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지옥에서의 예절 교육
강철남은 가이아를 살릴 세 번째 약재를 찾으러 천계로 왔다.
그러나 수소문 끝에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 약재는,
“천계의 보물?”
“그렇소. 천계에는 일곱 개의 보물이 있는데 금정산환은 그중 하나요.”
“천계의 보물이라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겠지?”
“당연한 말씀을. 금정산환은 그 어떤 병이라도 고친다고 알려진 비약이라오.”
천계의 보물이라.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효능이 확실하지 않겠나.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금정산환을 가지고 돌아가리라.
“그런 사연이 있으니 옥형, 내게 금정산환을 주실 수 없소?”
강철남은 옥황상제를 만나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렇지 않아도 옥황상제는 가이아가 광마 도사의 흡성대법에 당한 것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애초에 천계의 감옥이 광마 도사를 제대로 가둬두지 못해서 가이아에게 변고가 생긴 것이 아닌가.
“철남이, 그대의 심정도 이해하고 내 책임도 통감하고 있네. 그러나 천계의 보물인 금정산환은 아무리 옥황상제라도 마음대로 증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네.”
“그럴 만도 하오. 국가의 보물이니. 그렇다면 명분은 없소? 내가 그 천계의 보물을 정당하게 취득할 수밖에 없는 명분 말이오.”
제법 생각하고 온 강철남은 옥황상제의 지혜를 빌렸다.
그냥 줄 수 없다면 줘도 되는 이유가 있으면 해결된다.
“명분이라… 만들 수는 있지.”
“정말이오?”
“지금 천계를 위태롭게 하는 사건이 벌어지려고 하네. 천계를 위기에서 구해준다면 국보라 할지라도 넘겨줄 명분은 충분하지.”
“그 부탁이 무엇이든 맡도록 하겠소.”
“역시 각오가 되어 있구만. 그렇다면 임무를 하달하도록 하겠네. 자네가 해줄 일은…….”
* * *
민하는 엄마의 손을 잡고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구멍을 통해 넘어온 한지영은 조선 경옥고를, 멍구는 마계삼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철남씨는?”
“아직 안 왔나 보네.”
멍구는 민하의 얼굴에 복슬복슬한 털을 비볐고 민하는 멍구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민하야, 밥은 먹었어?”
한지영이 상냥하게 물었지만 민하는 힘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럼 안돼. 엄마가 깨어나서 걱정하시겠다. 언니가 뭐라도 만들어줄게.”
“텃밭에 있는 채소를 써도 돼.”
멍구도 식사 준비를 거들어주려는 모양이다.
둘은 채소를 손질한 뒤 푹 끓여 기운이 없는 민하도 쉽게 삼킬 수 있는 죽을 만들어주었다.
“어때, 먹을 만해?”
“맛있어요.”
식욕은 별로 없었지만 자기를 생각해주는 성의가 고마워 민하는 한 그릇을 다 비웠다.
한지영은 그런 민하가 대견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설거지가 다 끝났을 무렵,
펑!―
“앗, 철남씨. 왔군요.”
기다리던 강철남이 돌아왔지만 그의 손은 텅 비어 있었다.
“금정산환은요?”
“지금부터 그걸 가지러 가야 해.”
한지영은 사정은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그가 무척이나 급해보였다.
“아빠!”
“우리 민하, 엄마 잘 보살피고 있었구나.”
하지만 긴장된 표정도 딸이 달려들자 곧장 인자한 표정으로 바뀌고는 꼬옥 안아주었다.
“아빠는 괜찮아? 피곤해 보여.”
“아빠는 괜찮단다. 이제 곧 있으면 엄마가 깨어날 거야. 조금만 기다려주렴.”
“응! 기다리고 있을게.”
씩씩하게 대답하는 민하가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대견할 따름이었다.
반드시 예전처럼 가족 넷이서 행복하게 살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딸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고는 강철남은 나서기 위해 일어났다.
“멍구야, 가자!”
“뭐 하러 가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멍구를 향해 강철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날뛰러.”
“오케이, 콜!”
몸이 근질근질했던 멍구가 딱 원했던 대답이었다.
