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천계 감옥의 탈옥수들
구름을 타고 도착한 천계는 경이로운 곳이었다.
“철남이, 이거 밟아도 괜찮은 거 맞아?”
멍구가 구름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보며 톡톡 건드려봤다.
강철남은 조심스레 구름 바닥에 발을 딛었다.
타닷―
우려와는 달리 약간 푹신한 흙을 딛는 느낌으로 구름 바닥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신비로운 곳이로군.”
주변 경관은 푸른 하늘과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졌다.
바닥에는 구름에서 피어난 풀과 꽃이 올라와 있었고 저 멀리 내다보니 높게 자란 나무들도 있었다.
인간계와 마계와는 다른, 신선계와 영원의 땅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나무다.
“킁킁. 철남이, 피 냄새가 나.”
“사건인가. 광마 도사가 연루되어 있을지도 몰라. 가보자.”
강철남과 멍구는 피 냄새가 풍겨오는 곳으로 달렸다.
냄새가 짙어질수록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가까워졌고 비명과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오우, 전쟁이라도 난 건가.”
현장에 도착한 강철남과 멍구가 본 것은 철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다.
그 두꺼운 철벽은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고 중앙에 있는 거대한 철문도 녹아내려 흘러내리고 있었다.
“또 철로 만든 건물이야? 하여간 철덕후들이 문제야.
“철이 녹아 있어. 기분 나쁜 곳이네.”
“여기가 바로 옥형이 광마 도사를 가뒀다는 감옥일지도 몰라.”
감옥 안에서는 격렬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강철남과 멍구가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니 죄수복을 입은 마족들과 간수들로 보이는 천계인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천계인들을 엘프의 모습과 닮아 있었으나 엘프와 달리 귀가 짧고 목이 길었다.
그들은 신력을 발휘해서 마족들의 마력에 맞서 싸웠다.
[성광]
성스러운 빛이 마족을 덮치니 그들의 마력이 약해졌다.
마치 정화와 같은 힘이었다.
하지만 천계의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제법 실력 있는 죄수들이란 뜻이었다.
그 강한 마족들이 순수 무력으로 달려들자 그 기세에 천계인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완전 개판이네. 철남이, 누구 편 들 거야? 마황제니까 몬스터들?”
“광마 도사가 죄수라면 간수들 편을 들어야지. 가자, 멍구. 몬스터들의 뚝배기를 깨자.”
강철남과 멍구가 싸움판에 끼어들려고 했던 그때였다.
“헤헤헤! 죽어라!”
어디서 튀어나온 죄수복을 입은 젊은 늑대 수인이 강철남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덥석―
“오잉?”
가뿐히 손목을 제압당한 늑대 수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물어보자. 광마 도사를 아나?”
“이 새끼가 어디서 광마 어르신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느냐.”
“안다는 거군. 그놈 어디로 간다든가 하는 얘기 못 들었나?”
“그노오옴?? 이 건방진!”
늑대 수인이 스텝을 밟고 발차기를 날려 보지만,
콰앙!!
그대로 땅에 매다 꽂히고 말았다.
“멍구야, 말 안 듣는 놈들 패고 있어 봐.”
“오케이.”
강철남은 늑대 수인의 주둥이에 딱밤을 날렸다.
따악―
“크아악!”
“말 안 하면 딱밤으로 강냉이 다 털어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감옥 안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멍구는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몬스터들의 뚝배기를 깨고 다녔다.
“너, 너는 누구냐? 본 적이 없는 죄수인데.”
한 천계인 간수가 날뛰는 멍구를 보고 창을 겨누며 말했다.
“죄수는 누가 죄수야? 내가 얼마나 순수한 갠데. 법 없이도 살 개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몬스터들의 뺨따구를 후려갈겼다.
그때,
쿵! 쿵!
지진과 같은 진동이 구름을 둥둥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알바트로스야!!”
“일단 물러나!”
간수들이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비명이 들려오던 곳에서는 이내 거대한 폭음과 함께 철벽이 박살 나며 그 파편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오호. 개꿀잼 상황이 벌어진 것 같은데.”
멍구는 신이 난 표정으로 소란이 일어난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는 웬 백악기 시대에서나 살 법한 거대한 새가 눈을 부라리며 천계인들을 부리로 쪼고 있었다.
[빛의 창]
실력 좋은 천계인이 빛을 날카롭게 만들어 커다란 빛의 창을 만들어냈다.
제법 호기롭게 창을 던졌으나 힘의 차이가 엄청났기에 알바트로스의 깃털 하나 찢지 못했다.
“젠장! 너무 강해!”
“끼룩!”
알바트로스가 날개를 퍼덕이자 천계인들은 맥없이 날아가 데굴데굴 굴렀다.
