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이 중에 범인이 있다
몬스터 수습 처리반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다보았다.
차량에서 서필도가 내리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그 몬스터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가?”
다급하게 묻는 서필도에게 수습반은 모자를 푹 눌러쓴다.
“부협회장님이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수습반은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뭔가 이상하다.
“이봐, 이때까지 모든 행정은 부협회장님이 주도하셨는데 신경 쓸 일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누구 지시지?”
백진섭이 따지고 들었다.
“이건 협회장님 지시입니다.”
“협회장? 이제껏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갑자기 나타나 수상해 보이는 몬스터를 슬쩍 하시겠다. 뭔가 이상한데?”
김성남이 발끈해서 대들었다.
자기 기분대로 따지고 드는 김성남 같은 타입과 말다툼 해봤자 이로울 게 없다.
수습반은 일단 한발 물러서기로 한다.
“저희 입장도 이해해주십시오. 협회장님이 신속히 수거해오라고 직접 명령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애원하는 투로 호소해본다.
“처음에는 닥치라는 태도더니, 이제와서 태도가 달라지는군. 수상한 냄새가 나.”
“어쨌든 저희는 수거해가겠습니다.”
서둘러 수거를 진행하는 수습팀.
“부협회장님. 이대로 내버려 두실 겁니까?”
“협회장님의 명령이다. 우리가 문제를 일으킬 순 없어.”
백진섭은 뭔가 찝찝했다.
서필도도 의문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체 수습팀이 현장을 떠나고 사건 현장 수습팀이 도착했다.
그들은 피해자와 부상자를 수송하고 피해 규모를 확인했다.
그 사이 홍태진이 늦게나마 도착했다.
“늦어서 미안하다. 사망자는?”
“없습니다.”
“다행이군.”
사망자가 없다는 소식에 홍태진이 한숨을 돌렸다.
“한숨 놓을 때가 아니야. 할 얘기가 있어.”
김성남이 서필도, 백진섭, 홍태진을 불러 모았다.
“김팀장. 할 얘기라는 게 뭐지?”
“아까 졸라리 신경 쓰이는 꼴을 목격했는데 말이지.”
서필도와 백진섭을 번갈아 본다.
“억측일지도 모릅니다.”
“억측? 홍팀장 의견도 그럴까?”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홍태진은 대체 무슨 일인가 궁금함을 견딜 수 없었다.
“협회장이 수상해.”
“뭐?”
“비정상적으로 강한 오우거. 그놈의 시신을 협회장이 수습반에게 직접 명령을 내려 수습해갔대.”
“행정에 손 뗀 협회장이?”
홍태진도 놀라는 반응이었다.
대체 그 오우거가 무슨 쓸모가 있어서일까.
“그나저나 그 오우거는 어떻게 쓰러뜨렸나?”
“우리가 한 게 아닙니다. 마계에서 온 철남씨의 몬스터 부하가 단번에 쓰러뜨리고는 사라졌습니다.”
“마계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나왔단 말인가?”
“네. 어째서인지 설악산의 결계를 해제하고 부하를 산 아래로 내려다 보냈다는군요.”
점점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협회장은 오우거의 시신을 숨기려하고,
강철남은 결계를 해제해 부하를 내려다 보냈다.
“이거 협회장 뿐만이 아니라 강철남마저 수상한걸.”
“철남씨는 음모를 꾸밀 분이 아니십니다.”
“모르는 법이야. 사람이 힘이 있으면 딴맘이 생기는 법이니까.”
“그랬다면 진작에 이빨을 드러냈겠죠.”
“백팀장. 헌터라는 양반이 너무 안일한 거 아니야? 우리는 힘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 의심해야 한다고.”
김성남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사실 강철남과 멍구가 마음만 먹으면 인류는 간단히 멸망해버릴 것이다.
그들이 그럴 의지가 없다고 해도,
만일 그들의 힘을 이용하는 자가 있다면 인류에게는 크나큰 위협이다.
…
잠깐, 그들의 힘을 이용?
“잠시만요. 협회장님이 갑자기 왜 강철남씨의 몸을 연구하신 거죠?”
“그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헌터들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지.”
서필도는 협회장이 말한 의도를 그대로 전했다.
“만약 다른 뜻이 있는 거라면?”
“다른 뜻이라니?”
