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채식주의자 멍구?
마력 실습장이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학생들이 마력을 시험하던 표적이 있던 자리는 부스스한 먼지가 날리며 휑한 공터만이 남아 있었다.
반 친구들은 입을 쩍 벌리며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마침 마력 실습장 앞을 지나던 교감 선생님이 엄청난 폭음을 듣고 뛰어 들어와 이 사태를 목격하고 말았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줄래요?”
교감실에 불려온 헤라와 민하.
민하가 교감실에 놓인 장식품들이 신기해 구경하느라 두리번거리는 동안 헤라는 진땀을 흘렸다.
민하네 엄마 아빠가 마왕과 마황제라는 걸 숨기는 동시에 민하의 평범한 학교생활을 지켜주어야 했으니까.
아무래도 사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감추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민하 학생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 같군요. 헤라 선생님은 알고 있었나요?”
“어렴풋이 짐작은 했습니다만 오늘처럼 확실히 느낀 것은 처음입니다.”
“으음. 아무래도 민하에게는 특별한 학습 환경이 필요하겠군요.”
아무래도 교감은 지금의 학급이 민하의 수준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 말씀은 민하를 상위 학급으로 올리는 월반을 제안하시는 건가요?”
“제안이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 결정된 사항입니다. 학교는 뛰어난 학생에게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할 의무가 있어요.”
“하지만 민하의 의사를 물어봐야 합니다.”
“헤라 선생님.”
“네.”
“교육자로서 이런 원석을 썩히면 오히려 무책임한 거예요.”
“…….”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민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월반이 뭐에요?”
마침 잘 물어봤다는 듯 헤라가 답했다.
“지금 반을 떠나서 더 높은 학급으로 간다는 의미야.”
“물론 더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지. 강한 마법과 고등 지식을 말이야.”
교감은 민하의 구미가 당길만한 단어들을 골라 던졌다.
하지만 민하의 귀에는 지금 반을 떠난다는 말만 들렸다.
“싫어요. 저는 지금 반이 좋아요. 반 친구들도, 샤를도, 헤라 선생님도 좋아요. 모두와 같이 공부하고 싶단 말이에요.”
“그건 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민하가 자기 의사를 명확히 표현했지만 교감은 듣지 않았다.
“학생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학교가 아니라 교도소나 다름없습니다.”
“말조심하세요. 어디 감히 신성한 학교를 그런 범죄자 수감 시설과 비교하는 거죠?”
잔뜩 노기 띤 얼굴로 교감은 헤라를 노려봤다.
민하는 헤라 선생님이 주눅이 들어 있는 이 텁텁한 교감실의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럼, 엄마 아빠를 데려와서 이야기해볼래요.”
“그러니? 그럼 그러자꾸나.”
그 말에 교감은 씨익 웃었다.
이제껏 자기가 설득하지 못한 부모는 없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훌륭해서 월반을 한다는데 반대를 하겠는가.
게다가 월반을 할 경우에 주어지는 이점과 사회적, 교육적 이득을 세상 어느 부모가 마다할 수 있을까.
‘강민하의 부모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부모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거야.’
교감은 기초 학교의 위상을 높일 좋은 홍보 거리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강민하의 부모와 빨리 담판을 지을 내일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 * *
강철남과 멍구는 카르텔의 성으로 향했다.
그들이 성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오크 병사들이 출입을 엄금하며 신원을 물었다.
“누구냐?”
창으로 길을 막은 채 오크가 물었다.
“카르텔 친구다.”
“뭐? 감히 마왕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험악한 표정을 짓는 오크 병사는 창을 꽉 쥐고 강철남을 향해 들이밀었다.
“빨리 비켜, 돼지 새꺄. 바쁜 거 안 보여?”
멍구가 앞발로 정강이를 후려갈기자 오크 병사가 펄쩍 뛰다 쓰러졌다.
“치, 침입자다!”
“멍구야…….”
“왜? 철남이 너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잖아.”
침입 경보가 울리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모조리 뛰쳐나왔다.
대체 어느 미련한 녀석이 카르텔의 성으로 직접 침입하려 하는가.
몰려드는 병사들을 제치고 경비 대장이 선두에 서서 침입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노옴!”
“어?”
경비 대장은 일단 달려들었다.
