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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강 자연인이다-105화 (105/175)

105화 어버이날에는 고려 인삼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가정의 달 5월이 되었다.

마황제가 된 후 강철남은 마계에도 공휴일을 도입하였고 그중 5월을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자정의 달로 지정하였다.

그 후 마계에서는 5월만 되면 아이들을 위한 축제와 부모들을 위한 행사가 열려 들뜬 분위기 속에 한 달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고민도 따랐다.

어린이날에 아이들을 위해 어떤 이벤트를 열어줄까.

“으음, 어린이날엔 어떻게 하지?”

“이참에 인간계를 구경시켜주는 건 어떠한가?”

강철남과 가이아는 민하를 위한 어린이날 이벤트를 고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날 다음 타자가 바로 어버이날이 아니던가.

엄마 아빠가 딸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동안, 민하에게도 엄마 아빠를 위해 꾸미고 있는 남다른 계획이 있었다.

바로 어버이날을 맞이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고민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동료란 역시,

“멍구야.”

민하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멍구를 찾았다.

한가로이 봄볕을 쬐며 낮잠을 즐기고 있는 멍구는 잠결에 들리는 목소리에 불안한 기운을 느꼈다.

‘도, 도망 가야해.’

눈치를 살피고 조심스레 빠져나가려던 그때,

“잡았다!”

덥석-

“깨갱!”

민하는 도망가려는 멍구의 폭신한 꼬리를 덥석 잡았다.

멍구는 평화로운 하루는 물 건너간 것 같구나, 체념했다.

“민하야, 왜 그러니?”

“엄마 아빠한테 선물해주고 싶어.”

“그래? 민하는 참 착하구나. 어떤 선물 해주게?”

“고려 인삼!!”

“…응?”

세상에 대체 어떤 5살 여자아이가 부모님께 어버이날 선물로 고려 인삼을 줄 생각을 다 할까.

멍구는 살짝 구린 표정으로 강철남의 교육 방식에 의심을 표했다.

“대체 가정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철남인. 아무튼 민하야, 고려 인삼이란 말은 어디서 주워 들었니?”

“아빠가 밭일하면서 부르는 콧노래로 그랬어! 고려 인삼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아픈 데도 없는 녀석이 하여간 건강식품 욕심은 되게 많아요.”

“멍구야, 고려 인삼은 어떻게 구해?”

“음, 한국에서 자라는 토종 인삼을 고려 인삼이라고 하는데 한국 땅에 응축되어있는 지맥의 에너지로 인삼을 키워서 수확한 것이 바로 고려 인삼이지.”

“우움…”

멍구가 고려 인삼을 얻는 법을 상세하게 알려줬지만 아무래도 민하에게는 아직 어려운 얘기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러 가는 수밖에.

“민하야, 그럼 고려 인삼을 재배하러 가볼까?”

“우와! 갈래, 갈래!”

자연스럽게 멍구의 등에 올라탄 민하는 꺄르르 댔다.

어째 또 육아를 떠맡게 된 것 같지만 민하가 즐거워 보이니 아무렴 어떤가.

[공간 이동]

펑!

멍구는 도술을 부려 인간계로 향했다.

인삼을 재배하기 좋은 지맥의 에너지가 풍부한 땅.

설악산이 딱이다.

* * *

설악산의 봄 풍경은 절경이었다.

깎아지른 산맥에 돋아난 푸릇푸릇한 새순들이 자연의 위대함을 뽐내고 있었다.

산 중턱에 있던 황토집은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었고 산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곳에도 가족들이 집을 짓고 살아가는 걸 보니 멍구는 흐뭇했다.

“멍구야, 여긴 어디야?”

“여긴 설악산이라는 곳이야. 예전에 아빠랑 여기서 살았어.”

“설악산!”

어감이 참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민하는 설악산, 설악산 노래를 불렀다.

멍구는 인산밭으로 쓸 만한 넓은 공간을 찾아다녔다.

중턱에 제법 너른 공터가 있는데 거기가 좋을 것 같다.

“민하야, 여기서 인삼을 틔워 볼까?”

“응!”

신이 난 민하가 폴짝폴짝 뛰어 공터를 발로 밟아보는데 감촉이 영 딱딱했다.

비록 공터가 넓고 지맥의 에너지가 풍부하다고 해도 설악산은 돌산이었다.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땅은 아니었다.

“먼저 에너지로 흙을 끌어 올려야겠군.”

멍구는 정신을 집중해 마력, 도력, 신력을 끌어냈다.

땅 밑에 깊숙이 잠들어 있는 지맥의 에너지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스스슥-

그러자 갈라진 땅 사이로 흙이 올라오면서 중턱은 금세 푹신한 흙바닥으로 변하였다.

“흙이 생겼어! 멍구 짱이야!!”

민하가 신기한 듯 흙을 손으로 만지며 하늘에 흩날려봤다.

