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109화 (109/175)

109화 마계에 다시 뚫린 구멍

샤를은 명망 높은 토끼 수인 집안의 딸로 실로 그 위상이 대단했다.

샤를의 집안은 상업 쪽으로도, 농가 쪽으로도 큰 이름을 떨치고 있는 대부호였다.

상가에서는 샤를의 집안 이름만 들어도 하찮은 물건은 내놓지 못할 정도였고 농가에서는 높으신 분들이 시찰을 나왔나 하여 긴장할 정도였다.

“나는 샤를이라고 해. 우리 할머니 샤를 1세에 관한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

샤를은 으스대며 자기 집안의 이름을 내세워 민하의 기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민하가 그런 걸 알 리가 있나.

“샤를 1세? 할머니가 1살밖에 안 돼?”

“그 1세가 아니잖아!”

민하의 순진무구한 대답에 반 친구들이 키키 대며 웃었다.

건방진 전학생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려던 샤를은 도리어 비웃음거리가 되자 얼굴이 시뻘게졌다.

“흥, 너처럼 근본 없는 아이들에겐 분수를 알려주지.”

“분수? 나 분수 알아! 10분의 5는 2분의 1이잖아?”

“그 분수가 아니거든!”

결국 반 아이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또 한 번 바보 취급을 당하자 샤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기어이 나랑 승부를 보자는 거지? 좋아. 각오해. 당장 뒤뜰로 나와.”

“그치만 곧 수업 시작할 텐데?”

“내 말이 곧 법인 거 몰라?”

발을 구르며 생떼를 부려보지만,

“모두 자리에 앉아주세요. 수업 시작할게요.”

“네에!”

선생님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활기차게 대답하고는 자리로 흩어졌다.

물론 민하도 지정받은 자리로 가 앉았다.

“샤를도 얼른 앉도록 해요.”

“…네.”

분한 마음을 달래며 자리로 가 앉는 샤를.

그런데 옆에는,

“안녕, 샤를! 앞으로 잘 지내보자.”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민하가 있었다.

“왜 여기에 네가 있는 건데!”

“샤를! 수업 중에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요? 그것도 오늘 전학 온 친구에게. 또 심지어 짝꿍인데.”

“죄송해요…”

반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 속에서 싱그러운 미소를 띠는 민하의 얼굴을 보고 샤를은 두고 보자며 다음에 골려줄 기회를 기약했다.

* * *

민하의 학교 첫째 날 첫 수업은 역사 수업이었다.

크레톤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마계의 역사에 관해 배울 예정이었다.

“오늘 공부할 부분은 마황제와 네 마왕에 관한 내용이에요. 혹시 지금 마황제와 네 명의 마왕이 누구인지 전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그러자 아이들이 우후죽순 손을 들었고 그중 가장 먼저 손을 든 샤를이 발표 기회를 얻었다.

“마황제는 강철남, 마왕은 가이아, 카르텔, 키켈, 멍구입니다.”

“잘 대답했어요. 정답이에요. 모두 박수.”

반 아이들은 박수를 치면서 자기가 맞추고 싶었다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민하는 그중에 반 이상은 자기 가족의 이름이라는 걸 알아들었다.

하지만 등교 전 엄마가 한 말을 떠올렸다.

“민하야, 어디를 가서도 아빠 엄마, 멍구가 마황제나 마왕이라는 걸 말하면 안 된다.”

가이아가 민하의 신분을 숨긴 이유는 어디까지나 민하가 신분으로 인해 특별 대우를 받음으로써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할 인격 수양의 기회를 놓칠까 봐 우려해서였다.

부모의 빽만 믿고 대우받는 아이는 결국 자립심 없이 자라 호가호위하며 으스댈 뿐이라는 걸 가이아는 잘 알고 있었다.

가이아는 민하를 기본 인성을 갖춘 아이로 키우고 싶었기에 그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 것이다.

“오호호. 이 정도야 기본이지요.”

반면에 샤를은 가문의 힘에 취해 말괄량이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민하는 샤를이 마음에 들었다.

나쁜 아이는 아닌 것 같고 그저 재미있는 아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샤를이 잘 대답해주었어요. 초대 마황제의 뒤를 이어 마황제로 등극한 강철남은 초대 마황제가 보관해둔 에테르를 네 마왕의 동의를 얻어 개방하였어요. 에테르의 힘을 얻은 강철남은 그 위대한 힘으로 마계를 푸른 초목으로 가꾸기 시작했답니다. 이 아이디어는 그의 고향, 인간계에서 가져왔다고 해요. 마황제의 말로는 인간계는 푸른 산과 바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곳이라 해요. 그는 그 멋진 풍경을 마계에 가져오고 싶어서 마계 수목화 계획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손을 접었다 펴니 영상화 마법이 펼쳐지더니 도시 멍구의 푸른 숲 풍경이 나타났다.

