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민하야, 살살 쏴야 한다
강철남은 키켈에게 아이들을 이용해 나쁜 짓을 하는 조직을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민하가 겪은 일을 듣자 마치 자기 일처럼 분노한 키켈은,
“우리 크레톤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다니. 제 일생일대의 실수입니다. 반드시 놈들을 소탕하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하고 단단히 결의를 다진 채 마왕성으로 돌아갔다.
키켈은 그들을 일망타진하겠다 다짐하고 범죄 조직 소탕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급히 군사 회의를 소집하여 경비대에게 순찰을 강화할 것을 명 했고 비밀 요원들을 파견해 뒷골목의 비밀 조직들을 샅샅이 조사하도록 했다.
다음 날 아침 민하는 평소처럼 등굣길에 올랐다.
평소와 다름없이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지만, 주변은 경비대원들이 평소보다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 샤를!”
마침 마차를 타고 가는 샤를을 발견했다.
민하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평소라면 그냥 민하를 무시하고 지나쳐버릴 샤를이 웬일로 마차를 멈췄다.
“흥, 빨리 타.”
“나 타도 돼?!”
“두 번 말하게 할래?”
샤를은 의식적으로 눈을 피하고 있었고 민하는 싱글벙글 마차 위에 올라타 웃으며 샤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을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
“히히, 기뻐서.”
“촌스러워. 마차 처음 타보니?”
“아니, 샤를이랑 같이 마차 타고 등교하는 게 기뻐.”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러면 다음부터 안 태워줄 줄 알아.”
“내가 태워달라고 안 했는데?”
“우이씨! 그럼 내려!”
“아냐, 아냐. 미안해. 히히히.”
아침부터 활기차 보이는 샤를을 보니 마차를 모는 집사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민하와 샤를이 교실에 도착했더니 온통 어젯밤의 소동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아이들의 입방아에 오른 화제는 온통 그 나쁜 조직에 관한 얘기뿐이었다.
다행히 경비대가 학생들의 신분을 일절 알리지 않아 누가 누가 피해자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 기초 학교의 학생들이 많이 연루되었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민하야, 샤를. 너희도 그 얘기 알고 있지? 무서운 아저씨들이 아이들을 잡아갔다는 이야기.”
반 친구가 물어오자 샤를이 당황했다.
“뭐, 알고는 있지.”
“진짜 무섭지 않니? 나는 이제부터 마력 실습 시간에 열심히 하려고. 그런 나쁜 놈들을 만나면 내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하잖아.”
사건의 여파로 아이들은 모두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학교측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위급 상황을 대비해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하므로 마력 실습을 강화하도록 교육 지침을 변경하였다.
“여러분, 모두 소문으로 들어서 알겠지만 어제 크레톤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앞으로 그런 사건에 대비하여 여러분에게 실전 마력 활용을 목적으로 실습 내용을 심화할 예정입니다.”
담임 선생님 헤라가 공문을 그대로 읊어주자 어려운 용어에 아이들은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인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더 강한 마력을 쓰기 위한 수업을 받을 거예요.”
“아하.”
헤라가 쉬운 말로 풀이해주자 아이들은 그제야 이해한 모양이다.
“자, 그럼 1교시 수업을 시작해보겠어요. 다들 마력 실습장으로 이동하도록 해요.”
그렇게 몇몇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몇몇 아이들은 긴장된 마음으로 심화 마력 실습 수업이 시작 되었다.
* * *
한편 집안일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 강철남과 가이아.
멍구는 개껌을 씹으며 이빨을 긁고 있다.
“아무리 키켈한테 맡겼다고는 하지만…….”
“왠지 몸이 근질근질하는가?”
“티 나?”
“후훗. 부부이지 않느냐.”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한 녀석들이 용서가 안 되었고 그런 녀석들은 직접 참교육을 해주고 싶었다.
“가만 보면 철남 그대는 항상 문제 속에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반박은 못 하겠네.”
“나는 그런 점을 좋아한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 말이다.”
“으음, 단지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한테 꼬장 부리는 걸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후훗. 그대는 항상 너무 겸손하다.”
가이아는 강철남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가슴이 시킨다면 하거라. 나는 언제나 그대 편이니라.”
아내의 응원에 강철남은 망설이던 마음에 확신을 품게 되었다.
하고 싶으면 한다.
그것이 바로 강철남의 스타일 아니던가.
