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첫 번째 마왕, 이 새끼는 어디서 뭐 하는 거야?
뒤에서 다가오는 불온한 감각.
강철남은 등 뒤가 찝찝해서 돌아본다.
“손님이 왔으면 앞에서 맞아야 할 거 아냐. 싸가지 없게.”
“이거, 이거. 죄송합니다. 제 결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웬 로브를 뒤집어쓴 몬스터가 꾸벅 허리를 숙인다.
퍽이나 점잖은 태도다.
얼굴은 전신을 덮어놓아서 보이지가 않는다.
살짝 빡친 강철남
“사람이 왔으면 얼굴은 좀 까지?”
“허허허. 제가 몰골이 추해서. 로브를 벗은 모습이 예의가 아닐까 염려되어서 그럽니다.”
“괜찮아. 그런 거 신경 안 써. 벗어봐.”
“하하하. 사양하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아주 점잖은 톤으로 설명하는 몬스터.
아니 그건 니 사정이고.
“아니, 씨바 내가 괜찮다는데 아까부터 존나게 신비주의 컨셉 오지게 잡고 진짜!”
“어, 어, 어! 자, 잠시만요.”
“손 치워.”
“어, 어어!”
부왁-
빡이 차오를때로 차오른 강철남이 로브를 찢는다.
“아악!”
로브를 찢자 스켈레톤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냥 낡고 낡은 해골바가지다.
스켈레톤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은 표정을 짓는데,
“뭐 불만 있냐?”
“아, 아닙니다.”
“손님이 왔을 땐 이렇게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게 예의다. 알겠나?”
“…”
“이, 씨! 대답.”
“네.”
마지못해 대답하는 스켈레톤.
자존심이 어지간히 상한 모양이다.
삐진 건 자기 알바 아니고,
바로 궁금한 걸 물어보는 강철남.
“그건 그렇고 첫 번째 마왕은 왜 없고 니가 있는건데?”
“마왕님께서는 대리인으로 절 보내셨습니다.”
“건방진 새끼. 대체 왜 그렇게 숨어다니는 건데?”
“저희 마왕님은 아주 바쁘십니다.”
그 말을 듣자 강철남이 참지 않고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움켜쥔다.
머리에 피가 솟을 때로 솟았다.
“시방 나는 아주 한가해 보이나 보지?”
“아, 아아아!”
두개골이 아프다!
조금만 힘을 더 줬다간 으스러지겠다.
스켈레톤은 공포에 질렸다.
“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 피치 못할 사정이 뭔데?”
“그야말로 피치 못할 사정인데…”
“너 초상 치러서 문상객으로 오게 해줘?”
“아아! 살려주세요. 마왕님은 건강에 무리가…”
순간 스켈레톤의 뻥 비어버린 눈에서 아차, 하는 감정이 번뜩인다.
말을 조심했어야 하는데 공포심에 말실수를 한 모양이다.
“옳거니. 새끼 아직 힘이 완전하지 않은 모양이지?”
“아닙니다. 저희 마왕님은 항상 퍼펙트하십니다.”
“퍼펙트는 씨바, 비겁하게 숨어서 해골바가지나 보내는 주제에 무슨.”
“마왕님에 대한 모욕은 자중해주십시오.”
“꼴에 충성심은. 야, 마왕 개객끼해봐.”
“못합니다.”
고개를 거세게 젖는 스켈레톤.
“확, 해골물을 담아 마셔버리라. 해봐.”
“죽어도 못합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스켈레톤의 목을 움켜잡고 길로틴 초크를 건다.
“켁. 켁켁켁!”
“이대로 뒤질래?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신념에 집착하다 뒤지시겠다. 멋지네.”
“수, 숨막혀요…”
“마지막 기회다, 이대로 모가지 뜯어버린다.”
“마, 마왕 개객끼!”
그제야 흡족한 듯 팔을 푸는 강철남.
스켈레톤은 켈록켈록 대며 공기를 들이마신다.
“후아, 뒤질 뻔했네.”
“이제야 우리 사이가 한층 더 가까워진 것 같군.”
“완전 싸이코 새끼잖아.”
“그렇지, 그렇게 가식 없이 나와야지. 지금 인간계에선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거다. 니들 때문에. 너희들의 개 같은 책략에 맞장구를 쳐줬으면 적어도 성의는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강철남이 묵직하게 팩폭을 날린다.