녀석의 재앙과도 같은 강함에 천계인들은 좌절했다.
모두가 목숨을 부지할 생각에 덜덜 떨고 있는 동안 멍구만이 머릿속에 딴생각으로 가득했다.
“훈제로 구워 먹으면 육즙 끝내주겠다.”
침을 질질 흘린 채 자기를 노려보는 살기를 느꼈던 걸까, 알바트로스는 멍구를 발견하고 부리를 세웠다.
“끼루룩!!”
마침 알바트로스도 배가 고팠는지 침을 흘리며 멍구를 향해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알바트로스는 거대한 부리를 쩍 벌려 한입에 멍구를 삼켰다.
그때,
“그럼 지금부터 요리 시작합니다.”
[직화 구이]
알바트로스의 목구멍으로 넘어간 멍구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일렁이더니 이내 거대한 화염이 일었다.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불길에 알바트로스는 눈이 뒤집혔고 그사이 멍구는 솜씨 좋게 불 세기를 조절해가며 내장부터 살까지 먹기 좋게 요리하기 시작했다.
“마무리!”
불길을 퍼뜨려 알바트로스의 몸을 감싸니 깃털이 깔끔하게 연소 되어 날아가 버렸다.
오로지 남은 건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 불리는 알바트로스가 아닌, 한 마리의 잘 익은 훈제치킨이었다.
“푸하, 이 새끼 입 냄새 죽는 줄 알았네. 이놈의 감옥은 양치도 안 시키는 거야?”
멍구가 온몸에 묻은 위액을 부르르 털어내며 투덜댔다.
“철남이! 밥 먹고 해!”
그 사이 강철남은 끈질기게 입을 다물고 있는 늑대 수인의 자백을 받는 것을 포기했다.
“이 기술은 네 개인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빙의]
강철남은 빙의를 시전하였고 늑대 수인의 기억 속으로 깊이 침투했다.
* * *
늑대 수인의 기억 속.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호시탐탐 탈옥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광마 어르신. 나도 여기서 나가려고 별 지랄을 다 해봤지만 결국 남는 건 실패했다는 패배감뿐이었소.”
늑대 수인은 무기력에 빠진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르지.”
“그 말은 광마 어르신은 여길 탈출할 수 있는 묘수가 있다는 말이오?”
“크크크. 여기 있는 모든 녀석과 함께 말이지.”
“그게 정말이오? 계획이 뭐요? 힘을 보태지요.”
“너희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때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광마 도사는 천계 감옥을 탈출할 계획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뭔가 계획이 있는 듯 간수 한 명과 은밀한 내통을 하는 것을 보았다.
“광마 어르신은 여기서 나가면 무얼 하실 거요? 나는 마계로 갈 거요. 마황제가 만든 숲이 있는데 거기에 숨어 살 거요.”
“마황제가 있나?”
“그럼요. 한 6년 전에 등극했죠.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요.”
하릴없이 갇혀 있는 나날 중에 늑대 수인은 광마 도사의 요청으로 마계의 지도를 그려주고 있었다.
광마 도사는 마계의 지도를 머릿속에 다 외운 뒤 자기 잘린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손부터 되찾을 것이다.”
“그 잘린 손이요? 어떻게 되찾으시려고 그러쇼?”
“솜씨 좋은 대장장이 마법사가 있지. 마력으로 오브젝트를 창조하는 녀석인데 아마 의수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을 거야.”
자신 있게 말하며 광마 도사는 소리 없이 웃었다.
마치 아직 자기는 끝날 운명이 아니라는 듯.
그리고 며칠 뒤.
광마 도사는 노역 도중 일은 안 하고 깨작깨작 땅바닥에 발을 비비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간수가 성큼성큼 다가와 그를 꾸짖었다.
“이봐. 손 없는 네가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지정해 주었을 텐데. 왜 여기서 농땡이야? 얼른 자리로 돌아가.”
“자리라… 그렇지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지.”
“알았으면 복귀해.”
“그래, 복귀하도록 하겠다. 원래 내 자리인 바깥으로.”
“뭐라고?”
순간 검은빛이 번쩍하더니 감옥 전체에 검은색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너 이 자식!! 무슨 개수작이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동안 감옥 곳곳에 술식을 심어놨다. 이 술식은 철을 녹이는 술식이지.”
“뭐?”
그 순간 감옥을 둘러싸고 있던 철벽이 녹아내리면서 동시에 죄수들을 옭아매고 있던 족쇄도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족쇄가 풀렸어!”
“벽도 녹아내리고 있잖아!”
“자유다! 자유야!!”
