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민하네 집으로 가정 방문
특별한 기념일이면 축하하기 위해 펼쳐지는 화려한 놀이가 있다.
바로 하늘을 향해 쏘아올리는 불꽃놀이나 활활 타오르는 캠프파이어.
눈앞에서 펼쳐지는 뜨겁고 예쁜 화염의 춤.
아이들은 그 화려하고 뜨거운 열기에 열광한다.
“우와!”
설마 예상이나 했겠나.
기초 학교 1학년 마력 실습 시간에 이 화염의 난무를 보게 될 줄은
화르르르르르륵―
민하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마력은 1초 만에 초를 다 녹이고 구름까지 닿을 듯 높은 불기둥을 소환해냈다.
5살의 여자아이가 마치 마왕이 강림해 불쇼를 벌이듯 가벼이 불기둥을 피운 것이다.
“아…….”
이것도 힘을 최대한 뺀 건데도 양초가 아예 연소 되어 버렸으니 민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민하의 담임 선생님은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거.”
샤를은 눈이 땡그래지면서 보고도 믿지 못했다.
동갑내기 소녀가 이런 마왕급의 마법을 쓴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담임 선생님 헤라는 아이들 사이에 웅성웅성 벌어진 소란을 수습해야만 했다.
결국 마력 실습 시간은 어영부영 마무리되었고 헤라는 이를 교감 선생님께 보고를 올려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학부모 상담이 순서라 생각했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주워 담을 수 없고 일파만파 무섭게 퍼지기 마련이니까.
혹시나 민하에게 가정사나 비밀이 있는 거라면 경솔하게 이 사건을 퍼뜨려서는 안 된다.
“민하야.”
마력 실습이 끝난 날 하교하기 전, 민하의 헤라는 다정하게 민하를 불렀다.
“뜨끔!”
깜짝 놀란 민하는 혹시 아까 불기둥을 소환한 일로 혼이 날까 걱정했다.
아니면 벌로 일주일간 화장실 청소라도 시키려나?
“선생님이 민하네 부모님과 상의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가정 방문을 좀 해도 될까?”
헤라는 싱긋 웃으며 민하의 눈높이에 맞춰서 말을 건넸다.
선생님의 부드러운 눈빛에 민하는 잠시 넘어갈 뻔했지만, 엄마 아빠의 정체를 비밀로 하라는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엄마는 마왕이고 아빠가 마황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돼!’
머뭇거리던 민하는 또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던 엄마의 말씀.
그렇다면 가정 방문을 거절하면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이 되는 거다.
어느 말을 들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던 민하는,
‘맞아! 엄마 아빠의 정체를 비밀로 하고 가정 방문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 나름 똑똑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아마 민하는 엄마 아빠의 정체를 말로 꺼내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여긴 모양이다.
“네! 우리 엄마 아빠는 무척이나 평범하신 분들이에요.”
“…어? 아, 그러니. 하하. 그럼 같이 가볼까?”
민하의 알 수 없는 말을 흘려듣고 헤라는 민하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 * *
헤라는 민하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넙죽 엎드렸다.
민하는 담임 선생님에게 엄마 아빠가 사실은 마왕과 마황제라는 말만 안 하면 꼭꼭 비밀로 숨겨둘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헤라는 6년 전 마황제 취임식에서 강철남을 본 적이 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헤라는 무릎에 힘이 풀리고 저절로 허리가 숙여지고 만 것이었다.
“어엇!”
강철남은 당황해서 같이 엎드리고 말았다.
“선생님. 일어나시죠. 이러면 우리가 곤란하오.”
난처한 듯 강철남이 헤라를 일으켰다.
“민하가 마, 마황제님의 따님이셨다니.”
갑자기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헤라였다.
그러고는 혹 자기가 민하에게 실수를 한 일은 없는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려워하실 필요 없소, 선생. 저희가 정체를 숨긴 것은 민하를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평범한 학생으로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라오.”
