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최강 자연인이다-97화 (97/175)

97화 엘프의 땅으로 갔는데 뭔가 개판이다

대자연 휴양림 ‘도시 멍구’의 설립 계획이 추진 되었다.

모든 일에는 적소에 맞는 전문가들이 필요한 법.

개혁을 위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 모았다.

먼저, 토지를 다져줄 땅굴 작업반의 철갑 두더지.

북한산과 연결 되어있는 구멍 근처에 상주하던 그 철갑 두더지다.

지반 작업에 두더지 만한 일꾼이 또 있겠나.

“마황제님. 이렇게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철갑 두더지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왠지 거북해진 강철남.

“뭘 또 그렇게 딱딱하게 굴고 그래. 전처럼 편하게 굴어.”

“그래도 어찌 감히.”

옥신각신 실랑이 끝에 결국 주변의 눈과 귀도 있고 하니 마황제라 부르기를 허했다.

“이것 참…”

남들의 떠받듦을 받는 것, 강철남에겐 가장 힘든 적응기였다.

다음으로는 초목들의 배치와 디자인을 꾸며줄 조경팀이 필요했다.

“마황제님.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영광입니다.”

카르텔에서 데려온 악어, 듀크의 아버지다.

악어는 카르텔에서 도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출장 겸 인간계를 드나들었을 때부터 초목을 꼭 마계에 접목시켜 보고 싶다는 꿈을 품어왔다.

그야말로 전문성과 관심사가 절묘하게 들어맞은, 이른바 덕업일치에 이른 적합한 전문가다.

“네 꿈을 마음껏 펼쳐 보라구.”

강철남은 악어의 창의성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작업자들의 식사를 담당할 함바팀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자들을 불렀으니,

“아이고, 마황제님!”

“호들갑 떨지 좀 마.”

청수 폭포 시장의 살쾡이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강철남을 대했다.

같이 노상에서 술 취해 노가리나 까던 사이에 갑자기 깍듯하게 대할 건 또 뭐람.

“평소처럼 편하게 좀 지내자.”

“어찌 그러겠습니까요.”

“이 새끼! 허리 펴!”

“옙!”

살쾡이에겐 소하 선생으로부터 술을 조달하고 안주를 만드는 일을 맡겼다.

그리고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 줄 티타임도 필수.

나르딘의 쥐 할머니를 모셨다.

“출세 했구만, 그려.”

“감사합니다.”

유독 가장 편안히 강철남을 대하는 태도에 마음이 푹 놓였다.

쥐 할머니에게는 맛있는 차를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 이외에 필요한 용력과 인부들은 카르텔의 헬창들을 고용했다.

마황제의 첫 번째 개혁에 동원된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힘을 쓸 수 있는 일이라는 말에 기꺼운 마음으로 날아왔다.

“마황제님.”

“왜?”

“업무를 삼분할로 해도 되나요?”

“뭐?”

“월요일은 등, 화요일은 하체, 수요일은 상체를 조질 수 있는 업무로…”

“자꾸 헛소리하면 내근직으로 돌린다?”

“히익! 죄송합니다!”

골치 아프면서도 은근 다루기 쉬운 헬창들이었다.

그래도 항상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니 언젠가 인간계의 운동복을 선물해주어야겠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구상해보자.”

“철남이, 내가 생각해 본 게 있네.”

“오, 멍구. 웬일로 적극적이야?”

“그래도 명색이 내 이름을 딴 도시인데 앞발 정도는 거들어야 하지 않겠나.”

멍구가 크흠, 목을 가다듬고 커다란 종이를 꺼냈다.

앞발에 잉크를 묻혀 그 종이 위에 무언가를 슥슥 그리는데,

“이게 뭐야?”

멍구가 그린 건 거대한 개 모양의 동상.

그리고 개를 위한 장애물 코스, 개를 위한 노즈워크 시설, 개를 위한 개껌밭, 개를 위한 산책로, 개를 위한 슬개골 보호용 쿠션 계단.

온통 개를 위한 시설들 뿐이었다.

“완전 개판이잖아.”

“그 말대로야. 이곳을 댕댕이 테마파크로 만드는 거지.”

[점화]

강철남은 멍구가 그린 그림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타오르는 종이를 보며 멍구의 꿈도 함께 타올랐다.

“아악! 내 꿈의 댕댕 테마파크가!”

저걸 진짜 마왕으로 앉혀야 하나 심각하게 다시 고민을 해봐야겠다.

“저, 마왕님. 아뢰옵게 황공하오나…”

악어가 조심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냥 말해. 귀찮으니까 앞으로 겉치레식 이상한 미사여구는 다 빼도록.”