“우와!!”

크레톤에서 나고 자라 도시를 벗어난 적이 없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보여주는 멋진 경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민하는 오랜만에 본 고향의 풍경이 그리워 눈이 땡그래졌다.

“그럼, 각 마왕들이 다스리는 도시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말해볼 친구 있나요?”

이번에도 샤를을 비롯한 반 아이들 모두가 손을 들었다.

그 가운데 작고 하얀 민하의 손도 삐쭉 올라와 있었다.

“그럼, 민하가 대답해볼래요?”

선생님은 다정한 미소로 민하의 첫 발표를 응원해주었다.

“도시 가이아는 농업 도시로 사계절이 한 국가 안에 뚜렷이 나타나는 도시에요. 덕분에 다양한 작물들이 자라는 곳이죠. 도시 카르텔은 상업 도시로 마계의 모든 물건이 수입, 수출되어 마계의 모든 상인이 모이는 큰 시장이 있어요. 그리고 도시 크레톤은 저희가 공부할 수 있는 교육이 발달 되어 있고요. 마지막으로 도시 멍구는 제가 자란 곳으로 늘 푸른 초목과 신선한 공기가 기분 좋은 곳이에요.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산새들이 노래를 불러주면 금방 씻은 듯이 금방 나아지고요, 좋은 일이 있으면 꽃이 활짝 피어 축하해주곤 해요. 도시 멍구는 아주 포근하고 행복한 땅이에요. 언젠가 반 친구들을 모두 데려가고 싶은 곳이에요.”

민하는 아빠, 엄마에게서 들은 정보와 멍구에서 느낀 자기의 기분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특히 도시 멍구를 묘사할 때는 감정이 묻어나는 발표로 아이들 모두 홀린 듯 경청하게 만들어 꼭 그곳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민하의 발표가 끝나자 친구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 주었다.

샤를은 민하의 활약에 분했지만 의젓한 숙녀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눈치를 보며 박수를 쳐 주었다.

“민하가 발표를 아주 잘해 주었어요. 강철남이 새로운 마황제로 등극하고 나서 6년 동안 마계에는 많은 개혁이 있었답니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마계와 인간계를 잇는 구멍을 막는 일이었어요. 초대 마황제가 열었던 구멍을 강철남은 ‘인간과 마족의 연결’로 해석했어요. 하지만 대다수의 마족들이 인간계로 넘어가 말썽을 일으키자 강철남은 마족들이 인간들과 이어질 준비가 된다면 다시 구멍을 뚫겠다며 잠시 구멍을 닫아두었죠.”

선생님은 마계에 뚫린 구멍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반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상세히 듣는 건 처음이었기에 귀 기울여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기 5분 전, 선생님은 질문을 받았다.

그때 한 씩씩한 코뿔소 남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최근에 멋대로 마계와 인간계를 잇는 구멍을 뚫으려는 녀석들이 있다던데 정말인가요?”

아이답게 질문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고 직구로 던졌다.

하지만 선생님은 베테랑답게 웃으며 질문을 받았다.

“좋은 질문이에요. 마음속에 있는 의문은 입 밖으로 꺼내어 함께 토론해야지요. 그 소문에 관해서는 선생님도 들어본 적 있답니다. 이미 많은 마족이 알고 걱정하는 만큼 크레톤에서도 경비대를 동원해 수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답니다. 우리 친구들은 너무 걱정 말고 학교 공부를 열심히 들으면 됩니다.”

그렇게 역사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고 아이들 사이에 떠들썩한 화제는 단연 마계의 구멍 이야기였다.

“나는 아무래도 크레톤에도 그 구멍이 있을 것 같아!”

“바보. 경비대가 수사하고 있댔잖아. 그런데 있겠냐?”

“몰래 뚫어 놓은 구멍이 한 개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럼 우리 그 구멍을 찾으러 가볼까?”

“좋아. 승부다!”

이야기는 어느새 마계에 뚫린 구멍을 누가 먼저 찾는지 승부가 되었다.

그 무리 가운데에 있던 샤를이 콧대를 쳐들고 민하에게 다가왔다.

