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가짜 멍구 VS 진짜 멍구
인간의 눈으로 보면 개는 다 비슷하게 생겼다.
뭐,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다.
개가 보기엔 그 인간이 그 인간처럼 생겼으니까 말이다.
개의 입장에서 하는 말인데 사실 개는 개끼리 서로 구분할 줄 안다.
그렇기에 저놈 나보다 못생겼네, 라거나 내가 저놈보다는 좀 잘 생겼지, 같은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저 새깨 존X 못생겼네. 내가 쟤보단 낫지.’
하얀 멍구와 검은 멍구는 서로 마주보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야, 넌 뭐냐 숯검댕이.”
하얀 멍구가 자기를 사칭하는 검은 멍구를 보자 어이가 없어서 띠겁게 굴었다.
“말했잖나. 이 도시의 마왕 멍구라고.”
검은 멍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구라를 내뱉었다.
당연히 그 말을 들은 하얀 멍구는 이마에 빠직, 하고 주름이 잡혔다.
“뚫린 주둥이라고 막 놀리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말, 다 뻥이야. 저렇게 뻔뻔하고 막 나가는 개가 있는데 말이지.”
“혓바닥 놀리는 게 교양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구나. 그러는 넌 누구냐?”
검은 멍구는 털 색깔 한 올 바뀌지 않고 뻔뻔하게 밀어 붙였다.
“딱 보면 모르겠냐? 내가 진짜 멍구다.”
“흥, 감히 날 사칭해? 못생긴 게 기분 나쁘군. 이왕이면 잘생긴 개라면 모를까.”
“뭐? 누가 봐도 내가 너보다 낫거든?”
완전 개판이었다.
하얀 멍구도 검은 멍구도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었고 그 소란에 몰려든 몬스터들도 이 광경을 지켜보며 누가 진짜 멍구인지 알아맞히지 못했다.
“누가 진짜 마왕님이시지?”
“하얀색이잖아.”
“아니야, 검은색이 이제껏 우리를 다스렸다고.”
“그럼 검은색이겠지.”
“아닌데, 하얀색 맞는데.”
싸움을 구경하는 몬스터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
사실 도시 멍구는 푸른 초목에서 쉬어가는 휴양림이기에 딱히 통치랄 게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멍구는 정치에 소홀했고 하얀 멍구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도 몇 되지 않았다.
멍구가 딩가딩가 노는 동안 검은색 멍구는 슬그머니 나타나 여기저기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간의 활약 탓에 많은 몬스터가 검은색 멍구를 마왕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마왕이건 아니건 둘째치고 너보다 못생겼다는 말은 못 참겠다.”
“마왕이 누군지가 제일 중요한데 무슨 개소리야.”
논점이 이리 튀었다 저리 튀었다, 대화가 정신 없ᄋᅠᆻ다.
숲이 떠나가라 왈왈 짖는 개소리에 몬스터들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엉망진창이야. 서로 대화가 전혀 안 통해.”
“이렇게 된 거 승부를 보죠.”
“맞아, 맞아. 이제는 그 수밖에 없어.”
보다 못한 몬스터들이 둘을 뜯어말렸다.
그리고는 승부를 제안했다.
“오냐, 뚝배기를 박살 내주마.”
“단어 선택 한번 고급지구나, 교양 없이.”
“자꾸 교양, 교양 거리는데 그게 바로 네가 가짜라는 증거야. 진짜 멍구는 똥개라서 교양 같은 거 안 키우거든.”
“자, 자. 그만들 하시고. 공정하게 시합을 하죠.”
몬스터들은 나무판을 가져와 칼로 긁어 점수판을 뚝딱 만들었다.
어느새 숲은 누가 진짜 마왕인지를 판가름하는 시합을 보러 온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웬 점수판이냐?”
하얀 멍구가 맞짱을 준비하려다 점수판을 보고 어리둥절해 했다.
“마왕이라면 자고로 마계의 산증인, 역사 그 자체. 누구보다 지식에 풍부한 법이죠.”
“뭐? X바, 그럼 지금 골든벨 퀴즈쇼라도 하자는 거냐?”
싸움이라면 몰라도 짱구 굴리는 건 솔까 자신이 없는 하얀 멍구였다.
“혹시 자신 없으세요?”
“그냥 원터치 쪼개면 안 돼?”
“교양 없이.”
“넌 좀 닥쳐. 아까부터 자꾸 교양, 교양 타령. 제기랄, 하면 되잖아!”