스켈레톤은 그의 포스에 기가 죽는다.
“질문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대답만 해라.”
“물어보시죠.”
“날 왜 불렀지?”
“마왕님은 강철남님과 손을 잡고 싶어 하십니다.”
손을 잡자라.
이건 동맹일까, 아니면 공범이 되자는 걸까.
“무슨 일을 하려는 건데?”
“마계를 손에 넣고자 하십니다.”
“마계 공동 CEO라도 되자 이건가? 어쩐지 그 새끼 성격상 나중에 뒤통수 치고 지 혼자 꿀꺽할 것 같은데.”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기본 조항이 있습니다. 강철남님께는 인간계를 다스릴 권리를, 마왕님은 마계의 주인이 되고자 하십니다.”
“아하, 그러니까 나는 인간계, 그 새끼는 마계. 이렇게 각자 잇속만 챙기고 서로 관여하지 말자 이건가?”
“맞습니다.”
“나와의 충돌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강철남님의 강함은 익히 알고 있으니까요.”
현명한 선택이군.
“내가 거절한다면?”
“아마 인간계에서 난동을 부리실 겁니다.”
해골바가지 녀석의 말에 거짓은 없는 듯했다.
달리 숨기는 의도도 없는 것 같고.
“인간계의 주인이 된다라. 말이 쉽지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먼저 마왕님께서 마황제로 등극하시게 되면 나머지 마왕들의 힘으로 초대 마황제님의 금고를 열 수 있습니다.”
“금고? 그런 게 있어?”
“네. 현재 마왕님께서는 그 금고를 찾으셨습니다.”
자신들의 공적을 자랑스레 말하는 스켈레톤.
“그곳에는 ‘에테르’라는 초대 마황제님이 남기신 힘의 결정체가 있습니다. 그 에테르를 흡수하면 세계를 다스리는 권능을 얻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간계를 다스릴 권능을 강철남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정리하자면 첫 번째 마왕이 노리는 건 마황제 등극.
강철남과의 충돌은 최대한 피한다.
대신 강철남에겐 인간계를 다스릴 권능을 준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군.
“인간계를 다스릴 수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땅을 창조해낼 수도 있고 바다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세계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신이 되는 겁니다.”
혹하는 힘이다.
자연인 강철남.
그런 능력이 있다면 공기 좋은 산과 맑은 물이 흐르는 자연을 더 가꿀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그 새끼는 마황제가 되어서 뭘 하려고 하는 건데?”
“그 의중은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덜 맞았나 보군.”
“아악! 정말 모릅니다!!”
겁에 질린 스켈레톤은 뒷걸음질을 친다.
잠시 생각에 잠긴 강철남.
역시 강철남은 첫 번째 마왕이 마음에 안 들었다.
“역시 나는 녀석과 손 못 잡겠다.”
“네에? 어째서요?”
“널브러진 시체에 인간의 것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너희 보스는 인간을 얼마나 먹은 거냐.”
“셀 수가 없죠.”
“내가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그게 찝찝하신 겁니까? 생각해보시죠. 그 인간들이 마황제님의 힘이 된다면 한낱 인간의 삶보다 훨씬 가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네 생각이냐?”
“당연하지요! 아마 초대 마황제님이 구멍을 뚫으신 이유도 인간을 먹이 삼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빠각!
결국 두개골이 으스러지고 마는 스켈레톤.
초대 마황제가 인간계와 이어지는 구멍을 뚫은 이유가 인간을 먹기 위해서라고?
강철남은 믿지 않았다.
몬스터 시장, 살쾡이, 비둘기, 소문에 밝은 곰, 철갑 두더지, 듀크, 키켈, 나르딘의 쥐, 카르텔, 가이아.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깨달았다.
구멍은 연결.
마물과 인간이 이어지기 위한 통로라는 걸.
* * *
인간계에 출몰한 18 요괴는 전멸되었다.
요괴와 몬스터 잔당은 헌터들이 소탕하였으나 추격대가 뒤를 쫓고 있다.
이 전쟁은 인간들의 승리였다.
몬스터들의 협공을 막아내고 이겨낸 것이다.
인간은 큰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간의 희생, 노력이 결실을 맺은 역사적인 순간이다.