김성남의 다소 공격적인 의심에 서필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던 인간이 갑자기 나타나 갑자기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한다는 느낌 안 들어?”
“분열을 조장하지 마.”
“의혹이 있으면 그때그때 풀어야 해. 안 그러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된다고.”
김성남은 협회장의 의혹을 물고 끝까지 갈 기세다.
“나는 그것보다 강철남이 자기 부하를 지상으로 내려 보낸 이유가 더 신경이 쓰이는군.”
서필도는 강철남을 의심했다.
두 사람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렇다면 강철남에게 직접 물어보지. 적어도 꿍꿍이를 숨기는 정치꾼들 같은 스타일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게 제일 확실하겠군. 홍팀장.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홍태진, 김성남, 백진섭은 즉시 설악산으로 향했다.
* * *
한편 결계를 삶아 먹고 설악 영감에게 혼쭐이 나고 있는 강철남과 멍구.
“아니, 기가 막히는구나. 명색이 설악 신령이라는 자와 그 신수가 합심을 하고 설악산의 결계를 잉어탕 해 먹어?”
얼굴에 잔뜩 노기를 띤 설악 영감을 누가 말리리.
“우리는 정말 몰랐다니까.”
“몰랐다 한들, 남의 연못에서 잉어를 훔쳐 먹는 게 제정신이냐?”
“좀 나눠 먹고 그러는 거지.”
설악 영감이 품속에서 금도끼, 은도끼를 꺼내 던진다.
“에헤이, 참. 위험하게”
멍구가 엄살을 피워 보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그래서 이제 어찌할 것이냐?”
“뭘 어찌해?”
“다시 결계를 구축해야 할 것 아니냐. 이대로라면 마물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서 활개를 칠 것이다.”
설악 영감은 인간계에 초래될 혼란이 어지간히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그건 걱정마쇼. 우리 쪽 애들이 구멍마다 보초 붙어서 잘 살피고 있으니까.”
“우리 애들?”
설악 영감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묻는다.
“마왕군 말이오.”
“어휴, 어쩌자고 설악 신령이 동네 건달들 같은 말을.”
“너무 꼰머스럽게 굴지 마쇼.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마를 부 잡는 설악 영감과 아니꼬운 듯 틱틱 대는 멍구.
만약 설악 영감이 지팡이만 있었더라면 멍구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설악산의 결계를 풀어둔 채로 내버려두겠다는 것이냐?”
“그건 나도 나름 생각이 있소.”
“무슨 생각?”
“지금 내 부하 하나를 지상으로 내려보냈소.”
“뭣이?”
환장할 노릇이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인간계에 신령이라는 작자가 마물을 세상에 풀어내다니.
“내가 꼰머스럽게 굴지 말랬지, 영감?”
“이 개새끼가 진짜.”
멍구와 설악 영감은 당장이라도 한판 붙을 기세다.
“이보시오. 내 말 좀 들어보쇼. 내가 부하를 굳이 내려보낸 데에는 이유가 있소.”
“제발 합리적인 이유이길 바라네.”
간곡히 염원하는 설악 영감이었다.
“조사할 게 있었소. 내 정체는 숨기고서 말이요.”
“그게 무엇이냐? 설악산의 결계를 깰 만큼 중요한 것이냐?”
“그렇소. 인간 중에 조금 꺼림칙한 놈이 있소.”
“흐음. 그대가 원래 그토록 인간들에게 신경을 쓰는 신령이었나?”
강철남의 오지랖이 의외라는 듯 설악 영감이 묻는다.
“이건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오. 그냥 개인적으로 그놈이 재수 없어서 그러는 것뿐이오.”
“맞아, 그 새끼 왠지 기분 나빴어.”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강철남과 멍구는 그저 박장혁에게서 더러운 냄새를 맡았을 뿐이다.
“개인적인 원한으로 움직이다니. 이것 참 통탄할지고.”
“툇방 늙은이는 잠이나 주무셔!”
멍구와 설악 영감이 본격적으로 한판 붙는다.
넌더리가 난 강철남은 집으로 돌아와 버린다.
“응?”
집에 돌아와 보니 홍태진, 김성남, 백진섭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남씨.”
그를 반기는 홍태진.
그런데 어쩐지 표정에 긴장이 잔뜩 묻어 있다.