흙은 양분이 듬뿍 들어가 비료도 필요 없을 정도로 촉촉했다.

“엣헴. 뭐 이 정도쯤이야.”

지금은 육아 돌보미를 하고 있지만 명색이 마왕, 신령의 신수, 그리고 영원의 땅에서 얻은 신력까지 갖고 있는 멍구였다.

지맥의 에너지를 끌어 올리는 것쯤이야 껌이지.

“이젠 밭을 갈고 종자를 뿌리기만 하면 돼.”

멍구는 챙겨 온 인삼 종자를 심으려 했다.

그런데 종자를 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했다.

이것도 스킬로 금방…

철그덕-

“멍구야!”

어쩐지 등 뒤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왜 쇳덩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거지?

한껏 불안한 마음을 억누른 채 멍구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민하야? 그건 어디서 났니?”

“저기 있는 집에서 가져왔어!”

황토집 창고에서 민하가 가져온 것은 바로 쟁기였다.

“그, 그건 왜?”

“나 이거 본 적 있어! 소가 이걸 끌면 밭이 고르게 갈려!”

“응, 그렇지. 하지만 여긴 소가 없는걸? 무거우니 내려놓고 이리로 오렴.”

이미 불안함을 감지한 멍구가 민하를 살살 달랬다.

마치 쟁기가 아니라 폭탄을 들고 있기라도 한 듯 내려놓으라고 어르고 달랬다.

“응, 소는 없어! 하지만 소보다 튼튼하고 멋있는 멍구가 있잖아!”

오우 쉣!

멍구는 심장이 위아래로 왔다 갔다 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민하야, 그건…”

살짝 아련한 눈으로 멍구가 민하를 쳐다봤다.

그러나 민하는 필살기를 시전 하는데,

“안 돼?”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이컨택을 해 오는 민하.

이런 눈빛을 보고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겠나.

“쟁기는 이렇게 묶는 거야.”

젠장,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차마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멍구는 몸에 쟁기를 멨고 민하는 신나서 멍구를 이끌었다.

민하가 웃으니 그걸로 됐다며 게거품을 물고 쟁기를 끌었다.

“이랴, 이랴! 우리 멍구 잘 한다!”

쟁기를 메고 질질 끌며 밭을 갈고 있는 멍구.

순간 자기 모습이 상상이 되어 현타가 왔다.

‘철남이, 돌아가면 진짜 한 대 때려 줄 테다.’

강철남을 떠올리자 문득, 멍구는 이 드넓은 밭을 혼자 갈고 있는 것이 몹시 귀찮아졌다.

‘헥헥, 이건 탈주각이다.’

이런 막노동을 순순히 하고 있을 멍구가 아니지.

“앗, 민하야! 저기 나비가 날아간다!”

“뭐, 정말? 어디, 어디?”

이때다.

멍구는 쟁기를 벗어던지고 바로 땅을 박차고 총알 같이 튀어 나갔다.

제 아무리 민하라도 진심으로 달리는 멍구를 잡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런데,

텁석-

“응?”

“멍구야,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화장실 급해?”

얼라리요? 이게 무슨 일이래?

어느새 자기 등짝이 민하의 손바닥에 잡혀 있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마력이 빠져나가 있었다.

이건 설마?

흡성대법??

상대방의 마력을 끌어당겨 흡수하는 기술.

말도 안 된다.

전설이나 신화 속에나 나오는 환상의 기술이다.

심지어 강철남도 구사하지 못하는 흡성대법을 어떻게 5살짜리 민하가 쓰겠는가.

“그럴 리가 없겠지?”

멍한 눈으로 다시 주섬주섬 쟁기를 챙겨 끄는 멍구는 머리가 복잡했다.

순식간에 자기 몸이 끌려온 것과 마력이 쏘옥 빨려 들어가는 느낌.

본능적으로 흡성대법이라고 생각되었던 감각.

“스읍, 이거 참 묘하군.”

민하의 잠재력에 살짝 의심을 하다보니 작업이 모두 끝나버렸다.

멍구는 우여곡절 끝에 다 갈아엎은 밭에 종자를 뿌렸다.

“무럭무럭 자라렴!”

민하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멍구와 함께 종자를 팍팍 뿌렸다.

민하 또래의 5살 아이들은 보통 작은 화분에 강낭콩이나 키울 텐데 고려 인삼이라니.

자연인의 딸 다운 대단한 스케일에 멍구는 헛웃음이 나왔다.

“종자도 다 뿌렸으니 이제 물을 뿌려야겠지.”

멍구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자 비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와, 검은 구름이 엄청 많아!”

민하는 입을 벌린 채 박수를 짝짝 치며 비구름을 환영하듯 양팔을 벌렸다.

이윽고 비구름에서 비가 촤르르, 쏟아지자 메말랐던 인삼밭이 촉촉이 젖어 들어갔다.

“비다! 진짜 비가 오고 있어! 멍구는 못 하는 게 없구나?”