강철남은 손을 흔들며 멍구를 데리고 훌쩍 떠나버렸다.
한지영은 엄마와 단둘이 남겨져 쓸쓸해 보이는 민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함께 있어 주었다.
강철남과 멍구가 도착한 곳은 또다시 천계의 감옥.
“여긴 또 왜 왔어?”
“금정산환을 얻기 위해서지.”
“여기 있대?”
“아니, 그걸 얻으려면 여기 있는 놈들에게 참교육을 해줘야 해.”
“또 탈옥한 거야?”
“그것도 아니야.”
“그럼 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니, 멍구는 대체 무엇을 하러 온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천계의 지하에는 지옥이 있다고 해.”
“뭐, 지옥? 우리가 아는 그 지옥?”
“응. 그런데 가뜩이나 나쁜 놈들이 많아서 포화 상태인데 감옥의 탈옥수들이 난동을 부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옥에 갇혀 있는 녀석들도 좀이 쑤셨나봐.”
“오호, 그래서 자기네들도 반란을 일으켰다?”
“맞아. 우리 임무는 바로 그 무례한 녀석들에게 예의란 걸 가르쳐주는 것이지.”
“예절 교육이라면 또 이 멍구님이지.”
강철남은 가이아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리고 멍구는 겸사겸사 뚝배기를 깨기 위해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마황제님 아니십니까?!”
간수장이 한껏 자세를 낮추고는 비굴한 목소리로 굽신댔다.
“옥형한테서 얘기는 들었지? 지옥으로 안내해라.”
“네,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철로 된 문을 몇 개 지나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는 하염없이 하강, 하강, 또 하강했다.
정말 끝도 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고, 곧 도착합니다.”
지옥 도착이 임박해지자 간수장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악의 무리가 내뿜는 기백에 겁을 먹은 것이다.
천계의 감옥은 중죄인들이 수감 되는 곳, 하지만 그런 중죄인들조차 비교도 안 되는 악인들이 갇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이란 죄질이 나쁜 것은 물론이고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강자들을 가둬 놓은 곳이기도 하다.
“지옥이 무섭나?”
“그럼요! 지옥이 체질인 자는 이제껏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간수장은 금방이라도 바지에 지려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후덜덜 떨었다.
“여기서 제일 강한 놈은 누구지?”
“모, 모두가 엄청 강합니다! R 랭크를 넘나드는 녀석들이 수두룩하다고요.”
“내 질문 못 들었나?”
“히익! 제, 제일 강한 녀석이라면 아무래도 1번이라는 녀석입니다.”
“이름 한번 심플하군.”
“사실 본명은 모릅니다. 지옥에 수감 된 최초의 존재라 수감번호 1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명입니다.”
“최초의 죄인이라…….”
“지, 진짜 도착합니다!”
간수장의 호흡이 가빠졌다.
바닥으로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이내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공기도 더워지는 것이 꼭 불가마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마, 마황제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두 분이 내리시면 저는 먼저 올라가 봐도 될까요?”
넋이 반쯤 나가버린 간수장은 현기증에 골골대며 말했다.
“하, 이 의리 없는 새끼.”
“뭐라고 부르셔도 좋습니다. 부디 인정을 베풀어주십시오!”
멍구가 흘겨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간수장은 빌고 또 빌었다.
“그래, 먼저 올라가 봐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지옥의 밑바닥에 다다랐고 강철남과 멍구가 내리자 간수장은 서둘러 상승 버튼을 눌렀다.
“고놈 참, 어지간히도 무서웠나 보군.”
“그럴 만도 해. 보통 기운이 아니야.”
주변을 둘러보니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고 이쪽을 노려보는 기분 나쁜 시선도 느꼈다.
그 순간,
“강철나암!!!!”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으르렁 소리가 울려 퍼지자 멀리 있는 화산이 폭발했다.
누군가 강철남을 알고 있는 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아는 놈 중에 지옥에 갇힐 정도로 썩어 빠진 놈은 없었을 텐데.”
“날 기억 하느냐.”
“아, 넌.”
