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교육의 도시 크레톤으로
106화 – 교육의 도시 크레톤으로
강철남은 멍구로부터 민하에의 잠재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 교육도 좋지만, 보다 전문가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먼저 자녀 교육에 관한 문제는 부부가 함께 상의해야 하는 법.
강철남은 가이아에게 민하의 교육을 위한 이사 이야기를 꺼냈다.
“이사?”
“응. 인간계 고사성어 중에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어.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에게 바른 교육 환경을 찾아주기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지. 아이의 교육에 있어 환경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의미야. 그러니 민하가 세상에 대해 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으로 이사를 가는 게 어떨까?”
확실히 교육에 있어서 환경은 중요한 법.
집 근처에 산이 있으면 아이들은 산을 타고, 집 근처에 바다가 있으면 아이들은 수영을 한다.
만약 집 근처에 공부와 관련된 환경이 갖추어져 있으면 아이들은 공부를 자연스레 가까이 할 것이다.
그 말에는 가이아도 일리 있다고 여겨 동의했다.
“그렇다면 철남,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나.”
그건 당연히,
“크레톤이 좋겠어.”
지난 6년간 크레톤만큼 많이 변한 곳이 또 있을까.
원래는 강철의 크레톤이라 불리며 전쟁 국가로 유명했던 크레톤은 강철남의 도시 개혁으로 인해 강철 외벽을 뜯어내고 거친 이미지를 탈바꿈했다.
마황제가 된 강철남이 크레톤에 추진했던 개혁은 바로 교육 도시 건립 계획.
오직 싸우는 것 만이 답으로 알고 있는 마족들에게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교양을 가르쳐 사회성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 교육 개혁의 목적이었다.
물론 학습 프로그램도 신선하게 짰다.
기본적으로 날뛰기 좋아하는 마족들의 성미에 맞게 운동과 스포츠와 같이 룰에 입각한 올바른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고,
퀴즈와 창의력 문제 해결과 같이 마물들 스스로가 직접 고심하고 성과를 얻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오락적 성격이 강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강철남의 교육 개혁은 크게 성공하여 카르텔과 가이아에도 퍼져 마계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설립되는 파급력을 낳았다.
제대로 된 자녀 교육에 욕심이 있는 마족들은 교육의 본고장이 된 크레톤으로 유학을 오기도 했다.
그들은 자녀들, 혹은 본인의 교육을 위해 크레톤을 찾아와 많은 가르침을 구했다.
“크레톤이라면 안심이다. 철남이 그토록 애써 가꾼 곳이지 않느냐.”
가이아는 흐뭇하게 웃으며 강철남의 뺨을 어루만졌다.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이 정성을 기울여 만든 교육 도시다.
더할 나위가 있겠나.
“그런데 갑작스럽구나. 언젠가 민하의 교육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는가?”
“실은 멍구에게서 들었는데 민하에겐 남다른 잠재 능력이 있는 모양이야.”
“어떤 잠재 능력 말인가?”
“마력, 도력, 신력을 가지고 있어. 게다가 흡성대법과 같은 힘을 빨아들이는 능력과 지맥의 에너지를 다스리는 초월적인 힘까지 지닌 모양이야.”
강철남이 멍구에게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하자 가이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곤히 잠든 민하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럴 수가 있나. 흡성대법은 신화 속에나 나오는 전설의 비기다. 그걸 우리 5살 난 민하가 다룰 수 있다니. 게다가 지맥의 에너지를 다스린다는 건 신의 권능과도 같다. 어떻게 우리 민하가 그럴 수가 있겠나.”
“멍구가 괴팍한 개이긴 해도 잘 못 보지는 않았을 거야.”
엘프인 가이아조차 깜짝 놀라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민하를 위해 움직여야 했다.
“우리 민하가 그런 힘을 가졌다면 힘을 조절하고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겠구나.”
“맞아. 그래서 꺼낸 얘기야.”
강철남으로부터 민하의 잠재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가이아는 조금 걱정되는 마음도 들었다.
힘을 가진자는 그 힘에 사로잡히거나 그 힘 때문에 기구한 운명에 휩싸이기도 한다.
“으흠.”
“괜찮을 거야.”
“고맙다.”
