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신령 총원 집합
냥고는 오랜만에 강철남의 품에 안겼다.
그리웠던 체취와 체온이다.
그 따스함이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나왔다.
멍구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냥고와 몸통을 부딪치며 인사한다.
[냥고]
레벨: 221
마력: SSS++
힘: SSS++
맷집: SSS++
속도: SSS++
오랜만에 만난 냥고는 거의 드래곤 수준으로 강해져 있었다.
홀로 대한산을 지키며 수련을 쌓은 덕이다.
“강해졌구나, 냥고.”
“형님들이 그런 말씀 하기에요?”
‘눈’이 없어도 그들의 강함을 느낄 수 있는 냥고는 온몸에 소름이 올라온다.
오랜만의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
그러나 방해꾼이 있었으니,
“너는 뭐 하는 새끼냐?”
강철남은 자객에게 다가가 물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어쩔 수 없군.
[빙의]
강철남은 자객의 머리통을 꽉 쥐었다.
그러자 복잡한 주마등이 책장을 빠르게 넘기듯 촤르륵, 지나간다.
무수한 장면들이 별똥별처럼 빠르게 넘어가고 그 속에서 하나의 기억을 발견해낸다.
“대한산에 막힌 구멍을 뚫어라. 그리고 두루미 신령을 잡아 와라. 죽여서 데려와도 좋다.”
아는 목소리였다.
첫 번째 마왕.
또 너냐.
“한 가지 더.”
방금까지 자객에게 명령을 내리던 톤이 변하였다.
놈의 목소리가 향하는 방향이 달라졌다.
“지금 이 기억을 읽고 있다면 아마 내 부하가 실패를 했다는 거겠지? 정말이지 너는 어디까지 나를 방해할 생각이냐.”
또 강철남을 향한 메시지를 던진다.
“열 명의 신령을 죽이는 것도 실패했고 두루미 신령을 잡는 것도 실패했다. 아무래도 네가 있는 한 내 다음 계획도 실패하겠지.”
첫 번째 마왕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말을 이었다.
“너와 내가 만날 때가 온 것 같군. 독기의 호수로 오너라. 너를 기다리겠다.”
그 말을 끝으로 첫 번째 마왕의 메시지는 끝을 맺었다.
독기의 호수.
마계의 깊은 동굴 속에 있는 불길한 장소다.
그곳에 닿기만 해도 모든 것이 녹아 소멸해버리는 죽음의 호수는 마계의 모든 몬스터들이 멀리하려 하는 곳이다.
예전에 크레톤의 사체를 녹였던 그 장소에서 첫 번째 마왕은 강철남을 불러내는 것이다.
“꼭 약속 장소를 잡아도 잣 같은 곳으로 잡는구만.”
“왜, 철남이? 그 새끼가 만나재?”
“독기의 호수에서 보잰다.”
“갈 거야?”
“씨봉방년. 안 가면 또 귀찮게 굴겠지.”
“아오, 이참에 가서 죽여버리자.”
강철남과 멍구는 지긋지긋한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점화]
자객의 육신을 푸른 불꽃이 감싸니 금방 소멸해버린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두루미 신령.
강철남의 신묘한 힘에 감탄하며 묻는다.
“그대는 누구인가. 어찌 그런 신통한 능력을 가졌지?”
“인사가 늦었소. 나는 마계 도시 크레톤의 마왕이자 설악산의 신령인 강철남이라 하오.”
참으로 독특한 이력이다.
마왕이면서 신령이라니.
이 무슨 조합인가 잠시 생각해보는 두루미 신령.
냥고도 이 인간 형님이 잠시 나간 사이에 무슨 터무니없는 거물급 명함을 두 개나 매달고 왔나 싶어 벌벌 떤다.
“오호. 그러니까 그대는 마왕이면서 신령 된 자로군. 어쩐지 마력과 도력이 함께 느껴지는 것이 신비로웠다네. 자네에게는 참 신비한 오라가 감도는구만.”
두루미 신령은 강철남이 마왕이라고 해서 별다른 편견을 갖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강철남의 기운이 맑고 청아한 것을 간파하고 그를 반기는 눈치였다.
그 어떤 신령들보다 그릇이 큰 신령이었다.
그때 불쑥,
“두루미 신령님, 인사 올리겠습니다! 저는 설악 신령님의 제자 모털 도사라 하옵니다.”
두루미 신령의 위엄에 잠자코 있던 모털 도사.