“그래, 좋아. 이대로 가만히 있을쏘냐. 가자, 멍구야.”
“아, 난 또 왜?”
집에서 뒹굴거리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멍구.
귀찮아질 것 같은 분위기에 슬그머니 피하려다 딱 걸렸다.
강철남은 멍구와 함께 나가 사건이 벌어졌던 뒷골목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은 폭발의 흔적과 깨져버린 벽과 바닥으로 당시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 이라기보다는 민하가 부린 깽판의 흔적이 보존되어 있었다.
“와우, 철남이. 민하가 아주 그냥 확실히 참교육을 해 준 모양인데?”
오크의 몸 형태로 찌그러진 벽을 보며 멍구가 감탄했다.
그때,
“이봐, 당신들! 여긴 함부로 들어오면 안 돼!”
현장 감식반으로 보이는 한 마족이 달려와 강철남을 밀어냈다.
“지금 이곳은 사건 현장이야. 당장 나가.”
“새끼, 다짜고짜 밀어대기는.”
“지금 신성한 공무 집행 중인 거 안 보여? 이 똥개가 입을 함부로 놀리네.”
“뭐? 똥개? 언제 봤다고 똥개래?”
감식반과 멍구가 아옹다옹하는 사이 강철남은 주변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휘장 하나를 발견하는데,
“이보시오, 이 휘장은 뭐요?”
“앗! 그건 손대지 마! 중요한 증거야. 놈들의 조직을 상징하는 물건일 수도 있단 말이야.”
“흐음.”
강철남은 휘장을 집어 들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도끼에 뱀이 휘감아져 있는 형상.
대단히 사악하고 공격적인 이미지였다.
“잠깐, 너 뭐 하는 놈인데 함부로 손대는 거야?”
강철남이 증거물에 손을 대자 감식반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강철남에게 달려들었다.
[동작 그만]
“헛!”
달려드는 감식반에게 스킬을 걸어 잠시 가만히 있게 한 뒤 휘장을 좀 더 들여다보던 강철남은,
“이제 됐소. 일하는 데 방해해서 실례가 많았소.”
“다, 당신은 대체…….”
감식반의 몸에 걸린 속박 스킬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강철남과 멍구는 이미 현장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엄청난 힘이었어. 게다가 인간과 개…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리가 없지 하면서 고개를 저으며 감식반은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강철남은 공간 이동 술법으로 카르텔로 향했다.
“카르텔에는 왜 온 거야?”
“휘장과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고. 크레톤 쪽 수사는 키켈에게 맡기고 우리는 여기서 정보를 얻어 보자고.”
오랜만에 방문한 카르텔의 거리를 걸어 보는 강철남과 멍구.
“오 철남이, 도마뱀 구이다!”
“못 참지.”
예전에 빈곤하던 시절에 먹었던 도마뱀 구이를 먹어보니 참으로 정겨웠다.
“오 철남이, 가이아 산 오렌지 주스다.”
“절대 못 참지.”
느끼한 도마뱀 구이의 기름기를 오렌지 주스로 싹 씻어준다.
어느새 수사는 뒷전이고 맛집 탐방에 심취한 둘이었다.
그때,
“마황제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웬 풍채 좋은 악어 수인 청년이 서 있었다.
“누구인가?”
“저 몰라보시겠습니까? 하긴 6년이나 지났으니까요.”
카르텔에 사는 6년 전의 악어 수인.
“너 혹시 듀크냐?”
“맞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듀크가 직각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 소매치기나 하던 꼬맹이 듀크가 어느새 건장한 청년으로 자란 것이다.
“많이 컸구나.”
“하하. 아이들은 쑥쑥 크는 법이죠.”
“요즘도 여행자들의 주머니를 털면서 생활하니?”
“아닙니다! 절대로요! 그날 마황제님께 구원받은 이후로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실히 지낸답니다. 그리고 목표도 생겼습니다. 마왕성에서 일하는 겁니다!”
“좋은 꿈이로군. 카르텔과 함께 마족들이 살기 좋은 마계를 만들어보거라.”
“네! 물론입니다!”
듀크는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런 듀크를 유심히 보던 멍구가,
“피지컬이 아까운데. 너 도끼 쓰는 일 해도 어울리겠다.”
“하지만 전 전투는 젬병인걸요.”
“덩치가 아깝다, 인마.”