짐승 같은 목소리로 그르렁대는 녀석은,
호세였다.
북한산을 휘어잡으려 했던 산적.
강철남에게 독이 든 간장을 선물했다가 오히려 제 꾀에 넘어가 녹아버렸던 녀석.
생전에 많은 죄를 저지른 혐의로 천계의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 잦은 난동을 부려 지옥으로 쫓겨나게 된 것이다.
“크르르. 너도 결국 지옥에 떨어진 것이냐?”
“무슨 소리. 나는 일하러 왔다. 너희같이 덜떨어진 쓰레기, 양심 불량자, 개병신들에게 예의라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서 말이야.”
“흥, 옥황상제의 개라는 말이냐?”
“아니, 난 자유로운 갠데?”
멍구가 끼어들어 호세의 말을 막았다.
“여전히 짜증나는 똥개로군.”
“철남이, 이 새끼는 내가 조져도 되지?”
“맘대로 해.”
“조져? 나를? 으하하하하!!!”
“저 새끼가 미쳤나. 한 번 뒤지더니 두 번은 안 뒤질 줄 아나 봐.”
호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벌크업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벌크―궁극]
온몸의 근육이 울퉁불퉁 증폭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5m가 넘는 호랑이 괴물이 되어 버렸다.
“지옥 바닥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단련했다. 너희도 이 지옥 밑바닥에서 영원히 썩도록 만들어주마.”
“그나마 호랑이일 때는 간지라도 있었지, 이제는 그냥 풍선 근돼충이 되어버렸잖아.”
눈살을 찌푸린 멍구는 혀를 끌끌 차면서 뛰어올랐다.
[신장]
뻐억―
신력을 담은 멍구의 빛나는 앞발이 호세의 턱을 세게 후렸다.
“크으윽!!”
강냉이 서너 개가 흩뿌려지며 거구의 호세가 쓰러졌다.
“이미 죽은 놈은 과연 또 죽을 수 있을까? 궁금하니 실험해보지. 뒤질 때까지 두들겨 패줄게.”
“이, 이노옴!”
파바바바바박―
멍구가 땅을 파듯 앞발 두 개로 쓰러진 호세를 조지고 있는 동안 강철남은 높은 곳에 올라 지옥의 정세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군.”
사방은 조용했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고 있듯이.
“저건…….”
그 순간 저 멀리서 거대한 허리케인이 불어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인위적으로 일으킨 것처럼 정교한 크기와 높이, 각도, 그리고 궤도를 그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엄청난 상승 기류가 하늘을 꿰뚫을 듯 치고 올라갔다.
“설마.”
와아아―
지옥의 수감자들이 모두 허리케인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려는지 그 의도가 보였다.
저 허리케인을 타고 위로 올라갈 생각이다.
“벌써 가면 어떡해. 예절 교육은 받고 가야지.”
강철남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력, 도력, 신력. 세 가지 힘을 한데 모아…….”
[마력]
[도력]
[신력]
주먹에 푸른 불꽃과 하얀 안개와 노란빛이 휘감겼다.
지옥의 지천이 뒤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 강철남의 주먹에 응축되었다.
“간다.”
[신마도력 일격필살]
허공을 향해 힘차게 내지른 강철남의 풀스윙 펀치는 창공을 때려 부수고 공기층을 완전히 깨뜨렸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지옥의 하늘과 땅이 으깨어지기 시작했다.
차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었다.
쨍그라아아앙!―
허리케인도 조각조각 흩어지고 기류에 편승하고 있던 수감자들도 사지가 으스러져 종이짝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지옥 예절 교육 1교시 끝이다. 다음 2교시 준비해라, 싹바가지 없는 새끼들아.”
순식간에 허리케인과 함께 지옥의 수감자들을 날려버린 강철남.
누가 그에게 맞서려나 싶은 그때,
“강철남…….”
등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놈도 있었구나, 하며 돌아보니 펄럭이는 커다란 날개와 강철로 뒤덮인 튼튼한 비늘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다. 너도 여기까지 떨어졌나보구나.”
전 크레톤의 마왕, 용족 크레톤이 강철남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