타이밍을 노려보다가 넙죽 절을 올린다.
“호오, 도사란 말인가. 반갑네. 몸을 일으키게.”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는 모털 도사.
“사실, 당신을 찾아온 건 이 친구 문제 때문이오.”
“응? 무슨 문제가 있는가?”
강철남은 모털 도사의 탈모에 관하여 설명했다.
그의 도력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다시 자랄 수 있게 할 수 없는지.
“나는 거들어줄 뿐, 결과는 오로지 저 도사에게 달려 있네.”
두루미 신령은 선을 그어 말했다.
“뭐가 되었건 나는 모털이를 믿네. 부탁함세.”
두루미 신령은 모털 도사를 바라본다.
강직하고 순박한 두 눈.
선량한 인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나 지금부터 자기가 주는 시련은 정신마저 물과 같이 맑은 자만이 넘을 수 있는 시험.
“각오는 되어 있느냐?”
“되었습니다!”
당차게 대답하는 모털 도사.
“좋다, 그러면 따라오너라.”
두루미 신령은 부리를 높게 치켜들더니 분홍색 연기를 그리기 시작한다.
연기는 그들을 휘감더니 어느 높은 봉우리 위로 옮겨다 놓았다.
“여긴 어디지?”
“신선계의 가장 높은 봉우리라네.”
“처음 보는 곳이로군.”
“다른 신령들은 함부로 올라올 수 없는 곳이니까 말일세.”
봉우리 정상에 올라선 그들.
신선계 아래가 아득히 보일 정도로 높다.
“모털 도사는 좌선하도록 하거라.”
“예!”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에 들어가는 모털 도사.
두루미 신령은 곧장 하늘로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다.
마치 무언가 의식을 진행하듯 머리 위를 빙빙 도는 두루미 신령.
그러다 이내 부리에서 뭔가를 떨어뜨린다.
“저건 뭐지?”
“콩알인 거 같은뎁쇼.”
“씨앗이네.”
톡-
씨앗 한 알이 모털 도사의 정수리에 톡, 떨어진다.
그대로 머리속으로 스며드는 씨앗.
“푸흡!”
멍구는 빵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냥고는 간신히 참았고 강철남은 쿡쿡, 찌르며 엄숙함을 강요했다.
모털 도사는 진지하게 좌선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씨앗은 그대를 평가할 것이네. 그대에게 삿된 마음이 있다면 씨앗은 그대를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고 만일 도(道)를 발견한다면 그대의 도력을 되찾아줄 것이네.”
긴장감이 흘렀다.
모두가 모털 도사의 민머리에 집중했다.
모털 도사는 표정을 흩트리지 않고 얌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해가 지고 신선계에 달이 떴다.
보름달이 빛을 발하며 봉우리를 비추자 번쩍이는 모털 도사의 민머리가 한층 돋보였다.
결과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든 멍구와 냥고.
강철남은 팔짱을 낀 채 경과를 지켜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신성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더니 서늘한 감각을 전해준다.
그 순간,
스르르-
부드러운 강물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모털 도사의 머리에서 도력의 생기가 찾아들었다.
달빛에 반짝이던 정수리에는 어느새 그 빛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두루미 신령은 아주 흡족한 듯 웃었다.
강철남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신비로운 기운에 눈을 뜬 멍구와 냥고도 잠이 확 달아나는 광경이었다.
머리카락이 뺨에 닿는 감촉을 느끼는 모털 도사의 눈가에는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멍구는 ‘눈’을 통해 모털 도사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모털 도사]
레벨: 158
도력: R
힘: A
맷집: A
속도: S
* * *
강철남은 고구려주를 땄다.
이런 날에는 술이 빠져서야 되겠나.
모털 도사는 아직 믿기지가 않는 듯 술을 홀짝이면서도 자기 머리카락을 계속 쓰다듬어 본다.
“인물이 확 사네. 역시 남자는 머리빨이야.”
냥고가 모털 도사를 치켜세워 준다.
“엄청난 도력이구만. 거의 신령급 도력이야.”
멍구도 놀랄 정도의 도력이다.
“이제 설악 신령은 모털이가 해도 되겠군.”
은근슬쩍 일을 떠넘기려는 강철남.
“아직은 때가 이르네.”
두루미 신령이 할 말이 있는 듯 말을 확, 낚아채는데.
“철남 신령은 어쩌다 마왕에다 신령까지 되셨나?”
