하를 뒤쫓아갔다.

가이아는 알베르토를 일으켰다.

그리고,

[복구]

[회복]

마법으로 부서진 마차를 수리하고 신력으로 다친 말을 치유해주었다.

“이럴 수가. 역시…….”

알베르토는 강철남과 가이아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정체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정체를 밝히는 걸 꺼린다는 걸 알기에 아는 척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샤를 아가씨를 지키지 못한 한심한 집사의 일생일대의 부탁입니다. 부디 샤를 아가씨를 구해주십시오.”

알베르토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걱정 말거라. 우리 남편과 딸이 마계에서 못 하는 건 없으니까 말이다.”

가이아는 손수건을 건네며 그를 위로했다.

한편 추격을 서두르는 민하와 강철남.

민하는 사이코메트리 덕분에 벽을 만지며 기억을 엿볼 수 있었고 염소들이 빠져나간 샛길을 찾을 수 있었다.

[호출]

강철남은 부적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그러자,

“멍구 등장!!”

하늘에서 멍구가 폴짝 뛰어서 내려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무슨 일인데?”

“민하네 친구가 납치당했어. 아무래도 살무사 놈들인 거 같아.”

“이 개눔의 새끼들. 나도 개지만, 개보다 더 개 같은 새끼들이야.”

멍구는 킁킁대며 냄새를 맡으려 해봤지만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냄새를 감추는 스킬인가봐.”

“걱정마. 민하가 사이코메트리 스킬로 추적하고 있으니까.”

“뭐? 세상에, 그게 가능해?”

“역시 내 딸이라니까.”

“키키키. 카르텔 새끼 돈만 날렸네?”

멍구가 낄낄 비웃자 저 멀리 카르텔의 마왕성에서는 재채기가 서너 번 터졌다.

카르텔은 귀가 간질간질한 것이 누가 자기 흉을 보나 싶었다.

“앗!”

거침없이 쌩쌩 달리던 민하가 갑자기 발을 탁 멈췄다.

“왜 그러니?”

“여기예요!”

민하가 가리킨 곳은 아무것도 없는 하얀 벽.

“그냥 벽인데?”

“아니야, 멍구야. 그 염소들이 분명 여기로 쏘옥 들어갔는걸?”

“에이. 그냥 코만 깨질 것 같은데?”

“정말이래도. 날 믿어.”

그러더니 멍구를 번쩍 안아 드는 민하.

“어? 민하야?”

“에잇!”

민하는 무방비 상태의 멍구를 휙 던져버렸다.

“깨갱!”

어김없이 힘 조절에 실패한 민하의 전력투구.

미사일처럼 날아간 멍구는 엄청난 충격을 예상하고 눈을 질끈 감는 그때,

쏘옥―

마치 홀로그램을 통과하듯 멍구는 벽 속으로 쏘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이런 마법은 처음 보는군.”

강철남은 신기해하며 민하를 꼭 끌어안고 벽으로 뛰어들었다.

벽 속으로 뛰어들면서 강철남은 어떤 장소가 나올까 각오를 했다만은,

휘이이이잉―

곧바로 바닥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줄은 몰랐다.

파앗―

[비상]

강철남은 신력을 발동하여 노란빛을 몸에 휘감았다.

허공에 떠 있는 강철남은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기사 같았다.

“아빠, 멋있어!”

“후후. 민하는 아직 날 수 없지?”

“응!”

[구름 소환]

민하를 위해 강철남은 몽글몽글한 구름 택시를 소환해주었다.

구름 위에 올라탄 민하는 폭신한 감촉에 감동한 듯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강철남은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벽 속의 세계를 둘러보았다.

바닥을 모르고 내려간 풍경들에 보이는 것은 몇 채의 천막과 임시로 세워둔 대장간, 훈련장 등이 있었다.

이곳은 지하 도시이자 동시에 전쟁을 위한 반란군의 주둔지였던 것이다.

“크레톤에 이딴 지하 도시를 건설하고 있어?”

“건방진 새끼들이네. 철남이, 전부 조져버리자.”

“일단 샤를의 안전이 먼저야. 수틀리면 아이한테 뭔 짓을 할지 몰라.”

강철남은 침착하게 샤를을 안전하게 빼낼 작전을 구상하려 했다.

그러나 계획이 평탄하게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저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데,

“우오오!!! 샤를 아가씨를 구하자!!!”

샤를 집안의 용병 부대가 나타난 것이다.

그들이 여기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건 바로 멍구가 폴폴 풍기는 개 냄새를 쫓아왔기 때문.

“저 새끼들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어!”

그러나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용병들 뿐만이 아니었으니.

“경비대 총원, 돌격 준비!!”

키켈의 경비대도 온 것이다.

그들은 중대 규모의 용병 부대가 이동하는 것을 수상히 여겨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하, 시X. 이제 제발 그만…….”

끝일 리가 있나.

또 있었다.

“전군! 카르텔 군의 힘을 보여주자!”

살무사의 흔적을 쫓던 카르텔의 군대까지 쫓아온 것이다.

“아빠, 이거…….”

“그래, 완전히…….”

“개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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