“이른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이미 찾아와놓고 무슨 말을. 됐고, 용건부터 이야기하쇼.”
“키켈이라는 자를 만났습니다.”
백진섭은 대뜸 본론부터 들어갔다.
제법 알고 지냈으니 이것이 강철남의 스타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만났소? 어쩌다?”
“우리가 어떤 오우거와 싸우던 중 고전하고 있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용족은 비범한 자들이오. 아마 나와 인연이 있는 자들이라는 걸 느낀 거겠지. 그래서 도와준 것일게다.”
“그것에 대해서 우선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백진섭은 가볍게 목례를 했다.
“녀석이 한 짓을 왜 나한테 인사를 하시오.”
“그건 그렇고 어째서 결계를 해제하고 몬스터를 내려보내신 겁니까?”
조금 흥분한 백진섭의 가슴은 둥둥 뛰고 있었다.
“본론은 그거로군.”
“숨길 생각 말고 솔직히 말해.”
김성남이 눈썹을 찌푸리며 으르렁댔다.
그런다고 누굴 겁주겠나.
그저 허세를 부리는 것에 불과했다.
“노빠꾸로 말한다?”
“제발 그렇게 해다오.”
강철남은 미리 경고했다.
각오가 되어 있는 듯한 그들.
“너희 협회장이 마음에 안 든다.”
“뭐?”
홍태진은 의외의 답변에 살짝 당황한다.
이건 마치 김성남의 의견과 일치하는 맥락인 듯했다.
“내가 키켈을 보낸 건 박장혁의 연구실을 염탐하라고 보낸 거야.”
강철남은 자기 의도를 숨김없이 모두 실토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협회장에게 의심을 품고 있던 김성남이 묻는다.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놈의 지저분한 철학이지.”
“무슨 철학?”
“최근에 첫 번째 마왕의 심복을 만난 적이 있다.”
!!
강철남의 폭탄 발언에 팀장들이 놀란다.
“녀석은 인간의 시체를 재료로 썼어. 그리고 그걸 마왕에게 영광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건 마치 박장혁이 요괴를 생체 실험대에 올렸을 때와 똑 닮았어. 인류와 헌터 업계의 발전이라면서 뭔가를 죽이는 거 말이야.”
“그 말은…?”
“너희 협회장은 첫 번째 마왕과 관련이 있는 자, 아니면.”
“아니면?”
“첫 번째 마왕 그 자체다.”
그 말에 홍태진이 강철남에게 다가온다.
“그 말 취소해!”
“너희에게는 협회장이 그렇게 존경할만한 존재인가? 안타깝지만 내겐 남일 뿐이라서.”
존경.
과연 존경하는 것일까.
그가 헌터 협회를 세움으로써 인류에 큰 공헌을 해왔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홍태진이 개인적으로 그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철남씨. 사실 저희도 협회장님에 관해 아는 게 없습니다.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으시다가 최근에야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을 믿는다고?”
강철남은 홍태진을 한번 더 바라보았다.
“아니면 믿고 싶은 거 아니야?”
홍태진은 할 말이 없었다.
“협회장을 부정하는 일은 곧 자신의 헌터 인생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
“잘 생각해라. 인생의 핸들은 네가 직접 잡아야 하는 거야.”
할 말은 더 이상 없다는 듯 강철남은 솥에 불을 땐다.
홍태진은 아직 생각이 정리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때,
두다다다다---
풀숲에서 엄청난 박력을 일으키며 소란이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김성남은 바짝 긴장하며 칼을 잡았다.
풀숲을 헤치고 튀어나온 건,
멍구였다.
“철남이, 아침 식사 잡아 왔어!!”
멍구가 뒤에 십여 마리의 몬스터들을 줄줄이 달고 달려오고 있었다.
홍태진, 김성남, 백진섭은 처음 보는 자연인의 아침에 경악했다.
“자, 고르시오. 오늘 아침 메뉴는 저것들 중 하나요.”
코끼리, 코뿔소, 물소, 호랑이, 사자, 표범.
뭘 골라야 하나 기가 찰 노릇이다.
* * *
박장혁의 연구실에 잠입한 키켈.
천장에 올라가 감시 카메라 뒤쪽에 달라붙어 연구실을 내려다본다.
그러던 중 뭔가를 발견하고 놀란다.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