“이 정도쯤이야.”

콧대가 높아진 멍구는 비와 함께 육아의 피로도 싹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칭찬 한 번에 이렇게 마음이 풀어지다니.

아무래도 민하가 자기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구름이 지나가고 다시 햇살이 내리쬐었다.

봄볕은 따사로이 젖은 흙밭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멍구야, 이제 다 된 거야?”

“응. 이제 남은 건 자연에게 맡기는 일 뿐이야.”

“인삼은 언제쯤 자라?”

“한 5년은 먹어야 쓸 만한 삼이 나올 거야.”

멍구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전달했다.

하지만 때론 진실이란 아이들에게 너무 잔인한 법.

일주일 뒤에 찾아올 어버이날을 위해 준비했건만 5년을 기다리라니!

“안 돼, 멍구야! 좀 더 빨리 자라게 할 순 없니?”

“으음. 아무리 나라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어서 말이지.”

“히잉.”

축 처진 민하의 어깨를 보니 멍구의 마음도 아팠다.

하지만 자연을 마음대로 다룬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의 권능인 것이다.

멍구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땅아, 땅아. 이번 한 번만 빨리 인삼을 가져다주면 안 되겠니.”

민하는 인삼밭에 쭈그려 앉아 흙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멍구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신비로운 광채가 민하의 몸에서 흘러나와 땅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뭐, 뭐지 이건?!”

처음보는 힘의 기운에 멍구가 깜짝 놀랐다.

힘의 근원은 신력에 가까웠다.

그리고 엄마인 가이아가 땅의 힘을 이용할 때의 마력도 느껴졌다.

동시에 아빠인 강철남의 신묘한 도력도 느껴졌다.

이 어마어마한 힘들이 한데 어우러져 믿기 어려운 힘을 내고 있는 것이다.

“민하야, 너 괜찮니?”

빛에 둘러싸인 민하는 멍구를 향해 태연히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마치 강물처럼 밭 위를 흐르던 빛은 그대로 땅에 스며들었다.

그리고는,

우드득-

뿌드득-

파아앗!!!

갑자기 땅 위로 인삼들이 미친 듯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건 10년, 아니 100년산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인삼들이었다.

“우왓! 이게 무슨 일이야!!”

멍구는 입을 쩍 벌리고 펄쩍 뛰었다.

세상에, 이건 방금 민하가 일으킨 기적이란 말인가.

마황제이자 설악 신령인 강철남과,

대지의 힘을 다스리는 마왕 가이아의 딸.

민하에게는 아직 부모도 멍구도 모르는 미지의 재능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멍구야! 이거 봐! 인삼이 이렇게나 많이 자랐어!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지?”

기뻐하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민하를 보니 아무래도 엄청난 힘에 대한 자각은 없는 모양이다.

“흐음. 이건.”

땅을 살펴본 멍구는 지맥의 에너지가 고갈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민하가 부렸던 힘은 지맥의 에너지를 쥐어 짜내어 성장을 가속 시킨 것이었다.

“민하야, 이 힘은 가급적 쓰면 안 되겠어. 지맥의 힘을 무리하게 짜낸 거라서 산에 무리가 갈 거야.”

“힘? 무슨 힘?”

“…아니야, 아무것도.”

아직 자기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도 모르는 민하.

이 건에 대해서는 강철남과 가이아에게 말을 해야겠다.

* * *

100년산 고려 인삼을 한 가득 품에 안고 돌아온 민하는 엄마 아빠에게 곧장 달려갔다.

“엄마! 아빠! 있지, 있지! 멍구랑 설악산에 가서 고려 인삼을 잔뜩 캐왔어! 어버이날은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기다릴 수가 없어서 미리 줄게!”

갑자기 달려들어 폭풍처럼 행복을 끼얹는 민하.

강철남과 가이아는 그런 민하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꼬옥 안아주었다.

“우리 민하, 엄마 아빠를 위해서 캐 온 거야? 너무 기뻐.”

“아빠가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너무 착하다, 우리 딸.”

셋이 감동적인 포옹을 하는 동안 지쳐버린 멍구는 바닥에 드러누워 코를 골며 잠이 들어버렸다.

민하가 얘기해주는 멍구의 영웅담을 들으며 강철남은 잠든 멍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 * *

“흡성대법과 지맥의 다루는 힘.”

“그렇다니까.”

멍구의 얘기를 들은 강철남은 자기 딸 민하에게 잠재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식의 재능을 키워주는 것은 부모의 역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힘이 잘못된 방향으로 남용되어 폭주하는 사태를 방지하는 것이다.

“좋아, 결정했어.”

“뭐가?”

“이사를 간다. 민하의 교육을 위해.”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지.”

“아…”

그렇다.

애엄마 가이아의 허락도 없이 이 말썽꾸러기 두 남자에게 무슨 결정권이 있겠나.

곤히 잠든 가이아가 꿀잠을 자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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