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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108화 (108/175)

108화 전학생 강민하

민하의 첫 등교 날, 강철남네 집의 아침은 분주했다.

가이아는 민하에게 이 옷 저 옷을 대어 보며 어떤 옷이 예뻐 보일까 고심했다.

가방도 옷에 맞춰서 어떤 게 어울릴지 고르고 또 골랐다.

흔히 미운 나이 다섯 살이라 부르며 자기 고집이 세다고 알려진 5세지만, 민하는 엄마가 코디를 해주는 와중에도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우리 민하 참 착하네. 또래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떼를 쓴다던데.”

엄마의 칭찬에 민하는 엣헴, 하며 으스댔다.

민하는 이제 학교에 들어간다는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한편, 이제는 학생답게 어엿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젯밤 아빠에게 학교가 어떤 곳인지 설명을 들었다.

5살부터 10살까지 다니는 곳이 바로 기초 학교.

바로 민하가 전학을 갈 곳이다.

그리고 11살부터 15살까지 다니는 중급 학교가 있다고 했다.

16살 이후로는 성적과 진로 희망에 따라 고급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19살부터 선택받은 인재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왕립 학교.

왕립 학교에서는 국가를 넘어 마계 전체의 발전을 위한 수준 높은 연구를 하는 곳이라 들었다.

민하에게는 왕립 학교는커녕 고급 학교로 진학할지조차 아직은 모를 일이다.

지금 당장은 그저 학교에 가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기대될 뿐이었다.

“자, 다 됐다. 우리 딸, 너무 예뻐서 첫날부터 인기쟁이 되는 거 아닌가 몰라.”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는 말이 있지만 민하는 객관적으로 봐도 예뻤다.

가이아는 한껏 꾸며놓은 민하가 너무 예뻐 꼬옥 껴안아 주었다.

“엄마, 나 이제 학교~”

민하가 늦었다고 보채자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가이아가 문 앞까지 민하를 데려갔다.

“정말 안 데려다줘도 되겠어?”

“응. 이제 학생이니까!”

당찬 민하의 대답에 가이아는 가슴이 찡했다.

“우리 딸 다 컸네. 그럼 조심히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

엄마에게 힘차게 손을 흔든 민하는 텃밭에서 작물을 가꾸는 아빠에게도 인사를 했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오, 그래. 우리 민하 잘 다녀오렴! 학교 재밌게 다녀야 한다.”

“네!”

민하가 깡총깡총 뛰면서 손을 흔들었다.

“멍구도 집 잘 지키고 있어.”

“우리 집을 터는 미친놈이 있겠냐만은…”

“응? 뭐라고 했어?”

“아니야. 잘 다녀와.”

“응!”

아빠와 멍구에게도 힘차게 인사를 마치고 민하는 집을 나섰다.

멀어져가는 민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강철남은,

“멍구. 출발.”

“뭣?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진정이 안 돼. 민하가 혹시나 이상한 녀석한테 잡혀가지는 않는지 경호 좀 해줘.”

“야, 민하 쟤 이 도시 하나 날려버릴 힘도 있는 아이야.”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겁먹어서 도시라도 날려버리면 어떡해.”

그제야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솟는 멍구였다.

“다, 다녀올게.”

“멍구야.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개입은 하지 마.”

“알았어.”

“진짜, 진짜로. 최대한 민하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켜봐 줘.”

“알았다니까.”

강철남의 신신당부를 들으며 멍구는 꼬리를 곤두세우고 살금살금 민하의 뒤를 밟았다.

팔랑팔랑 나비처럼 등굣길을 걷는 민하.

민하는 학교로 곧장 가지 않고 여기저기 한눈을 팔았다.

워낙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 가게 파는 물건을 한참 구경하기도 했고 남의 집 꽃밭의 꽃을 구경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 곁을 지나가는 나비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하, 불안불안하다.”

멍구는 중간에 몇 번이고 개입하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눌렀다.

하지만 등굣길은 민하의 자립심을 키워주는 일, 엄연한 교육의 한 단계인 것이다.

‘지금 끼어들면 민하가 의젓한 학생으로 성장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야.’