헌터들은 대대적인 뒷수습에 나섰다.
“홍팀장님, 이거 대박입니다.”
“뭐가?”
“요괴와 몬스터들에게서 소재를 대량으로 추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헌터가 들뜬 듯이 보고를 올렸다.
“그보다 사상자가 없는지, 시민들의 불편 사항은 없는지부터 조사해.”
“앗, 네! 알겠습니다.”
홍태진의 지시 아래 서울 헌터 연합은 뒷수습에 박차를 가했다.
“실례합니다! 방속국에서 나왔는데요,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홍팀장님! 여기 카메라 한 번만 봐주세요!”
기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럴 땐 김성남을 미끼로 던져줘야 한다.
“이봐, 김팀장은 어디갔어?”
“그게, 기자들이 몰려올까봐 진작에 황팀장님이랑 근처 산으로 도망갔습니다.”
“이런, 젠장! 한발 늦었군.”
미리 눈치를 채고 도망간 김성남과 황기민.
결국 홍태진은 바쁜 와중에도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해야 했다.
모털 도사는 요괴의 잔당을 뒤쫓았고,
각 신령들은 각자의 산에 숨어 있는 요괴를 몰아냈다.
멍구는 냥고와 작별을 고하고 설악산으로,
냥고는 대한산으로 돌아갔다.
두루미 신령은 날개를 펼쳐 어디론가 말없이 사라져 버렸다.
“요괴가 이렇게 많다니.”
“그만큼 희생된 인간이 많다는 말이군요.”
“분해요.”
한지영은 사람들을 지켜내지 못한 것이 분했다.
“우리는 신이 아니에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뿐이죠.”
헌터의 삶을 살아오며 단단해진 백진섭이 그녀를 위로한다.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기도 했다.
지켜내지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기 보다는,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현장이 수습으로 바쁜 동안,
서울 헌터 연합도 처리할 문제들로 바빴다.
“수고했네. 강철남씨로부터 온 소식은 없나?”
“네, 아직 복귀 안 하신 것 같습니다.”
최형권은 서필도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인간과 요괴들의 전투에 관한 전후 사정이 담겨 있다.
몬스터가 인간을 먹고 변이된 존재인 요괴.
그리고 그 요괴를 퇴치하는 힘, 도력.
그 도력이 높은 자들 중 도사가 있으며,
그들의 스승 격이면서 산의 수호신이라 할 수 있는 신령들의 존재.
모두 믿을 수가 없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믿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니까.
“현실이 점점 비현실적으로 변해가는구만.”
“변화에 적응해야겠지요.”
“흐음. 최감별사, 강철남씨가 헌터들을 소집했을 때 보았지? 그의 상태창은 어떻게 되었나?”
“멍구의 것과 함께 작성해두었습니다.”
최형권이 또 준비해온 하나의 서류를 내민다.
그걸 받아 보는 서필도의 얼굴에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강철남】
레벨: 701
도력: RR
마력: RRR
힘: RRR
맷집: RRR
속도: RRR
【멍구】
레벨: 633
도력: RA
마력: RRC
힘: RRC
맷집: RRC
속도: RRC
“듣기로는 이번에 설악산의 신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신령? 그 각 산을 수호하는 신령이?”
“그렇습니다.”
인간이 마력과 도력을 동시에 가졌다.
그것도 모자라 마왕에다 신령이라니.
대체 이 남자 정체가 무얼까.
“점점 무서워지는군.”
“강철남님이요?”
“한때는 인류의 희망이라 생각했네. 하지만 그를 통제할 수 있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건 너무나 불안하네.”
“강철남씨를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믿네. 믿지만, 내가 믿지 못하는 상황이네.”
“상황이요?”
“인간은 상황에 따라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되는 생물이니까.”
최형권은 그저 서필도가 압도적인 힘 앞에 경외감을 느낄 뿐이라고 여겼다.
강철남이 인간의 도리를 벗어나는 짓을 할 리가 없으니까.
그때,
벌컥-
누군가 부협회장실로 들어왔다.
그는,
“협회장님!”
서필도가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그 바람에 서류가 쏟아진다.
협회장은 바닥에 떨어진 종이 한 장을 집어 드는데,
“강철남, 멍구. 흥미롭군.”
그들의 상태창을 보며 미소 짓는 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