가이아의 불안한 마음을 읽었는지 강철남은 그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강철남의 손길을 느끼자 딸을 올바른 길로 이끌자는 책임감을 굳게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강철남과 가이아, 멍구와 민하는 교육 도시 크레톤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자기의 어마무시한 잠재 능력을 눈치채지 못한 민하는 세상 모르게 순진한 얼굴로 오두막집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 * *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산 새들이 지저귀며 강철남 가족의 아침잠을 깨웠다.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민하야, 잘 잤니.”
가이아는 싱긋 웃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민하, 일어났니.”
“아빠, 굿모닝!”
강철남은 산에서 열매를 따 오는 길이었다.
부엌에서 텃밭에서 딴 채소를 손질하고 있는 가이아에게 다녀왔다는 인사로 뽀뽀를 해주었다.
멍구는 숲에서 꿩 한 마리를 물고 돌아왔다.
“멍구야, 좋은 아침!”
“민하도 좋은 아침.”
상쾌한 아침이었다.
가족이 식탁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자연스레 이사 이야기로 흘러갔다.
“오늘 우리는 크레톤으로 이사 갈 거야.”
“아니, 철남이. 너무 갑작스러운데?”
“갑작스럽긴 하지. 하지만 민하에겐 빠를수록 좋을 거야.”
“왜여?”
민하가 양 볼에 방울토마토를 가득 물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민하에겐 엄청난 힘이 있다는 거 알고 있니? 그 힘을 옳게 다루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공부가 필요하단다.”
“겅부?”
“응, 그래. 민하 또래의 친구들과 재밌게 공부를 하게 될 거란다.”
“그럼,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는 거야?”
“물론이지.”
“우와, 나 빨리 학교 갈래!”
예상보다 민하는 훨씬 기뻐해 주었다.
강철남과 가이아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혹시나 민하가 싫다고 떼를 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좋아하니 안심했다.
“철남이, 그럼 출발은 언제인데?”
“아침 먹고 바로 갈 거야.”
“헉!”
“왜, 멍구야. 정리할 게 남아 있니?”
“잠깐, 나갔다 오지.”
밥 먹다 말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멍구.
대체 뭔 일인가 싶다.
* * *
이곳은 산속의 조용한 호숫가.
웬 공주님같이 우아한 들개 한 마리가 아름답게 서 있었다.
털은 아침 이슬을 묻혀 손질했는지 반질반질했으며 평소 산을 날렵히 뛰어다녔는지 척추의 곡선이 매끄럽게 유선형을 그리고 있었다.
자기 모습이 예쁜 줄은 아는지 한껏 폼을 잡고 있는 들개.
그 들개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여어.”
“앗, 멍구씨!”
멍구는 시크하게 호숫가를 향해 털래털래 걸어왔다.
들개는 멍구를 보자마자 아까와 같은 우아한 자태는 버리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달려들었다.
“오늘도 멋지시네요.”
“너도 아름답군.”
“아아.”
멍구의 느끼한 멘트에 감동해버리는 들개.
하지만 그 감동도 여기까지다.
멍구가 오늘 들개를 찾아온 이유는,
“우리 여기까지 하지.”
“네? 그게 무슨.”
“나는 머나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니.”
급작스런 이별 통보에 원래 하얬던 들개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갑자기 그런 말씀이 어디 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 행복했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됐어. 내겐 가족이 가장 중요하거든.”
멍구는 애걸복걸하는 들개에게 냉정한 말로 선을 그었다.
들개는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인간이 그렇게 좋은 가요? 우리 동물들과 함께 살 수는 없나요?”
“인간이 좋아서도 동물이 싫어서도 아니야. 어릴 때부터 맺어진 인연이라는 놈 때문이다.”
“멍구님은 개잖아요. 그럼 인연이 아니라 개년이잖아요.”
“…발음 좀 조심하고.”
급기야 들개는 눈물을 흘리며 멍구의 뒷다리를 붙들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엉엉엉. 이럴 순 없어요. 이제 와서 날 버리다니.”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우리 관계는 영원히 갈 수 없을 거라고.”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떠나버리다니. 나는 인정 못해요.”
“인정 못하면 어떡할 건데?”
“다 부숴버리겠어!”
들개가 벌떡 일어나 오두막을 향해 돌진하려 했다.
“이거 미친 개 아냐!”
멍구가 앞발로 들개의 정수리에 꿀밤을 박아 넣었다.