왠지 분위기에 휘말린 것 같지만 하얀 멍구는 그래 까짓거 이기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승부를 승낙하고 말았다.
분위기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승부가 시작하길 기다리는 검은 멍구의 폼을 보아하니 것이 척 봐도 대가리 좀 쓸 것 같은 이미지다.
‘스읍, 이거 X된 거 같은데.’
하얀 멍구의 콧잔등에 땀이 삐질 흘렀지만 낙장불입.
승부가 시작되었다.
“자 그럼 첫 번째 문제 갑니다. 크레톤에 거주하고 있는 전설적인 술 장인…….”
“정답! 소하 선생!”
옳거니!
소하 선생 구출 작전을 직접 주도했던 멍구가 아니던가.
자신 있게 정답을 외치는 하얀 멍구.
이걸로 선취점을 얻어가나 싶었지만,
“땡! 문제를 끝까지 듣고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크레톤에 거주하고 있는 전설적인 술장인은 소, 소하 선생인데요…….”
“이 씨빠, 방금 급커브 돌린 거 맞지? 저거 말 더듬는 거 봤어, 못 봤어? 너 이 새끼! 이거 주작 아니야?!”
“어허, 한 번만 더 이 신성한 시합을 모욕할 시 실격패 처리하겠습니다!”
심판이 길길이 날뛰는 하얀 멍구에게 엄중하게 경고를 먹였고 지켜보던 몬스터들이 야유를 보내왔다.
집단 가스라이팅에 하얀 멍구는 뒤집힌 눈깔을 다시 돌려놓고 진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 뭔가 이상한데.”
“그렇다면 소하 선생이 만든 전갈주의 주재료는 무엇일까요?”
이번에야말로 정답 간다.
심판, 귓구멍 벌려.
정답 들어간다.
“정답! 당근 전갈이지, 씨벌.”
“땡!”
“뭐?”
오답 판정을 받자 당황한 하얀 멍구의 동공이 흔들렸다.
대체 왜?
그 틈을 파고들어 검은 멍구가 손을 들었다.
“정답. 전갈.”
“정답입니다!”
“아니, 뭐가 썅! 내가 먼저 전갈이라 했잖아!”
“하얀 멍구님은 ‘당근 전갈’이라고 했잖습니까.”
억지도 이쯤 되니 하얀 멍구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도시의 마왕이고 뭐고 이 빌어먹을 도시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싶었다.
“당근은 추임새지, 이 등신 머절탱 새끼들아!!!”
“워워. 진정하십시오. 모르시는 거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당근 전갈’은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입니다. 다른 말로는 캐럿 스콜피언이라고 하는데…….”
“지랄! 그런 게 어딨어! 씨벌탱, 주작이 아주 그냥 습관이야. 당근 전갈이란 게 진짜 있다고? 있으면 당장 내 눈앞에 가져와!”
“자, 자! 그럼 다음 문제 나갑니다.”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항의하는 하얀 멍구를 무시한 채 퀴즈는 계속되었다.
“하아, 이건 염병 음모야. 아주 지랄 맞은 음모라고.”
“계, 계속해서 두 번째 문제입니다. 상업 도시 카르텔의 마왕은…….”
하얀 멍구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미친 듯이 답변을 쏟아붓고 보자.
“정답! 카르텔!”
“땡! …상업 도시 카르텔의 마왕은 카르텔인데요.”
“이런 씨불, 또 드리프트야?”
“카르텔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명칭은 무엇일까요?”
“…그걸 개가 어떻게 알아…….”
이놈의 새끼들은 개한테 대체 뭘 기대하는 건가 싶은 그때,
“정답. 마계 관광 투어 개혁.”
“네! 맞습니다!”
검은 멍구가 두 번 연속 문제를 맞추었다.
하얀 멍구는 머리 끝까지 광기가 차올랐다.
이 모든 게 누군가의 농간 같다는 느낌을 씻을 수가 없었다.
“아오, 그냥 다 깽판 놓고 싶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채 무력 통치를 해봤자 도시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마음에 안 들지만, 이들에게 정식으로 인정받아야 했다.
그것이 진정한 마왕일 테니까.
“참자, 멍구야. 참아야 하느니라.”
“다음 문제입니다.”
광견병 걸린 개 마냥 하얀 멍구가 언제 거품을 물고 달려들지 몰라 잔뜩 긴장하며 진행자가 다음 문제를 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구경하는 관중 속에 우아하게 서 있는 한 들개가 멍구의 눈에 들어왔으니,
“넌?”