“네, 네! 조경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목초지는 상당히 대규모인데 비해 지금 확보된 나무와 풀의 샘플이 부족합니다. 좀 더 많은 나무 샘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악어가 맞는 말을 했다.

지금으로선 한지영이 마련해 준 묘목과 씨앗의 샘플이 전부였다.

이것만으로는 자연의 다양함을 모두 담을 수 없었다.

“좋다. 내가 인간계 곳곳에서 나무와 씨앗을 가져오도록 하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봐.”

“저도 정확히 어딘지는 알지 못하나 엘프들이 모여 사는 엘프의 숲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마계의 유일한 숲으로서 인간계에서는 구할 수 없는 신비로운 나무와 식물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엘프의 숲.

그러고 보니 전에 구들을 훔쳐 갔던 세레나가 그곳에서 왔다고 했다.

인간을 사랑하고 마족을 싫어하는 그들은 마계의 외진 곳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들었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아름다운 숲.

온갖 예쁜 수식어가 붙는 전설의 숲이라면 한 번 찾아가 보는 게 마땅했다.

“꿀정보 고맙네.”

“도움이 되셨다니 기쁩니다.”

회의를 마친 강철남은 곧바로 도시 가이아의 마왕성으로 [공간 이동]을 했다.

갑작스런 마황제의 등장에 대신들이 화들짝 놀라 무릎을 꿇는다.

“마, 마, 마황제님!!”

“왜 이렇게들 오버를 하는 거야? 그나저나 가이아를 만나러 왔는데.”

“가이아님은 지금 농경지를 시찰하고 계십니다.”

“농경지 시찰? 무슨 일이 있나?”

“최근 가이아님께서는 수확량을 늘릴 계획을 고민하고 계십니다.”

수확량을 늘리겠다라.

강철남은 이야기를 들어보려 가이아가 있는 농경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농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이아.”

“철남!”

줄곧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가이아가 강철남을 보자 꽃이 핀 듯 환한 미소로 반겼다.

“날 만나러 왔는가?”

“그래.”

“기쁘구나.”

소녀처럼 웃는 가이아의 얼굴에서 스트레스가 봄날에 눈 녹듯 사라졌다.

“요즘 수확량이 안 좋나?”

“아니다. 수확량은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고민을 하나?”

“마계에 새로운 숲과 산을 만드는 일이지 않느냐.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다. 일꾼들이 밥을 많이 먹지 않겠느냐. 게다가 나는 카르텔, 크레톤, 가이아, 그리고 소국가들에 더 많은 마족이 함께 어울려 살길 원한다. 국가 없이 떠도는 그들이 정착하여 다른 마족들과 함께 안락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디를 정착하든 굶을 걱정이 없도록 그들에게 지원해 줄 넉넉한 식량을 마련하고자 한다.”

가이아는 마계의 모든 마족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국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

그런 멋진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더 나은 삶을 탐구하는군. 존경한다. 참으로 멋있는 발상이야.”

“그대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부끄럽다.”

얼굴을 발그레 붉히는 가이아의 입가에 귀여운 미소가 걸렸다.

가이아는 본디 엘프였으나 초대 마황제에게 간택을 받아 마왕이 된 존재.

그렇다는 건 엘프의 숲에 관해 잘 알 것이다.

“가이아. 혹시 엘프의 숲이 어디 있는지 아나?”

“물론 알고 있다. 그곳에 용건이라도 있는가?”

“응. 그곳에서 나무와 식물을 좀 구해오면 어떨까 해서.”

그러자 가이아도 좋은 생각이라는 듯 싱긋 웃었다.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 엘프의 숲은 아름다운 초목이 자랑거리니까.”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는 가이아.

과연 엘프의 숲은 어떤 곳일까.

* * *

신비로운 엘프의 땅.

강철남은 그곳이 실로 아름답고 몽환적인 숲이라 익히 들었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이거 완전히 황무지잖아.”

멍구가 속았다는 듯 허탈해한다.

“이럴수가. 원래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예전의 푸른 숲을 기억하고 있던 가이아는 적잖이 충격에 빠졌다.

강철남은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 직감했다.

엘프의 숲은 처참했다.

커다란 나무가 허리가 꺾인 채 쓰러져있고 나뭇잎은 갈색으로 변해 바닥에 힘없이 뒹굴고 있었다.

꽃잎은 시들어 쓰레기처럼 처참히 버려져 있으며 할 일을 잃은 꿀벌들이 죽어있었다.