특별 대우를 받으며 자라길 원치 않았던 강철남의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은 갸륵하다만은 헤라로서는 이제 민하가 어떤 집안의 딸인지 알았으니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하기가 퍽 난감했다.
오히려 대부호 집안의 샤를보다 민하를 더 대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호호, 선생님은 저희가 무서우신가 봐요.”
가이아가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헤라는 오히려 화들짝 놀라 당황하고 말았다.
“그게… 사실 좀 어려운 건 사실이네요, 하하…….”
헤라는 농담으로 넘겨보려 했지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강철남과 가이아는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미황제란 마계의 최고 권위자이니.
“선생님, 저에게는 꿈이 있소.”
“꿈이요?”
강철남은 느닷없이 자기 속내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계의 마족과 인간계의 인간이 서로 다투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오. 아이들도 종족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즐겁게 어울려 노는 것이지요.”
“듣기만 해도 멋진 세상이네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세상을 마주하고 그대로 바라보아야 하오. 만약 마황제라는 이유로 떠받듦을 받는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흐려질 것이오. 마찬가지로 민하가 마황제의 딸이라는 이유로 떠받듦을 받는다면 천방지축에 저만 아는 아이로 자랄 것이오. 그렇기에 저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였던 거요.”
“…그렇겠군요.”
“그런 의미로 선생님께서도 민하를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대해주시겠소? 잘못을 저질렀으면 꾸짖고, 마땅히 시켜야 할 일이 있으면 시켜주시길 바라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체는 모쪼록 비밀로 부탁하오.”
“네, 물론이죠.”
강철남의 굳건한 의지에 헤라는 민하를 다른 아이들과 동등하게 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애초에 간단한 일이었다.
공정한 대우는 교사의 책무가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 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군. 식사나 하고 가시죠.”
“아, 그래도 괜찮을까요?”
가이아는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가서 채소를 손질했다.
마계에서 자라 마력이 듬뿍 담긴 토마토로 파스타를 만들 생각이다.
“저도 도울게요.”
“아, 그래 줄래요?”
가이아와 헤라는 같이 재료를 다듬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멍구야, 우린 나가서 놀자.”
“당연하지.”
멍구는 민하를 돌본다는 핑계로 식사 준비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하지만,
“멍구야, 밭일 좀 같이하자.”
“케엑!”
결국 강철남에게 목덜미를 잡혀 끌려가고 말았다.
“피―”
결국 혼자 길을 나선 민하는 크레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돌아다녔다.
몇 남지 않은 강철을 다루는 장인들의 대장간이라든가 용족들에게 맞춤형 갑옷을 만드는 수선점도 보았다.
예전에는 강한 군대의 도시라고 들었는데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민하는 어느새 나들이에 심취해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크레톤의 구석구석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어느 깊숙한 골목으로 발을 들인 그때,
“넌 뭐냐, 꼬맹이.”
웬 커다란 곰탱이 한 마리가 골목을 돌아다니는 민하를 발견하고는 으르렁댔다.
하지만 민하가 겁을 먹을 리 있나.
“놀러 왔어요!”
“뭐?”
너무도 당당한 발언에 곰탱이는 잠시 얼이 빠졌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아이라면 누구나 겁을 먹을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장 나가. 여긴 네가 놀러 올 만한 곳이 아니야.”
“여긴 뭐 하는 데예요?”
호기심 많은 민하에겐 그런 험상궂은 얼굴보다는 곰탱이의 뒤편에 있는 칼을 갈고 있는 아저씨들이 더 신기했다.
“이봐,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꼬맹이는 교육을 시켜주자고.”
마침 칼을 다 간 몬스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오호, 그래? 이 꼬맹이는 그다지 부유한 집 아이는 아닌 것 같지만 제 발로 들어왔으니 같이 놀아주도록 할까?”
“우와, 노는 거예요?”
“그래, 같이 노는 거야. 안으로 들어오거라.”
“신난다!”
순진한 민하는 곰탱이에게 순순히 이끌려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에는 방이 참 많았다.