깨갱, 하며 머리를 감싸 쥐는 들개에게 멍구는 너무 심했나 싶었는지 때린 곳을 쓰다듬어 줬다.
“미안하다. 하지만 내겐 생과 사를 함께한 가족이 있어. 나는 그들과 앞으로도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흑흑.”
“잘 지내라.”
멍구는 뒤를 돌아 가족이 기다리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어느새 이삿짐은 마차에 실려 있었고 두 마리의 말들이 마차를 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이아는 활짝 꽃이 핀 연화초를 안고 있었다.
“철남이, 공간 이동으로 슝, 하고 이동하면 되잖아.”
“앞으로 민하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쉬운 길로 가지는 않을 거야.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세상을 두 눈으로 직접 둘러보며 공부하는 것이지.”
뭐든 직접 겪어보고 남들처럼 똑같이 생활하는 것.
그것이 강철남이 중요하게 여기는 첫 번째 교육 원칙이었다.
“우와, 말이다. 안녕!”
민하는 신기한 듯 말의 튼튼한 두 다리를 만져봤다.
온순한 말은 머리를 쓰다듬어도 좋다는 듯 내밀었고 민하는 귀엽다며 손길로 쓸어 주었다.
“멍구가 마차를 끌면 안 돼?”
“개는 마차를 끄는 용도가 아니야.”
“그럼 개는 무슨 용도로 쓰이는데?”
“음… 귀여움을 담당하지.”
“그럼 귀여운 척 해봐.
민하의 순진한 요구에 멍구가 당황했다.
“끼, 끼이잉…”
뒷다리로 벌떡 서서 앞다리를 비비는 어색한 애교에 강철남과 가이아가 푸흡, 하고 웃는다.
“멍구, 넌 결국 반려동물로서 쓸모가 없구나.”
“닥쳐라, 나랑 이만큼 같이 살아봤으면 이제 내가 진짜 동물인지도 헷갈리지 않냐?”
강철남과 멍구가 여느때처럼 티격태격 대자 가이아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갈등은 사그라들었다.
가정의 평화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그럼 출발하자.”
“레쯔꼬!”
민하의 출발 신호에 강철남이 말을 몰아 마차를 굴리게 했다.
바퀴는 경쾌하게 구르며 크레톤을 향해 힘차게 전진했다.
* * *
강철남이 바란 것은 민하가 세상을 직접 보며 호기심을 갖는 것이었다.
기쁘게도 민하는 마차를 타고 지나치며 보이는 것들에 관심을 가졌고 강철남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아빠, 이건 뭐야?”
“응, 저건 까마귀라는 새야. 넓은 들판을 날아다니며 동물의 시체를 먹는 녀석들이지.”
“그럼 저건?”
“저건 하이에나라고 들판을 어슬렁거리며 사체를 뜯어 먹는 녀석들이지.”
“저거는?”
“응, 그건 구더기라고 시체에…”
뭔가 이상하다.
교육적으로 부적절한 것들이 자꾸만 나오고 있었다.
“철남. 기운이 뭔가 이상하구나.”
“그래, 철남이. 신선한 고기가 한 마리도 없잖아.”
“그게 중요하나?”
가이아와 멍구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러자 그때,
쿠구구구구궁!!!
땅바닥으로부터 기분 나쁜 진동이 울리더니 뭔가가 불쑥 튀어나와 마차 앞을 가로막았다.
갑자기 툭 튀어 나온 녀석의 정체는 거대한 지네.
걸쭉한 저음으로 껄떡대는데,
“음하하하하!! 간만에 신선한 엘프 고기를 먹겠구나. 게다가 인간도 있고. 아니? 개도 있어? 하하하. 인간, 엘프, 개라니. 이건 마치 마황제 부부와 그 반려견 같은 조합이로구나. 아주 독특해. 누가 보면 진짜 마황제 가족인 줄 알겠구나.”
강철남은 어이가 없어서 녀석을 쳐다봤다.
“야.”
“으음?”
“3초 줄 테니 곰곰이 다시 한번 생각해봐.”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거대 지네는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을 해봤다.
“…어?”
거대 지네는 노란 오줌을 지리고 턱주가리에서 폭포수 같은 침을 질질 흘렸다.
“마, 마, 마, 마,”
“알겠으면 차 빼, 이 새꺄! 우리 바빠!”
길을 터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거대 지네는 천 개의 다리가 모두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결국 강철남은 마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