멍구는 앞발을 꾹 누르며 참고 또 참았다.

그때 마침,

“어? 너는 못 보던 애네?”

“그러게. 새로 이사 왔냐?”

“이름이 뭐니? 나이는 몇 살이니?”

동네의 꼬질꼬질한 꼬마 애들이 민하의 앞을 가로막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뭐야, 저 꼬맹이들은.’

멍구는 드디어 자기가 나설 차례인가 싶어 나갈 타이밍을 쟀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난 강민하! 다섯 살이야.”

민하는 활짝 웃으며 자기 소개를 했다.

그 순수한 미소에 꼬맹이들은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뭔가 골려줄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눈처럼 하얀 민하의 미소를 보니 괴롭혀줄 생각 따윈 봄날의 눈녹듯 싹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크흐흠. 너 차림새를 보아하니 학교에 가는 모양이구나.”

“맞아! 오늘이 첫 등굣날이야!”

“뭐? 그럼 전학생인가?”

“맞아!”

“학교 같은 데를 왜 가냐?”

한 꼬맹이 녀석이 불손하게 질문을 던졌다.

‘저, 저, 저, 건방진.’

멍구는 당장에 달려가 꿀밤을 먹여주고 싶었지만 간신히 마음을 억눌러 참았다.

이 또한 민하의 인간관계 첫 걸음이 아닌가.

일단은 민하에게 맡겨보자.

“학교에 가면 재밌는 것도 배우고 친구들도 사귈 수 있댔어.”

“그래? 그럼 지금부터 우리랑 친구하고 재밌는 거 하러 안 갈래? 그러면 학교에 안 가고도 친구도 사귀고 재밌는 것도 할 수 있겠지?”

꼬맹이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멍구는 코웃음이 나왔다.

저딴 개논리에는 멍구도 안 넘어가겠다.

“응! 너 되게 똑똑하다!”

‘넘어가니!!!’

민하의 대답에 턱이 쭉 빠지는 멍구였다.

“이쪽이야. 따라와.”

동네 꼬맹이들은 민하를 골목길로 인도했다.

멍구도 살금살금 기척을 지우고 따라붙었다.

* * *

타다다닷-

꼬맹이들이 활기차게 달려 골목의 끄트머리에 도착하자 헥헥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중에서 민하만이 멀쩡하게 조곤조곤 숨을 쉴 뿐이었다.

“야, 너 되게 튼튼하다.”

“젠장. 일부러 골려주려고 있는 힘껏 달렸는데.”

“너 뭐 운동하니?”

민하는 가볍게 달렸을 뿐인데도 꼬맹이들은 민하의 체력에 발끝도 못 따라왔다.

아이들은 민하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우와, 이건 뭐야?”

그러거나 말거나 골목 끝에 쌓여 있는 거대한 잡동사니 더미에 관심을 보였다.

잡동사니 더미는 온갖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로 쌓여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골동품 같기도 하고 대충 보면 그저 쓰레기로 보일 따름이었다.

“신기하지? 여기는 우리의 보물산이야.”

“보오무울?!”

아이들에게 보물이란 말보다 가슴 뛰는 말이 또 있을까.

보물이란 말에 민하의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민하는 아이들과 함께 보물산 탐험에 나섰다.

그림이 그려진 액자도 있었고 낡은 옷가지에 멋진 모자까지 있었다.

어느새 민하는 엄마가 곱게 차려준 원피스가 꼬질꼬질해지도록 보물산 탐험에 열중했다.

그 모습을 보는 멍구의 속도 꼬질꼬질 시커멓게 그을렸다.

‘돌아가서 혼나겠구만.’

머리에는 이상한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마법 지팡이 같은 걸 들고서 민하는 보물산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던 중,

“이건 뭐야?”

민하가 보물산에서 묵직한 검정색 물건 하나를 꺼냈다.

멀리서 지켜보던 멍구는 경악했다.

그 물건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저건 권총이잖아? 마계에 어째서 권총이 있는 거지?’

아이들 중 덩치가 가장 큰 한 녀석이 그 권총을 받아들더니 목을 가다듬었다.