“마왕 크레톤을 때려잡고 18 요괴를 좀 혼내줬지. 그랬더니 마왕이 되어버렸고 설악 영감에게 일을 떠맡아 버리게 되었어.”
“오호, 18 요괴라.”
요괴들로부터 크레톤에 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마계 최강의 용족이라고 들었다.
그의 힘은 국가를 괴멸시켜버릴 정도라고 들었는데,
“역시 철남이 형님이세요.”
냥고는 다시 한번 강철남의 강함에 감탄했다.
두루미 신령은 18 요괴에 대해 생각했다.
사악한 마귀들이 다시 활개를 치는 것이 께름칙했다.
“이보게. 18 요괴는 지금 몇 마리나 남았나?”
지금까지 퇴치한 18 요괴는 모두 11마리.
즉, 7마리 남은 것이다.
“왜 그러시오?”
뭔가 수상하다.
강철남을 마계로 불러내려는 건 아마도,
“계략이네.”
곰곰이 생각해보고 결론을 내린 두루미 신령.
“그대가 마계로 간 사이 아마 남아 있는 18 요괴가 인간계를 휘저어 놓을 것이지. 다른 신령들과 달리 산을 내려가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나를 제거하려던 이유도 훼방꾼을 미리 손 써둘 셈으로 그랬던 것이 분명하네.”
강철남을 마계로 끌어들이고 두루미 신령을 제거해 방해꾼을 없앤다.
그다음 18 요괴들을 부려 인간계를 휘젓겠다는 계략.
두루미 신령은 첫 번째 마왕의 속셈을 파악했다.
“훌륭하군요.”
“간악한 자들의 생각이야 뻔하지. 이제 할 일은 남은 18 요괴 잔당을 소탕하는 것이네.”
그러자 대놓고 귀찮은 내색을 하는 강철남.
마왕이고 요괴고 다 귀찮다.
이제 그만 황토집에서 등이나 지지면서 자고 싶다.
“자, 자. 그러지 말고. 명색이 신령 아닌가? 자네는 산의 신력을 먹고 자란 신령도 아니니 산을 벗어나도 도력이 자유롭지 않은가? 세상에는 자네가 필요하네.”
두루미 신령은 강철남의 등을 계속 떠민다.
“그 7마리를 어떻게 다 찾아요?”
“그건 다 방법이 있지.”
두루미 신령이 부리를 하늘로 치켜든다.
그 부리 끝에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분홍색 연기 몽실몽실 뭉쳐진다.
거대한 뭉게구름이 그들 앞에 멈춰 선다.
“우와! 이거 구름 자동차야?”
냥고가 펄쩍 뛰어 푹신한 구름 위에 올라타 고롱고롱 뒹군다.
“야호!”
멍구도 폴짝 뛰어들어 뺨을 부빈다.
“내려가려고?”
“모든 신령들의 힘을 모아야 하네.”
구름 위에 모두 올라타자 구름은 부드럽고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신선계 아래에서는 신령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으응?”
뭔가 이상해 하늘을 보니 웬 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태백 신령은 이 정도 크기의 구름을 부릴 수 있는 자가 누구인고 생각해본다.
그러자 한 가지 도달한 결론,
“두루미 신령님!”
그 외침에 다른 신령들이 상을 치우고 집합하여 정렬한다.
구름이 완전히 땅에 내려앉자 신령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 나타난 천방지축 설악 신령 강철남과 그의 신수 멍구.
이번에는 웬 마력이 충만한 고양이를 한 마리 달고 왔다.
저놈도 눈에 살짝 똘기가 보이는 걸로 봐선 멍구처럼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모털 도사의 풍성한 머리숱.
신령들이 머리를 맞대도 해결 못했던 문제를 이렇게 금방 해결할 줄이야.
모털 도사에게서 흐르는 도력은 신령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이토록 그릇이 큰 청년이었을 줄이야.
무엇보다,
“두루미 신령님을 뵈옵습니다!”
두루미 신령을 직접 보다니.
신령들에겐 그야말로 전설적인 존재.
옥황상제 다음으로 가는 우상이나 다름없다.
“고개들 들라. 격식을 차리기에는 우리는 할 일이 많구나.”
“할 일 이라니요?”
“지금부터 18 요괴 소탕 작전을 펼치겠다.”
두루미 신령, 아홉 명의 신령, 모털 도사, 냥고.
그리고 강철남과 멍구.
이들은 본격적으로 요괴들과의 전쟁에 들어섰다.