“강민하. 너도 참여하도록 해. 나랑 승부야.”

“응? 샤를이랑 같이 노는 거야? 좋아, 나도 끼워줘!”

“아니, 이건 노는 게 아니라구!”

샤를은 어째서인지 또 한 방 먹은 것 같아 씩씩댔다.

그렇게 아이들은 누가 먼저 마계에 뚫린 구멍을 찾는지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 * *

강철남은 멍구와 함께 구멍이 뚫려 있는 크레톤의 어느 골목에 다다랐다.

잡동사니 더미 한가운데에 검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하여간 꼭 말 지지리도 안 들어 처먹는 새끼들이 있다니까요. 대체 어떤 새끼가 뚫어 놓은 걸까.”

“키켈한테 물어서 크레톤에 활동하고 있는 범죄 조직들 싹 다 조져 보지 그래?”

“조직이 아니라 개인일 수도 있어. 괜히 입소문이 퍼져서 놈이 숨어버리면 곤란해.”

“그럼 어떡해?”

“일단 들어가 보자.”

“으으, 여전히 기분 나쁘군.”

강철남과 멍구는 훌쩍 구멍을 넘었다.

길고 긴 검은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역시 인간계로군.”

“킁킁.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야.”

땀과 인간 냄새, 그리고 화약 냄새가 났다.

파앗-

“손 들어라! 움직이면 쏜다!”

구멍을 빠져나온 강철남과 멍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헌터 연합.

그 수가 족히 100명은 넘어 보였다.

그리고 총을 겨누고 있는 꼬라지가 웃겼다.

몬스터에게 총이 안 먹힌다는 건 나물위키만 봐도 나오는 정보일 텐데 말이다.

“총 치워, 그 전에 플래시부터 끄고. 존X게 눈부시네.”

“간만에 슬개골 들썩이게 만드네, 이 새끼들.”

강철남이 투덜대고 멍구가 으르렁 대보지만 헌터들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불응 시 격발하겠다. 당장 머리 뒤에 손을 얹고 무릎을 꿇어라.”

조장으로 보이는 녀석의 입에서 강압적인 명령이 나오자 멍구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미친 새끼들은 뚝배기 골절이 딱이야!”

빠악-

멍구는 앞발을 휘둘러 헌터들의 투구를 작살내며 통통 튀었다.

강철남은 한 손으로 총을 부수고 헌터들의 싸다구를 찰싹 찰싹 때려주었다.

그중에 한 헌터가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들면서 한다는 말이,

“이 몬스터 새끼들! 내가 누군지 알아?!”

그 말에 얼탱이가 터져버릴 것 같은 강철남과 멍구였다.

“야.”

“왜, 왜! 뭐! 왜, 뭔데?!”

“너는 내가 누군지 모르냐?”

“네가 누군데?”

강철남은 세월이 6년이나 지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자기를 모르는 헌터가 있다니.

설명이 필요 없었다.

몸에 잊지 못할 충격을 각인시켜 주면 되는 것이니까.

“이거 잘 봐둬라. 앞으로 밥 먹을 때마다 내가 누군지 떠오르게 될 거야.”

강철남은 품 안에서 강철 숟가락을 꺼냈다.

그리고는,

[밥상머리 참교육 – 유치원생 훈육 버전]

힘을 한껏 뺀 스윙으로 건방진 헌터의 투구를 내리쳤다.

그 충격파에 땅이 터지고 일어난 충격파로 주변의 헌터들이 날아가 버렸다.

“철남이, 다음부터는 신생아 교육 버전도 만들어둬.”

날아온 파편에 맞아 빡친 멍구가 투덜댔다.

구멍 주변은 순식간에 싹 정리가 되었다.

“음… 작은 오해가 부른 대참사군.”

“우린 몰라. 쟤네들이 먼저 선빵 날렸으니까.”

“아니, 선빵은 멍구 네가 먼저 날렸는데.”

“…목격자를 없애자.”

그때였다.

멀리서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강철남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오호, 이번엔 힘 좀 제법 쓰는 녀석들이 오는구만.”

카앙!

날아오던 녀석은 날카로운 칼날로 강철남의 목을 내리쳤다.

목에 칼날이 부딪친 강철남은 여유가 넘쳤다.

“마사지용으로 딱이군.”

“강철남!!!”

“잘 지냈냐, 김성남?”

킁킁대는 멍구의 코에 익숙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그리운 헌터 연합의 동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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