바로 강철남 가족이 크레톤으로 이사를 결정하면서 멍구와 헤어지게 되었던 들개였다.
여전히 우아한 곡선의 몸매를 뽐내며 퀴즈 대결을 관람하고 있었다.
“이봐! 너! 그래, 너! 나 알지? 네가 해명 좀 해봐. 내가 진짜 멍구라고.”
“…저를 아시나요?”
“아니, 이 ㅆ…….”
하얀 멍구는 순간 욕이 나올뻔했지만 간신히 입술을 틀어막았다.
그날 냉정히 차버렸다고 지금 이렇게 자기를 배신하는 건가.
1등석에서 순진한 표정으로 자기 몰락을 지켜보는 것인가.
‘난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개랍니다’ 하고 쓰여 있는 들개의 눈을 들여다보며 하얀 멍구는 치를 떨었다.
“어라, 잠깐.”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정말로 자기를 모르겠다는 저 순수한 눈빛.
비록 차갑게 헤어지긴 했어도 멍구는 한때 그녀의 진솔함에 반했었다.
그런 그녀가 저토록 완벽하게 거짓 표정을 짓고 있을 리 없었다.
“이상해.”
“하얀 멍구님. 퀴즈에 집중해주세요.”
“닥쳐! 너희 새끼들 다 수상해!”
하얀 멍구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구경하고 있는 몬스터들의 눈빛을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시는…….”
“움직이지마! 지금부터 움직이는 새끼들은 전부 뚝배기 깨질 줄 알아!”
앞발을 거세게 휘두르는 하얀 멍구의 난동에 몬스터들은 주춤대며 섣불리 나서지를 못했다.
“기어이 무력으로 권력을 빼앗겠다는 건가. 추하군.”
“빼앗는다라… 적어도 남의 마음을 빼앗는 놈보다는 떳떳하지 않나?”
“무슨 헛소리냐.”
[신수의 빛]
하얀 멍구는 하늘을 향해 신수의 빛을 쏘아 올렸다.
신력이 가득 담긴 빛줄기는 하늘로 치솟으며 지상에 광채를 비추었다.
그 눈부심에 몬스터들이 일동 혼란에 빠졌다.
“아얏!”
“눈부셔!”
신수의 빛이 선사하는 신력이 몬스터들의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 몸 안에서 검은 마력이 스멀스멀 빠져나오는데,
“옳거니. 역시 집단 최면에 걸려든 거였구만.”
검은 멍구의 [현혹] 마법으로 관중들을 홀려 분위기를 몰아갔던 것이었다.
심판과 진행자 역시 검은 멍구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쳇.”
잔꾀가 들통이 나자 검은 멍구는 재빨리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뚝배기 딱 대.”
“히익!”
빠각!―
하얀 멍구의 앞발에 검은 멍구의 뚝배기가 작살 나 버리고 말았다.
* * *
도시 멍구의 마왕 자리를 되찾은 진짜 멍구는 가짜 멍구를 묶어두고 신문하기 시작했다.
“너 그따위 위험한 마법은 어디서 배웠어?”
“저, 그…….”
“저그는 시바, 난 테란이다 새끼야.”
따악!
두개골이 울리는 경쾌한 소리.
가짜 멍구는 서러워졌다.
“훌쩍, 그게 쓰레기통을 뒤적이다가 어떤 약을 발견했는데요, 그걸 먹었더니 신비한 능력이 생겨서, 훌쩍.”
“뭐? 그러면 원래는 [현혹] 마법은 다루지도 못했냐?”
“네, 저 같은 일개 개 따위가 어떻게 그런 대단한 마법을 다루겠어요.”
“그 약은 어떻게 생겼는데?”
“그냥 평범한 캡슐 모양이었어요.”
“약을 발견한 장소는?”
“카르텔의 뒷골목이요.”
분명 그 약은 마력 도핑 약일 것이다.
약의 공급책이었던 광마 도사가 사라지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자 황급히 약을 버린 것이 나뒹굴어 다니는 거겠지.
“에효, 권력을 가졌을 때 본심이 나온다더니.”
“잘못했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지.”
“엉엉.”
“오늘부터 내 밑에서 일해라. 개처럼 부려먹어주마.”
“살려주시는 겁니까?”
“아, 혹시 뒤지고 싶었니?”
“그럴 리가요! 개같이 일 하겠습니다!”
검은 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멍구에게 복종했다.
마왕의 자리를 되찾고 마왕의 이름으로 명하니 두 번째 약재인 마계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세 번째 약재뿐.
천계로 간 강철남에게 가이아의 생명이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