방마다 철문과 손바닥만 한 쇠창살이 달려 있었는데 마치 꼭 감옥 같아 보였다.
“여긴 감옥이에요?”
“응, 감옥이야. 지금부터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할 거거든.”
“그럼 제가 경찰 하면 안 돼요?”
“안 돼. 너는 도둑 역할을 할 거야. 경찰은 아저씨들이 할 거거든.”
“쳇. 다음 판에는 경찰 시켜줘야 해요.”
“그러지. 만약 다음 판이 있다면 말이야. 히히히.”
곰탱이는 비열하게 웃으며 민하를 철창 안에 밀어 넣었다.
“얌전히 있어라.”
철커덩―
철문이 닫히고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갔다.
그때,
“내보내 줘요! 엄마 보고 싶어요!!”
바로 옆 방에서 어떤 꼬마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용히 해라! 너희 엄마가 네 몸값으로 충분한 돈을 가져오면 풀어주도록 하지. 엄마가 돈을 많이 가져오도록 기도나 하고 있으라구.”
철문을 발로 뻥 차버리고 곰탱이는 걸어 나가 버렸다.
“경찰이 너무하네.”
민하는 저 곰탱이는 분명 나쁜 경찰이라 생각했다.
“훌쩍훌쩍―”
옆방에서는 코를 마시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괜찮니?”
벽에 바짝 이마를 맞대고 민하가 말을 건넸다.
“…안 괜찮아.”
옆방의 꼬마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무서우면 아저씨들한테 그만 놀자고 하자.”
“이건 놀이가 아냐!”
민하의 태연한 말에 옆방의 꼬마는 악에 받쳐 소리를 꽥 질렀다.
놀이가 아니라니, 그러면 대체 저 곰탱이는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너, 강민하지?”
그때 또 다른 옆방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한참을 울다 지쳤는지 목이 쉰 듯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혹시 샤를이니?”
민하는 반대편 벽으로 달려가 이마를 바짝 붙이고 물었다.
“흥, 여전히 바보구나. 지금 이 상황이 장난인 줄 알다니 말이야.”
“샤를 넌 어쩌다 여기 왔니? 아저씨들이랑 노는 거 아니었어?”
“아니야! 나는 쇼핑을 즐기고 잠시 집사 알베르토가 마차를 잡으러 간 사이에 잡혀 온 거라고!”
천하태평인 민하에게 화풀이라도 하듯이 샤를은 울분을 토해냈다.
“우리 집안이 그깟 푼돈쯤은 줘버리고 날 구하러 와 줄 거야. 그나저나 넌 어떡하니? 집에 돈 많아?”
“아니, 별로 없을걸?”
“하, 그럼 큰일이네. 부모님이 고생하시겠다.”
“우리 부모님이 왜?”
“당연한 거 아냐?! 네 몸값을 구하겠다고 집안에 있는 물건을 다 팔고, 또 여기저기 손을 벌릴 거 아니야. 아빠가 그랬어. 돈을 빌린다는 건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다 버리는 비굴한 짓거리라고. 절대 그렇게 살면 안 된댔어.”
“그럼 우리 엄마 아빠 힘들어지는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하니?”
엄마 아빠가 힘들어진다.
집안의 물건을 모조리 팔고 멍구도 팔아 치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멍구는 얼마에 팔 수 있을까?
“엣취!”
한편 집에 있던 멍구는 재채기가 나왔다.
뭔가 심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민하는 엄마 아빠가 힘들어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건 안 돼.”
“네가 뭘 어떡할 건데? 이 강철문을 날려버리기라도 하게? 그깟 양초에 불 좀 화려하게 붙였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너는…….”
으드득!
그 순간 샤를이 갇힌 방의 철문이 반으로 접혀버렸다.
“샤를, 나가자. 집까지 도망치면 우리가 이기는 거야!‘
샤를은 동그란 토끼 눈이 더 커지고 귀가 쫑긋 섰다.
”강민하, 너 대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