“잘 봐. 이게 어떤 물건인지.”

녀석은 권총을 들고 바닥에 나뒹구는 빈 깡통을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자,

타앙!!

총성과 함께 격발된 탄환이 깡통을 정확히 꿰뚫었다.

어린애치곤 정확한 사격 솜씨였다.

“엄청 시끄러워.”

“그렇지? 실수로 발등에 쏴봤는데 아프지도 않더라. 물건만 부술 수 있는 건가 봐.”

멍구는 확신했다.

마족들에게 통하지 않는 걸 보아하니 저건 분명히 인간이 만든 인간계의 총이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혹시 저 잡동사니 동산이 전부 인간계에서 쏟아진 물건들이 아닐까?

“앗, 얘들아. 나 이제 학교로 돌아가봐야 할 것 같아. 엄마 아빠한테 학교 잘 다녀오겠다고 했었거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민하가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처음에는 조금 장난쳐 줄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민하와 친해진 아이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재밌었는데.”

“좀만 더 놀다 가.”

그렇지만 민하는 엄마 아빠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아쉽지만 여기서 빠이빠이 하고 다음에 또 놀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해야만 했다.

“다음에 봐.”

“학교 잘 다녀 와.”

아이들은 손을 흔들어주었고 민하도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민하가 사라지자 흥이 팍 식어버린 아이들은 골목을 떠나 어디론가 또 놀거리를 찾아 헤맸다.

모두 사라지자 멍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잡동사니 더미 앞으로 걸어갔다.

“킁킁.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단 말이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멍구는 헥헥 대며 잡동사니 더미를 헤집기 시작했다.

“딱 걸렸어. 뭔가 있어. 뭔가 있다구.”

턱-

그때 멍구의 앞발에 뭔가 딱딱한 게 걸렸다.

“옳거니. 잡았다!”

멍구가 힘을 주어 그것을 끌어당기니 위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 있던 잡동사니들이 일제히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오메, 씨부럴. 하마터면 개떡이 될 뻔 했구만.”

바닥에 나뒹구는 잡동사니들은 엄청난 뿌연 먼지를 일으켰다.

켈록켈록 대며 멍구는 먼지를 불어 날렸고 순식간에 눈앞이 맑아졌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하, 이 새끼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멍구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6년 만에 보는 마계와 인간계를 잇는 구멍이었다.

누군가 크레톤의 골목에 통로를 열어둔 것이다.

뭔가 새로운 사건의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 * *

만약 전학생이 왔는데 얼굴은 예쁘지만 꼬질꼬질한 원피스를 입고 희한한 모자를 쓴 채 이상한 지팡이까지 들고 있다면 어떨까?

지금 민하의 모습이 딱 그랬다.

민하의 첫인상에 담임 선생님은 당황스러웠지만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교육자의 태도가 아니겠나.

“안녕? 네가 민하구나.”

“안녕하세요!”

조금 독특한 아이인가 싶었지만 눈부시도록 환한 미소를 보니 금방 순수한 아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공부하게 될 민하예요. 민하는 산속에서 자라 도시 생활은 잘 모르는 게 많을 거예요. 친구들이 잘 도와주도록 해요. 그럼 민하야, 자기 소개 해볼까?”

반 친구들의 시선을 받으며 민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강민하라고 해. 잘 부탁해!”

몇몇 아이들은 귀여운 민하의 미소에 홀려 헤벌쭉거렸고 또 몇 아이들은 이방인인 민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아이들은 민하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민하 넌 어디서 왔니?”

“나는 도시 멍구에 있는 산속에서 살다 왔어.”

“왜 산에서 살아?”

“부모님이 자연을 좋아하시거든.”

“불편하지 않았니?”

“오히려 좋았어. 그래, 다음에 다 같이 산에 놀러 가자!”

“으응…”

아이들은 민하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자기네들이 민하에게 이끌려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참 묘한 아이였다.

“야, 강민하!”

그때 한 아이가 민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일제히 그곳을 돌아보니 민하가 전학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에서 가장 예쁜 토끼 수인 샤를이 눈을 흘기며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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