[탐색]

강철남은 [탐색] 스킬로 생명 반응을 찾았다.

뭔가가 있었다.

황폐해진 숲 안쪽에서 엘프들이 숨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강철남과 멍구, 가이아는 부러진 나무와 가시덩굴을 헤치며 안쪽으로 나아갔다.

한편 숲 안쪽에 숨어 있던 엘프들은 무시무시한 마력이 접근하는 것을 느꼈다.

마력을 최대한 억누른다 하더라도 강철남의 힘이 숨겨질 리가 없었다.

“엘론님!”

엘프 병사가 엘론이라는 엘프 앞을 지키고 섰다.

병사는 활시위를 당겨 마력이 진한 곳을 향해 겨눴다.

[얼음 화살]

강력한 마법의 화살이 강한 힘을 받아 곧게 뻗어 나갔다.

곧 적에게 맞아 마법 반응이 일어나야 할 것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폭발 화살]

결국 숲에 피해가 가더라도 강한 일격을 날리는 수밖에 없었다.

폭발을 일으키는 화살을 쏘아 적을 산산조각 낼 셈이었다.

그때,

“숲을 날려버려서라도 주군을 지키려는 생각은 높이 살만하구나.”

어느새 눈앞에 아름다운 엘프가 폭발 화살을 부러뜨린 채 서 있었다.

엘프 병사는 칼을 뽑아 대응하려 했지만 칼집에는 넝쿨이 얽혀 칼을 뽑을 수가 없었다.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설명해줄 수 있나?”

가이아는 아름답게 서성이다 경계심을 허물려는 듯 나무 밑동에 앉았다.

강철남과 멍구도 거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는 엘프 병사였지만 엘론은 그녀를 아는 듯 병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안심시켰다.

“가이아로군.”

“그대가 이 엘프 땅의 새로운 왕인가.”

“그렇소.”

“선왕은 어찌 되었나?”

“영원의 땅으로 가셨소.”

선택받은 엘프들만이 간다는 인생의 종착지, 천계와 마계의 교집합, 영원의 땅.

선왕은 엘론에게 후대를 맡기고 떠난 것이었다.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완전히 몰락한 숲을 보며 안쓰럽다는 듯 묻는 가이아.

그런데 엘론의 입에서 예상 밖의 대답이 나왔다.

“그건 새로 즉위한 마황제 때문이오.”

뜨끔 하는 강철남.

내가 뭘 어쨌다고?

우선 들어나 보자.

“마황제 때문이라. 자세히 설명해주겠나?”

가이아는 침착하게 이유를 물었다.

엘론은 떠올리기도 끔찍하다는 듯 괴로운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마황제가 즉위하자 그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이 우리 엘프의 숲을 덮쳤소. 마물이 없는 곳이니 마황제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이라 생각했던 곳이오. 엘프와 마물들 사이에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고 우리는 패배했소. 녀석들의 힘은 우리를 웃돌았소. 결국 나무와 꽃은 꺾이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 것이오.”

“엘프들이 그리 간단하게 당했다고? 대체 주모자가 누구인가?”

믿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엘프들이 마물들에게 땅을 빼앗길 정도로 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분명 배후에는 거대한 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주모자는 나인. 교활한 마물이오.”

순간 가이아의 가슴이 저릿했다.

나인.

잘 아는 녀석이다.

가이아가 마왕이 된 이유가 그놈 때문이니까.

“놈은 지금 어디 있나?”

“모르오. 그건 왜 묻소?”

“놈을 처단하고 이 숲을 되찾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자 엘론의 이마가 살짝 노기에 주름진다.

“이미 엘프를 등지고 마왕이 된 그대가 이 엘프의 숲을 구한다고? 그대라면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네. 단지 순수하게 이 땅을 구하고 싶을 뿐이네.”

“듣기 싫소. 마물과 다름없는 그대가 이 땅에 있는 걸 알면 다른 엘프들은 칼을 빼 들었을 것이오.”

엘론은 가아아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냈다.

“어이, 뾰족귀 양반.”

“지금 날 부른 것이오?”

멍구가 불손한 태도에 엘론은 심히 당황했다.

“지금 땅이 개판 났는데 그딴 거 따질 때냐? 써 먹을 수 있는 건 전부 써먹어야지.”

강철남과 멍구는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자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당신은 누구인데 엘프의 문제에 끼어드는 것이오? 인간과 개… 설마?”

“눈치가 꽝이구만. 이제야 알아보다니.”

멍구가 의기양양하게 낄낄댔다.

강철남이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선포했다.

“지금부터 이 엘프의 땅은 마황제 강철남이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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