상대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칼에 놈을 쳐 죽이리라, 이 생각만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마, 마황제님!”
강철남의 눈이 마주친 순간, 칼을 높이 쳐든 경비대장은 0.1초 만에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흘렀다.
여기서 처신을 잘못했다간 마황제 옆에 있는 저 미친개한테 뚝배기가 깨질지도 모른다.
보통 자세로는 안 된다.
풀파워로 경의를 표해야 했다.
“좋았어, 해보자.”
먼저 경비 대장은 칼을 위로 내던지고 방패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무릎팍이 다 까지도록 슬라이딩으로 착지한 후 이마가 깨질 정도로 땅을 찧으며 큰절을 올렸다.
쿠웅!
“마황제님을 뵈어서 영광입니다!”
흠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큰절이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덕분에 마계가 평화로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평화롭다라…….”
강철남은 군인들조차 아직 마계 곳곳에 숨어있는 어둠을 모르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카르텔을 만나보고 싶구만.”
“물론이죠.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강철남과 멍구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모든 병사가 머리를 조아리고 그들을 맞이했다.
창으로 둘을 막아섰던 병사는 벌벌 떨면서 아무 일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도시 카르텔은 제법 많이 변했다.
거리를 걸으면서도 느꼈지만 보여주기식 사치를 줄이고 자연물을 접목한 경관 꾸미기에 많이 투자하였다.
마왕성도 마찬가지, 예쁜 꽃과 난이 군데군데 비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강철남의 마음에도 드는 도시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철남이, 곳곳에 화분이 놓여 있어.”
“그러게. 꼭 수목원 같구만.”
코를 스미는 싱긋한 풀냄새와 건강한 음이온이 강철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마왕님은 마황제님이 건립하신 도시 멍구를 자주 방문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항상 편두통으로 고생하시던 게 숲에 있으면 싹 사라지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왕성이 숲을 모방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그렇지. 머리를 많이 쓰는 녀석이니까 이런 환경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야.”
경비 대장의 안내를 받아 강철남과 멍구는 마침내 카르텔이 머무는 서재에 도착했다.
내부 인테리어가 마치 작은 정원을 옮겨다 놓은 듯 정갈했다.
“카르텔, 취향 한번 고상하게 변했군.”
“아니, 마황제님이 아니십니까. 마중도 못 나가고 여기까지 행차하시게 만들다니. 죄송합니다.”
“딱딱하게 굴지 마.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면서 노가리나 까자.”
“좋죠.”
“오, 술! 술!”
멍구가 신난 듯 깡충깡충 뛰며 짖어댔다.
저녁 무렵 그들은 연회장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는 성대한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배가 몹시 고팠던 강철남과 멍구는 마왕성의 만찬을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이게 뭐여, 씨부럴?”
“어라? 이런 호로 잡…….”
강철남과 멍구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터졌다.
식탁 위의 음식들이 모두 풀밭이었다.
즉, 고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친환경과 유기농에 푹 빠지면서 채식주의에도 빠지게 되었답니다. 마황제님과 멍구님도 채식으로 건강한 식습관을 가져보는 건 어떠실까요?”
“니X 뻑이다.”
“네?”
“고기 가져와!”
와장창!
멍구는 급기야 상을 뒤엎고야 말았다.
“으악!”
“멍구 이눔의 시끼!”
“깨갱!”
강철남은 멍구의 꼬리를 덥석 움켜 잡고는 창문을 열고 멍구를 냅다 던져버렸다.
“미안하네, 카르텔. 쟤가 좀 또라이잖나.”
“하하하. 여전하시군요. 덕분에 심심한 일상에 재밌는 구경 했습니다.”
“상이 엉망이 되었구만.”
“걱정 마십쇼. 새로 차려드리겠습니다.”
“밖에 있는 저놈 밥은 신경 쓰지 마.”
그렇게 새로 상차림이 마련되었고 강철남은 불만을 감춘 채 샐러드를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그 사이 멍구는 식량 창고로 들어가 고기를 찾아 헤맸다.
“야, 진짜 고기 없어?”
“정말 없습니다. 마왕님의 지시로 주방에선 오로지 채소만 취급합니다.”
“야.”
“네.”
“내가 마왕인 건 알고 있지?”
“물론 알고 있죠.”
“거짓말하면 네가 고기가 될 줄 알아.”