죄수들은 광분하여 날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광마 도사가 예언한 대로 자기들이 무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미친 듯이 실력을 뽐내며 감옥을 전쟁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감옥이 전쟁터가 되어버린 사이 광마 도사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 * *
강철남이 모든 기억을 읽고 빠져나오자 늑대 수인은 마치 긴 숨을 참아왔던 것처럼 호흡을 크게 내뱉었다.
“푸하!”
“그렇게 된 것이었군.”
“너, 넌 대체 뭐 하는 놈이냐?”
강철남의 실력을 뼛속 깊이 느낀 늑대 수인은 그가 두렵기까지 했다.
“철남이! 치킨 다 식는다! 빨리 와!”
“뭐? 치킨?”
솔솔 피어오르는 육즙 냄새에 이끌려 강철남이 빛의 속도로 달려갔다.
“대체 뭐야, 저 녀석들은…….”
웬 개와 함께 그 흉포한 알바트로스를 구워 먹고 있는 강철남을 보며 늑대 수인은 오늘 일어난 모든 일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오우, 이거 야들야들한 게 맛있는걸?”
“간이 좀 심심하군.”
강철남은 주머니에서 소금을 꺼내어 착착 뿌려 먹었다.
“그걸 왜 들고 다녀?”
“넌 왜 안 들고 다녀?”
“…소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걸 상식인 거처럼 말하지 마.”
거대한 훈제 알바트로스를 꿀꺽 먹어 치운 강철남과 멍구.
배부르게 기름진 걸 먹고 나니 커피가 당겼다.
“항상 생각했던 건데 마계에 맛있는 커피가 없다는 건 크나큰 재앙이야.”
“맞아 맞아. 꼭 사약 먹는 거 같다니까.”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꼭 제대로 된 바리스타 육성 개혁을 시작해야겠어.”
“그렇다면 후딱 마무리 짓자고. 광마 녀석이 어딨는지 알아냈어?”
“장소는 몰라 하지만 녀석의 목적은 알아냈어.”
광마 도사 마법사 대장장이에게 손을 되찾으려할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그리고 손을 되찾은 다음 목적지는 어디지?
의문이 많았다.
‘침착하자. 지금은 잠시 멈춰서 방향을 정해야 할 때야.’
옥황상제라면 단서를 줄지도 몰랐다.
”멍구야, 우리 옥형 만나서 인사 한번 해야 하지 않나?”
“겸사겸사 차도 얻어 마시자고.”
강철남은 어느새 자기들을 둘러싼 채 바짝 경계하고 있는 천계인 간수들에게 물었다.
“여기서 옥황상제에게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놈 있나?”
“뭣? 옥황상제님이 네 친구냐?”
간수장이 창을 들고 나타나 거칠게 맞받아쳤다.
“그렇다면 어떡할래.”
“고얀 놈이로구나. 아무리 죄수들을 잡는데 힘을 보태줬다 하더라도 너처럼 무례한 놈은 우리 천계에 받아들일 수 없다.”
“받아들이고 말고는 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냐. 내가 오고 싶으면 오는 거지.”
“이 건방진 놈!”
간수장이 창을 꼬나쥐고 달려드는 그 순간,
번쩍―
황금색 빛이 번쩍이더니 신성한 금가루가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천계인 간수가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뭐야?”
“빨리 엎드리지 못할까? 옥황상제님의 행차시다!”
방금까지만 해도 살의를 풍기던 녀석이 이번에는 경외감에 떨고 있었다.
그때,
저벅― 저벅―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허, 철남이랑 멍구가 아니더냐?”
“옥형, 잘 계셨소?”
강철남과 멍구가 옥황상제랑 주먹을 부딪치며 인사를 하자 모든 천계인 간수가 경악했다.
특히 죽일 듯 달려들었던 간수장은 바지에 살짝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감옥이 엉망진창이구만. 천계에는 처음 와보지? 첫인상이 이래서 부끄럽네.”
그 말에 간수장은 징계를 받을 생각에 거의 혼절할 지경이었다.
“아, 옥형. 안 그래도 감옥을 이렇게 만든 광마라는 놈을 잡으러 갈 예정이오.”
“오호? 그런가? 사정은 잘 모르지만 우리 천계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 기쁠 따름이네. 마황제와 마왕이 도와준다는데 내 어찌 마다하겠다.”
마황제와 마왕이라고!?
모든 천계인 간수의 바지가 축축해졌고 간수장은 게거품을 물고 기절하고 말았다.
“옥형! 그 전에 차 한 잔만 주라!”
멍구가 입이 심심한지 옥황상제를 보챘다.
“허허허. 그래, 휴게실로 함께 감세.”
강철남과 멍구, 그리고 옥황상제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그제야 간수들의 숨통이 트였다.
바지에 흥건히 지린 간수장은 골골대며 깰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