“하하하. 그런 말 자주 들어요. 그나저나 카르텔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혹시 이 휘장에 관해 아는 거 있어?”
강철남은 사건 현장에서 주운 도끼와 뱀이 새겨진 휘장을 듀크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뒷골목 시절 어울렸던 친구한테 들어본 적이 있는 휘장이에요. 살무사라는 조직의 것이에요.”
“살무사? 무슨 80년대 깡패 조직 이름 같아.”
“이 녀석들에 관해 아는 정보 있나? 조직원이라든가, 아지트라든가?”
“도움을 드리고는 싶지만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철저한 비밀로 돌아가는데다가 말단 조직에겐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아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끔 돌아가고 있거든요.”
듀크가 미안한 듯이 대답했다.
“어깨 펴 인마. 모르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네, 하지만 조만간 정보를 모아볼게요!”
“그만둬라. 너한테 힘을 빌릴 정도로 대책 없지는 않아.”
“그러면 어떻게 하시게요?”
“카르텔을 찾아가 거래를 해야지.”
상업 도시의 마왕 카르텔.
항상 손익의 득실을 계산하는 장사꾼이다.
정보를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가자, 멍구.”
“오랜만에 또 카르텔 꼬리로 담근 뱀술 마실까?”
“…좋아 작전을 짜보자.”
아니, 살무사에 대해 알아보러 가는 거 아니냐고.
* * *
민하네 반 아이들은 웅성거리며 실습장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아이들이 소란스러운 이유는 실습장의 풍경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오늘 수업은 뭐에요?”
“오늘 수업은 호신술 실습을 할 거예요.”
헤라는 긴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보여주며 진정시키려 했다.
그야 아이들 앞에 펼쳐져 있는 건 사격장을 방불케 하는 10개의 표적이 놓여 있었으니까.
“오늘 여러분이 배우고 다뤄볼 마법은 마력탄이에요. 공격 마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이죠.”
손바닥을 펼쳐 마력을 집중하여 둥그런 구체를 형성해낸다.
그리고 멀리 쏘아 보낸다는 이미지로 날리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마법이다.
하지만 사용하는 자의 마력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기에 그릇을 판가름하는 기술로 평가받기도 한다.
“자, 그럼 순서대로 표적을 향해 마력탄을 쏘아 보도록 해요.”
난생처음 공격 마법을 써 보게 된 아이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준비 위치에 섰다.
한 아이가 힘을 모아 마력을 끌어모았다.
[마력탄]
타앙―
그럴싸한 모양의 구체가 만들어져 표적을 향해 날아갔다.
바위로 이루어진 표적을 깨부수진 못했지만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위력은 보여주었다.
“잘했어요.”
헤라는 박수를 보내주었고 친구들도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아이는 뿌듯해져 자리로 돌아왔다.
그 뒤로도 아이들은 긴장하면서도 수월하게 마력탄을 쏘았다.
위력은 모두 고만고만하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의 위력이었으나 몇몇 아이들은 조금 더 강한 진동을 일으키곤 했다.
처음에는 마력탄을 만들어내지 못하던 아이도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차례차례 실습을 이어가던 중 다음 차례는,
“샤를.”
“네.”
샤를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우아하게 섰다.
마치 이 정도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손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마력탄]
확실히 샤를이 만들어낸 마력탄의 구체는 다른 아이들이 만든 것보다 크기가 컸고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것을 날리니 바위 표적이 큰 진동을 울리며 흔들렸다.
“우와!!”
“대단하다!”
아이들은 이제껏 보아온 마력탄 중 가장 강력한 파괴력에 감탄하며 샤를을 칭송했다.
샤를은 당연하다는 듯 머리칼을 찰랑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 차례는,
“민하.”
민하가 위치에 섰다.
헤라가 살짝 다가와 조용히 귓가에 속삭이길,
“민하야. 정말 진짜 진짜 진짜 약하게 해야 한다.”
“네!”
선생님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하는 발랄하게 대답하고는 웃어 보인다.
그리고 정말 정말 정말 약하게 마력을 조절하고는,
“에잇!”
마력탄을 살짝쿵 톡, 던졌다.
그랬더니,
콰쾅!!!
표적이 가루가 되어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어라라?”
민하는 이게 아닌데 하며 머쓱하게 웃었고 샤를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마조마했지만 예상을 빗겨나가지 않자 헤라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