“히익!”
주방장을 위협하던 멍구는 개코로 킁킁대기 시작했다.
그때,
“옳거니, 시X. 이거 뭐야, 고기 아니야?”
높은 찬장에 숨겨진 부채살 한 근.
멍구가 그걸 꺼내자 주방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건…….”
“너희들이 몰래 먹으려고 꿍쳐둔 거지?”
“마, 맞습니다.”
“진작에 이실직고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면 너희들 안 패도 되잖아.”
“저, 저희를 패실 건가요?”
“안 맞고 싶어?”
“당연하죠.”
“그럼 솜씨 좀 발휘해봐.”
“네?”
“고기로 요리 한번 기깔나게 해보라고.”
“하지만 고기 요리를 했다간 마왕님께 혼날 텐데요?”
“지금 여기서 나한테 뒤질래, 아니면 너희 마왕한테 혼날래?”
“…굽기는 어느 정도 좋아하세요?”
“미디엄 레어.”
주방에서는 멍구의 협박 아닌 협박으로 고기 요리가 시작되었다.
강철남은 카르텔이 대접하는 소하 선생의 홍삼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제는 당연히,
“살무사라는 조직에 관해 알고 있나?”
“알고 있죠. 저희 도시에도 몇몇 놈들이 숨어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일망타진하지 않는 거지?”
“저희도 노력을 하고 있죠. 거액의 현상금까지 내걸고 말이죠. 하지만 녀석들의 주특기는 뭐니 뭐니 해도 은신입니다. 숨어버리면 그 위치는 쥐도 새도 모릅니다.”
“녀석들은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에 이용했다. 더 이상 우리 쪽도 물불 가릴 때가 아니야.”
“정말입니까? 상상 이상으로 쓰레기들이로군요.”
살무사가 아이들을 이용했다는 소리에 카르텔이 술잔을 내려놓았다.
“저는 말이죠. 돈이 좋습니다. 돈이 있다면 백성들을 굶기지 않을 수 있고 누구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버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돈벌이에도 철칙이 있습니다. 돈벌이에 아이들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철칙으로도 정하지 않았어요. 왜냐? 당연한 것이니까요. 세상에 아이들을 팔아 번 돈으로 행복을 누리는 싸이코들이 어디 있습니까. 만약 존재한다면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그들은 돈벌이의 룰을 어겼습니다. 저희 같은 돈 귀신들의 명예를 실추시켰습니다. 그런 놈들에게는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일장 연설을 마치고 카르텔은 바깥에 있는 시종을 불렀다.
시종은 카트에 검은 상자 하나를 싣고 왔다.
카르텔은 카트 위의 검은 상자를 집어 들고는 식탁 위에 올렸다.
“마황제님. 이게 뭔지 아십니까?”
“비밀병기라도 되오?”
“흐흐. 일종의 그런 셈이죠. 이건 말입니다…….”
카르텔이 가방을 열자 달랑 검은색 장갑 한 쌍이 나왔다.
“이게 뭐야?”
“장갑입니다.”
“그냥 장갑이야?”
“물론 아니죠, 이건. 사이코메트리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갑입니다.”
“사이코메트리?”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이 담고 있는 기억을 보여주는 힘이죠.”
“그렇다는 건 현장을 만지면 그 현장에 있었던 과거를 볼 수 있다는 것인가?”
“맞습니다.”
“놀라운 물건이로군.”
“제법 비싸게 줬지만 지금 가장 요긴하게 쓰일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킁킁.”
“왜 그래?”
“고기 굽는 냄새가 납니다.”
순간 불안한 예감을 느낀 강철남이었다.
어쩐지 멍구가 너무 조용하다 싶었다.
벌컥―
“멍구야!”
“히익! 촵촵촵촵촵!!!!”
강철남이 주방 문을 열자마자 미친 듯이 입에 고기를 쑤셔 넣는 멍구.
“이 사고뭉치! 카르텔, 미안하네. 내 다음에 성과가 있거든 또 찾아오겠네.”
[공간 이동]
펑!
오늘 카르텔에게 몇 번이나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강철남은 멍구의 목덜미를 콱 움켜쥐고 후다닥 도망치듯 귀환했다.
“저… 사이코메트리 장갑은…….”
정작 중요한 걸 잊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